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가치
복음의 가치
  • 취재 김주원 기자
  • 승인 2018.06.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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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호 특집

 

 

마인드교육 복음전도자

독수리 어미가 새끼를 둥지에서 나오게 하듯

이명구 | 잠비아 코퍼벨트 대학 마인드학과 교수

 

아프리카, 한국에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미지의 땅 잠비아, 그리고 키트웨(Kitwe)란 조그만 도시. 비행시간 23시간, 처음엔 이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선 땅. 이곳에 온 지 햇수로 2년 이젠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도, 가로등 없이 칠흑같은 깜깜한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도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2016년까지 20년 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5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쌓아온 것들, 익숙한 것들, 편안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곳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 더구나 피부색과 언어도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우려의 눈길로 염려하는 가족들의 만류도, 특히나 연로하신 부모님과의 육체적 이별도 마음 한 구석에선 돌아오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1995년 박사학위를 받고 입사한 연구소, 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지만 20년간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명예퇴직이란 공고를 보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지난날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7년 앞으로 다가온 정년퇴직, 7년을 그냥 이대로 익숙한 일들을 하면서 편안하게 살고, 후배들의 전송을 받으면서 퇴직을 하고, 그렇게 몇 년을 살면 육체의 생명도 끝나겠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살아가는데 나라고 무슨 특별한 삶이 있겠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직장을 허락하셨는데, 직장과 사회에서 대접받고 이렇게 살면서 교회 일도 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냥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언젠가 맞게 될 종착역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런 중에 새해 인사차 박옥수 목사님께 새배를 드리러 갔는데 목사님께서 물으셨다.
“이 장로, 정년까지 얼마나 남았죠?”
“목사님 10년 남았습니다.”
“정년까지 채우실 건가요?”
짧은 물음이었지만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돌아가신 이형모 장로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문병을 간 장로들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아무런 후회가 없는데 복음을 더 못 전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그리곤 또 한분의 장로님이 생각났다. 돌아가신 고영복 장로님은 항상 나를 이렇게 나무라셨다.
“이 장로 복음 전했는가?”
“그러면 자네 망해!”
명예퇴직 공고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셨다. 20년 전 박사학위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젊은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행복과 기쁨을 나에게 허락하셨다. ‘나에게 허락한 달란트를 내 개인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해서만 쓰는 것이 옳은 건가? 어떤 삶이 진정 가치가 있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이는 우리가 해야 할 신앙생활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말씀이었다.
아프리카 땅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힘들다. 문화의 차이도 크고 모든 것이 느리다. 그러나 이곳에선 하나님의 역사를 그 어느 곳보다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2016년 9월, 잠비아에 도착했을 때는 대학에서 마인드 강의를 즉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왔지만 정작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 강의도, 집도, 마인드학과도, 어느 것 하나 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분명 약속을 받았는데...’ 언제나 어렵고 부담스런 형편을 만나면 벗어나려는 마음만 있을 뿐, 하나님의 약속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가나안 땅에서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 잠비아에서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간 형제들과 기도하고, 강의 준비에만 마음을 두었다.

2017년 초, 우리는 드디어 대학으로부터 임명장과 연구실을 배정 받았다. 이곳 대학은 학생들조차 강의실이 부족하고, 교수들의 연구실은 말할 것도 없이 태부족인데, 마인드학과를 위해서 연구실을 3개나 배정해 주었다. 국립 코퍼벨트 대학 1학년 전 학생의 정식 교양과목으로 채택되었고, 우리나라의 방송통신대학과 비슷한 원격대학에도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었다. 몇몇 단과대학에서는 교수들과 교직원을 위한 마인드 강의를 요청했다. 최근에 잠비아 최고의 기업 모파니(MOPANI, 광산기업)에서도 마인드 시범교육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조만간 전체 직원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매주 금요일 이곳에서도 구역예배를 드린다. 한국에서 온 마인드 교수팀 네가정이 구역 식구들이다. 대학 캠퍼스 내에 관사가 있다. 걸어서 2~3분 거리에 모여서 산다. 구역예배 드리러 달빛을 받으며 이웃집에 갈 때면 흙담길 돌담길을 돌아서 동네를 한 바퀴 돌던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집은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집이지만 앞마당 뒷마당도 있고, 망고나무와 아보카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아름다운 시골 동네다.
하나님께서는 멋지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우리들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 우리는 생각에 갇혀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독수리 어미가 새끼를 둥지에서 나오게 하듯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보여주신다.

