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를 잠비아로 보내셨다
하나님이 나를 잠비아로 보내셨다
  • 우승윤(기쁜소식잠비아루사카교회)
  • 승인 2017.03.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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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수기 _제3화
 

 

장례식에서 죽은 이를 위해 소리내어 울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북을 치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다같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사는 곳 아프리카.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춤과 노래로 모든 슬픔과 한을 떨쳐내는 사람들의 땅
아프리카. 그 땅으로,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잠비아에 가는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2005년 8월, 군대에서 제대한 후 바로 케냐와 가나 전도여행에 동행했다. 아프리카에 다녀온 지 3년이 지나 다시 가는 아프리카가 기대되었고, 하나님은 전도여행 기간에 힘있게 일하셔서 내 마음을 아프리카로 가득 채우셨다. 질병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기뻐하며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전도 여행 중 나도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교제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나와 피부색도, 문화도, 언어도 전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이지만, 복음을 듣고 순수하게 기뻐하고 나에게 스스럼없이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 너무나 귀해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 사람들을 위해 살 마음을 새롭게 주셨다.

 

아프리카 전도여행에서 돌아온 뒤 다시 선교학교에 들어가 3개월쯤 훈련받고 있다가 2004년에 3기로 코트디부아르에 단기선교를 다녀온 서유진 자매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얼마 뒤 잠비아로 파송 받았다. 그러나 막상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에서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교회에서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시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시려면 잠비아에 갈 비행기표를 분명히 주시겠다는 마음이 드는데, 둘이 기도하자.”라고 하였다.
그날 이후 둘이서 표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 잠비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케냐에 가기로 하고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한 사람당 75만 원으로 150만 원이 필요했다. 표를 예약한 후, 돈을 지불해야하는 시간까지 일주일 정도 남아서 150만 원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 아무 응답도 없었다. 혹시 며칠 후에 돈을 보내도 되는지 문의하려고 여행사에 전화했는데, 표값이 이미 지불되었다고 하며 비행기표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표값이 어떻게 지불되었는지 궁금해서 묻자, 어느 교회의 형제님이 내 항공료를 자기가 대신 내고 싶다며 돈을 보냈다고 했다. 이름을 들어보니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이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잠비아에 가는 것을 기뻐하시는구나! 그렇다면 비행기표뿐만 아니라 우리가 잠비아에서 선교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도 다 준비하셨겠구나’라는 소망이 일어났다.

 


잠비아는 아프리카 중남부에 위치하고 남한보다 7배 정도 큰 국토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인 구리 생산국이다. 한때, 영연방국가로 말라위, 짐바브웨와 함께 한 나라로 있다가 1964년에 분리 독립하였다. 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길고, 인도양으로 흐르는 가장 큰 강인 잠베지의 이름을 따서 잠비아가 되었다.
우리가 잠비아에 가기 전, 탄자니아와 남아공에 있던 선교사님들이 단기선교사들과 함께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거쳐 전도여행을 하며 이곳에 교회가 세워지길 기도하고 있었다. 특별히 잠비아에 선교사가 파송되길 소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작은 집을 새로 얻어 탄자니아 선교학생 한 명과 한국 단기선교사(현 미국 기호준 선교사)가 머물며 전도하고 있었다.
2005년 12월, 케냐 나이로비교회에 도착해서 잠시 지내며 잠비아 비자를 준비했다. 그리고 12월 28일에 비행기를 타고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에서 빠져 나와, 형제들이 지낸다던, 선교사님들이 주신 집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택시를 탄 후 주소지로 향했다. 점심 즈음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탄자니아 선교학생 형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허기가 져서 라면을 먹으려고 물을 끓이니 물에서 하얀 것이 많이 올라왔다. ‘소금물인가? 아니면 소독된 물이어서 이런가?’ 하며 그냥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석회수여서 그런 것이었다. 잠비아의 물에는 광물이 많이 섞여 있다.
 작고 허름한 집에서 가구 하나 없이 잠비아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형편은 열악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지만 하나하나 세세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쌀을 구해야 하는데 밖에 나갔을 때 쌀을 얻게 해 주세요. 복음을 전하게 도와주세요….”
 식사 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시장을 찾아갔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상인이 “한국인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한국인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우리를 어느 가발 상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다. 그분이 이것저것 묻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저도 선교사로 이곳에 왔어요. 형편상 일하면서 선교하려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일에 빠지게 되지 선교가 안 되네요.”
그분이 자기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자고 하여 따라나섰다. 그런데 전기가 나가 밥을 먹을 수 없어서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대접받았다. 밥을 먹으면서 그분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케냐에서 또 코트디부아르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간증했다.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자 굉장히 좋아하며 마음을 열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잠비아에 처음 왔으니 선물을 주고 싶다며 호주산 쌀 25킬로그램 한 포대를 주고 차로 우리 집에까지 바래다주었다.
우리 부부는 집에 와서 돗자리 위에 천장을 향해 몸을 누이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세밀하게 이끄신다는 기쁨이 우리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몸은 허름한 곳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가까웠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셨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 속에서 마음에 행복을 가득 담고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 성경을 보던 중에 이사야 49장 14~21절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잠비아에서 그 말씀대로 일하시겠다는 소망이 마음에 차올랐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사 49:18)
“…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사 49:20)

