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생애에 복음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복음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 김양미
  • 승인 2018.05.09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페셜 강단 | 전도자 훈련 과정 말씀 (2018년 상반기)

구원받은 성도는 어떤 사람일까?
많은 어려움을 만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여 달려나가 이기는 사람이고, 이 시대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발견하여 누가 뭐라고 하든지 복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며, 복음에서 나오는 힘으로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며 삶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서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실상은 기쁘기에 또 가서 전도하는 사람이며,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바뀌는 사람이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는 사람이다.
서울 대전도집회를 앞두고 가진 ‘전도자 훈련 과정’에서, 박옥수 목사가 복음을 몰라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길 원하는 심정으로 성도들에게 보낸 마음의 편지를 요약하여 소개한다.

목차

1. 믿음으로 사는 것을 사울이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2.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거룩하고 아름다워집니다
4. 바울이 돌에 맞았지만 기쁘니까 또 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5.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만듭니다
6. 이제 더 이상 자신으로 살지 말고 예수님으로 사십시오

*이 글은 2018년 4월 기쁜소식강남교회에서 가진 ‘전도자 훈련 과정’에서 
박옥수 목사가 전한 여섯 시간의 말씀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

전도자 훈련 과정 1

믿음으로 사는 것을 사울이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나하스가 암몬 사람들을 이끌고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자,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스를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하스가 ‘너희 오른 눈을 빼야 언약하겠다’고 합니다.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고 하고, 사자가 기브아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합니다. 마침 사울이 소를 몰고 오다가 그 소식을 듣고, 소를 잡아 조각을 내서 이스라엘 지파들에 보내면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않으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 30만 명과 유다 사람 3만 명이 모여, 사울이 그들을 이끌고 나하스와 전쟁을 벌여 암몬 사람들을 진멸했습니다.
나하스가 왜 길르앗 야베스를 쳤습니까? 항복하겠다고 하는데, 왜 조공을 바치라고 하지 않고 눈을 빼겠다고 했습니까? 조공을 바치라고 했으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나하스를 섬기면서 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평안한 일만 주시지 않고 고난과 어려움도 주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어려움들을 당케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여유롭게 살기를 원하지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고, 축복을 받아서 어려움이나 시련이 없는 편하고 즐거운 삶을 살고 싶어합니다. 그렇게 살면서 욕구를 키우며, 안정적인 삶이 깨질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만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평안하기만 하면 썩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하스를 무찌르고 얼마 후 블레셋 사람이 쳐들어왔습니다.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군사는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사울이 나하스와 싸웠을 때처럼 싸우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엄청난 군대를 보고 겁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싸웠지만, 다음부터 두려워서 싸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얼마 동안 핍박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이기면 한평생 믿음이 좋습니다. 반대로 핍박을 피하고 웅크리면 한평생 신앙이 웅크려지고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으면 하나님의 자녀고, 하나님은 여러분과 관계를 갖고자 여러 일들을 허락하십니다. 병도 생기고, 문제도 일어나고…. 그런 일이 생길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달려가면 됩니다. 그런데 사탄이 부담스러운 마음을 주어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일부로라도 무전전도여행을 가보십시오. 월급을 다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 보십시오. 안정적인 형편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이 훨씬 복되고 좋습니다. 죄를 사함 받는 것뿐 아니라 병이 낫거나 자녀를 키우는 것도 하나님이 해결하시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으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씁니다. 그러면 교회가 타락하고, 복음이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다시 기회를 주시지만, 사울은 결국 자기 생각을 따라갑니다. 사울이 믿음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사탄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믿음 없이 살게 합니다. 속지 마십시오. 막연하게 ‘잘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믿음의 삶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여러분도 버림을 받습니다. 반대로 고난을 피하지 않고 부딪쳐서 믿음으로 해결해 가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복되고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전도자 훈련 과정2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사도행전 13장 22절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했습니다. 똑똑한 사람, 잘난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많지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부스 족속이 살던 예루살렘 성은 산에 건설한 산성이어서 난공불락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440년 가량이 지나는 동안 누구도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이 된 후 여부스 성을 공격해서 점령했습니다. 그곳에 성전을 짓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구원받은 후, ‘하나님께서 내가 무얼 하길 원하실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 죄를 다 사해 놓으셨는데,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몰라서 죄인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그 마음이 들어서 복음을 전하기로 했습니다. 위대한 일은 못해도, 죄 사함 받는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복음을 전할 줄 몰랐고, 선교학교에 가서 아무리 전도해도 구원받는 사람이 없었지만, 복음을 전하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복음 전하는 법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하나님께서 문을 여시는데 누가 그 문을 닫겠습니까?
다윗 시대에는 하나님이 성전 짓기를 원하셨고, 이 시대에는 복음 전하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저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어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먹고, 잠을 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잡니다. IYF를 해도, 그라시아스 합창단을 해도, 월드캠프를 해도 복음을 위해서 합니다.
여러분은 더 부유하고 더 여유있게 살려고 하는데, 그길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저는 천 번 만 번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복음 전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죄에서 벗어나게 해준 복음, 두려움을 쫓아준 복음, 평안과 기쁨을 준 복음, 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고 싶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에 베틀채 같은 창을 휘두르는 장수인데, 다윗이 그를 볼 때 ‘저거 내 밥이다!’라는 마음에 올라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벌벌 떠는데, 다윗은 ‘하나님이 나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셨는데, 왕인 내가 저것 하나 못 이기겠나?’ 했습니다. 사울이 ‘너는 저 사람과 싸울 수 없다’고 했지만, 다윗이 담대히 나아가며 골리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창과 단창으로 나아오거니와 나는 여호와 이름으로 가노니,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실지라!” 다윗은 그 사실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다윗과 달리 사울은 대충 알았기에,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마음이 들지만 아주 어려운 일은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봐서 안 될 것 같은 생각을 받아들이는 순간, 여러분은 무기력하고 떨며 주저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옛날의 우리와 다른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욕망대로 살았지만, 이제는 누가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도자 훈련 과정 3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고 거룩하고 아름다워집니다

