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박리, 내 신앙의 전환점
망막박리, 내 신앙의 전환점
  • 김요한(케냐 나이로비 선교사)
  • 승인 2018.09.04 2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교사 수기 4화
 

나무 안에 있는 모든 진액이 빠진 나무여야 쓸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복음을 위해 내가 온 마음을 들여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마음으로 열심히 산 결과는 결국 지쳐서 포기하는 삶이었다. 나는 신앙이나 사역이나 선교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박옥수 목사님이 “요한이 너! 내가 너 케냐에 일하라고 보낸 거 아니야! 너 회개하라고 보낸 거야!”라고 하셨지만, 목사님이 나를 왜 케냐에 보내셨는지 모르고 열심히 살려고만 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맏아들이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눅 15:29)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복음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고만 했지 아버지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맏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마음으로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눅 15:2~29)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대적하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도 맏아들과 같은 마음의 세계를 걷고 있었지만 나는 몰랐다. 하나님만 계셔야 하는 성전에 양과 소와 비둘기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내 마음에는 더럽고 추한 ‘나’라는 것이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생각, 나의 열심, 나의 성실, 나는 복음을 위한다는 마음 등이 가득 차 있었다.
집을 지을 때나 악기를 만들 때 쓰는 나무는 아무 나무나 쓸 수 없다고 한다. 수년 동안 바닷물에 잠겨 있어서 나무 안에 있는 모든 진액이 빠진 나무여야 쓸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종과 여러 어려움을 통해서 내 안에 ‘나’가 온전히 빠지도록 나를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망막박리’ 진단을 받고 한국에 왔다
2014년 4월, 하루는 몇 가지 할 일이 있어서 나이로비 타운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쪽 눈이 반 정도 까맣게 덮여서 보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이라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잘 몰랐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서 ‘집에 가서 쉬면 좋아지겠지’ 하고 일을 중단하고 집에 와서 쉬었다. 그런데 다음 날도 좋아지지 않았다. 수소문하여 케냐에서 제일 큰 안과 전문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망막박리’라고 했다. 망막이 눈에서 떨어진 만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는 당장 수술하지 않고 시간이 지연되면 망막이 완전히 떨어져 실명된다고 했다.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왔다. ‘내가 소경이 된다고?’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하거나 수술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그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어서 망막 전문병원을 추천받았다. 수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 연락하니 눈은 민감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수술을 받으라고 하셨다.
다음날 바로 케냐를 출발해 한국에 도착하여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2주 정도는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 있어야 했다. 몸은 누워 있지만 마음은 쉬지 못했다. 몸이 회복되면 언젠가는 박옥수 목사님을 뵈어야 하기에 그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목사님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나를 계속 간섭하고 계셨기에 또 책망 받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부담스럽고 힘들기만 했다. 가만히 누워서 생각하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머리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피곤했다.

“신앙은 망하는 거야”
그렇게 지내고 있을 때 마침 기쁜소식안양교회에서 있었던 집회에 갔다가 사역자 모임에 참석했다. 한 전도사님이 천안에서 가졌던 사역자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박 목사님이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신앙은 망하는 거야.”라고 하셨다며 간증을 이어갔다. ‘신앙은 망하는 거야’라는 짧은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목사님이 ‘신앙은 망하는 거야’라고 하셨는데, 나는 구원받고 그때까지 내가 망하는 쪽으로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고 오히려 내가 복음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살아남으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내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내가 잘못된 길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에 내가 잘 알고 지내는 목사님의 사모님이 오셔서 한마디 던지셨다. “요한아, 왜 자꾸 네가 무엇을 하려고 해? 푹 쉬어. 너는 눈도 수술하고 안대를 대고 있어서 보지도 못하잖아.”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나의 열심과 수고로 싸여 있어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망막박리 때문에 한국에 나와서 교제하며내 모습을 한 부분 한 부분 발견해 가기 시작했다.

‘사역을 그만두게 하려고 한다’
3주쯤 지났을 때였다. 수술한 눈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눈의 상처가 벌어져 다시 수술했다. 수술하고 누워 있는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토요일마다 가지는 사역자 모임에 다녀오셔서 밤 10시쯤 나를 부르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버지께서 어렵게 입을 열어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요한아, 오늘 사역자 모임에서 박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2014년 후반기에 요한이는 사역을 그만두게 하려고 한다’고 하셨어!”

