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예수의 피를 힘입으면 우리는 온전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예수의 피를 힘입으면 우리는 온전해!”
  • 기쁜소식천안교회 김진수 목사
  • 승인 2017.07.2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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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16년 9월 27일 담관 암 판정을 받은 김진수 목사.
그로부터 9개월이 지난  6월, 기쁜소식천안교회에서 그를 만났다.
암환자는 죽음이 마음에서부터 찾아온다는데 그의 마음에는
두려움이나 염려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무슨 일을 하시고 어떻게 그의 삶을 인도하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그동안 건강하셨던 걸로 아는데 암에 걸린 것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요.
제가 59년을 살면서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을 만큼 건강했습니다. 박옥수 목사님이 “피곤한 것은 좋은 거야. 피곤을 즐겨!”라고 말씀하셔서 저도 줄곧 그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갔다 와도 시차 때문에 어려워한 적도 없었고요. 제가 암에 걸린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작년 8월에 멕시코 월드캠프에 다녀오고 9월 15일에 다시 미국 LA에서 있었던 미 해병 1사단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 기념식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박옥수 목사님이 참석하시기로 한 행사인데 목사님이 다른 일정이 있어서 제가 대신 갔습니다. 그날 따라 무척 피곤하더라고요. 화장실에 갔는데 소변 색이 피처럼 붉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왜 이러지?’ 그런데 나중에 또 그런 거예요. ‘너무 피곤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뒤로 그라시아스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미국 순회공연이 있어서 마이애미, 올랜도, 애틀랜타에 갔는데 그때는 앉기만 하면 졸았습니다. 음식 냄새가 너무 싫어서 식사도 못 하고, 사람 냄새도 너무 싫어서 함께 지내는 것도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당초 일정보다 삼 일 일찍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좀 쉬면 되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미국에 다녀온 후 박목사님께 인사드리러 인천에서 갖는 모임에 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갈 수 없었어요. 평소에는 눈만 뜨면 목사님이 계신 기쁜소식강남교회에 가곤 했는데, 그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아내가 빨리 병원에 가보자고 하는데도 제가 워낙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해서 안 가려다가 두 시간 정도면 진료할 수 있다고 하기에 갔습니다. 그때까지도 큰 병일 거라는 생각은 안했습니다. 항상 내 힘에 지나게 뛰어다녔으니까요. 처음에 간 수원의료원에서 병명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아서 아주대 병원으로 옮겨갔지만 담석증이거나 종양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하지 않더라고요.
그때 잠비아에 가신 박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이 “자네, 내 말 잘 들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좋은 병원에 찾아가지 말고 그 분야에 전문가를 찾아가서 치료 받아. 수술하자고 하면 수술하고 깨끗한 몸으로 복음 섬기면 좋겠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강남교회에 계셨던 조규윤 목사에게 말씀드리니 의사 형제에게 그 분야의 전문의를 알아봐 주어 제가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우리 선교회 안에서 허인수 목사, 김윤옥 자매 등 암에서 나은 여러 간증들을 들었기에 목사님 말씀하신 대로 ‘이거 큰일 아니겠다. 이거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검진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삼성의료원에서 내시경을 하고 MRI 촬영을 했는데 담관에 악성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암이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말하기를, 담관 종양은 발견되기도 어려운데 조기에 발견된 것이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 몸은 황달 증세도 있고 붉은 소변이 나왔는데, 그런 증상이 나타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죠. 그날이 9월 27일이었는데, 수술 날짜는 10월 14일로 잡았습니다.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을 때 심정이 어떠셨습니까?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박 목사님이 자주 “나는 1962년에 구원받을 당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눈을 빌어 ‘나’라는 사람을 보았습니다.”라고 하시며 “내게 있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믿지 않고 그날부터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며 그때 저도 그 마음이 되었습니다. 암이 내 몸을 죽음과 연결시키니까 그 앞에서 ‘나’라는 인생이 바로 끝나더라고요. 내가 무엇을 잘한다는 것도 무의미하고 무엇을 못한다는 것도 무의미하고요. 내가 우사인 볼트처럼 달리기를 잘하는 튼튼한 다리가 있다고 해도, 아무리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암과 연결되니까 죽음 앞에 선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 짧은 시간에 ‘나’라는 존재의 끝을 만났어요. 허무하더라고요.