 

교회를 인도하면서, 백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구원받은 성도 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마음이 금방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선교학교에서 훈련받던 형제들이 저에게 “목사님, 목사님” 하지만, 마음에서는 자신이 저보다 뛰어나서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죄인’이라는 사실 앞에서 마음이 수그러들지만, 성도는 죄를 씻었기에 교만한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자신이 깨끗해서 구원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구원받는 순간에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요, 저주를 받아 영원히 지옥에 가야 할,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죄 사함을 받은 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잘났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저 형제는 틀렸어. 우리 목사님은 설교를 못 해’라고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병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행동은 겸비한데 마음은 교만해서, 말씀을 아무리 전해주어도 마음에 남아 있질 않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날 때,
‘내가 복음을 잘 전하네’라는 조그마한 음성이 들어옵니다. 그것을 마음에서 긍정만 해도 마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평생 마귀한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성도들이 변화되고 은혜를 입을 때 제일 무서운 것이 ‘내가 잘하네’입니다. 그때부터 아무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되어 교회에 해만 끼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바울이 구브로(키프로스)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총독이 박수 엘루마와 같이 있었는데, 총독이 복음을 들으려고 할 때 엘루마가 방해했습니다. 그는 총독과 오랫동안 같이 있었고 바울은 총독을 처음 만났는데, 바울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엘루마를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힘있게 역사하시는데, 마가 요한은 시험이 들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대적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 나를 지키려는 마음보다 복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됩니다. 그 사람은 삶이 신선하고 거룩해집니다. 내일 먹을 것이 없어도, 복음에서 오는 은혜가 크기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폭풍이 쓸고 지나가듯 복음이 슬픔과 괴로움을 쓸고 지나가서 마음에 평온만 자리잡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복된 삶을 살려면, 교수를 하든지 운전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은 부업으로 여기고 복음을 주로 여기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를 베푸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여러분 생애에 복음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목회자가 안 되어도, 복음의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위해 사십시오. 복음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슬픔과 근심과 두려움을 몰아내고 밝고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을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복음보다 좋은 것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저울을 놓고 매일 ‘복음보다 더 좋은 게 있는지’ 달아 봐야 합니다.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해집니다.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며 소망 속에서 삽니다. 거룩하고 아름다워집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지켜 주셔서 슬픔과 근심과 두려움을 다 물리치고 기쁨 속에서 밝고 행복하게 삽니다.

