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내 인생이 흘러감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내 인생이 흘러감이...
  • 이영준(기쁜소식강남교회)
  • 승인 2017.05.3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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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간증 시리즈1 _가족이야기

 

 

이 세상의 삶도 지옥 같은데, 죽어서까지 지옥에 가면 어쩌지?
딸 혜진이가 다섯 살 때, 시아버님 장례를 치르고 승용차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사람을 치고 말았다. 합의금으로 오백만 원이라는 큰돈이 필요했다. 혜진이 아빠가 카센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형편이 넉넉지 않았기에 앞이 깜깜했다. 어쩔 수 없이 가게를 팔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어렵게 살다가 이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할 일을 잃은 혜진이 아빠는 마음을 잡지 못해 술로 시간을 보냈고,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많았으며, 술 주정이 심해졌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며 그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남편의 삶을 바꾸어 보겠다고 금식하며 새벽에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지만, 느는 건 빚과 남편의 행패였다.
인생이 한없이 추락하고만 있을 때 둘째 언니(이명례 자매)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는 이제 구원받았다며 기뻐했지만, 이상한 곳에 빠졌다고 생각해 다시는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했다. 죽고 싶었지만 엄마를 의지하는 혜진이를 보며 하루하루 견디다가, 어느 날 ‘이 세상의 삶도 지옥 같은데 죽어서까지 지옥에 가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문득 ‘언니가 와 보라는 그 교회에 한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았던 인천에서 당시 관악구에 있던 서울제일교회를 찾아갔다. 부인회를 마치고 사람들이 예배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젊은 전도사님과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주 젊어서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성경을 펴서 차분하고 야무지게 설명해 주어 마음이 빠져들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 성경에 기록된 분명한 말씀이어서 자연스럽게 믿었고, 어느 사이 나는 구원을 받아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구원받고 형편이 나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곤두박질쳤다. 이젠 거할 집도 없었다. 남편이 가끔 일 때문에 들렀던 충북 옥천에서 방을 한 칸 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시골 마을로 이사했다. 젊었기에, 닥치는 대로 품을 팔아서 3년 만에 읍내에 아파트를 샀다. 숨 좀 돌릴까 했는데, 혜진이 아빠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큰 포도밭을 사서 농사를 짓다가 크게 망하고 말았다. 집에 차압 딱지가 붙고,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돈을 갚으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서 그 동네에서 도저히 살 수 없었다. 함께 살기 힘들어져 우리 부부는 이혼했다.
대전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혜진이와 살았다. 힘들었지만 마음은 편해서 좋았다. 혜진이는 힘들게 사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려고 알아서 공부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있었던 일들을 세세히 들려주며 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처럼 밝게 웃어 주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되어 주는 딸을 향해, 내 마음에는 늘 고마움과 애틋함이 자리했다.
그 후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과 재혼했고, 혜진이도 새아빠를 따르며 의지했다. 혜진이가 고등학교에 갈 무렵 서울의 둘째 언니 집 근처로 이사했고, 자연스럽게 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혜진이도 나와 함께 교회에 다니며 구원을 받았고, 아프리카 가나로 단기선교를 떠났다.
남편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새 가정을 꾸려가면서 무거운 짐들이 있었겠지만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었다. 지인을 통해 가락시장에가게를 얻었고, 누구보다 성실히 일해서 목이 좋은 곳으로 가게를 옮겨 괜찮게 사는 듯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충격으로 남편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큰 어려움이었지만, 그때 남편의 마음도 무너져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 즈음 박옥수 목사님이 우리 집에 심방을 오셨다. 목사님은 예레미야 29장 말씀을 이야기해 주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하나님께서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을 주려 하신다는 말씀을 들으며, 그 동안 힘겨웠던 내 삶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마음에 평안이 자리 잡았고, 소망 속에서 남편의 병간호를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남편은 복음을 들은 후 마음이 많이 부드러워졌고, 다른 환자들보다 몇 배나 빨리 회복되어 한 달 만에 퇴원했다. 우리 부부는 가나에 있는 혜진이를 보러 8월에 가나 월드캠프에 가기로 하고, 황열병 주사도 맞고 딸을 만날 날을 고대했다.

