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
신앙생활의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
  • 김양미
  • 승인 2018.09.01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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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5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
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1:14)

 

첫 번째 단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똑같이 성경을 읽지만, 사람에 따라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다릅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넓은 초원인 사파리에 사자, 얼룩말 같은 동물들이 자연 상태로 사는데, 사자는 배가 아무리 고파도 풀을 뜯어먹지 않습니다. 반대로 얼룩말이나 사슴 같은 동물들은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풀만 먹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사자 같은 마음이 있고 얼룩말 같은 마음이 있어서 받아들이는 것이 각기 다릅니다.
사람들이 죄악 속에서 살다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교회에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으니 좋고 복되구나. 이제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야지’라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런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 ‘무얼 해라, 무얼 하지 마라’는 것만 보입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그리고
‘내가 이렇게 살면 복을 받겠구나. 하나님, 내가 이 말씀을 따라 살겠습니다’라고 마음먹습니다.
신앙생활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고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듯 신앙도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물론 첫 번째 단계에서 일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입니다.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마음의 세계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배추벌레는 배추 잎을 뜯어먹고 삽니다. ‘야, 맛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어디 있을까!’ 그러나 배추벌레가 나비가 된 후에는 배추 잎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옛날에는 배추 잎만 맛있는 줄 알았는데, 꽃에 이렇게 맛있는 꿀이 있네!’ 먹는 것이 달라집니다. 나비가 되면 배추 잎이 싫어집니다.
마음의 세계도 첫 번째 단계에서는 ‘하라, 하지 말라’는 율법만 보입니다. 그런 사람은 ‘간음하지 말아야지, 도둑질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지켰을 때 만족하고 흐뭇해합니다. 그것이 1단계 배추벌레 신앙입니다. 그런데 배추벌레가 배추 잎을 뜯어먹으며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단계에 가면 고치를 짓고 잠이 들며, 어느 날 나비가 되어서 하늘을 납니다. 놀라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그처럼 변화가 일어납니다.
1단계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성경에서 ‘십일조를 내고 죄를 짓지 않으면 복을 받겠구나…’ 하는 것만 보입니다. 십계명을 안방에 붙여 놓기도 하며, 십계명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게 살다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구나!’ 하는 과정이 옵니다. 마음을 들여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그 과정이 일찍 오고, 대충 하는 사람은 10년을 해도 그 과정이 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30년, 40년을 믿어도 여전히 ‘내가 뭘 해야지, 하지 말아야지’ 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목사님도 나환자 맞죠?”
박옥수 목사의 간증을 하나 소개합니다.

제가 대구에서 사역할 때 한번은 나환자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나환자촌 교회의 목사님이 저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해서 식당에 갔는데, 그때 우리는 가난해서 갈비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였습니다. 늘 제 갈비만 만지면서 그리워할 때인데, 그 목사님이 갈비를 시켜서 커다란 팬 위에 갈비를 잔뜩 올려놓고 구워서 저에게 먹으라고 했습니다.
갈비를 한참 먹는데, 그 목사님의 입술이 약간 처져서 신나게 이야기하는 목사님의 입에서 침이 튀어 갈비에 떨어졌습니다. 그런 것은 안 보아야 하는데, 눈이라고 다 봅니다. 목사님이 나환자라는 생각이 드니까 갈비 맛이 뚝 떨어졌습니다. 목사님이 왜 안 먹느냐고 하는데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침이 덜 떨어진 내 쪽에 있는 갈비를 뒤집고 다시 뒤집어 바짝 구어서 두어 개 더 먹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한 싱거운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있다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나환자촌에 가신다면서요? 거기 가면 나환자들이 시험해 봅니다.”
“뭘 시험하는데요?”
“고름이 흐르는 손으로 달걀을 까서 먹으라고 줍니다. 그럼 먹을 거예요, 안 먹을 거예요?”
“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런 일이 있으려고요?”
그냥 일축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새벽에 일어났는데, ‘정말 고름 묻은 손으로 계란을 까서 줄까? 그럼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걱정이 되었습니다. ‘가면 잠은 같이 자자고 할까, 따로 자게 될까? 밥은 같이 먹자고 할까, 따로 먹을까? 정말 고름이 흐르는 손으로 음식을 만들까?…’ 마음이 많이 무거웠습니다. 그때 제가 살던 방에서 문만 열면 바로 예배당이어서 예배당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한참 기도하는데 성경 구절 하나가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마 26:6)
그 말씀 앞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거룩하신 주님, 존귀하신 주님이 나환자 집에 가셨는데, 나 같은 천한 인간이 뭐라고 나환자촌에 가는 것을 주저하리요?’
마음이 금방 싹 바뀌었습니다. 이어서 ‘나환자가 따로 있나? 나도 나병에 걸리면 나환자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구나!’ 전에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누구든지 감기에 걸리면 감기 환자고, 나병에 걸리면 나환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환자하고 나하고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그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나환자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며칠 후, 나환자촌 교회에 가서 집회를 했습니다. 나환자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목욕도 같이 했습니다. 나중에 나환자들이 뒤에서 수군수군하더니 몇 사람이 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박 목사님, 솔직하게 이야기하세요.”
“뭘요?”