‘내 눈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은 다 보내겠다고 하시는구나! 넓은 곳으로 옮겨가게 하시겠구나!’
그때 당시에는 이 약속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 말씀이 잠비아에서 계속 일하고 계심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앞으로 하실 모든 일을 한눈에 보시고 내게 미리 보이셨다는 마음이 든다.

되는 일은 없고, 이유 없이 어려워져만 갔다
잠비아에 간 후 가진 것도 없고, 교회 성도도 한 명 없고, 가지고 있던 돈은 계속 줄어들다 보니 내 마음은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가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고 아프다면서 몸에 열이 나 누워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보, 이사야 40장 31절에 보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되어 있어. 당신이 이렇게 힘없이 누워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기 때문이야. 뭐해? 빨리 일어나!”
옳은 소리였지만 아내는 더 어려워했다. 아내가 분한 감정을 드러내 싸움이 잦아졌다. 매일 미니버스 요금 400원을 아낀다고 서너 시간씩 걸어다니면서 비자나 교회 등록 업무를 보고, 전도도 다녔다. 나름대로 마음을 쏟아 일했지만 되는 일은 없고, 하루하루 이유 없이 어려워져만 갔다. 아파서 드러누울 때도 있었다. 그러면 아내가 성경을 가지고 와서 이사야 40장을 편 후, 내가 했던 이야기를 나에게 그대로 했다.
“뭐야? 안 일어나고! 하나님을 앙망해서 일어나!”

