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다른 생각에서 돌이켜 같은 마음으로
누가복음 15장 다른 생각에서 돌이켜 같은 마음으로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7.05.3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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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강단 전도자 훈련 과정 말씀
 

 

 

하나님께서 봄 대전도집회들을 앞두고 전도자 훈련 과정을 허락하셨다. 전도를 잘하려면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할까?
먼저 내가 전도를 받아 바른 신앙의 길을 걸어야,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바르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2017 봄 전도자 훈련 과정’에서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리 마음의 흐름과 믿음의 삶에 대해 심도 있는 말씀이 전해졌다.
탕자 이야기는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깊이와 정확함이 없다면 안다는 생각은 교만한 생각일 뿐이리라.
하나님이 교회에 주시는 사랑과 지혜의 말씀을 듣고, 읽고, 되새기고, 확증하여 그 말씀들이 우리 마음에 근육이 되게 하자. 그래서 그 힘으로 복되게 살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밝게 비추자.
 

[목차]

1. 불행과 행복을 결정하는 것
2. 자기 생각을 하나하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히 바꾸어야
3. 당신과 마음을 합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4. 마음을 예수님으로 채우고 어두운 생각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해야
5. 부담스럽지만 아버지 집을 향해 간 둘째 아들처럼

 

 

 

*이 글은 2017년 4월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가진 ‘전도자 훈련 과정’에서  박옥수 목사가 전한 다섯 시간의 말씀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 마음에 생각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생각과 다른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잘났어. 나는 똑똑해. 나는 얼마든지 사업을 잘할 수 있어.’ 그 생각이 들어오기 전까지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지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생각 하나가 들어온 후 불편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불편한 대화가 오가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언쟁을 벌이고…. 결국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 생각이 없었으면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이 다 둘째 아들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 하나가 다르니까 아버지 집에는 음식이 많은데 둘째 아들은 돼지우리에서 굶어야 했고, 아버지 집에는 좋은 옷이 많은데 둘째 아들은 헐벗어야 했으며, 아버지 집은 깨끗한데 둘째 아들은 더러운 곳에서 뒹굴어야 했습니다.
저도 내가 가진 생각이 옳고 내가 잘나고 똑똑하다고 여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을 비교해 보면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이걸 몰랐지? 이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내 생각이 왜 여기에 미치지 못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되고, 하나님을 따르게 되고,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다른 마음을 가졌을 때 아버지와 마음이 막혔습니다. 마음이 막히니까 아버지의 모든 것이 차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향해 마음을 열고 계십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그때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을 같이하면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것들이 여러분에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평안, 사랑, 지혜, 능력, 기쁨….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여러분 마음으로 흘러들어옵니다.
제가 세상을 살수록, 행복은 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압니다. 평안이 지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압니다. 좋은 아파트에 살고 좋은 차를 타야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행복과 평안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정확히 압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믿으면 누구나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보십시오.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저는 지난 55년 동안 예수님 안에서 살면서 이런 경험을 수없이 했습니다.
마귀가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유혹할 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것이 다 내 것이 되고 내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 되면 여러분이 손해를 봅니까? 여러분이 하나님보다 부자라서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똑같은 둘째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마음이 달랐을 때 그는 비참한 곳으로 내려가는 길을 걸었습니다. 반대로 아버지와 마음이 합해졌을 때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있었어도 영광스러운 길로 갔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주 단순합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생각이 같을 때에는 아버지의 모든 것이 둘째 아들의 것이고, 생각이 다르면 아버지는 풍성한데 둘째 아들은 배고프고 헐벗고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려면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대충 알고 내가 괜찮다고, 잘한다고 믿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자기 마음을 정확하게 보면 신앙이 바로 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대부분 성경에 담겨 있는 마음의 세계를 정확히 모르고, 자기 마음을 정확히 보는 눈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신앙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는 생각이 들면 금방 마음이 높아집니다. 그런 사람에게 신앙생활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나는 잘하고 있는데 왜 저런 소리를 하지?’ 하고 배척합니다. 