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 김여옥(미국, 기쁜소식시카고교회)
  • 승인 2018.06.0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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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와 질그릇

 

어느 순간부터 가지게 된 신기(神氣)와 굴곡 많은 삶,
악한 영과 죄 아래에 새겨진 주홍같이 붉은 죄,
세상의 끝자락을 달려가던 그녀를
예수님은 구속하시고 영원히 같이하리라 하셨다.

 

어떤 남자 영혼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실향민이셨던 부모님 밑에서 두 언니와 자랐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하시던 아이스크림 가게의 냉동실 앞에서 늘 술을 드셨고 밤마다 기생집에서 창을 하시며 지내셨다.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을 떠나셨는데 아버지를 산소에 묻고 내려오던 길에 나는 나무토막이 있길 래 껑충 건너뛰었는데 그것은 큰 구렁이였다.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고 며칠 동안 잠만 잤다.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나에게 신기(神氣)가 들어왔다고 했고, 그날부터 내 귀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중학생일 때 어머니가 그런 나를 무당에게 데려갔는데 무당은 나에게 장군대감신이 들어왔다고 했다. 귀에서 나는 소리는 점점 갈수록 심해지고,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싸움질에 점점 삐뚤어져 갔다. 고등학생 때 윤현자라는 친구가 복막염에 폐결핵이 걸려 병원도 못 가보고 세상을 떠났다. 현자가 죽기 전 연락을 받고 찾아갔는데, 현자 뒤에 어떤 남자 영혼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때부터 소리 말고도 귀신의 형체가 보이고, 사람들의 생각들이 느껴졌다. 그러한 증상은 갈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전 MBC ‘우리들의 세계’라는 방송에 고정출연해 노래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작곡가 분을 만나 CM송을 부르기 시작했고 모델 활동도 하면서 참 화려한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당시 연예계의 이면은 어린 나에게 좋은 곳만은 아니었다. 유혹도 많고 끼를 주체하지 못해 쾌락적인 향락에 빠져갔다. 그때도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소리는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는데, 그 상황이 지독히 괴로운 날에는 아침까지 술에 빠져 있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중에 남편을 만났다. 교직자이셨던 시아버지는 당신의 퇴직금을 우리에게 주셨다. 남편은 그 돈을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결국 돈으로는 받지 못하고 신쭈(놋쇠 주물)공장으로 대신 받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운영하게 된 공장으로 빚을 지게 되고, 우리 부부는 단칸방으로 이사해야 했다. 어려워진 것을 알게 된 친정 엄마가 아파트를 마련해 줘서 잠시 동안 편하게 지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이 친동생에게 사업자명의를 빌려줬고, 남편 명의의 당좌수표가 부도 나면서 기소중지가 내려졌다. 우리 부부는 집 정리를 언니에게 부탁하고 친정 엄마의 도움을 받아 급히 시카고로 떠났다. 그러나 시카고에서의 생활도 평탄치 않았다. 남편의 친구 집에서 식모처럼 몇 달을 눈치보고 지냈는데 그 부부와 돈 문제까지 생겨버렸다. 나는 그 돈을 받으려고 싸우다가 아이까지 유산되고, 그 부부는 미국도 잘 모르는 우리를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나오는 로렌스(시카고 한인타운)에 보내버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난 죄인이야!
당시 K마트에서 물건을 교환해야 했는데 통역을 도와줄 한국 사람을 찾았다. 어떤 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는데, 그분을 통해 기쁜소식시카고교회를 만났다. 목사님은 나에게 죄 사함의 복음을 전하셨다. ‘죄가 없다고, 내가? 나를 모르셔서 그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죄가 있는데, 복음은 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다시 몇 년이 지나 교회에 나갔고, 그때 또 다시 복음을 들었다. ‘우리는 의인이며 죄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내 마음에는 답답함만 더해졌다.
‘내가? 아니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난 죄인이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인류의 모든 죄를 씻기에 충분합니다. 당신의 죄가 주홍 같으지라도 말입니다. 여기를 보세요”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주홍 같은 내 죄가 흰 눈처럼 깨끗해? 말도 안 돼!’
나에게는 정말 주홍처럼 새겨진 죄가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새벽에 술에 취해 있으면 나를 맴돌던 귀신이 목사님 사택으로 발걸음을 하게 했다.
‘주홍 같은 내 죄가 흰 눈처럼 되었다고?’
그 말에 꽂혀서 새벽인데도 목사님에게 말해보라고 소리쳤다. “아주머니, 아침에 오세요.” 술이 깨면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지만, 며칠 있다가 귀신에 끌려 또 그런 추태를 부리고···. 그런 일로 인해 교회와 먼 곳으로 이사까지 하면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기쁜소식교회가, 목사님의 말씀이 그리워져갔다. 
교회가 많이 그립던 때에, 애틀란타에 새 교회가 생기면서 헌당예배에 초청을 받았다. 그때도 목사님은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를 구원하신 복음을 전해주셨다. 하지만 마음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그날 새벽 4시에 눈이 뜨였다. 로마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8장 6절에 내 마음이 머물렀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읽고 또 읽었다. ‘내 생각이 있고, 영의 생각이 있구나. 내 육신의 생각으로 복음을 믿으려고 했구나.’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흰 눈처럼 깨끗해진 죄 사함’이 마음에 이루어졌다. 그 후로 신기(神氣)에 의해서 나타나던 내 삶의 괴로움들이 끝이 났다. 내 눈에만 보이고, 내 귀에만 들리던 모든 것들이 드디어 끝이 났다.