“당신이 가져온 돈은 위조지폐예요”
집에 가구가 전혀 없어서 가구를 파는 곳을 찾아보았지만 가구를 만들거나 파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목재를 산 후 목수를 고용해서 가구를 만들기로 하고, 미화 400달러를 들고 처음으로 시내로 나갔다. 목재 가격을 알아보고, 환전소를 찾아다녔다. 그때 환전소 옆거리에 있던 어떤 사람이 보통 시세보다 높게 쳐주겠다며 자기와 돈을 바꾸자고 했다. 그래서 옆 골목으로 들어가서 400달러를 주고 잠비아 돈 1,400,000콰차(Kwacha)를 받았다. ‘혹시 이 사람이 사기 치는 것 아닌가?’ 싶어 지폐를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세었다.
다행히 액수가 정확히 맞아 고맙다고 하며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한 사람이 급히 오더니 “내 돈을 왜 허락 없이 네 맘대로 외국인하고 바꿔?” 하며 돈을 바꿔 준 사람과 다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로 한참 다투더니, 돈을 바꿔 준 사람이 나에게 “미안한데, 돈을 다시 돌려줄테니 내가 준 돈을 돌려주세요.”라고 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환전소에서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돈을 준 후 달러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달러를 들고 환전소에 가서 돈을 바꿔달라고 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서로 의논하더니 돈을 바꿔줄 수 없다고했다. 왜 그러냐고 따져 묻자, “당신이 가져 온 돈은 위조지폐예요.”라고 했다. “그건 내가 한국의 은행에서 가져온 달러예요.”라고 하자, 그들이 “잘 봐요.” 하며 내가 건넨 달러를 내 눈 앞에 보여 주었다. 100달러 지폐에 그려져 있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얼굴이 백인이 아닌 흑인처럼 시커먼 모습이었다. ‘아, 돌려받을 때 그 사람이 위조지폐로 바꿔치기 했구나!’ 머리에 충격이 전해졌다. 밖으로 뛰어나가 그들을 찾았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큰 실망과 좌절감에 주저앉고 싶은 순간, 경찰들이 다가와서 나를 붙들어 다시 환전소로 데려갔다. 환전소 직원들이 내가 위조지폐를 만든 범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잠비아에 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마음에 큰 상심이 찾아왔다. 조사를 받고 겨우 경찰서에서 나와 집으로 걸어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을 건데, 왜 이 일을 허락하셨을까?’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도 잠비아 사람들이 밉다보니 짜증만 나고 마음이 어려웠다.
집에 돌아와서 그냥 누워있는데,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네가 진정 선교를 할 수 있는 자더냐? 작은 것 하나라도 네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더냐?”
선교 처음부터 하나님은 내 마음을 무너뜨리시고 당신으로 말미암아서만 선교하게 하려고 모든 어려움을 허락하신 것이었다. 그것이 인정되니, 우리 부부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가서보니, 바로 그 사람이었다
며칠 후, 케냐에 있던 선교사님 부부가 잠비아를 방문해주셨다. 우리 부부와 교제해 주시고 함께 기도하면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만 분명히 세워질 수 있게 하셨다. 그런데 케냐에 일이 생겨서 선교사님이 일정을 당겨서 바로 돌아가려고 하셨다. 선교사님은 시내에 가서 비행기표를 변경하려고 했지만 해당 항공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한 여행사에 들어가 도움을 청했다.
그때 밖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급히 들어오더니 “좋은 값에 환전해 주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전에 당신이 사기를 당했다던 사람과 인상착의가 비슷해요. 나가서 확인해 봐요.”라고 했다. 나가서보니,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아무말도 않고 “돈을 가져올 테니 잠깐 기다려 주세요.”라고 한 후 경찰을 부르러 갔다. 얼마 후 그 사람이 뭔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도망가려고 했는데, 그것을 보고 케냐 사모님이 “도둑이야! 이 사람을 잡아 주세요!”라고 소리쳐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그 사람을 잡았다. 그때 주위에 있던 그의 동료들도 그를 잡는 것처럼 달려들어서 그의 주머니에 있던 위조지폐를 다 빼낸 후 흩어져 도망쳤다. 그래서 경찰들이 와서 그를 잡아 경찰서로 데려갔지만 증거가 없었기에, 그는 자기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며 “증거가 없지 않아요?”라고 우겼다. 그러자 경찰이
“이 사람은 전에도 이런 전과가 있어서 우리가 잘 알아요.”라고 하며 우리에게 잠깐만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5분쯤 밖에 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그 사람이 경찰과 우리를 보고 “내가 그렇게 했으니 제발 살려만 주세요!”라고 애원했다. 그 뒤, 범인 가족들이 우리에게 사과하고 사기당한 돈의 절반을 돌려주었다. 아프리카에서 사기친 사람을 잡는 것이나 사기당한 돈을 돌려받는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 사람은 교도소에 가지 않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 그 뒤로도 길거리에서 이따금 만나기도 했다. 그는 다른 죄를 지어 결국 교도소에 가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여 나에게 귀한 것을 가르쳐 주셨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오미에게 마라의 길을 걷게 한 후 이끄셨듯이…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고 한없이 부족한 것 투성이었지만 그것은 안 되는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 하셨다. 내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시고 억울한 일도 당하게 하셨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오미(기쁨)’에게 ‘마라(씀)’의 길을 걷게 하신 후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길로 이끄셨듯이, 하나님은 나도 그렇게 인도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에서 점보다도 작은 지구, 그 안에서도 아주 작은 대한민국의 한 도시에 살고 있던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셨으며,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보내신 하나님께 한없이 깊은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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