제가 20년 동안 선교회 안에서 국제청소년연합IYF 일을 비롯해 여러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신 부분이 이어서 생각났습니다. 내 생각에는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을 때 아름답게 이루어지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했는데, 그 모든 것이 이때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이라는 병에도 그대로 적용시키면 되겠구나!’ 하며 암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기까지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바로 입원해서 금식하다가 3일 후인 9월 30일에, 시무하던 기쁜소식수원교회에서 실버대학 4기 입학식이 있어서 퇴원했습니다. 의사도 아내도 퇴원을 말렸지만 저는 ‘이 병은 이미 끝났다’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입학식에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오후 5시쯤 되니까 배가 너무 아파서 저녁 7시에 다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맹장인 줄 알고 급히 수술을 결정했는데, 알고 보니 진료 때 내시경으로 넣은 스탠드 관이 빠져서 십이지장을 천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의사들이 암 환자들에게 가장 염려하는 것이 다른 장기로 암이 전이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제 경우는, 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도 전에 다른 수술을 받게 되어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더 빨리 전이가 될까봐  두 번째로 종양 제거 수술을 11일 만인 10월 14일에 했습니다.
의사들의 걱정과 달리 다른 부위에는 전혀 전이되지 않아서 담관에 생긴 종양만 제거했습니다. 수술 전에 의사 얘기로는 17~20시간 넘게 걸릴 거라고 했지만 3시간 반 만에 수술이 끝났습니다. 두 번 수술했는데도 건강 상태가 좋아서 의사들이 또 놀랐고요.

한 번 수술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본의 아니게 두 번 받으시면서 마음이 어렵지는 않으셨습니까?
두 번째 수술을 받기 전, 십이지장 천공으로 인해 15일 동안 금식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물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못해서 참 어렵더라고요. 그런데에다 이어서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걸로 받아들였습니다. 박 목사님이 잠비아에 계실 때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믿어야지’가 아니라 그냥 믿어진 거지요. 내가 환자가 되니까 의사를 믿고 의사를 기다리는 것처럼요. 내가 병에 걸린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낫는 것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수술을 받고 입원실로 왔을 때 박 목사님이 찾아오셔서 히브리서 10장 19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 목사, 자네가 오늘까지 악당으로 살았다 할지라도 그거 아무 문제가 안 돼. 우리를 쳐다보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을 수 없지만 예수의 피를 힘입으면 우리는 온전해. 예수의 그 피를 힘입고 나가는 거야.”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 해결되겠다. 하나님이 선한 길로 나를 이끄시겠다. 이 병에 걸린 것도 선한 일이다.’  하고요.
목사님이 위궤양에 심하게 걸렸을 때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라는 말씀을 믿고 ‘아프지만 나았다’ 하고 음식을 먹었다고 간증하셨는데, 그 간증이 나의 간증이 되더라고요.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이니까 그대로 되는 겁니다.

 

수술 받고 나서 회복 과정은 어떠셨습니까?
두 번째 수술하고 나니까 음식이 나오더라고요. 금식을 시작한 지 18일 만에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종지에 밥알 몇 개 퍼진 것을 주는데,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하염없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끼도 굶은 적이 없습니다. 먹으라고 주는 음식은 입맛과 상관없이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18일 만에 소변 호스를 뽑고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라고 하는데, 수술 받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12시간 동안 시도했는데 소변이 나오지 않아 호스를 다시 꼽고 이틀 후에 다시 시도했습니다. 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님들과 기쁜소식수원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두 번째 시도하는데 소변이 쉽게 나왔습니다. 그렇게 감격스럽고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 소변 봤어요.” 하며 또 울었습니다. 그 소변은 한 방울도 버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때처럼 소변이 귀하게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21일
만에 대변도 보았습니다. 그 변도 버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때도 너무 감격했습니다. 의사들도 기뻐하고요. 허인수 목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암은 선물이었습니다. 구원의 선물도 귀하지만 구원받고 난 후에도 주님이 함께하시니 제 삶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당시 암 병동에 약 500명의 암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환자든 가족이든 누구 하나 웃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표정이 침통합니다. 그러니까 의사들이 저를 보면 다 놀라는 거지요.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니까요. 수술 받고 이틀째부터는 병실에서 나와 병원 1층을 한 바퀴 둘러보고 한쪽에 앉아서 아내와 기도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 시간과 상관없이 누가 보든 말든 매일 기도했어요. 무척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왜 암을 주셨는지 생각해 보니 내 마음의 악을 제거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세워야 하는데, 사탄이 나를 믿는 마음을 세운 그때부터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오고 죽음이 찾아왔잖아요. 내 마음에 가장 암적인 존재인 나 자신을 하나님이 처리해 주고 제거해 주셔서 이제는 하나님만 계신 세계 속에 사니까 행복한 겁니다. 한줌 흙뿐인 육체를 떨칠 수 없어서 늘 괴로워하는데 그게 그냥 정리된 것이지요. 환자가 되니까 의사를 바라보지 말라고 해도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처럼 내 마음에서 나 자신이 제해지고 하나님이 세워지니까 나는 주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인 거지요.