 

 

 

 

 

 

 

 

 

 

 

 

“혜진이가 예배당 공사를 돕다가 떨어져 다쳤습니다”
2007년 여름, 3차 수양회에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하룻밤을 자고 화요일 아침에 조용히 기도하고 있는데, 박옥수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혜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목사님이 혜진이 이야기를 하셨다.
“혜진이가 예배당 공사를 돕다가 2층 난간에서 떨어져 다쳤습니다. 평생 누워서 지낼 수도 있답니다. 수술을 받도록 데려오려고 하는데, 항공사에서 받아 주질 않습니다. 지금 백방으로 비행기 편을 알아 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씀하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박 목사님이 그동안 하나님을 경험했던 간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종을, 어떤 상황에서든 믿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사님, 저보다는 목사님이 낫잖아요. 목사님이 알아서 일들을 결정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새벽에 잠이 안 와서 교회에 일찍 와서 성경을 읽는데, 로마서 8장 37절의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는 말씀이 제 마음에 평안을 주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풀려서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었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목사님이 해주신 말씀을 읽고 또 읽으며 마음에 심고 또 심었다.
‘그래, 혜진이는 넉넉히 이길 수 있어!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시지 않으면 거짓말쟁이지.’
혜진이가 독일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남편과 친정어머니는 틈만 나면 함께 모여서 기도했다.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도, 90세가 다 되신 친정어머니도 마음이 하나로 모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의 천사
혜진이는 독일에서 척추 수술을 가장 잘한다는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도착하자마자 수술에 들어갔다. 1차 수술은, 등쪽을 갈라 부서지고 흩어진 뼛조각들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흉추 12번이 모두 부서져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쇠로 만든 대를 넣었다. 일주일 후 2차 수술에 들어갔다. 2차 수술은 위험 요소가 많다고 했다. 옆구리를 갈라 장기 쪽으로 박힌 뼛조각들을 제거하는 수술로, 장기를 다 들어내고 갈비뼈를 몇 개 잘라내야 한다고 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설명이었다. 깜짝 놀라며 ‘아직 아가씨인데 갈비뼈를 자르면 어떻게 하냐? 다른 방법은 없냐?’ 물었더니, 의사가 갈비뼈가 벌려지면 자르지 않고 해보겠다고 하였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길이 없었다. 박 목사님이 들려주셨던,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는 말씀을 되새겼다. 수술 후에는 혜진이가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기에 우리는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선교사님이 “독일에 오신 김에 우리 교회 자매와 함께 관광을 좀 하세요.”고 하셨다. 자매님과 함께 괴팅겐 교회와 베를린 교회를 둘러보고, 주변의 관광지를 구경했다. 절박한 상황 앞에서 세상 사람들이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수술이 끝난 후 혜진이는 예상과 다르게 힘들어했다. 몹시 어려운 상황을 넘긴 후, 의사 선생님이 엑스레이를 들고 와서 보여 주며 혜진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100퍼센트 다 했습니다. 