고통의 바다를 지나 이제 평화로운 항구에 다다라
고통의 바다를 지나 이제 평화로운 항구에 다다라
  • 조영예(기쁜소식의정부교회)
  • 승인 2016.10.05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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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간증
 

불행한 결혼 생활로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던 평안 예수님 안에서 모든 불행이 끝났고 이제 진정한 안식의 세계에서 산다.

 나는 경남 삼천포에서 1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우리 집은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다복한 가정이었다. 나는 도시에 살고 싶어서 부모님을 졸라 언니들이 있는 부산으로 고등학교를 갔다. 학교를 졸업한 후엔 미술학원에 취직했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보람도 있어 직장 생활이 즐거웠다.
 스물다섯 살 때, 아는 언니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자신을 고아라고 소개했다. 부모님과 가족에게 남편을 소개했을 때 결혼을 반대하셨기에,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경기도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살다 보니 남편에게 친동생이 있고, 배다른 형제들도 있었다. 가족이 없는 것보다 낫기에 이해했다. 첫애를 낳고 얼마 지나 남편이 사업을 하고 싶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남의 돈을 빌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 못 하겠다고 말했지만 남편이 끈질기게 애원하여 친구와 언니들에게 돈을 빌렸다. 여러 차례 돈 이야기를 하자 언니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사업 수완이 좋아 돈을 잘 벌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집도 사고 차도 바꾸고, 집안의 모든 물건을 새것으로 교체했다. 고향에 갈 때는 꼭 비행기를 타고 다닐 정도로  누리며 살았다. 그게 행복인 줄 알았다.
 둘째 아이를 낳자 남편은 양주에 땅을 사겠다며 아버지께 대출을 부탁해보라고 했다. 다시 돈 이야기를 꺼내는 남편이 너무 싫었지만 남편을 이기지 못해 죽을 죄를 짓는 심정으로 고향에 내려가 대출을 받아 왔다. 남편은 양주에 3천 평 땅을 사고 공장을 짓고 사업을 크게 벌였다. 그런데 남편 사업이 커지고 성공할수록 내 마음은 외롭고 힘들었다. 아버지가 대출 이자 때문에 전화하실 때마다 남편은 “그깟 돈 갚을게!” 하며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성질을 부리는 바람에 굉장히 힘들었다. 남편은 빌린 돈을 갚으려고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다 자기 것이 됐다. 남편이 너무 실망스러웠다.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남편의 외도 사실까지 알았다. 이때도 남편은 오히려 큰소리를 쳐 충격이 컸다.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남편을 용서하고 잘 살아 보려고 노력했다.

