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의 조서와 에스더의 조서
하만의 조서와 에스더의 조서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8.01.2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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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삶

유대인을 멸하려고 쓴 조서
에스더 성경에는, 하만이 유대인을 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큰 슬픔과 애통에 빠졌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왕비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가 왕에게 ‘자신의 민족을 멸하려는 하만의 조서를 취소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나 왕은 에스더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왕의 인장반지로 인친 조서는 어느 누구도 취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또 하나의 조서를 쓰게 했습니다. 그 조서에는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며, 하만의 조서에서 유대인을 멸하라고 한 아달월 13일에 대적들을 진멸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두 가지 조서가 만들어진 일 속에 담긴 의미
이제 두 개의 조서가 반포되었습니다. 첫 번째 조사는 하만의 조서이고, 다른 하나는 에스더의 간청으로 반포된 새로운 조서입니다. 여기에서 왕이 첫 번째 조서를 취소하지 않고 새 조서를 만들었던 사실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면,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해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만이 만든 첫 번째 조서가 표면적으로는 유대인들을 멸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유대인들을 죽이려는 무리들을 드러내는 일을 한 조서였습니다. 첫 번째 사망의 조서가 유대인들에게 잠시 슬픔과 애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조서로 인해 그들을 대적하는 무리들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생명의 조서가 반포되어 드러난 그 대적들을 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대적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시려고 아하수에로 왕으로 하여금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하셨습니다. 모르드개의 명성이 퍼지면서 그를 두려워함으로 유대인이 되는 사람이 많았고, 각 도의 관원과 대신과 방백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도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대인들과 함께 유대인의 대적들을 쳐서 진멸했습니다.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에 9:22)
우리는 에스더처럼 하만의 조서가 취소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에 있어서 한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만의 조서를 취소하지 않고 다른 조서를 만들게 하여 대적들을 멸하도록 하셨습니다. 조서대로 싸우면 유대인들이 다 이기게 하셨습니다. 에스더가 첫 번째 조서를 취소해 달라고 왕에게 울며 구했지만, 조서를 무효화시키는 것보다 더 놀라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조서를 가지고 대적들과 싸워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아하수에로 왕이 모르드개를 세웠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예수님을 높이 세우십니다. 그래서 모든 형편을 파하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힘든 것처럼 보이지만 부딪쳐 나가면 도리어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율법과 새 언약의 두 조서
두 가지의 조서를 통해서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참 뜻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명은 ‘항상 악한 인간’인 우리의 더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정죄와 절망에 빠지게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계명이 우리를 죽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율법의 계명들은 우리를 멸망으로 끌고 가는 죄를 드러냅니다.
“…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롬 7:13)
그렇게 죄가 드러난 인간에게 새 약속인 생명의 법이 은혜로 주어집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아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웃음이 되는 새로운 조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두 가지 조서가 하는 일이 분명히 이해될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라는 말씀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이 우리를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넘치게 하며, 없어지지 않는 영원하고 거룩한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능히 섬기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뜻을 먼저 당신의 종에게 보이시고
두 가지 조서를 통해서 모르드개가 세워지는 것은 우리가 하는 복음의 일에도 적용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 보면 어려움과 부담이 생기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 속에 예수님을 세워 주셔서 어떤 일에도 승리케 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서울 대전도집회를 앞두고, 박옥수 목사님이 집회를 진행하는 목회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번 대전도집회에는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그라시아스합창단의 성가 공연과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하고, 우리 성도들에게 인사도 하시게 하고, 성도들의 가정에서 민박하면서 우리 성도들의 삶도 보여 드리고, 국제학교나 음악학교도 방문하시게 합시다.”
이런 일이 쉽지 않지만 진행해 보니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먼저 당신의 종에게 보이시고, 종이 믿음으로 그 일을 선포하시고, 그 결과 우리 선교회 안에서 수많은 역사들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대전도집회에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여러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말라위의 전 대통령 영부인, 스와질란드 국왕의 특사 등 11명의 귀빈과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교육을 받기 위해 왔다가 CLF에 참가한 목회자 등 300여 명이 함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임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1517. 10. 31) 500주년 기념 행사’로 은혜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세계기독교지도자 포럼’을 가졌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가진 포럼의 결과로, 세계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공동 기자회견도 가졌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뜻하지 않게 한국을 방문해,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외침처럼 ‘율법의 행위가 아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제로 가진 포럼과 성경세미나에 함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돌렸습니다. 그 일이 우리에게는 즐거움과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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