병에 걸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의 마음에 절망이 찾아와 마음이 먼저 죽음을 향해 가는데 지금까지 지내시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퇴원하고 얼마 뒤 후유증 때문에 몸이 엄청 힘들었습니다. 후유증이 왜 생기냐고 의사에게 물었더니, 수술할 때 하는 마취는 아픈 걸 뇌가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데 마취 때문에 상대적으로 몸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취에서 깨어나 시간이 점점 지나면 몸에 통증이 온다는 거지요. 저에게도 작년 12월에 후유증이 찾아왔습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뼈 마디마디가 엄청 아프고 체온이 40.6~40.7도까지 올라갔습니다. 너무 아프니까 모든 게 싫고, 순간적으로 ‘이렇게 아픈데 뭐가 다 나아?’ 하며 절망스럽더라고요. 그때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심정이 느껴졌습니다. ‘아, 그분들이 이 마음을 받아들였구나. 그래서 돌아가셨구나.’ 그때 아내가 아파하는 저를 안타깝게 내려다보는데 제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박 목사님께 전화했습니다. “자네 왜 그러는고?” “목사님, 너무 아픕니다.”
목사님께서 다시 기도해 주셨고 그 기도로 저는 고통을 이겼습니다. 또 며칠 후 너무 아파서 다시 목사님께 전화했어요. 그때는 목사님이 “이 사람아, 수술하면 다 아픈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예” 하고 대답하니까 아픈 것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그리고 일어났습니다. 그 후로도 한두 번 더 후유증이 있었지만 아프다는 생각이 올라와도 제 마음에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저를 보면 신기해 합니다. 아프다가도 목사님과 통화하고 나면 벌떡 일어선다고 하면서요.

말씀을 들어도 그대로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생각인데요, 목사님은 어떻게 말씀을 그대로 받을 수 있으셨습니까?
제가 사역하기 전까지 12년간 정치 쪽에서 일했습니다. 정치 세계의 특성이 자기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고 자기 편을 세워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받고 교회에서 일할 때에도 나를 세워서 일하니까 항상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도 내 생각에 맞지 않으면 다 틀어버리는 거지요. 그런데 한번은 하나님이 저에게 내가 하는 모든 것이 가짜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창세기 6장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이 보는 것이 분명히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의 눈에는 아름답고 좋아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항상 악하다는 겁니다. 그때 ‘내가 볼 때에 좋아 보이는 내 세계는 끝이 나고 항상 악하다는 주님의 세계가 세워져야 되는구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에 나가서 패하면 그때부터 승리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좌우되듯이요.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해 고기를 잡고 매우 좋아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배를 버리고 처자식도 버리고 내 모든 것을 버리고 왔습니다. 내가 당신을 부인할 것 같으면 뭐 하러 따라갑니까?’라는 베드로의 생각이 옳은 생각인 것 같지만 틀렸더라고요. 창세기 27장에서 야곱이 ‘형은 털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자로 저주 받는 자가 될 것입니다’라고 한 것도 야곱이 볼 때는 아주 정확한 이야기지만 어머니 리브가가 받은 약속 앞에서는 가짜였습니다.
IYF 일을 할 때도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뜻과 다르면 버려야 하는 겁니다. 그런 일들이 수없이 반복됐어요. 그러는 동안 ‘내가 하는 일이 누구의 일인가? 이 일의 결정권자가 누구인가? 대통령인가? 아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이 결정권자다.’ 제 마음에 그것이 세워졌습니다. ‘내가 주인을 모신다면 주인이 원하는 일에 내 생명을 다 던져야 하는구나’ 하고요.
