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드개의 마음을 품은 에스더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은 에스더
  • 김재홍 (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17.07.28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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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쥐약 묻은 빵은 통째로 버리듯 내 마음은 통째로 버려야 합니다
이번 호에도 지난 호에 이어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인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탄이 넣어주는 자기 마음을 따라 삽니다. 자기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마음인지 사탄의 마음인지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구분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통째로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쥐를 잡으려고 쥐약을 빵에 뿌려 놓았을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쥐약을 빵의 왼쪽 부분에 뿌렸다고 하여 쥐약이 묻지 않은 오른쪽 부분을 잘 잘라서 아이에게 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생각에는 사탄의 생각이 묻어 있기 때문에 쥐약이 묻은 빵을 통째로 버리듯 내 생각도 통째로 버려야 합니다. 내 생각 가운데 사탄의 생각을 구분해서 버리려고 한다면 혼동 속에 빠져 영적으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합니다. 내 판단과 내 생각에 사탄의 생각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마음에도 사탄의 계략이 섞여 있어 통째로 버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올바른 신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내가 품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만이 나를 복되게 합니다.

주의 마음을 품기만 해도 
마태복음 5장 28절에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음욕을 마음에 품기만 했는데 어떻게 간음한 것과 똑같다고 하실까요?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아주 놀라운 말씀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내가 주의 마음을 품기만 해도 그대로 산 것과 똑같이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음욕을 품기만 해도 간음한 것과 똑같기 때문에 형벌이 가해지는 것처럼 주의 마음을 품기만 해도 그 마음으로 산 것과 똑같기 때문에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의 말씀을 하나 품는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내 마음을 과감하게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다
에스더 2장 10절에는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자신의 마음을 넣어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하여 고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우리는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면 흔히 “고향이 어디십니까?”라고 묻습니다. 에스더가 왕궁에서 살 때 127도에서 모인 여인들과 서로 ‘너는 어느 종족이냐? 어느 민족이냐? 어느 도의 사람이냐?’ 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에스더를 향해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쟤는 왜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를 하지?”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에스더가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르드개가 고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요? 모르드개가 그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에스더 2장 20절에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명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라고 했습니다. 왕국에 살다보면 종족과 민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에스더가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에스더 2장 20절 말씀이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고 산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당시에는 에스더가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않은 것이 중요해 보이지 않았지만 세월이 지나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 그 이유가 왜 중요했는지 나타납니다. 만약 하만이 왕후 에스더의 민족과 종족을 알았더라면 모르드개와 유다 민족을 멸하려고 할 때 왕후까지 모함해서 멸하려는 음모를 꾸몄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에스더가 단순히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아니한 사실이 아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었을 때 모든 형편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고 산 결과 왕후가 될 수 있었고, 왕후가 된 이후에도 모르드개의 마음을 계속해서 품고 살아 그가 복된 삶을 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스더 4장에는 모르드개가 성문 앞에서 굵은 베옷을 입고 애통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하려고 하니 왕 앞에 나가서 유다 민족을 위해서 구하라’고 합니다. 그때 에스더는 자신이 왕 앞에 나갈 수 없는 형편을 이야기합니다.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가면 죽이는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만약 네가 나가지 않으면 너와 네 아비 집은 망하니 나가라’고 합니다. 에스더가 그 말을 듣고 밤낮 삼 일을 금식한 후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왕 앞에 나가서 유다 민족을 구원하는 데 쓰임을 받습니다.
에스더 스스로는 왕 앞에 절대 나갈 수 없지만, 인도자인 모르드개의 마음을 받고 그 마음을 품었을 때 모든 형편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도 인도자의 마음 안에 있는 주님의 마음을 받을 때 불가능한 형편을 넘어서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만 품어도 하나님이 만 가지로 도우십니다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에스더가 종족과 민족을 이야기하고 싶어도 하지 않을 수 있었고, 법을 어기고 왕 앞에 나갔을 때도 에스더를 지켜 주었던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으면 그 마음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마음을 품느냐 안 품느냐가 유다 민족 전체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었던 것처럼 우리 마음에 주님의 마음을 품는 법을 배우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살지 윗사람들의 마음을 품거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품고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여전히 자기 마음으로 사는 것을 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품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제멋대로 삽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마음만 품어도 하나님이 여러분 삶을 만 가지로 도우시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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