 

축구지도 복음전도자

축구로 인연이 되고 복음을 전하며 

작년에 정년퇴직 직후였는데, 조성화 목사님이 “아프리카 42개국이 참가하는 세계 국제 축구대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활성화하여 많은 축구 인재들도 발굴하고 복음의 일환으로 하려고 하는데, 축구인을 찾다보니까 전화를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연락을 주셨다.
사회에서 고액 연봉을 받으며 중산층으로 편하게 살아왔지만 정년퇴임을 하고 보니 ‘사람이 이렇게만 살아야하는 것이 아니구나. 사람은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는 거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서 ‘그래, 앞으로 교회를 위해, 복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자!’ 하고 마음을 정했다.
미수교 국가 간에도 축구경기를 통하여 친선을 도모한 이후에 중요한 행정업무도 교류가 될 만큼 축구는 사람을 얻는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다. ‘복음 안에서 축구단이 만들어진다면 쓰임을 받을 텐데...’ 그래서 언제나 축구가 복음을 전하 데 쓰임 받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2017년 봄, 교회에서 생각하는 축구에 관한 청사진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정도 선교사님의 초청으로 2017년 6월에 코트디브아르로 갔다. 그곳에서는 축구학교를 준비하는 중이고, 클럽축구단이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축구 지도자들에게 기술을 조금 전해주고, 축구단도 잠시 훈련시키는 일을 했다. 그러나 대회에 1회 출전한 것과 아프리카에서의 첫 경험만을 가지고 3개월 만에 한국에 오게 되었다.
코트디브아르에 있을 때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축구대회에 참가 하기 위해서 가나까지 차를 타고 18시간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마침 베넹에서 온 의료봉사단을 만나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생하고도 다시 아프리카에 가려고 해요?”
“그러게요. 저는 아프리카 체질 인가 봅니다.”
주위에서 왜 아프리카에 가려고 하느냐고 묻는데,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행복하고 좋았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나를 보면 확실히 하나님이 내 마음을 잡고 가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코트디브아르에서 빈민가도 여러 번 다녔다. 그 마을들에서는 우기 때 비가 그렇게 쏟아지는데도 골목마다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스타킹으로 만든 공을 가지고 축구를 하며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한국은 운동장이 많은데도 텅텅 비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회사나 집에서 동료, 자녀들의 이런저런 요구도 많고, 해결할 소소한 문제들로 머리가 복잡해서 골치가 아팠는데, 코트디브아르에 가니까 축구를 배우겠다는 순수한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과 주님만 바라보면 되었다.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참 즐겁고 행복했다.
2018년, 한국에서 삶을 정리하고 다시 베넹 깔라비에 왔다. 이곳에 도착해 언어의 장벽과 많은 벌레들과 도마뱀과 섭씨 34도의 무더위 속에서 첫날 밤을 보내면서 기도가 되었다.
‘주님이 주신 선물이고 종이 인도한 곳인데, 이런 불편한 생활이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곳에 오기 전 짧은 시간 동안 자녀의 결혼, 집 매매, 직장 정리 등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이 생각났다. ‘복음을 위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처럼 우리 부부의 삶을 인도하시며 도우시는 주님이신데!!’

지금은 현지 형제 자매들을 대상으로 ‘새마을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축구부가 있는 학교에서 축구 지도자 아카데미를 개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또 내가 베넹에 오게 된 계기이기도 한, 축구 협회를 세우는 것과 국제 규모의 IYF 청소년 축구대회를 개최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자랑하고 다닐 만했지만, 교회 안에 있으면 작은 밀알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 스스로 초라하게 느낄 때가 많았다. 그런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누구라도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소망이 아닐까 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교회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 교회 안에 있는 게 참 편안하고 좋다.   
박옥수 목사님께서 아프리카에 복음이 전파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베넹에서 축구를 통해서도 2, 3년 안에 큰 복음의 역사가 있으리라 소망하고 있다. 축구지도자라고 하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렇게 따른다. 동네에 다니다 보면 삼삼오오 축구를 하는데, 하루에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프리카 사람들과 축구로 인연을 맺고, 복음을 전하며 지내고 싶다.

 

건축봉사 복음전도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

박정모 | 스와질란드 IYF센터 건축 봉사

오래 전 말씀을 듣는데 김재홍 목사님이 “가진 기술이 있다면 주님께 드리세요. 몇 백 배 몇 천 배의 복을 허락하실 겁니다.”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이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그 말씀이 사라지지 않고 마음에서 자라다 보니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버지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싶다.”라고 하며 아이들에게 내 의중을 드러냈다. 이후에 박옥수 목사님께도 이 마음을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목사님은 빨리 정리해서 해외로 나가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 마음이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거구나 싶어서 “내일이라도 가라 하시면 가겠습니다.” 하며 마음을 정했다.