올해 월드캠프를 준비하며 세계청소년부장관포럼 기조 연설자를 정할 때도 제 생각에 좋을 것 같은 분을 추천했는데, 박 목사님은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고려하며 다른 분을 추천하셨습니다. 그때 제 계획을 바로 버렸습니다. 나는 나를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인데 주님은 항상 나를 내려놓도록 이끄십니다. 그것이 감사한 거예요. 어떤 선수가 경기에 나서기 위해서 많은 훈련을 하는 것처럼 제가 지난 20년 동안 주인의 결정을 따를 수 있게 훈련 받은 거지요. 그래서 이번에 암을 만났을 때도 이 문제를 향한 주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연습들 가운데 한 가지를 말하자면, 박 목사님이 파라과이 월드캠프 기간에 페르난도 루고 전 대통령께 복음을 전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에 루고 대통령을 만나게 해드리겠다는 조건으로 한국에서 국회의원님 한 분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면담 시간이 45분밖에 안 된다고 해서 면담 자리에 의원님을 모실 수 없었습니다. 박 목사님이 그 시간안에 복음을 전하시려면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오신 분께 사실을 말씀드려야 한다는 게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 의원님께 말씀드리자 당혹해 하시며 당장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의원님의 마음을 풀어드릴 방법이 없어서 이과수폭포 관광을 시켜드리려고 나갔는데 교통위반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침 월드캠프 진행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의원님이 1,200명 학생들에게 명사 강연을 해 주시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의원님이 마음을 열고 허락하시면서 경찰서에서 나와 강연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페루난도 루고 전 대통령이 26개 부처 장관과 함께 월드캠프에 참석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날 의원님이 대통령 바로 뒤 좌석에 앉아 계신 모습이 다음날 파라과이 신문 전면에 실린 것입니다. 의원님이 이 신문을 보시고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내가 보기에 안 좋은 일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선한 손길 안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창세기 41장에는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자 바로가 그를 치리자로 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라고 하며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버금 수레에 요셉을 태웠습니다.
제 마음에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로도 죄수인 요셉의 지혜 앞에 엎드렸는데, 보통 사람인 나는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듣고도 뻣뻣하구나.’ 하며 내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8절에는 요셉이 형들을 모아 놓고 고백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을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그때부터 저는 박 목사님이 내 영혼을 인도하는 아비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은 모든 것이 아버지로 말미암듯이 사역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종으로 말미암았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따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입원 중에도 주일에는 꼭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입원 중에도 주일예배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수술한 지 3일 만에 나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외출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의사이기 때문에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하듯이,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로서 맡은바 소임을 다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성도들 앞에 간증하고 말씀을 전하러 가야 합니다.” 하며 2~3시간 외출을 허락받아서 나왔습니다. 수술 부위가 무척 아팠는데 교회에 올 때는 거짓말같이 배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셨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부목사님이 사회 보실 때 제가 강대상 아래에서 기도하다 보면 새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둘째 아들이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가 먹고 즐기자고 하시니 아들도 즐거운 것처럼 하나님이 나에게도 그 마음을 주시는 겁니다. ‘그래 이건 아픈 일이 아니고 즐거운 일이구나’ 하면서 강대상에 서서 1시간 말씀을 전하는데 감격스러웠습니다.
퇴원 후에도 평일 오전과 저녁으로 매일 기도회를 인도했고요. 박 목사님이 지금까지 아파서 말씀을 못 전한 적이 없다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저에게도 그대로 허락하고 계셨습니다. 아파도 목사니까 말씀을 전하고 행여 말씀을 전하다가 숨을 거둘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이 힘을 주심을 느꼈습니다. 그보다 더 좋은 약은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가신 길을 나도 가야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정말 목사님 말씀대로 목사가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이 없습니다.

수술하고  8개월 정도 지났는데 지금 건강 상태가 어떻습니까?
아주 좋습니다. 퇴원 후 한 번도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면 그 약에 의존해서 병원이나 의사를 찾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암 치료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으면 병원에 연락하고 의사에게 오는 것이 처방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신앙이 꼭 이와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정기 점진을 받으러 갈 때마다 의사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조기에 발견한 것도 기적이고 전이가 안 된 것도 기적이라고요. 수술 후 3개월마다 갔는데 최정상이라고 합니다. 최근 5월 18일에 정기검진을 받았는데 모든 것이 정상이라며 앞으로는 6개월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

2001년 IYF가 시작될 때부터 청소년 활동을 하셨는데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실 때 감회가 어떠한지요?
저는 IYF가 설립되기 전에 있었던 한미연합수련회부터 지금까지 IYF 활동을 같이 해왔습니다. 올해가 18회째 캠프인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월드캠프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일이 될까?’ 하고 의문이 들었는데 지금까지 행사를 치르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월드캠프가 열리고 있습니다.
대전도집회나 부활절 예배, 월드캠프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박 목사님이 지나오신 날들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하늘의 별처럼 많다’고 하신 말씀처럼, 박 목사님의 첫 사역지인 압곡동에서 손을순 모친님이 구원받고 그 한 명을 시작으로 지금 기쁜소식선교회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압곡동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손 자매님 혼자일 때 이런 세계가 펼쳐질 줄 알았을까?’ 하고 생각할 때마다 몸이 오싹합니다. ‘전 세계 형제 자매들이 다 모이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하나님이 박 목사님에게 시편 2편 8절의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라고 하신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이 놀랍고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사역지가 수원에서 천안으로 이동되셨는데요.
