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초기 부족함과 연약함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손길
선교 초기 부족함과 연약함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손길
  • 우승윤(기쁜소식잠비아루사카교회)
  • 승인 2017.04.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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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의 오늘 4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이는 아프리카.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채우심이 반드시 필요한 곳. 잠비아에 선교를 막 왔을 때에는 갖추어진 것이 거의 없었기에 부족한 것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도우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셨다.

장기 비자를 받을 길이 없었다
잠비아에 와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래 체류할 수 있도록 비자를 연장하는 일이었다. 이민국에 가서 비자를 어떻게 연장해야 하는지 물으니, 무료로는 3개월밖에 연장할 수 없다고 했다. 장기 비자를 신청하려면 종교등록청에서 교회 등록증을 받아야 된다고 했다. 등록청에 가서 알아 보니, 등록 신청을 하려면 필요한 조건이 여러 가지였다. 먼저, 교회의 성도가 최소 10명은 되어야 했다. 그리고 외국인이 대표가 되어 교회를 등록하려면 장기 비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민국에서는 장기 비자를 얻으려면 교회 등록증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종교등록청에서는 교회 등록을 얻으려면 장기 비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고…. 다시 이민국에 찾아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장기 비자는 잠비아에 들어와서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절차를 밟아 신청해서 들어오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우선 등록청에 은혜를 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다시 등록청에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등록을 신청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담당자가 요건만 갖추면 신청 서류를 받아주겠다고 하며, 최종 결정은 현장 조사를 거친 후 내려진다고 했다.
그런데 등록청의 한 여직원이 자신이 교회를 먼저 방문해 보고 싶다고 하며, 도와줄 수 있을지 보겠다고 했다. ‘뇌물을 바라는 것이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교회에 가보고 싶다고 워낙 우기는 바람에 초청하고 집에서 기다렸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집도 정리되지 않았고, 가구는 물론 앉을 의자 하나 없던 때였다. 점심시간에 그 직원이 찾아왔는데, 줄 것도 없고 식탁도 없었기에 수박 몇 조각을 주고 복음을 이야기한 후 돌려보냈다.
그 후로 등록청에 여러 번 찾아갔지만 일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체류할 수 있는 3개월이 거의 다 흘러갔다. 비자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방법이 없고, 다른 나라로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잠비아에 머물려면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한 사람 당 500달
러 가량을 내야 3개월을 더 연장해 준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내고 머물 수는 없었다.

“이런 교회라면 얼마든지 등록증을
주겠습니다”

체류 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출국하기 전에 집회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리고 다시 등록청에 찾아가 오래 기다려서 등록청장을 만날 수 있었다. 청장님에게 우리 사정을 설명하니 자신이 직접 교회를 조사하러 가겠다고 하며, 가서 딱 한 가지만 보겠다고 했다. 교회 성도가 열 명만 되면 바로 등록증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감사한 일이었지만, 성도가 한 명도 없던 때에 열 명이라니….
청장님이 교회에 찾아온 날, 두세 명이 참석하던 집회에 그날은 새로운 사람 열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청장님도 자리에 함께 앉았다. 나는 복음을 전했고, 설교를 마치고 나서도 청장님에게 개인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청장님은 마음을 열고 “이런 교회라면 얼마든지 등록증을 주겠습니다.” 하고는 기쁘게 돌아갔다.
집회를 마친 후, 비자 기한이 만료되어 탄자니아로 갔다. 국경을 넘으면서 이민국 직원에게 물으니, 우리 부부는 이미 90일을 체류했기에 입국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탄자니아 교회에 도착해서 잠비아에 연락하니, 교회에 남아 있던 단기선교사들이 매일 등록청에 찾아가서 3일 정도 기다려 교회 등록 사본을 기적같이 받았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탄자니아 교회에서 선교사님들과 기도회를 가지며 ‘하나님이 우리를 잠비아에 보내시고, 교회 등록도 주셨는데, 잠비아에 못 들어가게 하실 리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탄자니아에 있는 잠비아 대사관에 찾아가서 비자를 신청하니 3개월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육로로 다시 국경을 넘었는데, 이민국 직원이 아무 말 없이 여권을 살피더니 입국 도장을 찍어 주었다. 잠비아에서 한 달을 더 지낼 수 있었다.
그 기간에 장기 비자를 다시 신청했다. 한 달이 지나 체류 기간을 연장하려고 이민국에 찾아가니, “당신들은 잠비아에 120일 동안 체류했는데, 법대로 하면 안 되는 겁니다. 탄자니아 대사관에서 실수로 비자를 주었고, 국경에서도 실수로 당신들을 입국시킨 겁니다.”라고 하고는 여러 직원이 모여서 의논하더니 “그래도 장기 비자를 신청한 상태니 비자 기간을 더 연장해 주겠습니다.”라고 했다. 대사관 직원과 국경 이민국 직원들의 눈을 가리고 실수하게 하신 분이 누구겠는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다.

