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하는가, 마음으로 하는가?
법으로 하는가, 마음으로 하는가?
  • 김양미
  • 승인 2018.09.0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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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4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
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1:14)

 

장대에 전등을 달고 숟가락을 들었지만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알면 굉장히 쉬운데, 그 이유를 잘 몰라서 신앙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에 시골 사람이 서울 구경을 갔습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구경하고 저녁에 여관방에 들어가니까 저녁 밥상을 차려 주는데,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딱 드니까 전깃불이 번쩍 하고 왔습니다. 시골에서 호롱불만 보고 살다가 전깃불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야, 서울 호롱불은 저렇게 생겼구나…!’ 아주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잠잘 때쯤 되니까 전깃불이 저절로 꺼졌습니다. ‘그것 참 신기하다!’ 옛날 여관에는 전등마다 스위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모든 전등을 일시에 켜고 껐습니다.
다음날도 종일 서울 구경을 하고 여관에 들어와서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딱 드니까 또 번쩍 하고 불이 왔습니다.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이 사람이 시골로 내려가는데, 여관에서 나올 때 주인 몰래 칼로 전등을 잘라서 보따리에 싸고 또 싸서 들고 고향으로 갔습니다.
고향에 도착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서울 갔다온 이야기를 듣겠다고 모여드는데, 이 사람이 “말 못 해. 오늘 저녁 먹을 때 와. 그때 서울 구경 시켜 줄게.” 하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내가 “뭘 보여줄 거야?” 하고 물어도 “저녁 먹을 때 봐.” 하고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저녁 먹을 때가 되어 동네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 사람이 마당에 멍석을 편 후 멍석 가운데에 밥상을 차려 놓고, 마당에 쳐놓은 빨랫줄이 쳐지지 않게 받치는 장대 위에 서울에서 가져온 전등을 달았습니다.
“자, 여러분, 잘 보세요!”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는 가운데 이 사람이 밥상 앞에 앉아서 숟가락을 딱 들었습니다. 이제 불이 번쩍 와야 하는데, 안 오는 겁니다. ‘아니, 이게 촌에 왔다고 얼었나?’ 다시 숟가락을 놓았다가 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무얼 보여 주려고 그러나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상이 부서지도록 숟가락을 놓았다 들었다 해도 불이 안 오는 겁니다. 이 시골 사람이 전기에 대해서 전혀 모르니까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등만 가져다 놓으면 됩니까? 뒤에 전깃줄이 이어져 있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번쩍 하고 저절로 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착한 일 하려고 하고,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등에 불이 들어오려면 전선도 있어야 하고 발전기도 있어야 합니다. 장대 위에 전등을 달아 놓고 숟가락을 들었다 놓았다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표면적인 것만 하려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성경 읽으면 되겠지, 착하게 살면 되겠지, 율법 지키면 되겠지’ 하고 표면적인 것만 생각합니다. 마음에 받침이 있어야 선도 행할 수 있고, 감사와 사랑도 일어나고, 하나님을 믿는 마음도 일어나는데 말입니다. 받침이 없으면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법으로 주신 것과 마음으로 주신 것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런 법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은 BC 1500년경, 지금부터 3500년 전에 모세가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가 십계명이 새겨진 두 개의 돌판을 받아와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해 그들이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모세 때 율법이 내려온 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15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지만 온전하게 지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남녀가 성장하면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너희가 어른이 되면 결혼해라. 자식을 낳아라. 자식을 돌봐라.”라고 법으로 주시지 않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여자를 볼 때 예쁘다는 마음이 생기고, 만나고 싶고,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여자도 처녀가 되면 남자가 멋있어 보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으니까 결혼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지, 사랑하는 마음 없이 결혼한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법으로 인간을 이끄는 것이고, 하나는 마음을 주어서 인간을 이끄는 것입니다. 법은 지키라고 주셨지만 인간이 다 어겼습니다. 그런데 가정을 이루는 것은 마음을 주시니까 잘 지켜졌습니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니까 여자에게 가서 “나의 태양이여, 나의 달이여, 나의 별이여, 나는 그대만을 사랑합니다!” 하며 결혼하고 싶어합니다. 부부가 살다 보면 싸우기도 하지만 금새 “헤헤, 호호”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백화점에 가면 남자 상품은 별로 없습니다. 지갑, 넥타이, 와이셔츠, 양복, 구두 정도가 다고 나머지는 여자 상품입니다. 여자 옷은 왜 그리 가지 수가 많고, 화장품도 왜 그리 많은지 모릅니다. 이발관이 하나 있으면 미용실은 대여섯 개 있습니다. 돈은 대부분 남자가 벌지만 그 돈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법으로 이끄시는 것과 마음으로 이끄시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좋습니까? 마음으로 이끄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이 “부모는 자식을 낳아서 잘 길러라.”라는 법을 주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주시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아이가 똥을 싸고 오줌을 싸고 아프고 하면 부모들이 귀찮다고 놔두었다가 많이 죽게 할 것입니다.

율법에 매인 신앙과 마음으로 하는 신앙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하나님은 법으로 이끌려고 하시지 않고 마음으로 인도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법을 따르는 것과 마음을 따르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지 벌써 아셨습니다. 그것을 사람에게 깨우쳐 주시려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잘 지키겠습니다.” 하고 십계명을 받아서 열심히 지키려고 했지만 다 어겼습니다. 법은 결국 어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많은 목사님들이 성도들을 법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십일조를 내야 합니다.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법을 가지고 사람을 이끄니까 들을 때에는 좋은데 실제 삶에서는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의 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율법이고, 하나는 마음의 법입니다. 율법은 다르게 말해서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율법을 어기면 죄가 되고, 그 대가로 사망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율법에 매인 신앙은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에 매인 신앙이 아니라 마음의 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길 원하십니다. 율법에 매인 사람들은 오늘도 ‘성경 읽어야지, 기도해야지’ 하고, “주여, 죄를 짓지 않게 해주세요. 십계명을 지키게 해주세요.” 하며 삽니다. 반대로 마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들은 기쁨과 감사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만들 때 우리가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고 잘하는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법으로 섬기는 것은 원하시지 않습니다. 마음 없이 하는 기도, 마음 없는 연보, 마음 없는 찬송, 마음 없는 예배…, 하나님은 그것들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세상은 법으로도 다스려지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마음으로 이끌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한 마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신앙은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해서 그 마음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면 그 마음이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러면 삶이 정말 달라집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서 그 마음을 받아들입니까?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이 하나님이고,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지 말씀을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일을 합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을 이끕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를 이끄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우리에게는 음란한 마음이 많습니다. 탐내지 말라고 하셨지만 탐심이 많고,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미움이 많습니다. 우리 속에는 욕망이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과 정반대로 갑니다. 그 마음을 바른 길로 끌어다 놓으면 또 반대로 가고, 다시 끌어다 놓으면 또 반대로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면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됩니다. 죄가 싫어지고, 세상의 욕망이나 정욕이 싫어집니다. 마음이 기뻐지고, 감사해지고, 즐거워집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고, 하나님을 섬기고 싶고,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된 섬김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말씀은 우리 생각과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생각이 말씀을 거부합니다. 그때 나를 부인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달라집니다.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사랑이 가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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