‘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2003년 어느 날, 부산에 사는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동생이 급성루게릭병에 걸려 1년밖에 못 산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남동생이 결혼한 지 1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생은 국내외로 약을 찾아다녔지만 사기만 당하고 온 몸이 마비되어 고향에 왔다고 했다. 죽어가는 아들을 보고 지내시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먼저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굿을 하고 절에 가서 빌고 또 빌었다. 올케의 설득으로 교회에 나가시기도 했다. 늙으신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견디시며 자식을 간호하셨다.
 어느 날, 남동생을 보러 고향에 가니 동생이 무척 수척해 있었다. 동생과 눈을 맞추고 손을 잡자 동생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더니 주루룩 흘러내렸다. 동생 앞에서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내 눈에서도 참았던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하나님, 이 일을 어찌합니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동생을 살려 주세요!’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생활비도 주지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남편에게 이혼하자고 했다. 이번에는 순순히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면사포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이혼녀가 되었다. 남편이 짐을 싸서 나간 뒤 우편물이 날아왔다. 남편이 내 이름으로 산 집의 은행 이자가 밀려 경매 처분된다는 통지문이었다. ‘아, 하나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해 겨울, 남동생이 위급하다는 연락을 받고 고향에 가니 동생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관을 붙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 와 있었다.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나를 붙잡고 용서해 달라고 애원하는 남편을 단호하게 뿌리쳤다. 내가 끝까지 말을 듣지 않자 남편은 나를 위협했다. 위기를 모면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친정으로 내려갔다. 친정에 가서도 매일 남편의 협박전화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견디다 못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 남편에게 1년 접근 금지 명령이 났다. 그때부터 남편은 조용해졌다. 그런데 6개월 뒤 나 몰래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버려 그때부터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건강을 회복하고 의정부로 돌아와 직장을 잡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이 생각나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매일 밤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너무 힘듭니다. 하나님이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설상가상으로 새로 시작한 일이 잘 되지 않았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죽고 싶은 마음에 수면제를 먹었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1주일간 병원신세를 지고 나왔다. 의지할 곳을 찾아 교회도 가고 절에도 가 보았지만 좀처럼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언니는 죄가 있어?
지난 3월, 뜻밖의 일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우편함에 빨간색 고지서가 꽂혀 있어 보니 역시나 압류통보서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전 남편이 내 이름으로 샀던 집을 경매처분하고 빚이 500만 원 가량 남았는데, 10년 사이에 세 배로 불어나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용기를 내어 전 남편에게 연락하니 돌아오는 것은 역시 협박뿐이었다. 남편을 잠시 기대했던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 직장 원장님이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휴가를 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했다가 혼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여행지를 제주로 바꾸었다. 비행기와 펜션을 예약하고 렌트카도 대여했다. 그런데 떠나기 이틀 전, 이상하게도 마음이 바뀌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고향으로 향했다.
 친정집에 도착하여 어릴 적 친하게 지낸 사촌 동생에게 연락했다. 나를 볼 때마다 예수님 이야기를 꺼내 귀찮게 여겼던 동생에게 남해로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 동행하며 한두 시간 동안 동생 이야기를 들어주다 “고향에 쉬러 왔으니 예수님 이야기는 그만 좀 해!”라고 화를 내고 돌아왔다.
 다음 날은 동생에게 지리산 쌍계사에 가자고 하자 동생이 흔쾌히 따라나섰다. 아침부터 비가 많이 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지리산을 돌아다녔다. 동생은 다시 성경 이야기를 했는데, 그날은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언니는 재혼할 마음은 없어?”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애들이 저렇게 사는데 어떻게 내가 재혼을 하니?”
  “언니는 죄가 있어?”
  “죄가 당연히 많지. 내 생각대로 살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애들한테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자 동생이 죄 사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죄를 다 가지고 가셨다고 했다. 나는 평소에 예수님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을 물었다. 그리고 동생이 다니는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묻고, 내가 사는 의정부에도 같은 교단의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날은 동생과 예수님 이야기만 하다 왔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길에 이제야 들어왔구나
집에 돌아와 동생이 알려준 기쁜소식의정부교회를 찾아갔다. 일요일 예배에 참석해 말씀과 찬송가를 듣고 있노라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과 상담했다. 목사님은 창세기 1장을 읽으시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다고 설명하셨다. 창세기 2장과 3장을 읽으시고는 최초의 인간 아담이 죄를 지었기에 우리는 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났고,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의 씨라고 하셨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목사님이 설명해 주시는 말씀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 전해졌다.
 목사님은 아들의 빚을 갚아준 아버지 이야기를 하시며 예수님도 우리의 죄 값을 갚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내 죄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 사해진 사실이 믿어졌다. 너무 기뻐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제야 내가 하나님을 만났구나!’
 목사님이 그날 저녁 인천에서 열린 대전도집회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처음으로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오래 전부터 사촌 동생이 예수님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내가 왜 이제야 구원을 받았을까?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길에 이제서야 들어왔구나. 나 구원받았어. 하나님을 만났어!” 가슴속에 기쁜 함성이 요동쳤다.

 

세상을 떠나기 전 구원받은 남동생
구원받고 사촌 동생에게 내가 구원받은 소식을 전하자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남동생이 투병할 때 복음을 전하러 기쁜소식삼천포교회의 목사님을 모시고 갔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병수발을 하던 막내 동생이 ‘아픈 사람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러 왔냐’며 오지 말라고 화를 냈지만 목사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단다. 남동생의 몸은 굳었지만 정신이 살아 있어서 말씀을 잘 들었다고 했다. 목사님이 복음을 다 전하신 뒤 “죄 사함을 받았으면 눈을 두 번 깜빡여 보세요.”라고 하자 남동생이 눈을 두 번 깜빡였다는 것이었다.
 복음을 듣고 며칠 뒤 동생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사촌 동생에게서 남동생의 이야기를 전해들으면서 너무 감사해 눈물이 났다. 온갖 무시를 받으면서도 나를 만나주고, 남동생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촌 동생이 굉장히 고마웠다.