 

그동안 나는 사역을 그만두면 저주받는다는 두려움을 제일 크게 갖고 있었다. 아간이 자기 생각을 쫒아갔을 때 자신의 가족과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이 저주와 죽임을 당한 것처럼, 내가 사역을 그만둘 때 나 혼자 저주 받는 거라면 괜찮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다 저주를 받겠다는 마음 때문에 사역을 그만둔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아버지가 전해주신 이야기를 듣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분도 아니고 박 목사님에게 5년 동안 직접 간섭과 책망을 받았는데도 내가 바뀌지 않았는데 앞으로 바뀔 수 있을까? 나는 6년이 지나고 7년이 지나고 8년이 지나도 안 되겠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마음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저녁 11시쯤 케냐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날 들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나는 더 이상 사역을 못 하겠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만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내가 말려야 할 것 같았는데, 아내도 아주 기뻐하면서 ‘나도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서로 마음이 맞았던 것 같다. 사역을 그만두면 집은 어디에 얻고 직장은 어디서 잡아 일할 것인지 의논했다. 그래도 그냥 그만두고 나갈 수는 없기 때문에 박 목사님께 인사는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앙은 회개와 믿음으로 되는 거야
다음날 주일 오후 3시쯤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케냐에서 온 김요한입니다. 목사님과 교제하고 싶습니다.”
“어, 그래! 오늘은 시간이 안 되고, 내일 와.”
다음날 아침 8시에 목사님의 집무실로 가면서, 목사님을 뵈면 사역을 더 이상 못 하겠다고 말씀드리겠다고 결심했다. 사역을 못 하겠다고 말씀드리면 분명히 ‘그런 정신으로 사역하니까 안 되지!’ 하면서 나무라시겠지? 아니면, 나가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시겠지? 전에도 그렇게 책망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바로 일어서서 “예. 목사님,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드리고 바로 나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집무실로 들어가자 목사님이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자신을 믿다가 도망하여 모든 것에 실패했다는 내용이 담긴 어떤 분의 편지를 읽어 주시면서 “자기를 믿으면 망할 수밖에 없어.”라고 하셨다. 나는 계획한 대로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다.
“목사님, 2010년부터 저는 목사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까지 5년이 지났는데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2016년, 2017년, 2018년이 된들 변하겠습니까? 목사님, 저는 안 됩니다. 사역을 그만두겠습니다.”
처음으로 내 입으로 사역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부터 내 마음에 그린 시나리오의 책망이 나올 것을 기다렸다. 그러면 일어서서 “예. 목사님,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그날은 목사님이 책망하시는 게 아니라 차분한 목소리로 교제해 주셨다.
“요한아, 그래서 신앙은 회개와 믿음으로 되는 거야.”
내가 만든 시나리오는 책망하면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 한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내가 모르는 세 번째 방법을 가지고 계셨다.

자신을 믿었던 베드로가 바로 나였다
목사님께서 베드로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베드로는 자기를 믿었어.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려고 하면 부인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어.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어.
마태복음 26장 31절에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도 ‘기록된 바’를 말씀하셨어. 말씀에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린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기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이 있는지 조차 몰랐어. 자기가 느끼기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예수님을 팔려는 마음이 없다고 말했어. 자신을 더 믿은 것이다. 아마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너무 하신다. 억지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한번은 목사님이 “요한아 너 나보다 영어 잘한다고 나 무시하지!”라고 하셨다. 나는 목사님을 무시할 마음도 없었고 내가 영어를 잘 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를 믿었기에 목사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가 목사님보다 낫다고 여긴 것이다. 내가 목사님보다 잘났다고 여기기 때문에 목사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도 자기가 예수님을 팔려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 생각이 예수님의 말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밀어낸 것이다.
목사님이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물으셨다.
“요한아, 이제 이해했어?”
“예.”
“그럼 이야기해 봐.”
내가 이해한 부분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목사님이 “이제 나가서 계속 교제해.”라고 하셨다. 집무실을 나오면서 뭔가 이상했다. 집무실에 들어갈 때는 분명히 사역을 포기하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나올 때는 베드로 말씀으로 교제하고 나온 것이다. 목사님이 나를 책망하실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이 너! 너는 교만하고 거만해서 하나님의 말씀도 무시하고 내 말도 무시하면서 살았잖아.”
사실 나는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의 말씀보다 ‘나’를 더 높이 세우고 살아 왔다. 그 결과는 망하는 것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를 받은 종과 같이 ‘악하고 게으른 종, 무익한 종’이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만들어 가신 것처럼 그런 나를 만들어 가시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다.
망막박리라는 병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나의 모습도 모른 채,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 갔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베드로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정확히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도 망막박리를 통해 이 시점에서부터 나의 모습을 발견해 가는 교제를 허락하심이 정말 감사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