아이들에게 “목사님에게 배운 하나님께 ‘아버지 사표’를 냈다.”고 아이들에게 말하며, 또 아이들의 큰 지지를 받고 2017년 12월 21일 우리 부부는 스와질란드 만지니에 왔다. 도착한 당시에는 포크레인 장비와 집의 잔금을 치를 자금이 도착하지 않아 당분간 교회에서 생활했다. 장비가 들어오는 동안 우리 부부는 영어를 배우고, 중간중간 센터를 지을 땅을 둘러보기도 하고, 만지니 교회에 필요한 물품을 형제들과 제작하는 시간도 가졌다. 지금은 차에 연결해 짐을 실을 수 있는 트레일러와 칸타타 무대를 만들고 있다. 칸타타 공연 소품을 옮기기 위해 번번이 화물차를 빌리는 것을 보고 트레일러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더니 다들 기뻐해서 시원찮은 용접 실력도 뽐내고 있다.

여기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꽐라 축제가 있었다. 트레일러를 한창 만드는 중에 선교사님이 같이 가자고 하셔서 정확히 무얼 하는지도 모르고 갔다. 인꽐라 축제는 국왕도 오는 큰 축제였지만, 사실 내게는 별로 와 닿지도 않고 지루해서 선교사님께 언제 끝나냐고 세번이나 물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기회를 보고 우리 부부를 국왕께 소개를 시켰다. 우리 부부가 국왕께 인사드리게 되어 큰 수확이라며 기뻐하시는 선교사님의 모습이 내 마음에 계속 자리 잡았다. ‘아하! 종이 기뻐하시면 기쁜 일이구나!’ 그러면서 네 마음을 목사님의 마음에 함께 합할 수 있었다.
 

“…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주라. 이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 8:10) 이 말씀처럼 우리 부부는 그동안 교회에서 받았던 사랑을 이곳에서 나누고 싶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 하여서 기쁘게 지내고 있다.

삶을 내가 계획해서 진행할 때에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며 사는 것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 혼돈의 세계에서 벗어나 교회 안에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018년 1월 28일에는 나와 뗄래야 뗄 수 없는 포크레인 장비가 드디어 스와질란드에 도착했다. 인꽐라 축제 때, 국왕의 비서실장께서 선교사님을 따로 청하여 축제가 끝나는 대로 빨리 건축하자면서 관심과 협력을 이야기하셨다. 이제 곧 건축이 시작될 텐데, 센터가 세워지는 스와질란드에 복음도 힘 있게 세워지기를 기원하며 첫 삽을 뜨려고 한다.

 

 

 

 

 

음악교사 복음전도자

오늘도 “너는 세계 최고의 음악가야!”라고 말해 준다

김나연 | 도미니카 새소리 음악학교 교사

 도미니카공화국은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이다. ‘메렝게’와 ‘바차타’라는 중남미 지역의 전통 음악이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한국은 초등학교부터 음악 수업이 있지만 도미니카는 그렇지 않아서 첫 수업 시간에 베토벤, 모짜르트가 누군지 아는 학생이 아무도 없었다.
2014년에 도미니카 음악캠프가 있었는데, 당시 그라시아스합창단 단원이었던 나는 교사 자격으로 캠프에 참석했다. 캠프 내내, 아주 간단한 음악이론을 설명해 주는데도 잔뜩 기대하는 얼굴에 눈이 반짝거리는 학생들을 대하면서 ‘내가 배운 것들을 나눠주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여기에 꼭 다시 오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도미니카에 음악학교를 세우는 일이 확정되면서, 내가 교사로 추천을 받았다.
이곳에 며칠 간 머무르며 음악캠프 수업을 하는 것과 직접 살면서 학교 일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도미니카는 일 년 내내 더워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오듯 하고, 하루에 꼭 한 번은 전기와 수도가 끊어졌다. 한번은 시내 중심가에서 음악학교 홍보를 하던 중, 지나가는 청년에게 학교 전단지를 건네면서 학교에 대해 설명했다. 한참 설명을 듣던 청년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이 나라를 택했어요?”
그에게 학교가 설립된 이유를 설명하려는 순간,
“당신들이 세우려는 이 학교에 대한 가치를 알아볼 만한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을 거예요.” 하며 지나쳐 갔다.
도미니카에는 음악고등학교라는 것 자체가 없고, 더우기 클래식 음악학교는 모든 사람에게 금시초문의 존재였다. 도미니카 사람들이 일반 과목과 음악 과목을 함께 배운다는 것이 납득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5년 10월에 박옥수 목사님이 도미니카 새소리음악학교에 방문하셨다. 목사님은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미니카는 소망의 땅입니다. 이 학교를 통해 수많은 복음 전도자들과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배출될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열악한 현지 상황은 진짜가 아니구나.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이 뿌리신 저 약속만이 진짜다.’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무더운 현지생활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교사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볼 때이다. 재학생 중 ‘알리사’는 소심한 성격과 엄격한 집안 분위기로 마음이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따돌림도 많이 당했고, 자살 시도까지 했던 알리사. 우리 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매일 마인드 교육을 받으며 마음의 세계를 배우고, 바이올린을 연습하며 한 음 한 음에 마음 쓰는 법을 배우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찾아가는 음악회’와 같은 공연들을 하며 관객 앞에 서서 온 마음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워 나갔다. 그 과정에서 알리사는 세계 최고 음악가의 꿈을 키울 수 있었고, 동시에 전에는 겪어본 적이 없었던 부담도 여러 번 넘으면서 점차 변해갔다. 항상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고개를 떨군 채 걸어다녔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수다스럽고 적극적이고 활달한 학생으로 바뀌었다.
‘마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도미니카의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몰랐던 아이들에게, 느긋한 국민성과 더운 날씨 때문에 무언가에 심혈을 기울이고 마음을 쓰며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더운 연습실에서 20분 집중하기도 어려워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도 “너는 세계 최고의 음악가야!”라고 말해준다. 이 아이들이 장차 중남미를 넘어 온 세계에 힘 있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들이 된다는 약속을 되새기며 오늘도 앞으로 전진한다.
도미니카 음악학교에서는 현재 30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홍보로만 찾아온 학생들이다. 많은 도움과 은혜를 입고 싶습니다. 교실, 책걸상, 칠판 등의 기본적인 수업도구들은 갖추었지만, 학생들이 악기를 구입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수업할 때 부족하고 어려운 부분이 많다. 형제 자매님들의 많은 관심을 이 지면을 빌어 부탁드린다.