타락하는 사람을 불러서 이야기해 보면, 열이면 열 자신은 기도하고 성경 읽고…, 신앙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누가복음 15장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다르고 새롭고 놀랍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도 다 같으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이와 넓이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조금 아는 것으로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 문제는 성경을 보는 눈이나 자신을 보는 눈이 정확하지 않은 데에서 시작됩니다. 비뚠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눈으로 보고 ‘나는 잘하고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목회자들에게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박 목사님은 까다로워. 신앙생활을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 좀 여유롭게 하면 어때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들이 우리를 타락하게 만듭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정확히 안 후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을 비교해 보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것이 금방 나타납니다. 그런데 성경을 그냥 읽지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내지 못하니까 ‘내가 오늘 전도했어. 기도했어. 성경 읽었어.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 내 마음과 비교해서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지지 않는다면 성경을 읽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반대로 어떤 사람이 살인하거나 간음하거나 도둑질을 해서, 그 일로 인해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정말 더럽고 추악한 인간이구나. 마음이 썩었구나. 하나님의 마음과 너무 다르구나’ 하고 뉘우치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한다면, 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입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왜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하십니까? 악이 드러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기가 선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다 자기를 사랑하기에 자신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잘못과 허물이 있지만 그렇게 악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여 자신을 발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정확히 살핍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부분을 발견해서, 자동차의 고장난 부속을 빼내고 새 것으로 갈아넣듯이 자기 생각을 하나하나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하나 정확히 바꿉니다. 그렇게 바뀐 사람은 더러운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일하십니다. 그는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고, 못나도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고,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조차 먹지 못하는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은 단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아버지와 다른 마음!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마음이 달라서 아버지와 같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돈도 써보고 싶고, 여자도 사귀며 방탕하게 살아 보고도 싶고…. 그런데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으니까 먼 나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마음 안에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여서 그 생각이 여러분을 지배하는데, 예수님을 믿는다? 그것은 껍데기로 믿는 신앙밖에 안 됩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버리고 자기 마음을 욕망과 쾌락으로 채워놓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지 모릅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재미있는 내용이, 둘째 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죽는구나.” 그가 돼지우리에서 ‘내 아버지 집에는…’이라고 말합니다. 몸은 돼지우리에 있는데, 마음은 아버지 집에 가본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예수님과 멀어졌을 때 생깁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빛이 비취면, 여러분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 모든 어두움이 물러가고 여러분의 마음은 예수님이 일하시는 곳이 됩니다.
38년 된 병자가 걷고, 소경이 눈을 뜨고, 간음한 여자가 의롭게 되고, 귀신 들린 자가 낫고, 풍랑이 잔잔해지고, 보리떡 다섯 개로 5천 명이 먹고…. 예수님이 계시면 얼마든지 능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여러분도 이 마음을 가지면 예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과 한 마음이 되면 어떤 문제든지 그것은 우리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문제가 되면 어떤 문제든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예수님이 여러분 속에 역사하실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욕망과 쾌락을 좇아서 가면 행복할 것 같지만 망하고 고통스럽습니다.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옵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생각을 믿습니다. 둘째 아들도 자기 생각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된 것을 알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와 마음을 같이했습니다.
저는 사도행전 13장 22절을 좋아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다윗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과 마음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세워 왕으로 삼아 당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깨끗한 사람, 그 사람들 다 두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사탄은 여러분 속에 예수님과 다른 생각을 넣고, 하나님은 성경에 당신의 마음을 넣어 두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을 따르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렵니까?

 

 

 

 

 

 

 

 

 

