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뉴스데일리
월간 기쁜소식특집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추어탕 부부 국악 부부
진행 김소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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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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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만남이다. 젊어서는 각기 좋은 만남을 그리지만 서로 좋아하는 게 다르다 보니 그 만남이 오래 가지 못한다. 폭풍우, 비바람 치는 여름이 지나면 뙤약볕 맞고 가을 열매들이 익어가듯 거칠고 험한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볕, 은혜의 햇살을 받고 영그는 부부들이 있다.
진짜 부부 이야기. 풍성한 과일로 배부르듯 이들의 이야기로 배불러 보자.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는 부부들의 간증 속에서 함께 행복해 보자. 부부 간증을 두 달에 나누어 소개한다.

   
 

남편 이야기 / '부부가 이렇게 사는 거였구나!'
장학종(기쁜소식원주교회)

내가 스물일곱 살 때 스물한 살이던 아내를 만나 2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내는 내가 꿈꾸던 그런 여인이었다. 사업을 하며 살다가 첫째 아들 혁이를 낳았고 혁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둘째 아들 혁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혁진이는 큰 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서울에 가서 유명한 병원을 소개받아 검사를 받았는데, 양쪽 신장이 모두 파괴되어 기능을 잃었고 방광도 망가졌다고 했다. 신장에서 방광을 연결하는 요관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수십 배 커져 있고, 요도에서 소변을 내보내는 기능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불치병이라는 소리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돈이 얼마가 들던지 의사 선생님께 아들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혁진이와 아내를 서울 병원에 두고 혁이는 친척 집에 맡기고 나는 원주 사업장에 있으면서 주말에 병원에 갔다.
 5년을 지내는 동안 모두가 지쳐갔다. 여러 번 수술을 했지만 아들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길은 미국으로 보내서 수술을 받든지 생을 마감하든지 둘 중에 하나였다. 아내와 아들이 받는 고통이 너무나 컸기에 ‘차라리 죽지’ 하는 마음도 들었다. 5년 동안 우리 가족의 삶은 처참했다. 아들로 인해 절, 무당집, 교회, 점집 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사업은 엉망이 되었고 빚은 쌓여 갔다. 부부 사이는 점점 멀어졌고,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떨어져 지내서인지 소아 우울증에 걸렸다. 결국 병원은 혁진이의 병에 대해 손을 놓았다. 왼쪽 신장은 적출했고, 오른쪽 신장은 소변 역류로 염증이 생겨 고열이 나며 손상되어 갔다.
 빚도 많고 IMF 외환위기 때라 더욱 힘들었는데, 작은처형이 천만 원을 빌려주어서 중국집을 시작했다. 나이트클럽 사업을 크게 하던 내가 배달을 하고 아내는 주방에서 포장을 하고 큰아들은 작은아들을 돌보고…. 우리 가족이 그렇게 살 줄은 정말 몰랐다. 열심히 일한 덕에 가게는 잘되었지만 배달 직원이 늘어나면서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 직원도 생기고 사기도 당하면서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자연히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급기야는 이혼하려고 법원에까지 갔다. 하지만 둘째 아들 때문에 돌아왔다.
 어느 날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가게에 짜장면을 먹으러 왔다가 아내에게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그 아주머니는 기쁜소식원주교회에 다니는 분으로 강릉에서 성경 세미나가 열리니 가보자고 했다. 아내는 설교집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읽은 적이 있어서 강릉에 오신다는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 혁진이를 데리고 강릉에 다녀오겠다는 아내를 말릴 수 없었다.
 아내는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고 오더니 박 목사님이 혁진이와 악수도 하고 기도해 주시면서 “이 아이는 복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가 못 고친다고 포기한 아들을 복덩어리라니….’ 하는 마음에 모두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이후 기쁜소식원주교회에 나가면서 구원받았고, 아들 둘과 똘똘 뭉쳐서 교회에 다녔다. 나는 다니던 교회에 나가며 말씀 듣기를 거부했는데, 몇 개월 뒤 집으로 찾아오신 목사님과 성경 공부를 하고 겨울캠프에 참석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
 교회에 나간 지 3년쯤 되었을 때 혁진이를 데리고 병원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퇴원한 이후 처음 가는 것이라 겁이 났지만 전에 다녔던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렸다.