“우리, 다 알아요. 우리끼리 있으니까 괜찮아요. 이야기 안 할 테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하세요.”
“아니, 뭘 알아요?”
“목사님도 나환자 맞죠?”
제가 전혀 거리낌없이 나환자들과 함께 지내니까 그분들이 저도 나환자인 줄로 알았던 것입니다.
“나병은 걸리고 3년이 지난 다음에야 안다면서요? 지금은 아니네요. 3년 뒤에 가르쳐 줄게요.”
아직까지 나환자가 아닌 것을 보면 그때도 아니었겠지요.
제가 나환자촌에 가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꺼리는 마음, 그것이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마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나환자촌에 가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압니다. 박옥수 목사의 본디 마음은 더럽고 야비하고 거짓되고…. 하나님이 저를 당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을 시키신 것이 아니라, 먼저 당신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에서 그런 변화를 자주 느꼈습니다.
‘난 이럴 사람이 아니야! 난 이렇게 못 해! 이건 내 마음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이야! 주님이 이 마음을 주셨어!’
저는 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만을 위해 살고, 육체의 욕망에 종이 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서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전에 없던 새 마음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구나!
박옥수 목사는 자신의 마음과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열아홉 살 때까지 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열아홉 살의 어느 날에 제 마음을 보았는데, 내 마음이 너무 악하고 더럽고 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마음 가지고는 절대로 바른 신앙생활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동차로 말하면, 핸들과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았습니다. 어떤 아가씨를 볼 때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브레이크를 밟지만 서지 않고 마음이 계속 끌려갔습니다. 남의 과수원을 지나갈 때 자꾸 사과를 따먹고 싶었습니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데 이러면 안 되지’ 하고 핸들을 돌리고 싶은데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음욕을 품어도 죄라고 하셨는데, 나는 왜 이러지? 왜 남의 물건에 마음이 가고 도둑질하게 되지? 내 마음은 너무 삐뚤구나.’
그때 저는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 전에 저는 내가 안 하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쁜 짓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내 마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안 하려고 해도 발길이 과수원으로 가고, 아가씨에게 마음이 끌려갔습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이 마음 가지고는 절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 마음 가지고는 안 되겠구나! 내 마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너무 야비하고 더럽구나!’
그것이 정확히 분별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그런 마음을 가라앉혀서 착하게 살려고 하고, 음란하지 않으려고 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내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애쓰고 또 애썼는데, 그것은 해도 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나니까 ‘내 마음으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삶이 정말 달라졌습니다.

우리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면 어렵고 고생스러우며, 결국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습니까?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더러운 자기 마음을 감추고 억눌러서 하나님을 섬기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 땅에 너무나 많습니다.

신앙생활의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면
첫 번째 신앙생활의 모습은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단계입니다. 그 단계를 넘어 두 번째 단계는, 배추벌레가 나비로 변하듯 마음이 변하는 단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죄를 깨끗이 씻어 주고, 소망을 주고, 평안을 주고, 기쁨을 주어서 하나님을 섬기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이끌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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