만약 우리가 어느 곳에 가면 교통사고가 생긴다거나 아이들이 다친다면, 그 곳에 가겠습니까? 절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마음의 세계는 잘 모르기에, 마음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이야기들을 멍하니 듣습니다. 불신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빼앗겨서 마음이 혼미해집니다.
성도들이 마음을 관리할 줄 모릅니다. 아무 생각이나 만나고, 아무 생각에나 끌려가고…. 교회에서는 마음을 다 쏟아 성경을 가르쳐 양육하는데, 어느 날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교회나 하나님의 종을 비판하는 잘못된 말을 쉽게 받아들여서 같은 말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이 교회 안에서 많이 꺾이는데, 자신이 조금 잘하는 것이 있으면 다시 자기를 높입니다. 그러면 형제 자매들이 시들해 보이고, 교회가 시들해 보이고, 목사도 시들해 보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뭐 이런 데가 있어?’ 하고는 교회를 떠납니다.
사탄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은 바보 같고 욕망을 좇아 사는 것이 정상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차 있는 사람은 ‘이 좋은 복음을 전하지 않고 무얼 해?’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 두 사이에 아주 많은 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목사가 안 돼도 복음을 전하다 죽고 싶습니다.
마음을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듣는 대로 따라가거나 생각나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야 합니다. 마음을 말씀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자주 사고하고, 성경에서 예수님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예수님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어떤 어둠이 있든 어떤 고통이나 슬픔이 있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이 여러분의 마음에 거하면 모든 것이 밝아집니다. 빛과 어두움은 결코 함께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깨끗하고 정결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면 모든 어둠이 물러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보같이 예수님이 거해야 할 마음에 오만 가지 생각을 받아들입니다. 그 생각에 취해서 혼미해집니다.
어두운 데에서 교회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밀어내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교회 앞에서 밝게 이야기하자고 해야 합니다. 교회와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무너뜨리면 신앙이 엉망이 됩니다.
마음을 정돈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한 번씩 마음을 정리하십시오. 어두운 생각이 있습니까? 두려움이나 슬픔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처리하려고 하지 말고, 그 문제를 옆에 두고 예수님과 사귀어 보십시오. 예수님이 다 처리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기쁨에 잠겨서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분 속에 가득 찰 것입니다.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아버지 집을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게 하고, 어두운 생각이 자리 잡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결정할 때, 가능하면 부담스럽지 않은 쪽으로 결정하려고 합니다. 나중에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당장 부담스러운 길을 피하고 편안한 쪽을 선택하기 쉽습니다. 둘째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아버지 집에 가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나무라실 것 같고,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것 같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안 가면 여기서 살 만한가?’ 며칠은 견디겠지만 주려서 죽을 것이었습니다. ‘내가 주려 죽으면 아버지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겠구나.’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생각을 깊이 하는 사람은 그 삶이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우리를 생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신앙 자체가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사고하며 약속을 믿으면 ‘하나님이 도우시겠구나!’ 하는 마음이 솟아납니다.
제가 위가 몹시 아파서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막 11:24)는 말씀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기도했으니 받은 줄로 믿으면 나은 것이고, 그렇다면 어떤 음식이든지 먹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제 위가 창호지처럼 얇아져서 잘못하면 터져서 죽는다고 했기에, 김치를 먹으면 배가 터져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날 아침, 마음에서 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위장이 나은 다음에 나았다고 믿으면 좋겠는데, 아픈데 나았다고 믿으라고 하니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냥 둘 걸 괜히 기도했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을 수없이 읽고 또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 들어가 결론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귀찮으니까 ‘난 믿음이 없어…’ 하는 쪽으로 기웁니다. 믿음 없다는 사탄의 소리를 받아들여서 엄청난 하나님의 약속을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래서 신앙이 안 좋아집니다. 부담스럽고 어렵지만, 사고하면서 부딪쳐야 합니다. 그렇게 문제를 넘어가면 믿음이 굉장히 자랍니다.
제가 말씀대로 나았다고 믿고 밥과 반찬을 먹었는데, 바로 설사가 났습니다. “나았는데 배가 왜 아파? 아픈 게 나은 거야?” 사탄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도 지지 말고 반격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 같았지만 살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아파도 말씀대로 나은 게 맞았습니다. 그래서 “아프지만 나았다!” 했습니다. 그때, 아프다고 해서 낫지 않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둘째 아들을 돼지우리에 넣어서 생각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돼지우리는 임시 편하지만 결과는 죽음이고,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은 부담스럽고 어렵지만 음식과 행복이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부담스럽지만 아버지 집을 향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서 보니까, 부담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뜨거운 아버지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탕자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올 걸…’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담스러운 것을 피하느라 이 땅에 눌러 앉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독수리 새끼라면, 둥지 안에만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부담스럽지만 겁먹을 필요 없습니다. 사고해서 말씀을 믿고 발을 내디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누리며 사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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