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벌써 잠비아로 떠났습니다
마음은 벌써 잠비아로 떠났습니다
  • 김주원 기자
  • 승인 2017.10.31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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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잠비아로 가는 기쁜소식강남교회 박정모 집사
 

 

올해 쉰 살의 박정모 집사와 두 살 어린 그의 아내 안지현 집사.
옛 사람들은 나이 오십을 이르길 ‘하늘의 명령을 안다’ 하여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였다. 박정모 집사는 나이 쉰에 참으로 하늘의 뜻을 알아
아프리카 잠비아로 떠나기로 했다. 잠비아에 설립될 기술학교에서 굴삭기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그곳의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식해 주러 뜨거운 대륙으로 가는 것이다.
함께 가는 아내나 떠나가는 아버지를 후원하는 두 딸이나,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에
복음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어서 그 가족은 기쁘기만 하다.

 

Q.2015년 베냉에서 IYF센터를 지을 당시에 한국에서 베냉으로 굴삭기(포크레인)를 보냈는데, 집사님이 그 일을 진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좋은 굴삭기를 보냈던 간증이 2015년 6월호 <기쁜소식>에 실렸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청소년 센터 부지를 기증해 건축할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런 소식들을 접하면 집사님 마음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베냉에 보내야 할 포크레인을 알아봐 주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내가 가진 기술을 가지고 언젠가는 복음을 위해 봉사만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따금 두 딸에게 “너희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은 스스로 다녀라. 아빠도 하나님 앞에서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딸들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제 마음에 담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둘째가 더 찬성해 주었습니다.
그때 제가 ‘언젠가는 복음을 위해 해외로 가서 봉사하며 살리라!’ 하고 마음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즈음이 내가 그렇게 사는 날이 되지 않겠는가’라는 마음이 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둘째가 지금 중학교 3학년이니까, 앞으로 3년 후가 되는 셈이었던 거죠.

Q.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할 길들을 다양하게 열고 계십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음악 학교, 마인드교육 등등 말입니다. 이번에 아프리카 잠비아에 설립되는 기술학교는 새롭게 시작되는, 복음을 전할 또 하나의 길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이런 형태의 학교들이 계속해서 설립될 것 같습니다. 집사님이 기술학교 1호 교수로 나가시는 것인데, 소감이 어떻습니까?
별다른 소감이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저는 포크레인을 가지고 일하는 봉사를 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로 살아가는 것은 박옥수 목사님이 가지신 꿈이요, 계획입니다. 제가 그 꿈으로 말미암아 그런 위치에 서는 것이지요.
몇 달 전에 박 목사님이 ‘아프리카 베냉 전도여행에 함께 가자’고 하셨는데, 그때 저는 제 계획이나 삶에 쫓겨서 가지 못했습니다. 목사님이 두어 번 권하셨는데, 그때 이미 저를 아프리카로 보내면 복음의 일에 복되게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신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몰랐지만, 목사님이 제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모양입니다.
제가 어느 날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목사님은 제가 가야 할 길을 이미 세밀하게 계획해 두셨던 것 같았습니다. 목사님의 기도와 꿈이 제 마음을 사로잡아서 잠비아로 이끌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Q.아프리카에 가서 복음을 위해 산다는 것이 마음이 있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구체적으로 마음을 정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휴대폰으로 <기쁜소식> 앱에 들어가면 강남, 한밭, 인천 교회의 주일예배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포크레인에서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설교들을 즐겨 듣습니다. 한번은 기쁜소식인천교회의 주일예배 말씀을 듣다가 “여러분이 기술이나 재주가 있다면 주님을 위해 사용해 보십시오. 몇 배의 축복을 허락하실 겁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나쳤는데, 그 말씀이 마음에 자리 잡아서 자라났던가 봅니다.
그 마음을 마음에 오래 담고 지내는 동안 뿌리가 내리고 어느 정도 자랐을 때 두 딸에게 아빠가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느냐고 물었고, 그 뒤에 박옥수 목사님께도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목사님께는 “우리 둘째 아이가 3년 후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그때부터 제가 해외에서 건물들을 건축하는 일에 쓰임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요.

 

 

 

 

Q.그 후로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습니까?
그 후에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것도 내 계획이다’ 싶은 겁니다. 그래서 다시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의 뜻은 어떤지 여쭈었지요. “당장이라도 가라고 하시면 가겠습니다.” 하고요. 그랬더니 “박 형제, 잠비아로 가게. 아마 1월쯤에 기증받은 땅에서 공사가 시작될 걸세.”라고 하셨어요.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두 딸이 생각되었습니다. 첫째는 김천에 있는 링컨고등학교 3학년이고, 둘째는 대전에 있는 그라시아스 음악중학교 3학년입니다. 제가 목사님께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집이 없어져서 어떻게 해야겠습니까?”라고 여쭈었더니, 목사님이 밝게 웃으며 “내가 돌봐줄게.” 하셔서 홀가분하게 마음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Q.아프리카에 가겠다고 마음을 정하기까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다른 마음도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작년에 김천에 있는 링컨고등학교에 우연히 내려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하상철 장로님이 학생들을 태우고 와야 하니 같이 가자고 하여, 딸이 그 학교에 있으니까 얼굴도 볼 겸 해서 함께 내려갔습니다. 그때 마침 학교에서 건축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30년 동안 굴삭기 일을 했기 때문에 공사 현장을 둘러보기만 해도 해야 할 많은 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 장로님이 일을 다 마쳐서 다시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데, ‘그곳에 하루만 머물면서 일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주체가 안 될 만큼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차를 세운 후, 차에서 내려 건축 현장으로 다시 갔습니다. 다음날 하루 종일 일하고 서울로 올라왔지만, 마음이 그곳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포크레인이 작고 허술해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한 것 같아서 미련이 계속 남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 교회에 계시던 조규윤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 제가 하던 일이 잠시 미루어졌는데, 일이 시작되기까지 장비를 가지고 김천 링컨학교에 가서 공사를 돕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이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하셔서 포크레인을 가지고 김천으로 내려갔습니다.
며칠 뒤에 할 일이 잡혀 있어서 잠시 머물 줄 알았는데, 3개월을 그곳에 있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제가 처음으로 복음을 위해 그렇게 시간을 보냈는데 그 3개월 동안 우리 가정이 물질적으로도 풍성하고 가족들의 마음도 풍성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사는 동안 내 삶의 모든 부분을 풍요롭게 채우시는 분이구나!’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은 내가 가족을 위해 살아왔지만 둘째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남은 삶은 복음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더 분명히 정했지요.