 1주일 뒤,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며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아들에게 무얼 먹였느냐고, 어떤 약을 썼느냐고 물었다. 아들의 오른쪽 신장이 120퍼센트 기능을 하고, 요관도 정상이며 방광도 100퍼센트 정상이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 했는데, 내 마음으로 열심히 해서 망했고 많은 문제들을 만났기에 교회와 목사님의 인도를 받아 추어탕 식당을 열었다. 이후 하나님이 우리 가족에게 많은 것을 주시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해주셨다.
 하지만 얻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아내와 나 사이에 벽이 있고, 그 벽이 점점 두꺼워져갔다. 아내는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죄 지은 사람처럼 잘못한 것을 자꾸 감추었다. 여러 목사님들과 상담을 나누어도 아내에 대한 불평만 나오고 나를 그냥 따라와 주지 않는 아내를 보면 화가 났다. 화가 나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고 부수고…. 그러고 나면 아내와 못 살겠다는 마음에 말도 하기 싫었다. 미운 마음만 계속 올라와서 헤어지자고 여러 번 말했다. 아내 앞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을 꺾기 싫었다.
 어느 날 운전해서 원주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아내가 두 시간을 넘게 운전해 대전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 박 목사님을 찾아갔다. 아내는 목사님을 만나 상담을 나누고 밝은 얼굴로 돌아왔는데, 나는 아내가 목사님을 만나러 간 사실을 몰랐다. 아내는 돌아와서 나에게 박 목사님을 만나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잘못한 일들이 너무 많아 목사님께 내 마음을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죽으면 죽었지 목사님 앞에 가서 고백을 못 하겠어!’ 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상담을 받으라는 아내와 또 싸웠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고맙기도 했지만 ‘내 모습을 알면 아내가 나를 떠날 거야’ 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나를 믿는 마음 또한 컸다.
 아내가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고 돌아와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내는 무조건 박 목사님을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목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추어탕 하는 부부를 만나면 좋겠다고 하신 것이다. 나는 죄인이 되어서 목사님께 크게 혼날 각오를 하고 아내와 교회 사택으로 갔다. 그런데 목사님을 뵙는 순간 ‘이분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구나! 하나님의 종이시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형제님,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하셨다. 목사님과 이야기하는 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많은 일들, 아내에게 못되게 했던 일들, 나 자신을 너무 믿고 살아온 부분들 등 잘못된 모든 일이 예수님께로 넘어갔고, 아내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나는 마음에서 크게 울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저 같은 죄인을 살려주셨군요!” 내 허물을 생각할 때는 목사님 앞에 가면 죽을 것 같았는데, 살아서 돌아오니 정말 기뻤다.
 그 후로 아내와 나 사이가 달라졌다. 아내는 내 얼굴이 밝아지고 말투가 달라졌다고 했다. 아내와 이야기하면 웃음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5분, 10분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이였는데, 두세 시간을 이야기해도 할 이야기가 또 있었다. ‘부부가 이렇게 사는 거였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들이 아팠을 때 아내가 무척 고통스러웠을 텐데 그 마음도 헤아려주지 못하고 살았다. 아내는 나를 사랑해서 잘못된 부분을 가르쳐 주려고 이야기한 것인데, 나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해서 이혼하고 가정을 버리려고 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고 하셨는데, 우리 부부의 장벽을 허무셨고 자존심을 다 버리게 하셨다. 그리고 치료해 주셨다. 건강해진 혁진이는 미국 마하나임 음악원에서 바순을 전공하고 있고, 큰아들 혁이는 단기선교를 다녀와 내가 하는 일을 돕고 있다. 혁이가 조용히 다가와 “아빠 엄마가 달라졌어요.”라고 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나 같은 사람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품어주신 박옥수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아내 이야기 / 박영분이 요즘 웃고 산다
박영분(기쁜소식원주교회)