“아, 우리 작은딸이 이 교회에 오는구나”
장기 비자를 신청했지만 이민국에 아무리 찾아가도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우리 비자를 담당한 직원을 매주 찾아갔지만 계속 미루며 도우려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어떤 인도 사람이 나를 불러서 조언해 주었다. 그는 “여기서는 성의 표시를 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아요.”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시범을 보여 주기도 했다. 15달러 상당의 지폐를 작게 접어서 손안에 넣은 후, 악수하면서 상대방 손에 넘겨주는 것이었다. 만날 때마다 악수하면서 돈을 넘겨주면 일이 처리되고 한 달 안에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선교사여서 뇌물을 주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다고 하자, “이건 뇌물이 아니라 선물과 같은 거예요.”라고 하며 그냥 기다려서는 절대로 비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비자를 담당한 여자 직원은 내가 갈 때마다 내 얼굴만 보고도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며 다음 주에 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처음에는 나도 짜증이 났지만 ‘하나님께서 교회 등록도 허락해 주셨는데, 비자도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평안했다. 얼마의 돈을 주면 당장은 일이 쉽게 해결되겠지만, 내 마음을 그런 인간의 방법에 길들이고 싶지 않았다. 매주 그 직원을 만나 무시와 박대를 당했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돌아왔다. 그래도 매달 비자가 무료로 연장되어 지낼 수 있었다.

 

어느 날, 담당자가 바뀌었다. 그가 우리 비자 신청서를 찾더니 서류철을 도저히 찾을 없다며, 잃어버렸으니 다시 신청서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서류를 만드는 일도 하나하나 조언해 주었다. 서류를 만들면서 보니, 먼저 제출했던 신청서에는 실수도 많고 문제도 많아 진행했다 해도 허락받을 수 없는 상태였다. 신청서를 새롭게 잘 만들어서 제출하고, 곧 현지 조사팀이 교회로 조사를 나왔다. 그런데 조사 담당자가 교회로 들어서면서
“우리 집 바로 뒷집이네.”라고 하며 “아, 우리 작은딸이 이 교회에 오는구나.”라고 했다. 그는 마음을 열고 문서를 잘 작성해 주었다. 그의 딸이, 우리가 잠비아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기 집 바로 뒤에 있는 우리 교회에 잠깐 다녔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길을 여신 것이다.
얼마 후, 2년짜리 선교사 비자를 잠비아에 간 지 1년 2개월 만에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영주권을 받아서 지내고 있다.

“우리 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만나 계속
교제하면 좋겠습니다”

잠비아에 처음 왔던 2005년 말 무렵, 한국인 선교사와 한국 교회에 대한 불신이 나라 전체에 퍼져 있었다. 당시에 잠비아의 천주교 주교와 통일교 교인인 한국 여성이 결혼하는 파격적인 사건이 일어나 모든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었다. 또한 사탄 숭배자들이 일으킨 해괴한 사건들이 매일 뉴스의 특종으로 다뤄지고 있었는데, 두 가지 일이 맞물려 잠비아 국민들이 한국 기독교인들을 사탄 숭배자로 오해했다. 내가 거리에 나가서 전도하면 사람들이 피하고, 나를 사탄 숭배자라고 떠들며 경계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복음을 들을 사람들을 준비해 놓으셨다.
2006년 2월에 네 명의 단기선교사들(남자 둘, 여자 둘)이 잠비아에 도착했다. 그런데 남자들의 키가 너무 컸다. 한 사람은 2미터, 한 사람은 197센티미터였다. 그 중 하나가 지금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선교하고 있는 임명철 형제다. 우리 선교회 목사님의 아들이지만 교회를 향해 불만과 불신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내가 “명철아, 이리 와봐.” 하면, 항상 “예” 하지 않고 “왜요?”라고 했다. 임 형제는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기에 교회에서 목사의 아들로 자라면서 많은 부분에 피해를 보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형제에게 어떻게 교제하고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지혜가 없었다.
교회가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이 없었기에, 매일 새벽과 오전과 저녁에 단기선교사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 말씀을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면 매일 전도하러 나갔다. 한번은 임명철 형제가 전도하러 나갔는데, 어느 부인이 키가 큰 동양인이 자기 집에 들어와서 전도하면서 성경을 펴고 서툰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는 사탄 숭배자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쫓아내고 싶었지만, 강하게 거부하면 자신을 공격할까봐 두려워 들어주는 척하다 돌려보내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임 형제가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었는데, 형제가 “우리 교회에 가서 목사님을 만나 계속 교제하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아주머니는 거부할 수 없어서 교회까지 따라왔고, 그날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기쁘고 감사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단기선교사들에게 문제도 많고 부족함도 많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단기선교사들의 마음이 변했고, 잠비아에 누릴 만한 것이 없었지만 행복을 누렸다.