이제 걷고 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수술은 아주 잘 되었다. 사실 나는 수술이 끝나면 혜진이가 금방 회복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마음이 굉장히 무거웠다. 엄마인 내가 너무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마음고생 하며 살아온 혜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딸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많은 눈물을 삼켰다.
혜진이의 몸은 빠른 회복 속도를 보였고, 수술한 자리도 잘 아물었다. 혜진이가 프랑크푸르트 대학병원에서 20일 정도 있었는데, 늘 밝은 미소와 긍정적인 마음으로 병원 사람들을 대했다. 그런 혜진이를 보며 내 딸이지만 신기했다. 그들은 혜진이에게 ‘천사’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혜진이 마음에 있었던 평안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하나님의 종과 교회의 인도가 없었다면 혜진이는 절망 속에서 고통했을 것이다.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마음은 절망에서 벗어나 소망과 감사 속에 머물도록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사는 떠나라고 했지만, 이제 하나님이 일하시겠다
사고가 있었던 2007년 8월부터 6년 동안 병원생활을 했다. 그 시간들 가운데 중국 광저우에서 치료 받았던 날들을 쉽게 잊을 수 없다. 이강태 장로님의 소개로 장로님의 스승께 복침을 맞은 것을 계기로 중국까지 갈 수 있었다. 광저우에 있는 병원에서 6개월 동안 복침을 맞으며 물리치료를 받았다. 가까이 계시던 선교사님과 중국 형제 자매님들이 마음을 많이 쏟아 주셨다. 지극한 정성에 보답하듯 혜진이 몸의 마비가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차도가 없었다. 한날은 혜진이 주치의인 병원의 과장님이 통역해 주는 선교사님 사모님과 나를 함께 불러 사모님에게 마른 말투로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분의 이야기를 다 듣고 사모님이 나에게 어렵게 입을 떼셨다.
“이 병원에 더 있을 필요가 없답니다. 더 이상 치료받는 게 무의미하고, 계속 머물러 있으면 병원의 위상만 떨어지니 그만 당신 나라로 돌아가랍니다.”
땅이 꺼지는 것 같다는 표현을 그럴 때 쓰는 듯했다. ‘하나님, 우리를 여기 보내신 것은 혜진이를 낫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요? 왜 의사가 가라고 하지요?’ 억울한 마음, 의사에게 매달리고 싶은 마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혜진이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전에 잠깐 눈을 감고 묵상하는데, 하나님께서 로마서 8장 11절 말씀을 떠올려 주셨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래, 죽을 몸도 살리시는 분이 예수님이야. 의사는 떠나라고 했지만, 이제 하나님이 일하시겠다.’
어지러웠던 마음이 정리되었다. 주치의에게서 들은 말을 혜진이에게 전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혜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격한 마음을 토해냈다. 내가 큰소리로 말했다.
“너, 왜 울어? 울어서 낫는다면 열흘이고 계속 울어도 내버려둘게!”
“그럼 나는 울지도 못해?”
사고가 난 후 혜진이가 처음으로 화를 냈다. 우리 모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로마서 8장 11절을 펴서 혜진이에게 보여 주며 이야기했다.
“말씀이 진리야. 이 형편은 다 거짓이고 우리는 말씀만 믿어야 돼.”
성경을 보더니 혜진이는 울음을 그치고 이내 평안을 되찾았다. 병원에서는 한 달 동안 더 치료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주치의가 바뀌어 치료가 진행되었다. 그 한 달 동안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혜진이 몸이 배꼽 밑으로 5cm까지 감각이 살아났다.