나는 첩첩산중 시골에서 3남 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주에 와서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어린 나이였기에 남편의 잘생긴 외모에 빠져 그냥 같이 있는 게 좋아서 결혼했다. 결혼하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남편이 나에게 마음을 다 주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허니문베이비로 큰아들을 낳고, 하나만 키우자고 우기는 남편의 말을 뒤로하고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둘째 아들 혁진이가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남편은 아들 문제로 한 번도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오히려 큰소리치고 나무랐다. 아이가 아픈 것보다 남편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댁 식구들도 멀쩡한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닌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죽고 싶었다. 몸과 마음이 아파서 신경정신과에 다니며 약을 지어 먹는데도 남편은 어디가 아프냐고 묻지도 않았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전혀 되지 않으니 골이 깊어져 갔다.
 남편은 밖에서는 정말 순하고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은 내 힘든 사정을 몰랐다. 한평생 이런 남편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고 어려웠다. 식당을 하면서 남편과 함께 일하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경험도 없으면서 무조건 열심히만 하려는 남편이 무능해 보여 판단했다. 일에 대해 이야기라도 하는 날이면 상처 주는 말을 하며 싸우다가 결국 ‘사네 못 사네’로 끝이 났다. 죽지 못해 사는 가정이 되다 보니 집안일도, 아이들도 엉망이었다. ‘어차피 가진 것도 없는데, 서로 위로하면서 마음을 맞추어 살면 안 되나?’ 하는 마음에 남편을 달래도 보고 설득해 보기도 했지만 대화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일상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대화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이혼 서류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그 무렵 우리 식당에 온 구원받은 자매님을 통해 우리 선교회를 알게 되었고, 박옥수 목사님을 만났다. 나는 박 목사님께 작은아들의 병 문제와 큰아들이 겪는 우울증, 남편의 사업이 망한 일과 내가 이혼 서류를 들고 다니고 건강이 안 좋은 부분까지 모두 말씀드렸다. 내 문제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박 목사님을 만난 후 기쁜소식원주교회에 나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았다. 마음이 예수님을 향하면서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예수님이 계신 것이 기뻤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겼다.
 내가 구원받고 한 달 뒤에 남편이 구원받았다. 예전과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남편의 성격이나 부부 사이는 여전했다. 그런데 구원받고 3년쯤 지났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주셨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 18:12) 하나님은 남편을 주인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남편을 주인으로 여기고 살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무시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남편에게 미안해서 무릎을 꿇고 회개했다. 남편을 함부로 대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 같아 조심했다.
 남편의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내 마음에 먼저 일하셨다. 낙이 없다고 말하는 사라처럼 나 또한 낙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14절에서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하시면서 이어 말씀을 주셨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창 21:5~7) 이 말씀에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로 인해 내가 웃고 살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남편은 여전히 내 이야기를 듣지 않고 상대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말씀을 보면 마음에 쉼이 있었지만 남편을 보면 쉼이 없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일하실수록 남편은 나를 더 무시했고 더 큰 싸움이 일어났다. 남편이 소리치며 죽는다고 하고 무릎을 꿇고 이혼해달라고 하면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박옥수 목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찾아갔다.
 박 목사님께 부부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창피하고 두려웠다. 간음한 여자가 현장에서 잡혀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고 목사님을 만나자 대성통곡이 나왔다. 한참을 울었는데,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목사님은 정죄하지도, 판단하지도 않으셨고 찬찬히 교제해 주셨다.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이 다 내려놓아졌다. 아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목사님이 남편을 만나보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감사했다.
남편은 내가 박옥수 목사님을 만나고 온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그날 밤에 나에게 자신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죽 했다. 남편과 그런 대화를 한 번도 나눠본 적이 없었기에 이야기를 듣는 내내 신기했다. 목사님을 만나고 온 것뿐인데, 마음을 여시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남편에게 일하셨다. 남편의 마음에는 그동안 악령이 역사하고 있었다. 구원받아서 악령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랬다. 
 박 목사님이 원주에 오셨고, 우리 부부를 만나 주셨다. 목사님은 와주어서 고맙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전해 주셨고, 교제해 주셨다. 나에게 ‘지혜로운 여자는 남편 밑에 들어가서 남편을 섬기며 남편을 세우는 일을 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갈수록 감사했다. 정말 감사했다. 목사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마음으로 우리 부부를 섬겨 주셨다. 남편은 목사님께 마음을 활짝 열었다.
 