 

전도자 훈련 과정 4

바울이 돌에 맞았지만
기쁘니까 또 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한 앉은뱅이가 마음을 다 쏟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내 말을 듣네. 표정을 보니, 말씀이 마음에 들어가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역사하시겠다.’ 바울이 그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하자 그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저분은 하나님의 종이구나” 한 것이 아니라, “신들이 왔다” 하며 그 앞에 제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겨우 말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무리를 선동해 바울을 돌로 쳐서,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끌고 가서 내쳤습니다. 제자들이 슬퍼하며 바울을 둘러서 있는데 바울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해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성도들의 마음을 굳게 했습니다.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좋지만, 감옥에 가고 돌에 맞는 것은 너무 싫다. 두렵다.’ 그런 마음이 들지요? 그렇게 살아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바울이 결국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여러분에게 두려운 마음을 주어서 복음을 위해 일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서 고통스럽겠다, 슬프겠다, 괴롭겠다’라는 생각을 가지면 두려워서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게 해놓으신 것입니다. 바울이 죽은 것 같지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삶이 바울에게 고통이었다면 다시 복음을 전하러 갔겠습니까? “죽을 뻔했다. 진절머리 난다. 이젠 복음 안 전한다.”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나도 핍박을 당하는구나!’ 영광스러웠습니다.
저도 주님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렵고 힘들게 보이지만, 한없는 평안과 기쁨과 행복이 있습니다. 굶기도 하고 추워도 보았지만, 싫지도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먹는 식탁에 이것저것 올라와 있는데, 내가 슬픔이나 괴로움을 집으려고 하면 예수님이 “내가 먹을게” 하고 먼저 잡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괴로움이 오는 것 같은데 괴롭지 않고, 슬픔이 오는 것 같은데 슬프지 않습니다. 지나고 보면 기쁨, 감사, 행복만 마음에 가득 찹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목사님, 그때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습니까? 어떻게 견뎠습니까?” 하는데, 저는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뭐하러 목사를 하겠습니까? 마음에 한없는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저는 백 번 천 번 죽었다 살아나도 목사가 되고, 복음을 위해 살고 싶을 겁니다. 이런 평안, 이런 기쁨, 이런 감사를 어디서 얻습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만 있으면 행복합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즐겁습니다. 돈을 벌 때의 기쁨은 잠깐이지만, 예수님 안에서는 욕을 얻어먹어도 기쁘고 어려워도 기쁩니다. 참된 기쁨과 행복은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바울이 기쁘니까 또 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고,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전도자 훈련 과정 5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만듭니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어나는 생각이 ‘내 형은 털 사람이고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이니, 아버지께서 보지는 못하지만 만져 보면 내가 아버지를 속인 것이 드러나 저주를 받을 텐데…’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생각을 들을 때 ‘내가 틀렸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자기에게 에서의 옷을 입혀 주고 자신의 매끈매끈한 곳을 염소 털로 꾸미는 것을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왜 못 했지? 진짜 어머니의 생각이 옳다!’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야곱은 자기 생각이 확실하다고 여겼지만, 어머니가 그 생각을 무너뜨리고 어머니의 뜻을 야곱의 마음에 세웠습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저주를 돌리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 성경을 읽으면서 ‘그럼, 리브가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거네’ 하고, 그 다음에 리브가가 어떻게 하는지 보았습니다. 야곱이 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다 준비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야곱이고 예수님은 리브가인데, 복을 받을 조건이 없는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이 우리를 완벽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보입니다.
우리는 마음에서 예수님과 전쟁을 합니다. 사람들이 마귀에게 이끌리고 있기에, 예수님이 말씀으로 그들의 눈을 밝혀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줍니다. 그 마음의 장롱 깊숙이에 있는 마귀가 준 것들을 다 버리게 하고 보화로 가득 채우시려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축복하면 그대로 되는 것을 알았고, 그 복을 야곱이 받게 하고 싶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축복의 계획 밖에 있었는데, 리브가가 축복 안으로 밀어넣었습니다. 그냥 복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섬세하게 준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일하는 것을 보면서 야곱의 마음에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성경이 너무 재미있는 것이, 이삭이 뭐라고 합니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야곱이 에서처럼 말하려고 한 것은 실패했고, 리브가가 한 일은 성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짧은 말로 우리가 한 일과 주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이처럼 기가 막히게 표현했는지…! 전율이 흐르도록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야곱이 왜 변했습니까? 그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생각을 리브가가 넣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마귀의 종으로 살았기에, 예수님의 세계를 알면 알수록 이전의 삶이 너무 형편없게 여겨집니다. ‘내가 어리석게 살았네! 병신처럼 살았네! 왜 그렇게 미련하게 살았던가!’ 성경을 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잘나고 똑똑한 줄 아는 사람은 바보 중에 바보입니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들은 성경을 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내가 무익한 사람이 되면 매일 말씀이 마음에 들어와서 삶을 바꿔 줍니다.
하나님은 죄인이라고 생각했던 여러분의 마음을 의인이라고 바꾸는 일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양으로 끊임없이 바꾸어 가십니다. 안타깝게도, 마음을 높여서 평생을 허무하게 보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유혹을 받아서 세상에 빠지고 교회를 떠나고…. 마귀는 적당히 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알면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면 마귀가 넣어준 모든 생각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뜻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만듭니다.