세상에 한 발, 교회에 한 발 걸친 신앙
구원을 받고 삶에 많은 변화도 있었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나를 믿는 마음이 작아지지는 않았다. 마음에  말씀도 없고, 교회도 두지 못하며 교회에 갔다 말았다를 반복하며 지냈다. 그리고 남편의 사업이 너무 안 되고 힘들다 보니 모든 마음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남편은 코인세탁소와 카페트세탁소를 운영했는데, 100대 정도의 기계에 24시간 직원을 둬야 하는 일이다보니 자금과 육체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큰 카페트를 하루에 50개에서 70개씩 어깨에 메다가 바닥에 내려놓고, 손질을 하면 말아서 한쪽에 메어다 놓고··· 숨이 턱턱 막혔다. 견딜 수 없이 힘드니까 그제서야 목사님께 말씀드릴 수 있었다. 목사님은 가게를 정리하라고 하셨고 그제서야 멈추었다. 하나님이 목사님의 말대로 순적하게 가게도 팔게 해주셨고 다시 교회도 나갔지만 우리 부부는 여전히 세상에 한 발, 교회에 한 발 걸친 신앙을 하며 지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우리가 시카고로 처음 갈 때 언니에게 맡겼던 집이 정리가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둘째 언니의 사위가 펀드매니저를 하는데, 언니는 자신이 책임을 질테니 그 돈을 투자해보라고 권유했다. 투자를 하고 얼마 안 되어 날아온 서류에는 주식이 꽤 많이 올라있었다. 더 투자하면 어떻겠냐는 언니의 권유에 남편이 모아 놓은 돈에, 내가 모아 놓은 돈에, 신용대출까지 받아서 투자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고 사기였다. 애초부터 투자도 없었고 조카사위가 도박으로 돈을 날린 것이다. 신용대출까지 냈는데···, 결국 신용도 망가지고 집도 넘기고, 다시 아무것도 없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네일 가게에 취직했다. 신용대출을 갚아보려고 일요일도 나가서 일했다. 어차피 무너졌는데 마음이라도 쉬면 좋았을 것을 몸이 부서져라 그렇게 바보처럼 일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공허하고 항상 외로웠다. 마음에 복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교회가, 목사님의 말씀이 그리워졌고 쉽지 않은 발걸음을 교회로 향했다. 그때 교회는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 준비로 한창 분주했다.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도우심을 처음으로 보았다
하루는 가슴에 제법 큰 멍울이 잡혔는데, 직감으로 유방암이라고 생각했다. 병원비가 걱정되어 진단을 받을 수 없었는데, 믿음으로 낫고 싶은 원함이 강했다. 하지만 가슴의 덩어리는 점점 커졌고 두려움도 커졌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칸타타 공연에 온 마음으로 함께하고픈 마음을 내게 주셨다. 그 마음은 나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했다. 업체에서 후원을 받고 여러 군데에 광고도 내고, 기자간담회를 준비하고, TV 방송·라디오·신문사들을 찾아다녔다. 그 결과 하나님은 크게 우리를 도우셨고 42,000달러라는 대관료를 내고 몇 백 달러가 남았다. 공연은 4,200석 규모의 좌석이 다 찼고 4,000여 명의 관객들의 행렬을 보는데 가슴이 벅찼고 감사했다.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도 돕는다!’ 나는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도우심을 처음으로 보았다.