그 어떤 여행보다 행복했던 여름수양회
올여름에는 교회 자매님들과 여름수양회에 참석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망설였는데, 수양회에 가면 말씀을 풍성히 들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 가기로 결정했다. 마침 일하고 있는 어린이집 방학과 날짜가 맞아 감사했다.
 수양회를 얼마 앞둔 어느 날,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해외여행을 가자는 달콤한 말을 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잠언 말씀이 떠올렸다. 그리고 오히려 내가 수양회에 같이 가자고 선배에게 권했다. 선배는 거절했고, 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떠났다.
 수양회에서 보낸 시간들은 그 어떤 해외여행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린 아기부터 지팡이를 짚고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것이 놀라웠다. 나는 새벽 시간부터 복음반에서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말씀이었다. 내 마음속에 말씀이 하나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마가복음 4장 1~9절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쌔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게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느니라.” 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는 나도 좋은 결실을 맺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목사님은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내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말씀을 들어야 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셨다.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깊고 오묘해서 수양회에 오길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해바다에서 세례를 받으며 감동과 감사가 울려나왔다. 이제 나는 죽었고 예수님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수양회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온 후 내 모든 문제를 예수님께 내려놓았다. 그동안 갖고 있던 외로움은 하나님을 만나면서 기쁨과 설렘으로 바뀌었다. 이제 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 예수님을 믿어. 교회에 다니고 있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하나님께 내가 가진 걸 드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드린다. 주말이면 친구들과 즐겨 마시던 술은 아예 생각나지 않고, 텔레비전도 멀어졌다. 어느덧 성경을 한 번 다 읽었다. 성경에는 인생의 진리와 하나님의 인자하신 마음이 들어 있었다. 성경 읽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교제하며 알게 된 내 마음
얼마 전에는 한 자매님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미운 적이 있었다. 교회에 가기 싫은 마음까지 올라왔다. 그냥 무시하자고 생각하다가,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목사님과 사모님과 교제하라던 사촌 동생의 말이 생각나 사모님께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 사모님은 ‘내 생각은 어둠이고 어둠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라며 빛이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자매와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셨다. 실제로 그 자매와 이야기해 보니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 내가 가진 미움은 나 혼자만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나를 끌고 다니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이혼한 이유도 그랬다. 생각 하나가 내 마음속에 들어와 나를 끌고 다니다 그 생각에 사로잡혀 이혼했고, 또 죽고 싶다는 생각 하나가 들어와 약도 먹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도 알았다. 요즘은 몸이 무척 건강해졌다. 목사님 말씀을 듣다 보면 손뼉을 치며 웃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지 알았다.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뛰는 메뚜기가 정하다
“뛰는 다리를 가지면 정합니다. 한번 폴짝 뛰어 보세요. 견고한 믿음을 진 자와 똑같이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은 뒤로 나는 메뚜기처럼 폴짝폴짝 뛰고 있다. “엄마, 나 교회 다녀요. 엄마도 교회 같이 가세요.”라고 한 발 뛰고, “나 하나님을 믿고 사는데 아주 행복해. 우리 교회에 같이 가 보자.”라고 또 한 번 폴짝 뛰어본다.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 행복을 알려주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요즘 뭐하길래 연락도 없고 조용해요? 애인이라도 생겼어요?”
 “예. 생겼지요. 멋진 분을 만났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시면 우리 교회에 와 보세요.”라고 초청했다.
대학생이 된 두 아들에게도 교회와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들도 복음을 듣고 행복하길 기도하고 소망한다.

고마운 사촌 동생
올 추석 때 사촌 동생에게 줄 선물을 들고 고향에 갔다. 구원받고 만나니 사촌 동생이 가장 고맙고 감사했다. 아버지 산소에 가는 동안 하나님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언니 입에서 찬송이 다 나오네?”
 사촌 동생이 깜짝 놀랐다. 나는 동생에게 끊임없이 하나님 이야기를 했고, 우린 무척 행복했다. “길에서 뱀을 만나녕 어떡하지?”라고 묻자 사촌 동생이 “뱀을 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만 보고 가.”라고 했다. ‘어찌 이런 동생을 내게 주어 나를 복되게 하시는지....’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신 목사님 사모님 말씀이 공감되었다. 맞다. 나는 참 복이 많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자꾸 솟아오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문제와 어려움과 고통을 당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내 마음을 무너뜨리셨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하나님이 기쁜 마음으로 나를 쓰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에 들어섰다.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나를 죽이시든 살리시든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나님 뜻대로 따르리이다.”
 구원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새 힘을 주신다고 했다.
 오늘도 나는 큰소리로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새 힘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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