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봄 봄 봄
내 인생은 봄 봄 봄
  • 김지원(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17.04.21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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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와 질그릇
 

모든 게 망한 뒤 해결 방법이 없어 목사님을 찾아갔을 때 들은 한 마디.
 “자매님, 복음을 위해 살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문제를 다 해결해 주세요.” 더 이상 망하고 싶지 않아 복음을 전했을 뿐인데, 참으로 값진 것을 얻었다.

 

엄한 아버지가 싫어서 결혼했는데…
복음을 만나기 전, 나는 이전의 내 삶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학교에 다니는 것에 취미도 없었고, 내 인생을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미래에 대해 궁금한 것이나 알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마음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주 엄하셨다. 나는 어려서 그림을 제법 잘 그려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다. 엄마는 내 마음을 받아 주어 어떻게든 미술학원에 보내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붓쟁이가 돼서 뭐하게? 여군이 되든지 경찰대학에 가라!” 하셨다. 자연히 아버지가 미웠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동안 방황도 하여 엄마가 마음 고생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엄격한 아버지가 싫어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피하다시피 결혼을 했다. 대학 등록금을 주시는 대신 시집을 보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 한 달 만에 후회했다. 남편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남편과의 갈등을 참고 지냈다. 둘째를 낳은 후에는 사업을 위해 강원도로 이사했다. 남편은 열심히 일했고 나는 주부로 열심히 살았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나에게 조금의 자유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건 하나 사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했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나 외출하는 것에도 제약이 많았다. 엄한 아버지를 피해 결혼했다가 더 심한 남편을 만난 것이다.
남편은 젊은 나이에 나름 성공했고, 나 또한 그 성공을 누리는 자리에 있었다. 좋은 차, 넓은 집….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의 외도 광경을 목격했다. 남편은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외도로 단정했다. ‘나를 그토록 심하게 구속했던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나?’라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아이들 때문이긴 했지만 10년을 참고 살아온 날들이 억울했고, 배신감에 사로잡혔다.