저는 자매님이 그 아픈 곳에 매여 있는 것이 싫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부황으로 유방 섬유종을 뺐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 가슴의 덩어리도 빠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석은 생각으로 상처를 건드려 가슴에서는 악취가 나고 진물과 피가 났다. ‘하나님, 이렇게 살아온 것도 억울하고 한이 맺히는데··· 저를 안 도우시나요?’ 차라리 죽자고 생각하고 90미터 높이의 난간에서 몸을 던지려고 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마음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위스콘신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딸이 집에 왔다가 숨겨왔던 나의 가슴을 보게 되었다.
“엄마 이게 뭐야? 그래서 된장찌개는 이렇게, 김치찌개는 이렇게 끓이는 거라고 가르쳐줬던 거야? 죽으려고 그랬던 거야? 나 엄마 못 보내! 당장 병원 가자!”
‘병원 못 가···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지만 거짓말이라도 병원에 가겠다고 하면서 딸을 안심시켜 보내야 했다.
3월, 시카고교회 사모님이 뉴욕에서 CLF를 하는데 같이 가자고 전화를 주셨다. 짓물러 썩어가는 가슴의 상처를 감싸놓을 수가 없어서 장거리 여행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15시간이나 걸리는데 어떻게 가요? 숙소도 그렇고···.”
수화기 너머로 사모님의 실망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박세영 목사님
(기쁜소식시카고교회)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매님, 뉴욕에 오고 안 오고는 문제가 안 됩니다. 저는 자매님이 그 아픈 곳에 매여 있는 것이 싫습니다. 너무 싫습니다!”
목사님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로 들려오는 저 음성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뉴욕에 가겠습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조규윤 목사님(기쁜소식한밭교회)을 만났다.
“자매님, 이제 자매님 믿음 말고 목사님의 믿음으로 사세요.”라고 말씀하셨다.
15시간을 차를 탔더니 힘들어서, CLF가 시작되면 뒷좌석에 가서 눈을 좀 붙여야겠다고 생각하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교회 자매님이세요? 여기 앉으세요.”
안내하시는 분이 안내해준 좌석은 맨 앞줄에서 두 번째로 잠시도 졸 수가 없을 뿐더러, 내 옆으로 박영국 목사님(뉴욕교회)이 앉으시더니 박옥수 목사님께서 그 다음에 앉으시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 박옥수 목사님이 앉으시는 자리에 같이 앉은 거야?’
이렇게 된 이상, 박 목사님이 강단에서 하시는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기 싫었다. 김충환 목사님의 암 투병 이야기, 전기는 전선을 따라 흐르듯 하나님과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말씀에 눈물이 났다. 모든 말씀들이 꼭 나를 보면서 하시는 것 같았다.

목사님이 나를 살리시려고 하는구나
“자매님, 빨리 박 목사님 앞에 나가세요. 박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하라는 대로 하세요.” 함인오 목사님(미네아폴리스교회)의 목소리에 나는 바로 뛰었다. 살고 싶어서 뛰었다. 앞에 걸어가시는 박 목사님을 향해 뛰었다.
“목사님, 저는 시카고에서 온 김여옥 자매입니다. 저는 암에 걸렸습니다.”
“이리오세요.” 목사님을 따라 마하나임 사무실로 내려갔다.
“얼마나 됐나요? 크기는요?”
“손바닥 반 이상 크기인데 터졌습니다.”
“왜 그러셨어요? 수술하면 되는데요.” 그리고 나를 가만히 보시더니
“수술하고 치료하면 살 수 있어요. 한국에 나오세요. 임민철 목사, 이분 의료보험 살려지려나?”
“네. 벌금만 내면 살릴 수 있을 겁니다.”
박 목사님은 안수기도를 해주시려다가 나를 다시 보시며 “자매님, 혹시 비행기표, 치료비가 없어서 한국에 못 나오시는 건가요?” 하셨다. 그 말씀 한마디에 내 마음이 다 녹았다.
‘목사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이구나. 목사님이 나를 살리려고 하시는구나. 그래, 가자. 죽더라도 가자. 다 터지고 아파도 가자.’

 

