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 김양미
  • 승인 2018.09.0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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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7편
 

쥬다 벤허, 나를 죽게 내버려다오
영화 ‘벤허’에 보면, 벤허와 그의 친구이자 유대의 호민관이었던 멧살라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서, 멧살라가 벤허를 죄수로 만들어 로마의 함선에서 노를 젓는 노수(櫓囚)로 보냅니다. 벤허가 탄 배의 함장은 로마의 집정관 아리우스였는데, 그는 벤허가 남다른 것을 느끼고 노수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채우는 족쇄를 벤허의 발에서는 풀어 주라고 명령합니다.
곧 로마 함대와 해적 군단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벤허가 탄 배가 크게 부서져 벤허가 갑판으로 올라갑니다. 그때 해적들과 싸우던 아리우스가 바다로 떨어지는데, 그 광경을 보고 벤허가 바다로 뛰어들어서 그를 구해 부서진 배의 널판 위에 올려놓습니다. 아리우스는 한참만에 깨어나, 멀리서 자신의 배가 침몰하는 것을 봅니다. 그는 로마 함대를 이끌고 해적들에게 패했다며 자결하려고 하는데, 벤허가 막습니다. “쥬다 벤허, 나를 죽게 내버려다오.”라고 부탁하지만 벤허가 듣지 않습니다.
잠시 후 수평선에서 많은 배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아리우스가 벤허에게 “해적선일 거다. 이제 나는 원대로 죽게 되고, 너는 자유의 몸이 된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와서 보니 로마 함대였습니다. 아리우스가 배 위로 올라가자, 한 장군이 큰 승리를 얻었다고 보고합니다. 아리우스가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배가 침몰하는 것을 보고 패한 줄 알았는데, 배 몇 척을 잃긴 했지만 해적을 전멸시킨 것입니다.
집정관 아리우스는 자기 배가 침몰하는 광경만 보고 패한 줄로 여겼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죄를 짓는 과정에서나 죄를 씻음 받는 과정에서나 전체를 보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칠 때 큰 문제가 일어납니다. 마음이 한쪽에 집착하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죄가 어떻게 사해졌지?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대로,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게 하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실 이야기가 많은데 이 이야기를 기록하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윗이 어떻게 죄를 지었으며, 그 죄가 어떻게 사해지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모든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자유롭게 동행하는 길을 보여 주시려고 예를 하나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이 범죄한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된 것은 그 죄를 어떻게 사함 받는지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구나’라는 마음으로 사무엘하 11~12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다윗이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듣고 ‘내가 죄를 범했다’고 한 뒤 나단이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했다’고 하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그 죄를 어떻게 사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계속 읽어 나가면 시편 51편에 그 이야기가 다시 나옵니다. 다윗이 쓴 시편 51편의 시작 부분에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이 죄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를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죄를 지은 것과 사한 것, 두 가지를 다 보아야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왜 죄를 지을까요? 사탄이 우리를 죄 속으로 끌고 가면 그 유혹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면만 보면 인간은 더러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우리 죄를 씻는 일을 하십니다. 신앙은, 우리가 죄를 지은 후 죄인인 것을 깨달아 ‘나는 죄인이다!’ 하고 죄인의 위치에 있다가 예수님께서 그 죄를 사하신 것을 보고 ‘내 죄가 씻어졌구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우리 마음을 죄인인 쪽으로 끌어간 후 거기에다 마음의 못을 박아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죄를 지었는데…, 나는 죄인인데…’ 하는 데에 마음이 빠져서 고개를 돌리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하면, 사탄이 ‘너는 죄인이야!’ 하고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교회에 다니지만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자신만 보며 “주여, 죄인입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죄를 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 알면 한평생 죄에 매여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또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의 값을 다 지불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지은 사실만 마음에 두고 삽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알기는 하지만 10년을 믿어도 죄인, 20년을 믿어도 죄인, 30년을 믿어도 죄인, 죄인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그처럼 마음이 항상 죄에 매여서 괴롭고 고통스럽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양쪽 다 보았습니다.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 51:3)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다윗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보았습니다. 단순히 죄를 지었다는 사실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나는 죄악 중에 출생한 죄 덩어리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시 51:2)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 희어질 것 같다거나 깨끗할 것 같다고 한 것이 아니라, 죄가 씻어져서 깨끗해지고 눈보다 희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하지 않았다
자신이 죄를 지은 것과 예수님이 그 죄를 깨끗하게 씻으신 것, 두 가지를 합해서 보면 어떻게 됩니까? 깨끗해지고 눈보다 희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를 지은 데에만 빠져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며 죄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라고 예수님을 찬송합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는 죄를 사함 받았다고 하고, 이어서 기도할 때에는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관념으로 알지 정확히 모릅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고 기록된 대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죄에서 건지러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4절에서는 “…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덜 건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예수님이 실패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실패하시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씻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는 죄가 있습니다.” 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가시관을 쓰고, 무엇 때문에 채찍에 맞으며, 무엇 때문에 피를 흘리셨습니까? 우리 죄를 다 씻어서 우리를 눈보다 희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예수님은 죄를 씻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사람들을 속여서 죄를 지은 사실에만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죄를 지으면 양심에 가책이 생기고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내 생각을 따라서 사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이제는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겠다!’ 해야 합니다. 그렇게 돌이킨 뒤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내 죄가 사해진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로마서 4장에서 ‘다윗이 행복에 대하여 말한 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8)
다윗은 분명히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천 년 전에 살았지만, 하나님의 계시로 장차 예수님이 자기 죄를 위하여 죽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자신의 죄가 씻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불법을 사함 받고, 죄를 가리움 받고, 주님이 죄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선물은 값을 내지 않고 받는 것입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하나님이 우리 불법을 사하셨으니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예수님의 피로 죄가 덮여서 이젠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 죄를 짓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었는데, 그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죄를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에게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여자의 죄를 죄로 인정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 죄가 예수님에게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저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죄를 지은 사실을, 자신이 죄 가운데서 태어난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신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십자가에 못 박혀서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 죄를 정결케 하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내 죄가 씻어진 것을 믿어야 주님을 찬양하지, 죄에 매여 살고 지옥에 가면서 어떻게 주님을 찬양하겠습니까? 무엇이 감사하겠습니까? 참된 감사는 무엇보다 내 죄를 눈보다 희게 씻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은, 죄를 지은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그 죄를 다 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은 것도 인정하지만 하나님이 그 죄를 사하신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죄는 사해졌습니다.
“주님, 이 더러운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서 저의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까? 저를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이렇게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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