Q.잠비아에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성경을 배워, 앞으로 마음에 복음을 담은 건축 기술자들이 많이 배출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렙니다. 잠비아의 젊은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의 영혼을 이끌기 위해 1호 교수가 되어 아프리카로 가는데, 그곳에서 진행될 일들이 마음에서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 듯합니다.
제가 이 일에 32년을 몸담아 왔습니다. 일을 하던 중에 조수를 가르쳐야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파르타식으로 일을 가르치기에 마음 없이는 제 밑에서 일을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마음을 다 쏟아 가르쳤습니다. 아프리카의 학생들에게는 기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생명줄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기에 학생들과 함께 행복하게 보낼 것 같습니다. 그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현장에 나가도 언제나 저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단순히 봉사만 하려고 아프리카 행을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저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삼으셔서 그 일에 저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니, 남은 인생을 더욱 과감히 주님 앞에 던져 보려고 합니다. 잠비아에서 연락이 오면 바로 떠나야 하는데, 학생들을 가르칠 교재와 교육 내용 등에 대하여 생각이 많습니다. 더 좋은 교재를 찾으려고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땅에서 학생들과 같이 땀을 흘리고 뛰어다니면서 마음을 다해 학생들을 이끌고 싶습니다.
몸은 한국에 있지만 제 마음은 이미 잠비아로 떠난 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요즘은 제가 잠비아 사람이라는 생각도 종종 듭니다.

 

아내 안지현 자매 간증
아빠에게 복음을 위해 살 기회를 드려야 하지 않겠어? 

 

주간 <기쁜소식>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주일예배 때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말씀을 정리하다 보면 내 모습이 보였고, 내가 내 생각을 따라서 산 삶의 결과가 보였다. 그리고 목사님의 마음도 느껴지고 하나님의 마음도 느껴져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여겨진다.
얼마 전부터 남편이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우리를 위해서 20년을 성실하게 사셨다.”
남편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단어는 ‘희생’이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준비해서 일하러 나가고, 집에 오면 지쳐서 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매일 그렇게 사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의 인생이 안 됐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빠는 여태껏 우리를 위해 성실하게 사셨는데, 남은 인생도 우리를 위해서 살아 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아빠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그냥 설 수는 없지 않냐? 복음을 위해 살 기회를 드려야 하지 않겠어?”
두 딸도 내 생각에 동의해, 우리는 복음을 위해 살겠다는 남편과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남편이 박옥수 목사님에게 자신의 뜻을 전해 아프리카에 가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한 10년 공사하면 아프리카에서 할 일들이 정리되겠지. 그러면 한국으로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을 따라 박 목사님을 뵈었는데, 목사님이 너무 기뻐하면서 우리가 거기 살 것처럼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목사님께 “제가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데요, 저희가 거기 가서 사는 겁니까?”라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목사님이 몇 년 전부터 이 일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어떻게 쓰임 받을지도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 의사와 상관없이 그 마음을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실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그것이 걸렸다. 몸이 자꾸 나빠져 작년에는 상태가 아주 안 좋아서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오십은 넘길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었다. 쉰 살까지 사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지?’라는 생각도 자연히 많이 하게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프리카에 가서 사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작년 10월에 있었던 ‘전도자 훈련과정’ 기간에 박옥수 목사님이 전하신 ‘우리가 온전해졌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 심장이 온전해졌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올해 2월이 되어 상태가 더 심해졌고, 형편을 따라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오영일 목사님과 교제를 나누었다. 목사님이 “형편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변하는 게 아닙니다. 말씀에는 언제나 능력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시는데, 마음에서 선이 그어졌다. ‘말씀은 변하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말씀에 능력이 있구나! 내 심장이 온전해졌구나!’ 감사했다. 말씀이 내 마음에 살아 일했다.
나는 지금 ‘내가 아프리카에 가면 무슨 일을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낸다. 얼마 전에 1만 달란트를 탕감 받은 종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육신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정리되었고, 다시 예수님의 손에 드려진 보리떡 다섯 개에 대해 들으면서 “네 인생을 내게 맡겨 봐. 내가 아름답게 일해 줄게.”라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마음에 받아들였다. 룻이 은혜를 입어 이삭을 주웠던 것처럼, 아프리카에 가서도 주님의 은혜를 입어 주님의 것들을 얻으며 살고 싶다.

 

잠비아로 가는 부모님을 적극 후원하는 고등학교 3학년인 큰딸 은희, 중학교 3학년인 둘째 딸 은하와 함께

그 외에도 집 문제나 제가 사용하던 포크레인을 정리하는 문제 등 많은 부분을 박 목사님이 세밀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포크레인은 잠비아로 가지고 가서 일도 하고,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기술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건축학교를 시작해 학생들을 모집하고, 저에게 포크레인을 가르치는 교수의 자리까지 주셔서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살았던 것보다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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