전도사 훈련과정 6

이제 더 이상 자신으로 살지 말고
예수님으로 사십시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를 보았을 때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라고 하셨지.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예수님은 저 사람을 능히 고치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어라!” 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영이신데 육체를 입고 오셨고, 우리는 육체에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1절에 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과 거룩함을 입은 우리가 한 영에서 났습니다. 예수님은 형님이고 우리는 동생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예수님은 처음부터 거룩하고 우리는 마귀에게 이끌려 더럽게 살다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냥 생각하기를 ‘나는 부족해, 연약해, 죄를 지어’ 합니다. 그런 쪽으로 눈을 뜨지 말고 예수님 쪽으로 떠보십시오. ‘내가 옛날에는 악하게 살았어. 이제는 예수님이 내 마음의 주인이기에 예수님이 나를 이끌어 가셔.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야.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어!’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분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20년 동안 술에 빠져서 살았던 심홍섭 형제가 온전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온전하다고 되어 있으면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해졌지만, 사탄은 온전하지 않는 것들을 보이면서 ‘너는 더러워, 너는 악해’ 합니다. 심홍섭 형제가 거기 매여 있었습니다. 제가 심 형제와 싸웠습니다.
“저는 온전하지 않습니다.”
“심 형제, 성경에 뭐라고 되어 있어?”
“온전하다고 되어 있지요.”
“성경이 옳아, 자네가 옳아?”
“성경이 옳습니다.”
“그렇지? 그럼 온전해?”
“온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추하고 악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과 우리 눈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여러분이 얼마나 거룩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에 아무 불편함이 없을 만큼 거룩합니다.
제가 구원받고 6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많은 일들을 만나는 동안 내 마음은 일정하지 않아서 주님을 사랑했다가 주님과 멀어졌다가, 근심에 빠지고 두려워했다가 신이 났다가, 흔들흔들 했습니다. 그런데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일정했습니다. ‘제 마음’을 마태복음 끝에 나오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에 못을 박았습니다. ‘내가 어딜 가든지 주님이 함께 가시는구나!’ 제가 담대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약하지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약하지 않다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주셔서 예수의 이름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심홍섭 형제가 자신이 온전하다고 믿었을 때 술이 끝났습니다. 그것처럼 여러분이 온전하게 되었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믿을 때 능력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으로 살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십시오. “너, 이름이 뭐냐?” “예수입니다.” 명찰도 여러분 성에 예수를 붙여 ‘O예수’라고 달고 다니면서, 예수님으로 사십시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