   
 

남편을 바꾸어 보려고 26년 동안 애썼지만 안 되었는데, 하나님의 종이 하신 기도로 하나님이 단번에 변화시켜 주셨다. 박옥수 목사님이 우리 부부가 앞으로 오래오래 기쁘고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마음을 나누면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그 후 남편이 달라졌다. 정말 많이 변했다. 한 번도 이러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신혼 때도 이렇게 살지 않았다. 
 목사님을 강릉에서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가진 문제를 크게 다섯 가지로 말씀드렸는데, 마지막 부부 문제까지 하나님이 모두 해결해 주셨다. 남편을 원망하며 고통스럽게 살았는데, 돌아보면 하나님이 내 영혼을 사랑하셔서 남편을 통해 일하셨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어려움 중에서도 내 마음에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셔서 이혼하지 않고 가정이 깨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부부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하니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이런 귀한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주셔서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신 것을 생각하니 많은 사람들에게 간증하고 싶다. 기쁜소식선교회를 만난 것이 내 생애 최고의 복이다. 원주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또한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생각의 잔가지들을 쳐주셔서 우리 가족이 복되게 지내고 있다. 남편은 고향이 원주인데, 시간이 날 때마다 둘이 손잡고 복음을 전하러 다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사라를 웃게 하신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셔서 박영분이 요즘 웃고 산다.

   
 

남편 이야기 / 하나님이 좋아하는 마음을 넣어주셔서 좋아하며 산다
박덕귀(기쁜소식전주교회)