제가 천안으로 사역지가 이동되어 올 때 박 목사님께 인사드리니까 “천안 참 좋아.”라고 하셔서 제가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좋다는 것과 안 좋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새벽 4시에 눈을 뜨면 창밖에 어둠이 물러가면서 아침 해가 떠오르며 밝음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이끄시겠다는 마음이 들어 하루하루를 소망으로 시작합니다.
박 목사님이 퇴원하면 운동하라고 하셔서 요즘은 교회 뒷산을 걷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갔다 올 때면 매일 새롭고 기쁩니다. 봄이면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잎이 돋고, 오늘은 이 가지에서 잎이 피고 다음 날은 저 가지에서 꽃이 피고.... 매일 새로운 거예요. 길가에 찍힌 나무에서도 봄이 되면 싹이 돋고, 발에 밟힌 잔디도 봄이 되면 싹이 돋습니다. 잔디가 ‘내가 이렇게 밟혔는데 어떻게 싹을 내란 말이지요?’라고 하지 않고 봄기운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 인간은 식물보다 못하더라고요. 사람은 조금만 어려우면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살아!’ 하며 불평불만이 많잖아요. 산에 가면 나무들과 대화합니다. 매일매일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시시때때로 내 생각이 올라오지만 그건 힘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죄도 이겨주셨고, 나 자신도 이겨주셨고, 내 삶도 이겨주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정말 암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살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은 항상 제게 “자네는 하나님의 사람이야. 자네는 하늘의 일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종이 말씀하신 대로 제가 사는 것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남편이 한평생 특별히 아픈 적도 없고 건강검진조차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순간 나를 옳다고 여기고 남편을 무시하며 내 주장만 앞세웠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만약 남편이 없다면 내 삶은 어떨까? 나도 남편처럼 죽음 앞에 있다면 어떨까?’라고 생각하니 굉장히 암담했고, ‘나’라는 존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한번은 박옥수 목사님이 요한복음 11장 말씀으로 사모들을 교제해 주신 적이 있다. 죽은 나사로를 보고 슬퍼하는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요 11:23)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살리셨다. 목사님은 우리가 보는 세계가 허상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히브리서 10장
14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라고 하시며 우리는 항상 악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의는 영원하기 때문에 건물이 무너져도 깨지지 않고, 시궁창에 빠져도 더렵혀지지 않고 영원히 온전하다고 하셨다. 말씀을 들으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세계가 가짜라는 것이 내 마음에 분명히 새겨졌다.
 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했다. 새벽 4시에 남편이 나를 깨우면 로비로 나가 기도하고, 어떤 날은 밤 12시가 넘도록 기도하기도 했다.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의 마음과 만날 수 있어서 굉장히 복된 시간이었다. 남편은 암 환자지만 환자로 살지 않았다. 몸은 비록 병원에 있었지만, 주일 예배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형제 자매들도 ‘목사님이 암 환자 맞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또한 장로님과 장년 형제님들이 수시로 병원에 찾아와 그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늘 교회와 함께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암이 걸렸다고 하면 먼저 마음에 죽음이 찾아오지만, 오늘날까지 남편의 마음에서 어두운 그림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남편이 힘들 때마다 박 목사님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시고,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 10:19)라고 하신 말씀이 남편에게 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퇴원 후 후유증 때문에 잠을 못 자고 통증 때문에 힘들다가도 박 목사님의 마음과 연결만 되면 힘을 얻고 벌떡 일어났다. 목사님의 말씀 한 마디가 바로 약이었다. 한번은 근육이 다 빠져 기력이 없다고 목사님께 말씀드리자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운동하면 근육은 금방 생겨.”라고 말씀하셔서 남편은 그 말씀도 그대로 받았다. 얼마 후 말씀대로 근육이 다시 생겼다. 목사님은 남편에게 기도해 주실 때마다 ‘김 목사가 하늘의 일을 하게 해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남편을 하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겠구나.’ 하며 감사했다. 세상에서는 그 누가 암 환자에게 일을 맡기겠는가? 하나님은 남편에게 하늘의 일을 하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 감사하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복음 앞에 살고 싶다. 이번 일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는 내 생각의 찌끼를 제거해 주셨다. 하나님의 종의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 안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 전도자들과 형제 자매들에게도 깊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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