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마음에 품으면
말씀을 마음에 품으면
  • 김재홍(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17.06.1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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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어미 새가 알을 품으면 부화되고 자라서 하늘을 나는 새가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사는 사람의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마음에 품으려면 그냥 말씀을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한 짐승이 되새김질하듯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마음에 되새기면 말씀을 품게 되고, 말씀이 일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에스더를 왕후로 간택한 이유
에스더 1장에서 왕후 와스디는 똑똑하고 아름답고 여성으로서의 리더십도 있어 모든 것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폐위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와스디의 용모가 아름다워 아하수에로 왕이 뭇 백성에게 자랑하려고 했으나 와스디가 왕의 명령을 좇아 오기 싫어하자 폐위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왕후를 선발할 때에는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 즉 왕에게 순종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눈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127도에서 모은 처녀들을 왕궁에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 가운데 에스더를 왕후로 간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처녀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왕 앞에 나갔지만 에스더는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정한 것 외에 다른 것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순종하는 아름다움입니다.
에스더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딸같이 양육해 준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마음을 받고, 받은 마음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 결과 왕궁에 살 때도 그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마음을 받고 그 받은 마음을 품을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왕 앞에 나갈 때도 왕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내시 헤개가 정해준 그대로를 가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처녀들은 간택되기 위해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할 마음은 있었겠지만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마음은 품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나갔고, 왕은 그들에게서 순종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왕후로 선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지 못하도록 막는 일을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놀라운 변화가 오고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 때문에, 사탄은 이를 막기 위해 인도자의 마음을 받고 그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불편하고 어렵다는 생각을 넣어 줍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품고 자기 마음대로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품지 않아 저주를 받은 요압
다윗은 자신을 반역하고 왕이 된 아들 압살롬과 전쟁할 때, 요압과 군장들에게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 다윗의 마음은 품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가다가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대롱대롱 매달리자 요압은 그를 죽이도록 했습니다. 만약 요압이 다윗의 마음을 받아서 압살롬을 살려 다윗에게로 데리고 갔다면 얼마나 복되었겠습니까? 아마 요압은 영웅이 되었을 것입니다. 요압이 적군이 아닌 아군의 칼에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다윗의 말을 듣고 “예.” 하고 대답은 했지만 왕의 마음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마음을 버리고 자기 마음으로 전쟁에 나간 것이 저주를 받을 조건이 된 것입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삼하 18:33) 이 말씀은 다윗이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는 내 마음을 품었다면 요압이 압살롬을 죽이지 않았을 것인데....’ 하며 안타까워하는 애통이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살찐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이자 큰아들은 아버지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만일 탕자가 아버지보다 형을 먼저 만났다면 탕자는 쫓겨나거나 도망가야 했을 것입니다. 만약 형이 탕자를 쫓아냈다면 날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겠습니까? 압살롬도 아버지 다윗이 아닌 요압을 먼저 만났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품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마음과 교회의 마음과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품을 줄 안다면, 하나님이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은 에스더를 최고의 자리인 왕후의 위치까지 세워주신 것처럼 그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가만히 돌아보십시오. 주님의 마음이 아닌 자기 마음을 품고 사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닭도 알을 품기 시작하면 부화될 때까지 끝까지 품고, 이름 모를 새들도 알을 품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품습니다. 황제펭귄들은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서로 자리를 바꾸는 허들링을 하면서 알을 품어 부화시킵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높이려고 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품기만 하면, 하나님이 예수의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높이고 모든 이를 그 발아래 꿇게 하신 것처럼 여러분의 인생도 그렇게 만드실 것입니다.

내 마음으로 살 것인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 것인가?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목표를 성취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성취욕과 행복은 다릅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을 때 성취감에 잠시 기쁠 수 있겠지만 그것이 행복은 아닙니다. 참된 행복을 원한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받을 줄 알아야 하고, 받은 마음을 마음에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인도자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받은 마음을 품을 줄 알았던 에스더의 삶과 다윗 왕의 마음을 받을 줄 모르고 왕의 마음을 품을 줄 모르는 요압의 삶은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품고 살 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결과는 축복과 저주 두 갈래로 나누어집니다. 내 마음을 가지고 내 주관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서 살 것인가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받은 마음을 품고 사는 법을 배워야 삶 속에서 많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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