나는 1964년에 전라북도 정읍군 이평면 팔선리 용전에서 태어났다.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재혼하셔서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품에서 자랐고, 열아홉 살에 나를 낳으신 후 네 명의 동생들을 더 낳으셨다.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도랑에 다니며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았고, 동진강에서는 물길을 따라 더듬어 물고기를 잡았다. 언덕에서는 개구리 뒷다리로 참게를 잡고, 해 지기 두세 시간 전에는 뱀을 잡았다. 잡은 것들을 내다 팔면 먹을 것을 살 수 있어서 무섭지만 좋은 아르바이트였다. 흰 쌀밥을 먹고 싶으면 낫을 숫돌에 갈아 소 먹일 풀을 베어 골망태에 한가득 담아 친척집에 갖다 주면 되었다. 음식이 거의 없었기에 그저 밀가루만 있는 수제비도 자주 먹었다.
 전주로 이사와 30만원 전셋집에 살았다. 나는 증조할머니와 한방을 썼고 부모님과 네 명의 동생들이 다른 한방을 썼다.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늘 꼴찌였다. 수업료도 꼴찌로 냈고 공부도 꼴등이었다. 선생님들의 표적이 되어 거의 매일 맞았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에게 맞을까봐 참았다. 아버지는 매를 대시면 서른 대를 때리셨다. 아버지는 큰아들인 나를 사랑하셨다. 내가 공부를 잘해서 은행에 들어가기를 바라셨지만 꼴등이어서 안 되었다. 한 번도 아들 자랑을 하실 수 없었다. 고등학교는 전주농고 축산과를 다녔다. 시험 시간에 긴장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답이 ‘나가라 나가라 나가 나가 다나가 다나가 나가’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모두 나가라고 그런 답을 정해 놓았다.
 집안 형편은 어렵고 학창 시절도 방황의 연속이었기에 인생을 포기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공부는 버리고 음악 하나만 하자!’ 아버지는 내가 음악을 하면 땅에 묻어버리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버지 몰래 막일을 해서 번 돈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1년 재수 끝에 전주 우석대학교 국악과에 원서를 냈다. 국악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달이라서 냈고, 합격했다. 아버지는 내 삶이 엉망이라고 병무청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아들을 인민군이 보이는 최전방으로 보내 죽든지 사람이 되어서 오든지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그때도 아버지 몰래 육군본부 군악대 시험을 쳤고, 지원자가 없어서 합격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는 안 했지만 나름대로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를 많이 했다. 피아노를 치며 나도 모르게 ‘고상병’에 걸려 ‘죽으면 죽었지 딴따라는 안 한다’고 마음먹었는데, 배고프고 어려워서 결정했다. ‘딴따라나 하자!’ 회갑 잔치나 여러 행사에 가서 반주해 주고 음악을 연주하면 공무원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 그런데 돈이 생기니 걷잡을 수 없이 타락했다. 돈을 벌면 힘들게 살아온 우리 가정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전북 도립국악원에 들어가려고 시험을 쳤는데, 국악원 원장님이 느닷없이 ‘라쿠카라차’라는 곡을 피아노로 쳐보라고 했다. 국악원에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였다. 얼떨결에 쳤고, 합격했다.
 국악원에 들어가서도 방황은 계속되었다. 전주시 흑석골은 산이 높아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데, 지는 해를 보노라면 ‘나도 죽음 앞에서 저렇게 갈 텐데 여한이 없는 그런 진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악원 대금부의 조용석 씨가 나에게 와서 성경을 폈다. 나는 성경을 전혀 몰랐기에 성경을 덮고 진리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조용석 씨는 계속 성경 이야기를 했다. 결국 조용석 씨를 따라 여름 캠프에 갔고, 그곳에서 구원받았다.
 구원받은 후 기쁜소식전주교회 예배에 참석해 앞으로 교회에 잘 나오겠다고 간증한 후 교회를 떠나 3년을 지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 삶 속에 일하셨다. 원치 않았던 결혼을 했는데, 결혼 4개월 만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 일로 나는 교회로 돌아왔고, 1997년에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는 은혜를 입었다. 처음에는 집사람과 장모님, 아버지 모두 결혼을 반대했다. 집사람은 방탕한 내 모습 때문이었고, 장모님은 내가 재혼이라서 반대하셨다. 아버지는 집사람에게 “이런 남자와 결혼하면 네 인생은 망해. 내 아들은 산속에 처박혀 혼자 살다가 죽어야 해!”라고 하셨다.
 결혼 후에 은근히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려고 하는 마음이 집사람을 힘들게 했다. 구역장, 장년회장을 맡으면서 집사람이 교회에 안 간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악착같이 끌고 다녔다. 그렇게 3년쯤 지났을 때 집사람이 아예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뻗어버렸다. 큰일이었다. ‘장년회장의 아내가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화가 나지만 한편으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일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는 내 모습이 발견되었고, 내가 집사람을 이끌려고 하는 것이 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기도했다. 기도한 후에 아내가 교회에 갈 줄 알았는데, 여전히 안 간다고 했다. 기도는 날아가버리고 화가 너무 나서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나님께 화를 없애 달라고 기도했다. 에베소서 4장 26절의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는 말씀이 임하면서 힘이 빠졌다. 하나님이 이끄셔야 함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집사람과 함께 공연을 하는데, 처음부터 편안하게 같이 하지는 못했다. 나는 북도 잘 못 치는 사람이지만 집사람은 명창이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데다가 대회에서 문화부장관상과 국무총리상 등을 받은 도립창극단의 수석 단원이다. 북을 잘 못 치는 고수와 함께 공연하는 명창은 거의 없다. 반주가 엉성한 사람과 누가 노래하겠는가? 공연 의뢰가 들어오면 가기 싫어하는 집사람의 마음을 내가 바꿀 수 없어서 기도했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집사람에게 일해 주셨다. 집사람이 공연하러 안 간다고 하면 나도 손을 놓았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할 수 없기에 붙잡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항상 이끄셨다.
 요즈음은 집사람이 예전의 집사람이 아니다. 가정적으로 보면 나는 빵점보다 못한 사람이다. 집에 없어도 무관한 사람이다. 교회에서 신앙을 배우면서 내가 가정을 돌보는 것보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주님의 일을 하고 주님이 우리 가정을 돌보시게 했다. 지금 사는 집도 내가 준비한 집이 아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주시는 집에서 살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맡겼는데, 20년 가까이 장모님 집에서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다. 장모님이 아직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으셨지만 복음의 일에 동참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장모님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집사람과 나는 성격부터 모든 부분에서 달랐다. 자라온 환경도 너무 다르고, 집사람은 나보다 편하게 자랐기 때문에 의견이 충돌할 때가 많았다. 자녀 문제에 대한 결정권을 나에게 맡기는 일로 가장 크게 싸웠다. 집사람에게 3년 가까이 이야기한 것 같다. 가정의 질서가 깨지면 아이들의 욕구를 집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집사람이 마음을 바꾸고 나를 따라주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볼 때 감사했다. 나는 모든 부분에 일방적일 때가 많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저지르며 사는 성격인데, 집사람은 안정적이다. 나는 어느 면으로 봐도 좋은 구석이 없다. 우리 가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어떻게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든다. 장모님은 우리를 위해 헌신하며 살고 계시고, 집사람 또한 육신적으로 즐거울 게 없는데 사람들로부터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복음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 공연할 수 있도록 길을 여시는 하나님! 우리 모습과 상관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감사하다.
 우리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하나님이 좋아하는 마음을 넣어주셔서 서로 좋아하며 산다. 나는 가정을 어지럽히는 일만 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주셨다. 집사람과 함께 교회 안에 머물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내 인생은 교회를 나가면 그냥 타락이다.

