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7.09.14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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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삶
     
 

돌감람나무 가지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는 이야기
로마서 11장에는 접붙임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돌감람나무의 가지가 잘려지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은 돌감람나무였던 우리가 참감람나무인 예수님에게 접붙임 되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한 비유를 보면, 농사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식으로 접을 붙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돌감람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참감람나무에 접을 붙이면 돌감람이 맺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성경학자들 중에는 바울이 농사에 대해 잘 몰라서 이렇게 비유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발견하면 도리어 이 접붙임의 비유가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지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단감을 많이 얻기 위해서 번식력이 좋은 고염나무에 단감나무 가지를 접붙입니다. 그렇게 하면 단감이 많이 열립니다. 신기한 것은, 그 단감의 씨를 땅에 심으면 단감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고염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겉모양은 단감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 있는 생명은 고염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아 이미 고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생명은 고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접붙임에 대해 언급할 때 열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은혜로 말미암아 맺어진 생명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좋은 열매가 아닌 생명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어 그리스도의 의가, 거룩이,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나무에 접붙였으니 좋은 행위를 맺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11장에 나오는 접붙임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좋은 행위를 맺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성도가 예수님에게 접붙임이 되었으니 좋은 행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행위의 열매에 초점을 두면, 우리가 노력해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율법으로 흘러갑니다. 그리고 ‘성도는 성화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인간은 좋은 열매를 맺고 싶어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위를 바꾸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신앙의 한계를 만나 실망하거나 신앙을 포기하는 쪽으로 마음이 흘러갑니다.
진정한 행위의 변화는, 우리가 예수님에게 접붙임이 되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일 좋은 행위를 보고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혹은 열매가 좋지 않다고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다고 여긴다면,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에게 접붙임이 되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 11:16)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떡덩이인 우리도 거룩하고, 뿌리가 되신 예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한 것입니다. 우리 행위가 거룩하기 때문에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행위를 바라보면 오히려 사탄의 미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성도는 절대로 자신의 행위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뿌리가 어떠한지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었던 죄인의 위치에서 잘려서 예수님에게 접붙임이 되어 거룩해진 것입니다.
성도가 승리하는 삶도 자신의 행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뿌리 되신 예수님, 처음 익은 곡식 가루이신 예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거룩하며, 그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가 삶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김 자매, 행위를 보지 말아요. 행위를 보면 죽어요!”
미국 캔사스 교회의 성도인 김윤옥 자매가 암으로 사망선고를 받아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박옥수 목사님이 암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교제를 해주신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목사님은 자매에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라는 말씀을 전해주며 “김 자매, 행위를 보지 말아요. 행위를 보면 죽어요!”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김윤옥 자매가 행위로 맺어졌다면 끊어질 수도 있지만, 은혜로 맺어졌기에 끊어질 수 없습니다. 김윤옥 자매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의지해, 예수님 안에 있는 능력이 자매에게 임해 암에서 나았습니다.
기적처럼 암에서 나은 김윤옥 자매의 놀라운 간증이 우리를 감격하게 했고, 교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접붙여진 관계를 말씀으로 정확히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종이 있는 것이 감사했습니다.

나에게 엄위가 있는가, 인자가 있는가?
접붙임의 이야기는 좋은 열매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명의 연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우리가 말씀대로 거룩하게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 행위에 의해서 흔들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행위 아래 있으면 하나님의 엄위가 따르고, 예수님과 우리 관계가 생명의 관계인 것을 믿으며 은혜 아래에 있으면 하나님의 인자가 따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롬 11:22)
사도 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접붙임의 이야기를 통해 뿌리와 가지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지, 뿌리와 열매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좋은 나무에 접붙임 받았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나무의 뿌리로부터 생명의 진액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생명나무이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생명나무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접붙임의 비유를 사용한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에게 접붙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원래 이방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받아주셔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접붙임의 진정한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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