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하나님이 보는 나를 믿는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이 보는 나를 믿는 것이다
  • 임민철 (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7.12.0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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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3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믿음이 없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신앙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보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나’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고후 10:12) 고린도후서 10장에서는 자기가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가 자기를 비교하는 것에는 지혜가 없다고 말합니다. 지혜는 자기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하나님이 어느 날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생각을 말했습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창 15:2) 그는 자신이 보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자신의 생각으로 배척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라고 하자 모세는 “...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날 딸이 죽은 야이로의 집에 갔을 때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눅 8:5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야이로의 딸이 죽었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는 자고 있었기에 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눈으로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눅 8:53)
하나님은 자신의 눈을 버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말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나 말씀을 들었지만 예수님과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얻은 것 없이 돌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지금도 우리 가운데에는 구원받고 주님을 섬기면서 ‘나는 부족해! 나는 믿음이 없어! 나는 인간적이야!’라는 이유로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는 믿음으로 살지 않아도 문제없어’라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이미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0) 성경 말씀에서 우리를 믿음을 가진 자라고 했다면 그 말씀이 맞습니다.


안산교회는 큰 교회입니다
기쁜소식안산교회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박옥수 목사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러시아 월드캠프를 담당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예”라고 대답하고는 인천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 러시아 캠프를 위해 선교비를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인천 지역을 담당하는 목사님이 다른 나라의 캠프는 인천 지역의 교회들이 힘을 모아 지원하지만 러시아 캠프는 안산교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준비하여 캠프를 지원했습니다. 그 후 여름 수양회 때에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열리는 월드캠프를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도 사정은 어려웠지만 캠프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겨울 수양회 때에는 중남미에서 열리는 모든 캠프를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지원해야 할 곳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것은 불가능해! 안산교회는 작은 교회라서 감당하기 힘들어!’ 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박 목사님에게 “저희 안산교회가 지원하기는 어렵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임민철 목사, 안산교회는 큰 교회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내가 생각하던 세계와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작은 안산교회가 여러 나라의 월드캠프를 지원하면서 은혜를 입었다고 간증했는데, 그 모든 간증들이 ‘안산교회는 큰 교회’라는 하나님의 음성 앞에서 믿음이 아닌 불신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본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안산교회가 작은 교회라면 나는 은혜를 입어 일한 사람이지만 안산교회가 큰 교회라면 나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악한 사람이라는 사실 앞에서 어떤 길을 갈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때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마음을 정돈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성경은 내게 뭐라고 하셨지?’ 하고 생각해 보니, 성경에서는 “... 큰 용사여 ....”(사 6:12)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을 많이 모아 전쟁하길 원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이 많다고 하셔서 결국 300명을 선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큰 용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는 사람의 수에 달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외치라고 할 때 그대로 외치는 자가 큰 용사입니다. 말씀이 ‘큰 용사’라고 했다면, 목사님이 ‘큰 교회’라고 하셨다면 말씀 그대로 큰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에 돌아가서 형제 자매들에게 ‘안산교회는 큰 교회’라고 하셨다는 말씀을 전하자 모두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입니다. 우리 지역의 인천교회. 부천교회. 안양교회가 큰 교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안산교회를 작다고 여긴 마음이 형제 자매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서 우리 교회를 작은 교회로 가르쳐버렸구나! 그래서 내가 악한 자고 대적하는 사람이구나.’ 하며 내가 아주 잘못된 목사라는 것을 시인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버리고 교회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내 마음이 바뀌자 형제 자매들의 마음도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은 안산교회가 주님을 크게 섬기고 누구에게든지 기쁨으로 나누어주는 교회가 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내가 본 대로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악인지 깨달았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면 누구든지 말씀을 따라 말하는 은혜를 입는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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