아내 이야기 /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표현하며 사는 우리 부부
최애란(기쁜소식전주교회)

교회를 10년 정도 다니던 나는 내가 세상 누구보다 착하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바쁘게 지내느라 교회도 잊고 살았지만 한 번씩 교회들을 보면 타락한 모습에 회의가 느껴졌다. 국악원에 입사해 입사 동기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기쁜소식선교회를 알게 되었다. 내 속에서 올라오는 모든 생각이 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는 사실을 깨닫고 구원받아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구원받은 후 교회를 떠나 사기 결혼에 휩쓸려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이 자살하는 일을 겪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교회로 돌아온 남편의 상태였다. 그런 남편이 내게 결혼하자고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에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결혼이었기에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내 마음과 가족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셨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다. 교회 안에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결혼식을 올렸다. 돌아보면 국악계의 많은 선생님들과 직장 동료들, 친구들을 그 좁은 골목 안에 있었던 전주평강교회(현 기쁜소식전주교회)로 초청해 결혼식을 올린 것은 절대 내 마음이 아니었다.
 결혼한 후 남편은 교회밖에 몰랐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교회였다.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나에게 월급을 주지 않았고, 나와 상의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헌금했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교회에 드리는 남편을 보니 내가 임신을 해도 이사를 해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너무 서운했다. 결혼 생활에 대한 꿈이 한 달 만에 깨졌다. 사람들의 눈총을 이기고 한 결혼이라 어느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말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이혼하자는 말도 자주 했다. 몸이 아픈데 남편은 내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도 나 혼자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남편의 행동에 변화가 없고 반응이 없자 포기하고 하나님께 내 마음을 바꿔달라고 기도하며 살았다. 남편이 나보다 하나님과 더 가깝고 믿음과 신앙심이 있으니 나도 남편의 마음과 같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을 엄하게 대했다. 아이들은 아빠가 무섭다 보니 절제하고 순종하며 살았지만 아빠를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지냈다. 그런데 남편이 마음의 이야기를 계속 해주면서 아이들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해서 그 마음을 단속해 주고 다스려 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면서 아들과 딸이 맑고 밝게 자라고 있다.
 남편의 집요함 때문인지 아니면 진한 관심과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끄심 때문인지 나도 교회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마음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남편이 이끌어 주어서 복음의 일을 함께하다 보면 나 같은 사람을 써주시는 하나님이 감사하고, 내 삶이 발전하고 복을 받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전북 도민을 위해 크고 작은 행사에서 국악 공연을 개최하는 단체에서 일하는데, 365일 거의 붙어 다닌다. 각자의 부서에서 연습하고 공연하기도 하고 무용, 악기, 판소리 등이 어우러진 규모가 큰 창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또 직장에서 하는 공연 외에 개인적인 요청을 받기도 하고 전국 교회의 집회나 행사에 가서 공연하기도 한다.
 

   
 

어느 공연이나 어려움은 있다. 목이 쉬어 노래가 안 나올 때도 있고 아이들이 아플 때도 있고…. 하지만 단 한 번도 공연을 하지 못한 적이 없다. 공연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맛보았다. 때때로 남편과 생각이 달라서 다투다가도 공연을 하려면 화난 표정을 지을 수가 없어서 바로 마음을 꺾는다. 그렇게 공연하다 보면 언제 다투었냐는 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공연으로 힘들고 지칠 때 내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남편이 있어서 고맙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미련한 나를,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를 이끌어 주고 기다려 주었다. 남편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셔서 일하시는 모습이 보일 때는 따르고 싶고 존경스럽다.
 많은 돈을 벌지 않는데도 말씀을 들으면 행복하고 기쁘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은 그라시아스 음악학교에 다니고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링컨하우스 광주스쿨에 다니는데, 교회가 아이들의 마음을 자라게 해주고 말씀 안에서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 처음에는 남편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내게 다 설명해 줄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이다. 요즘은 우리 부부가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며 살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순간순간 형편에 매여 두려움에 빠질 때도 있지만 말씀이 이기게 해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계셔서 감사하다. 사탄이 자주 찾아오지만 말씀으로 반격하고 공격하며 산다. 나를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나를 온전케 해 놓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남편과 함께 복음을 위해 달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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