먹고 사는 거 이제 그만하고 한국에 가자
시카고로 돌아오자마자 남편에게 먹고사는 거 이제 그만하고 한국에 가자고 말했다. 정말 갈 곳이 없어서 지낼 곳이 없다고 하자, 목사님은 아무 걱정 말고 나오면 다 준비하겠다고 하셨다.
2018년 3월 16일, 우리 부부는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도착했다. 마하나임 선교센터의 방 한 칸을 내어 주셨다.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는데 남편은 임시 주민등록증과 의료보험이 다 나왔지만, 나는 재외국민이라 3개월 이후에 의료보험이 나온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런 일이 왜 생겼을까? 시카고를 떠날 때 박 목사님의 믿음을 따라 하라는 대로 한국을 왔는데 왜 의료보험이 되지 않지?’ 나는 시카고에서 칸타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돕는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은 나를 돕는다는 마음이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남편과 내 여권을 보았다. 여권에 PM(일반 여권)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다시 주민센터로 갔다. “제 여권에도 PM(일반 여권)이라고 되어 있는데 왜 재외국민입니까?” 직원이 보더니 “그러네요. 맨 처음 주민등록을 하신 대전 오류동에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다음 날, 목사님이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의료보험이 생성되면서 병원에 갈 수 있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나를 돕고 계셨다.
삼성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심각하게 말했다. “이 정도 사이즈면 항암치료로 크기를 줄여야 합니다. 아마 뼈까지 전이된 것 같습니다.” 진찰결과 유방암 4기, 머리뼈, 골반뼈, 폐까지 전이되었고, 항암치료제를 먹는 것 외에는 치료법이 없다고 했다.

 

두 분 삶에는 자신의 것이 없구나
3월 18일 주일예배 말씀이었던 누가복음 24장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내가 그랬구나. 예수님이 늘 함께하셨는데 나 자신이 더 커서 예수님을 보지 않고 살아왔구나!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배우자. 모르면 묻자.’ 성경을 보면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죽음이 앞에 있으니까, 이 지독한 암이 내 마음을 낮추게 했다.
1차 항암치료 때, 약을 먹고 30분 정도가 지나니까 온몸이 흔들흔들 떨리고, 온몸의 뼈가 춥고, 땀이 흐르고, 아주 힘들었다. ‘아니야! 이것은 형편일 뿐이야. 주님이 나와 동행하신다고 했어!’ 어려울 때마다 목사님 말씀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졌다. 이틀 날부터는 감기약 먹는 정도로 견딜 만해졌고, 1차 항암치료도 2차 항암치료도 끝났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 24:49) 이 말씀이 내게 하시는 것으로 들렸다. ‘하나님은 내 행위를 보시는 게 아니구나. 내가 잘하든 못하든 주님의 은혜구나. 주님은 나에게 예수님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에 생겼다.
‘아프지만 나았다!’라는 박옥수 목사님의 간증처럼 나도 이 베들레헴에 들어왔다. 목사님의 삶을 정말 닮아 가고 싶어졌다. 한국에 있으면서 사모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으려고 하셨고, 홍콩 CLF 때는 몸이 심각하게 안 좋았지만 혹시나 복음 집회에 방해가 될까 봐 아픈 것도 숨기셨던 그 마음을 듣는데 ‘아! 두 분 삶에는 자신의 것이 없구나. 박 목사님과 사모님의 복음을 향한 저 마음이 없었다면 기쁜소식선교회도 없었겠다’ 싶었다. 이제서야 많은 것을 알아가고 있다. 강남교회에 와서 참 많이 울고 다녔다. 세상에서 흘리는 눈물은 억울함으로 흘렸지만 교회 안에서 흘리는 눈물은 부끄러움과 감사로 흘렀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서울 대전도집회를 앞두고 교회 1층 복도에 붙어있는 전도할 사람 3,500명의 명단을 보면서 역시 강남교회는 다르다고 느꼈다. 그 명단 속에는 형제, 자매들의 마음이 있었고 나도 동참하고 싶어서 2명의 이름을 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부터 복음을 전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거의 매일 복음을 전하고 암에 걸리신 분들과 만나면서 한 분이 구원을 받았다. 6월 8일도 병원에 가는 날인데, 그날 암 환자 한 분을 만나기로 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나는 복음을 전하러 갈 때, 종이에 필기를 해서 간다. 그 성경 구절들을 보면서 교제를 한다.
“언니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어요. 그게 믿어져요?”
“그러네···.”
“그럼 여기 로마서 3장 23, 24절의 구절을 읽어봐요.”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언니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다고요.”
“내가? ··· 의로워졌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참 많이 울었다.
복음을 전하면서 새 힘이 나기 시작했다. 목사님이 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지 그 마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계속 교제할 것이고 복음을 전할 계획이다. 9월에는 다시 시카고에 가서 크리스마스 칸타타도 준비하려고 한다. 이제 내 삶은 노(NO)가 없는 예스(YES) 우먼이 되었다. 항암 치료제를 먹어도 힘든지 모르겠고, 내 몸이 항암 치료제를 보약으로 착각했는지 오히려 살이 찌고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 끝날까지 나와 동행한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내 몸이 필요하시구나. 그렇구나. 예수님은 나에게 복음을 위해 일하라고 하시고 함께하고 싶어 하시는구나.’ 이제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복음을 위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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