“내가 전담 셰프로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온 후, 계속되는 병원생활에 나도 지치지만 남편도 힘들어했다. 병원에 있다가 주말에 집에 오면 남편이 혜진이와 나를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남편이 그렇게 하는 것이 섭섭했다. 그 일로 우리 가족은 박 목사님과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사님은 따뜻한 말로 남편의 마음을 풀어 주며, 혜진이에 대해 소망으로 가득한 목사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흘려주셨다. 목사님 말씀을 듣다 보니, 혼자 외롭게 지냈을 남편의 입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내 모습이 보였다. 남편은 나름대로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들이 있었겠는가? 나는 교만한 아내였던 것이다. 목사님과 교제한 후 오랜만에 남편과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엉켰던 실타래를 풀듯 서로 묵은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마음으로 남편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후 남편은 혜진이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다. 혜진이가 몸이 마비되어 음식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는데, 남편이 만들어 준 음식들은 탈 없이 잘 먹었다. 남편은 “내가 전담 셰프로 우리 집 여자들 때문에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어.”라는 농담을 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혜진아, 너 올림픽 나가 보자”
6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면서부터, 혜진이는 그동안 체력을 갈고 닦았다가 달리기를 하는 선수처럼 바쁘게 지냈다. 몸이 아파 다니던 대학에서 자퇴했는데, 편입시험을 보아 중앙대에 합격했다. 학교에서 장애인이라고 합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딸과 나는 학교로 찾아가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신 일들을 이야기했다. 관계자들은 우리 이야기에 빨려드는 것처럼 들었고, 마침내 합격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혜진이가 속한 반의 강의실을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 배정해 주었다.
혜진이는 학교에 다니면서 마인드강연과 교회 일을 병행하다 보니 밤을 새는 날이 많았다. 옆에서 보면 힘들 것 같은데, 혜진이는 자기를 불러 주는 교회와 하나님께 감사해했다. 시험 때마다 교회의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몸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딸이 안쓰럽게 여겨져 “네가 아니어도 그 일은 다 돌아가.”라고 싫은 소리도 했지만, 하나님은 항상 약한 몸에서, 약한 생각에서 벗어나도록 딸의 마음을 인도해 주셨다.
혜진이는 일주일에 세 번 수영을 하며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 물에 들어갔을 때에는 몸이 가라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목과 허리, 팔목과 발목에 튜브를 채웠다. 혜진이는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라며 누워서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수영을 마치면 튜브를 빼고 윗몸일으키기와 다리를 밀고 당기는 근력 운동 등을 했다. 지금은 몸에 아무 튜브도 착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돌고래처럼 수영을 잘한다. 수영을 지도하는 선생님들이 한번씩 “혜진아, 너 올림픽 나가 보자.”라고 농담도 한다.
물속에서 발을 딛는 연습, 바를 붙잡고 걷는 연습도 한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행복해진다. 척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가 마르고 근육이 없어져 하체는 힘없이 달려 있는 모양새가 된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신경이 일하지 않기 때문에 근육이 생길 수 없다. 그런데 혜진이는 날이 갈수록 다리가 정상인처럼 굵어지고,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도 생긴다. 하나님이 지키고 계심이 분명하게 보인다. 전에는 평영을 할 때 다리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리를 쭉쭉 펴면서 물을 밀어내고 있다. 혜진이가 마인드강연을 하면서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운동을 꾸준히 하지는 못하지만, 점점 좋아지는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와! 이건 정말 하나님이 하신 거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마음에 뜨거운 감사의 눈물이 차오른다.
박옥수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이따금 혜진이 이야기를 하실 때면,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목사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한다. 혜진이를 마음에 품고 있는 목사님을 보면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사랑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혜진이를 품고 계심을 느낀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경험을 하면서
한번은 혜진이가 하혈이 계속되고 현기증도 심했다. 가까운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해 보니 자궁에 혹들이 많다고 했다. 혜진이가 움직일 때마다 그 혹들이 서로 부딪혀 피가 나와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는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니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하라고 소견서를 써주었다. 빠른 시일 안에 치료를 받으라고 하는데, 큰일에 단련되어서일까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어떻게 바꾸실지’ 기대가 되었다. 혜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혜진이는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자궁 수술을 해야겠습니까? 암을 이긴 여러 형제 자매들의 간증처럼 우리 혜진이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세요. 하나님의 손길로 건강하게 해주세요.”
기도를 마친 후 김포에 있는 서울여성병원의 김소은 부원장님에게 연락해 1월에 병원에 가기로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그 날짜에 혜진이가 마인드전문강사 교육에 참석해야 해서 갈 수 없었고, 다음 달에는 태국 월드캠프에 참석하느라 갈 수 없었다. 결국 3월에야 병원에 갔는데, 검사 결과 혹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우리 눈으로 많은 혹들을 보았는데, 하나도 없었다. 검사 결과를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혜진이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6.1로 나와 부원장님이 깜짝 놀라며 혈액 주사를 처방해 주었다. 수치가 6.5 이하이면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생활했느냐고 하며, 자궁의 혹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그 후 혜진이는 계속 현기증을 호소했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졌다.