 

해외선교 복음전도자

복음의 가치를 발견하는 소중한 나날

김원달 | 피지 선교사

1995년 3월에 구원을 받고 복음 안에서 지내는 동안 나에게는 세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2004년 6월, 56세의 늦은 나이에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나이가 되면 그동안 해오던 일을 정리하면서 노후를 대비하는데 나는 반대로 늦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모험을 하였다. 하지만 4년 6개월 정도 경영하다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2011년 1월, 태어나서부터 62년 간을 살아온 부산을 떠나 박옥수 목사님의 인도로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보통 젊어서 서울에 정착해 왕성히 일하다가 60이 넘어 은퇴한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노후를 보내는데 나는 오히려 서울로 이사하였다.
2016년 6월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잊을 수 없는 달 이었다. 구원을 받은 후 20여 년을 지내는 동안 복음의 가치를 몰랐고, 복음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19살에 구원받아 복음이 귀해서 50년 이상 복음만을 사랑하며 살고 계시는 박옥수 목사님과 마음을 합한다고 착각하고 있던 나 자신을 본 날이었다. 내가 부끄러웠다. 구원받은 후 나는 시간을 돌이켜보며 내 생각으로 결정하고 내 지혜와 방법으로 했던 일들이 모두 실패한 걸 깨닫게 되었다.
이제, 그리 길게 남지 않은 나의 시간을 하나님의 종과 정말 마음을 합하고 싶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종과 마음을 합하는 길일까?’ 깊게 생각이 되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14)
그 무렵 하나님께서 위의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하나님의 종이 인도하시면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어떤 일이든지 따라야겠다’라는 마음을 정했다.

2016년 6월, 제 1회 피지 월드캠프에 참석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의 인도로 ‘복음이 피지’에 와서 복음을 섬기고 전하며 살고 있다. 이 일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생각이 교차되었다. 내 나이가 69세로 접어들었고 익숙한 곳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는데, 난데없이 ‘피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며 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종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육신적인 생각 사이에서 갈등하던 중에 두 가지의 변명거리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같이 살던 작은아들이 미혼이고, 미국에서 셋째 손녀를 데려다가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박옥수 목사님은 이 상황을 듣고 쉽게 결론을 내리셨다. 아들에게는 “수민아, 아버지는 피지가 너무 좋아서 너의 엄마하고 피지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야겠다.” 하면 되고, 손녀는 미국에 있는 부모에게 데려다 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2016년 11월,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아내와 함께 ‘복음이 피지’에 와서 복음을 섬기며 살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요일 저녁과 주일 오후에 교회 형제 자매님들에게 말씀을 전한다. 평일에는 매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가정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다. 피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있어서 우리가 하는 부족한 영어를 듣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인다. 그들이 죄에 묶여 어려워하다가 죄에서 풀려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복음의 가치를 발견하는 나날을 늘 보내게 된다.
하나님께서 작은아들을 돌보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아들이 사업도 잘 경영하며 지내고 있고, 셋째 손녀는 뉴욕에 가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전해온다. 우리가 쥐고 염려할 때보다 하나님께 맡기니 훨씬 복되고 비교할 바가 못 되는 것을 새삼 알게 되는 시간이다.
일평생을 복음만을 위해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종을 마음으로 따라가면서 복음의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