모든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삶이 이상해지고, 정신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받았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매일 남편과 싸우고, 몸은 여기저기 멍들고, 정신과 약을 먹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더 깊게 빠져들었다. 좋지 않은 기억들을 지우기 위해 죽어 보려고도 했지만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남편에게 무조건 이혼해 달라고 했다. 첫째인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위자료 천만 원을 받고 이혼했다. 주위에서 미쳤다고 했지만 이혼만 하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게 여의치 않아 친정 엄마가 돌보아 주셨는데, 너무 힘들어하셔서 아들은 아빠에게 보내고 딸과 함께 지냈다. 아들을 아빠에게 보내면서 “3년만 기다려. 엄마가 꼭 데리러 올게.”라고 약속했다. 그 뒤로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매일 울면서 일했던 것 같다. 아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지만 열심히 달리는 만큼 점점 늪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아들은 자주 내가 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엄마, 언제 데리러 올 거야?” “엄마, 아빠랑 아줌마랑 싸워. 유리가 깨졌어.” “엄마, 아줌마가 밥을 안 줘서 매일 피자와 치킨만 먹어.” 마음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3년이 흘렀지만 결국 나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아들은 엄마의 빈자리가 가져다준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필리핀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금은 훌쩍 커서 필리핀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전 남편의 보증으로 3억 원이 넘는 채무를 떠안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사업은 망하고 대인기피증, 우울증, 조울증이 찾아왔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많이 울었다. ‘왜 나만 이렇게 고통을 겪지?’
세상은 왜 불공평한지, 잘사는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복을 받는지 궁금해서 온갖 종교를 찾아다녔다. 교회, 철학관, 무속인, 불교, 남묘호령게교, 대순진리회…. 행복을 갈구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게 노력을 요구하는 종교인들에게 마음으로 소리쳤다. “세상에서 잘하지 못해 망했는데, 그냥 복 좀 받으면 안 돼요? 공짜 없냐고요?”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남편, 아이들, 가정, 내 삶, 모두 멋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모든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말씀이 믿어지면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필리핀에 있는 국제학교에 유학을 보냈는데, 사업 실패로 뒷바라지를 할 수 없어서 한국에 들어왔다. 딸이 다닐 중학교를 찾다가 어떤 분의 소개로 링컨중학교에 입학했다. 딸은 학교에 다니면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믿는 삶을 시작했다. 그 뒤, 학교를 소개해 준 분이 나에게 교회에 한번 오라고 했다. 속에서 ‘저, 하나님 안 믿어요. 믿고 싶지도 않아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날 이렇게까지 만들어요?’라는 마음이 올라왔지만 그래도 예의상 “한번 가볼게요.”라고 했다.
기쁜소식강남교회에 처음 간 날, 문영준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드실까요?”라고 물었다. 목사님이 한참 이야기하다가 “아주머니는 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런 것을 물어 깜짝 놀랐고, 죄라면 내가 1등 할 것 같아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목사님이 “무슨 죄가 그렇게 많으세요?”라고 하며, 테이블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주머니, 이게 뭐예요?”
“테이블요.”
“하나님이 이걸 의자라고 하세요. 그럼 이게 뭐예요?”
“테이블요.”
그렇게 질문과 대답이 여러 번 오가고, 다시 같은 질문을 하는데 끝까지 테이블이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답을 조금 바꾸었다.
“제 눈에는 테이블이지만, 하나님이 의자라고 하시면 의자지요.”
그 대답을 한 순간 깜짝 놀랐다.
‘아, 내가 보기에는 내가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하시면 내가 의인이구나!’
들어서 알고 있었던 복음이 마음에서 믿어졌다. 말씀이 믿어지면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마음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정말 많이 울었다. 2013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자매, 복음을 위해 살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거예요.”
형편은 변한 것이 없었지만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교회에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딸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올 때만 가끔 교회에 나갔다.
2년 전, 그날도 방학을 맞아 집에 있던 딸과 함께 교회에 갔다. 그날 지금은 부산에서 목회하시는 김창영 목사님이 설교 끝 무렵에 “집에 꿀단지를 숨겨 놓으셨어요? 예배가 끝나면 바로 가시지 말고 교제하고 가세요.”라고 하셨다. 목사님 말씀대로 교제하고 가고 싶은데, 아는 사람도 없고 교제는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몰라 예배당 뒤편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때 김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내려와 예배당을 나가면서 서 있는 나를 보고는 “누구시더라.” 하셨다. “목사님이 교제하고 가라고 해서 서 있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목사님이 어느 자매님을 소개해 주셔서 그분과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로 교회와 점점 가까워졌다. 어려울 때는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 때문에 교회에서 먼 곳으로 이사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미래가 불안하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와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다시 교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이 안 되어 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만났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자다가 벌떡 일어난다. 나에게는 방법이 없으니 교회가 생각났다. 박옥수 목사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다.
“목사님, 저 또 망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목사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매, 복음을 위해 살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자매가 실수한 것까지도 복되게 만들어 주실 거예요.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실 거예요.”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목사님이 일은 잠시 손을 놓고 교회 일을 하며 지내면 좋겠다고 하셔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했고, 교회에서 인도해 주는 대로 따랐다.
처음에는 ‘큰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교회만 가도 되나? 문제를 해결해야지’라는 생각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박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또 들었다. 밥 먹는 시간, 씻는 시간 빼고는 자면서도 말씀을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목사님과 대화도 할 정도로 말씀을 들었다. 말씀이 마음에 조금씩 들어왔다. 마음에 말씀이 차니까 형편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삶에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예배당으로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는데, 나중에는 마음에서부터 예배를 사모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좋고, 주님의 세계를 배우고 싶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만날 약속을 잡고, 만나면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위해 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좇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은 지금 우리 교회 ‘진달래합창단’ 단원으로 있는 백대겸 형제다. 당시 그도 나처럼 망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성경세미나에 참석해 구원을 받았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모습을 보니 복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전도한 사람은 아는 언니였다. 언니는 내가 전하는 복음을 듣다가 답답했는지, “지원아, 너에게 말씀을 전해준 목사님을 만나러 가자.”라고 했다. 언니와 함께 교회로 가서 문영준 목사님을 찾아뵈었고, 언니는 목사님과 상담을 나누던 중 구원을 받았다. 그렇게 구원받을 사람이 아닌 것 같았는데, 구원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놀랍고 감격스러웠다. 언니는 형편은 바뀌지 않았지만 정말 행복해하고 기뻐했다. 신기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 안에서 크게 일어났다.
내 핸드폰에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만나면 복음을 전했고, 사람들이 계속 구원을 받았다. ‘와, 신기하다! 복음을 이야기하기만 하면 되는구나!’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까운 곳에 있는 기쁜소식선교회 교회에 나가도록 연결해 주었다. 사람들과 만나자고 약속하고,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 목사님을 만나고…,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복음을 전하면 내 마음에 힘이 생겼다. 그 힘이 내 삶에 나타나서 여러 어려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되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 강한 에너지가 있는 것이 느껴졌다.