하루는 딸이 새벽부터 구토하고 어지러워하며 눈도 뜨지 못하고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날이 주일이어서 박 목사님에게 달려갔다. 그날 주일 설교 말씀이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10절 말씀이었는데, 목사님이 1절의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는 말씀을 읽어 주며, 보이는 형편을 믿는 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 혜진이가 아픈 것은 형편이야. 허물과 죄로 죽었던 혜진이를 하나님이 살리셨고 구원하셨기에 이건 어려움이 아니야. 더 큰 복을 받겠구나.’
말씀이 내게 힘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혜진이에게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혜진이도 말씀을 그대로 받아 힘을 얻고 다음날 멀쩡하게 일어났다. 3개월 후 검사를 받았을 때에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13으로, 아주 정상으로 나왔다.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우리는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경험을 자주 하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게 되었다. 간혹 “왜 하나님이 나에게는 일하시지 않지?”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 현재 보이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 주밀하게 일하신 하나님의 흔적과 큰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혜진이와 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 행복과 감사에 젖어 살 수 있는 것이리라.
현재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도 하나님이 주셨다. 2013년에 우리 가족은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남양주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문영준 목사님이 심방을 와서 “왜 이렇게 멀리 살아요?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세요.” 하셨다. 목사님의 인도로 주소를 서울로 옮기고, 혜진이 이름으로 청약 통장을 개설했다. 그리고 3개월 후 강남구와 서초구에서 진행되는 청약을 다 신청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살고 있던 집이 팔려서 곧 이사를 가야 했다. 이사할 집을 구하지 못해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때 주일 예배 시간에 박 목사님이 출애굽기 12장 13절 말씀을 들려주셨다.
“…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꼭 나에게 개인적으로 들려주시는 말씀 같았다. 목사님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갈 때 창과 칼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를 힘입어 나갔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연결되면 무슨 일이든지 넘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내 마음에 예수님의 피가 있기에 어려움이 넘어가고, 하나님이 집을 주실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 집을 산 새 주인에게 ‘우리가 내년 3월에 집이 생기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새 주인은 5개월 후에야 이사할 수 있기에 고심하다가, 그렇게 하자고 허락해 주었다. 청약 결과가 발표된 상태도 아니고 집을 구할 돈이 생긴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시리라 믿어졌다.
시간이 흘러 3월이 되었고, 신청했던 많은 청약 건 가운데 3월에 입주하는 곳에 당첨되었다. 신기하고 오묘했으며, 날아갈 듯 기쁘고 감사했다. 이사가 결정된 후, 이사에 필요한 모든 것도 하나님이 준비해 주셨다.

 

 

 

 

 

 

 

 

 

 

 

하나님이 혜진이를 이미 온전케 하셨다는 말씀을 믿기에
하나님의 일은 항상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혜진이의 삶도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마무리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 가운데 살 수 있고, 하루하루를 웃으며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파란만장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역경이 많았던 만큼 하나님의 숱한 은혜의 손길 안에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가정의 평안도 얻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삶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이 감사하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 이제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기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내 마음을 만들어 주셨다.
딸이 언제나 자신을 돕는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몸이 아플 때에는 병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 물질이나 형편에 매이지 않고 담대하게 살 수 있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과 나 사이에 연결된 끈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져 늘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하나님이 혜진이를 이미 온전케 하셨다는 말씀을 믿기에, 혜진이가 아직 걷지 못하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혜진이를 일으키시면 딸이 걷고 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혜진이를 오랜 시간 휠체어 안에 두시면서 당신의 사랑과 온전한 세계를 가르쳐 주신다는 마음이 든다. 휠체어를 타고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세계들이 혜진이 삶에 밑거름이 되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주신 평안한 가정,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종과 교회, 이 안에서 내 인생이 흘러가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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