2천 달러가 넘는 병원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보건소에 가서 물어 보니, 파상풍 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말라리아 약도 먹으라고 권했으며, 구충제까지 먹으라고 했다. 아내는 해산하기 직전까지 특별한 진료나 조치 없이 지냈다. 해산할 날이 가까워 어디에서 아이를 낳을지 잠비아의 병원들을 알아보고 있는데, 남아공 선교사님이 전화를 하셨다. 12월에 남아공에서 수양회가 있으니 와서 같이 수양회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아내가 해산할 날이 다가와 가기 어렵겠다고 말씀드리자, 와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하나님이 해산하는 것을 도우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선교사님의 말씀을 좇아, 출산 예정일을 한 달 앞두고 우리 부부는 남아공 수양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수양회 오전 시간에 선교사님이 내 아내에게 갑자기 산기가 있으니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차를 타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해 선교사님이 나에게 여권이 있는지 물으시는데, 급하게 오느라 여권을 챙기지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선교사님이 “입원시켜야 하는데 여권을 안 가져왔느냐?”고 나무라시더니, 병원 원무과에 선교사님 여권으로 접수해 급히 아내를 입원시켰다.
사실, 아프리카에서는 아이의 아버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병원에서 아이들의 출생증명서를 줄 때 거기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던 적이 없다. 병원에서는 항상 출생증명서에 어머니의 이름만 적고, 아버지의 이름은 자유롭게 적도록 그냥 빈칸으로 놔둔 채 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원무과에 접수하고 아내가 해산실로 들어갔는데, 간호사가 출산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데, 선교사님이 “오후에 자네가 복음반 강사인데 가서 복음을 전하면 출산도 하나님이 도우실 걸세. 이곳에서 자네가 할 일은 없으니 교회로 가세.” 하셨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원무과를 지나치면서 병원비가 얼마인지 얼핏 보니 2천 달러가 넘었다. ‘헉!’ 외국인이 방문해서 의료보험이나 혜택을 받을 조건 없이 갑자기 출산하게 된 경우라 병원비가 많이 나왔던 것이다. 생각이 복잡했지만 복음반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하나님이 내 마음을 평안하게 하셨다.

 

그날 저녁 여섯 시가 넘어서야 아내는 아이를 낳았다. 나는 2천 달러가 넘는 병원비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에게는 돈을 구할 수 있는 길이 없었기에 하나님만 찾았다. 다음날 아침, 아내를 퇴원시키려고 병원에 가서 보니 아내의 퇴원 수속이 다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내에게 “우리 그냥 가도 돼?”라고 물으니, 아내가 “괜찮아. 그냥 나가면 돼.”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가 입원하던 날 내가 여권을 가져가지 않아서 남아공 선교사님의 여권으로 접수했는데, 선교사님은 남아공 거주 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거주 비자가 있는 사람의 경우 그 아내가 해산하면 국가에서 병원비를 전부 부담해 주었다. 그래서 병원비를 다 면제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실수했지만, 하나님은 해산하는 아내를 붙잡아 주셨고 해산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아시고 도우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여전히 함께하셨고,
우리를 지키셨다

잠비아에 선교하러 갔지만 우리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문제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근심과 걱정에 둘러싸였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두려워했고, 모든 것이 막연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도 우리와 여전히 함께하셨고, 우리를 지키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이끌어 주셨다. 그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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