2017년 한 해, 저를 드립니다
지난 1월 1일, 하나님이 우리 선교회에 주신 2017년 신년사 말씀을 들었다.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행 13:47)
박옥수 목사님은 신년사 말씀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르밧 과부처럼 축복을 누린다며, 우리 선교회에서 몇몇 사람만 말고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축복을 얻길 바란다고 하셨다. “예.” 하고 마음으로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망해서 드릴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필요하시면 하나님이 저를 만들어서 쓰세요. 끈기도 없어서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2017년 한 해 저를 드립니다. 약속하신 대로 사르밧 과부에게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차고 넘치는 가루통을 주세요. 저를 만나고 저를 통해서 구원받는 모든 분들이 축복을 받게 해주세요. 저도 잘살게 해주시고요.”
신년사 말씀을 들은 후로는, 내가 아는 사람뿐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님 이야기를 하고 복음을 전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서울, 원주, 대구, 세종…. 이곳저곳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았다. 그 가운데 우리 엄마도 있었다.

연락조차 끊었던 엄마와 예수님 안에서 다시 만나
새벽기도 한 번 빠지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며 권사로 사셨던 우리 엄마. 내가 이혼한 후 어려움을 겪을 때 나를 끝까지 돌아보지 않았던 엄마를 향해 내 마음에는 원망과 미움이 있었다. 엄마가 조금만 더 도와주셨으면 아들과도 함께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구원받기 전까지는 엄마와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 내 마음에서 ‘난 고아야’라고 마음먹었다.
내가 구원받고 2년쯤 지났을 때, 엄마가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고통받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엄마가 사는 세종시로 찾아가 복음을 전해 엄마가 구원을 받으셨다. 나처럼 늘 쉬지 못하던 엄마의 마음에도 평안이 찾아왔다. 겨울에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도 함께 보며 행복해 하셨다. 하지만 주위에서 우리 교회를 거짓말로 비방하는 이야기를 듣고 교회에 나가지는 않으셨다.
그렇게 지내다가 얼마 전 엄마가 어려운 일을 만나셨고 마침 내가 필리핀에 마인드강연을 하러 가게 되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고 함께 필리핀에 다녀오자고 말씀드렸다. 필리핀 여행은 엄마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필리핀의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함께 들으면서 엄마 마음에 복음이 선명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필리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변하는 모습, 현지 목사님과 사모님이 겸손하게 엄마를 섬기는 모습에 마음을 활짝 여셨다. 필리핀에 갔다 오니 어려운 문제도 다 풀려 있었다. 엄마는 ‘신앙이 이런 거구나!’ 하며 기뻐하셨고, 기쁜소식세종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다. 지금은 그토록 좋아하시던 텔레비전 보는 것을 끊고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신다.

