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잉크병
펜과 잉크병
  • 이가희
  • 승인 2017.05.10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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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에 유명한 시인이 살았어요. 어느 날 시인은 음악회에 가고 집에는 하인들만 남아 있었어요.

하인 두 명이 시인의 방을 청소하러 들어갔어요. 그들은 어질러진 책상이며 바닥을 깨끗이 청소했어요. 그때 한 하인이 잉크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어요.

“참 신기해!”

“뭐가?”

“이 잉크병 말이야. 잉크병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시가 술술 써지는 걸까?”

그러자 잉크병이 자랑스러운 듯 말했어요.

“하하, 나를 알아보시는군. 내 안에는 감탄할 만한 것들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이야기하기도 힘들 정도야. 내 안엔 놀라운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고!”

잉크병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펜과 종이를 보며 으스댔어요.

 

밤이 깊었어요. 음악회에 갔던 시인이 흥분된 얼굴로 방에 들어섰어요. 시인은 그때까지 음악회에서 받은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했어요. 특히 천사의 노랫소리 같던 바이올린 연주가 시인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어요. 하늘나라가 그렇게 아름다울 것 같았지요. 시인은 아름다운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구름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황홀하고 멋진 경험이었지요.

감동어린 바이올린 연주 덕분에 시인은 감동적인 글을 쓰고 싶었어요. 시인은 책상에 앉아 눈을 감고 바이올린 연주를 떠올렸어요. 바이올린 활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듯했어요. 연주자가 한 음, 한 음 소리를 낼 때마다 가슴속에서 꽃봉오리들이 활짝 피어나는 것 같았어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시인은 잉크병에 꽂혀 있던 펜을 들었어요.

‘음악은 활과 바이올린의 것이 아니야. 연주자의 것도 아니지. 우리를 감동시키는 모든 것은 하늘이 준 재능이야. 시인과 음악가, 발명가와 학자들은 모두 그 재능을 연주할 뿐이야. 그러니 우리 중 누구도 거드름을 피우며 자만해서는 안 돼. 그건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시인은 이런 생각을 주제로 <연주자와 악기>라는 동화를 써내려갔어요. 마지막 문장을 적은 시인은 자신의 작품을 읽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어요.

시인이 잠자리에 들려고 방을 나가자 펜이 잉크에게 말했어요.

“이봐, 잉크병! 시인이 하는 얘기 잘 들었지? 시인이 쓴 글도 읽어봤을 테고!”

“물론이지. 내가 쓰라고 준 글인데 그걸 모르겠니? 그러니까 이제 너도 정신 좀 차려라. 너는 작품을 쓰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그러자 화가 난 펜이 고함을 쳤어요.

“이 못되고 뭉텅한 잉크병 같으니라고!”

잉크병도 가만히 있지 않고 소리쳤어요.

“키만 크고 비쩍 마른 막대기!”

펜과 잉크병은 서로를 향해 욕을 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어요. 펜과 잉크병 모두 다시는 서로에게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주위가 조용해지자 펜과 잉크병은 이내 잠이 들었어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 놓으니 속이 후련했나 봐요.

그런데 침대에 누운 시인은 여전히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라 뒤엉켜 잠이 오지 않았어요. 어떤 생각은 불꽃처럼 타오르기도 하고, 또 어떤 생각은 파도처럼 온 천지를 뒤덮을 듯 밀려왔어요. 시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자신은 그저 하늘이 준 재능을 연주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에요.

 

 

<생각해 볼까요>

* 잉크병과 펜은 왜 싸웠나요?

* 시인은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여겼나요?

* 여러분이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생긴 능력인지 생각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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