태국 월드캠프가 남긴 선물들
하나님이 나를 ‘이방의 빛’으로 삼았다는 신년사 말씀이 담긴 소책자를 읽은 후, 소망을 적는 란에 ‘박옥수 목사님을 따라서 해외에 가고 싶다’고 적었다. 그리고 2월 초, 나를 통해 구원받은 원주에 사는 친구 권이솜 자매와 함께 태국 월드캠프에 참석할 수 있었다. 처음 참석하는 월드캠프로, 마음에 여러 가지를 깊이 느꼈다.
육신을 돌아보지 않고 복음만을 위해 사시는 박옥수 목사님의 삶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느꼈다. 나는 나를 위해 돈을 벌고 썼는데, 왜 돈을 벌고 어떻게 써야 할지 마음에 심겨졌다. 캠프에 참석한 학생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말씀에 집중하고 마음이 하나 되는 모습도 놀라웠다. 울고, 웃고, 행복해하고…. 마지막으로, 딸 미송이가 다니는 그라시아스음악학교 학생들의 공연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이 여느 학생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이들을 아름답게 만드신 것을 보았다. 우리 아이들의 공연에 태국 학생들이 열광하고 감동을 받는 모습은 기적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감사와 가르침의 중심에 흐르는 것이 있었는데, 복음이었다. 박옥수 목사님이 구원받고 50여 년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이 온갖 어려움에서 목사님을 지키시고 어떤 문제 앞에서도 도우신 것은,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시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의 삶을 지탱해 주는 비밀은 바로 ‘복음’이었다.
신년사 말씀이 펼쳐지는 역사의 현장에
3월에는 필리핀에 마인드강연을 하러 갔다. 영어를 못 하는 내가 외국에 가서 복음을 전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 필리핀에 마인드강연을 하러 가라고 이끌어 주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난감 자체였다. “가서 강연회를 망치면 어떻게 해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난 완벽하게 망한 사람이기에 내 생각을 따라가면 또 망할까봐 그냥 “예.” 했다.
얼마 전에 구원받으신 엄마와 딸과 함께 필리핀에 마인드강연을 하러 갔다. 그라시아스음악학교 2학년으로 첼로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딸은 강연회 중에 첼로 연주를 해야 한다는 과제도 받았다. 딸은 풀 죽은 목소리로 “엄마, 감사하다. 우리 진짜 감사하지?”라고 하였다. 딸의 이야기에 웃음만 나왔다.
우리 모녀는 부담을 지고 필리핀으로 떠났다. 도착해서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엄마만 행복에 젖어 계시는 게 부러웠다. 첫날 강연회는 아침 8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나는데, 나에게는 마지막 순서로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현지인 목사님이 자매가 마지막 시간에 복음을 전하는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격려인지, 부담을 주는 건지…. ‘정말 감사하다’ 하며 울고 싶었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 박동이 얼마나 빨라지는지 터질 것 같았다. 목사님들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릴 수밖에 없었다.
문득, 박옥수 목사님이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예수님으로 하면 돼. 전도는 예수님이 제일 잘하셔.” 마음이 잡혔다. ‘그래, 예수님으로 하자.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만 드러내자.’ 드디어 내 차례였다. 벌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복음을 전하다 보니 신년사 말씀대로 하나님이 듣는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많은 교사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죄가 사해졌다며 손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성경도 잘 모르는 내가 마인드강연도 처음 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셋째 날은 고등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고, 또 내가 복음을 전해야 했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죄를 설명하고 복음을 전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복음 전할 길을 찾지 못해, 지혜를 달라고 밤에 하나님께 간구하고 간구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길이 보였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시 정리하고 강연을 준비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놀라웠다.
학생들이 내가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들이 왜 죄인이며 죄가 어떻게 사해졌는지 받아들였다. 복음을 받아들여 죄가 씻어졌다며 행복해하는 아이들! 경이로웠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딸이 나중에 “오늘 말씀을 전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어.”라고 했다. 동행했던 필리핀 교회의 몇몇 사람도 마음에서 복음이 분명해졌다고 감사해하며 눈물을 지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우리가 이방의 빛이며, 우리를 통해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겠다는 신년사 말씀이 그곳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역사의 현장에 나 같은 사람도 함께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 부담스러웠는데,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감사와 행복이 밀려왔다.
첼로 연주를 한 딸 미송이의 인기도 학생들에게 대단했다. 우리 딸이 언제 그런 환대를 받을 수 있을지. 망할까 두려워 목사님의 말씀을, 교회의 인도를 좇아 발을 내디딘 것뿐인데, 너무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올해의 남은 날들 동안에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오늘도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한다
요즘 나는 복음 전할 일이 곳곳에 예약되어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다. 오늘도 두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발걸음을 내디뎠고, 한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얼마 전에는 복음을 들으면서 생각이 많았는데, 오늘은 받아들여 의인이 되었다고 했다. 그분이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마음에 쉼을 얻고 행복하기를 마음으로 기도한다.
복음을 전하면 내가 만든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시작한 복음 전도. 지인들에게 한 번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기에 처음에는 사람들이 거절하거나 싫은 소리를 할 것 같아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면서 구원받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났고, 내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점점 깊게 자리 잡았다.
이제는 아무 두려움 없이 강남의 넓은 커피숍에서 성경을 펴놓고 복음을 전한다. 택시를 타면 택시 기사에게, 음식점에 가면 사장님에게 복음을 전한다. 욕 좀 먹으면 어떻고, 거절 좀 당하면 어떻고, 싫은 소리 좀 들으면 어떤가? 복음을 받아들이면 누구나 참된 행복을 얻는데!
나는 아직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기에 주로 로마서 3장 23절, 24절 말씀으로 복음을 전한다. 그리고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휴대전화기에 ‘굿뉴스TV’ 어플을 깔아 주고 말씀을 들으라고 권한다. 누구든지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비롯해 우리 선교회에서 전해지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다 마음이 소생하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를 찾는다. 그들에게 내가 배운 말씀을 전해 주고 같이 기도한다. 그러면 내가 말씀 안에서 힘을 얻은 것처럼 그들도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본다. 참 신기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고 행복하다.

내가 받은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내 의지로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는 세계를 배우는 것이 감사하다. 요즈음 주일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들으면서 이러한 사실이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어떤 각오를 해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영적 싸움으로 들어가면 사탄에게 질 수밖에 없다. ‘내가 문제와 싸워야 하는 게 아니고 주님과 동맹을 맺어야 하는구나!’ 나로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일 때 말씀이 모든 것을 이루심을 더욱 또렷이 알게 된다.
나는 멋진 인생을 살아보려고 했다가 실패했고, 나의 잘못으로 일어난 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서 박옥수 목사님의 말씀을 따랐을 뿐인데, 말씀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놀라운 역사를 보고 있다. 말씀은 핵폭탄보다 엄청난 힘을 가진 무기다. ‘내가 참으로 값진 것을 얻었구나!’ 하며 한없이 감사하다. 내가 말씀을 듣고 따를 수 있다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내가 받은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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