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목사는 필리핀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아!”
“남 목사는 필리핀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아!”
  • 정연자(필리핀 케숀시티교회 사모)
  • 승인 2018.07.1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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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간증 | 필리핀 남경현 선교사가 뎅기열에 걸렸던 이야기

1996년 3월, 필리핀에 파송되어 온 지 1년이 조금 지난 때의 일이었다. 한창 전도여행을 다닐 때인데, 배를 타고 가는 특별한 곳으로 전도를 가게 되었다. 구원받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마닐라 ‘케숀’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가량 이동하여 ‘루세나’라는 지역에 도착, 그 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2시간정도 이동하니 우리의 목적지인 ‘마린두께’라는 조그만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마린두께 섬의 첫인상은 매우 열악하고 어려워 보였다. 한국으로 따지면 한 30~4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개발이 미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섬에 연고자가 없어서 우리는 머물 곳과 전도할 사람을 찾아야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조금은 두렵기도 했는데, 어찌되었건 전도여행으로 갔기에 우리는 먼저 동네 이장을 찾아가 우리를 소개했다. 이장은 머물 수 있는 곳을 직접 안내해주었다. 밤이라 온통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고, 머물 곳에 도착해서도 씻는 곳과 화장실을 찾는데도 전등 하나가 없어서 더듬어 가야했다. 그 곳에 미리 받아놓은 물이 있어서 그 물로 대충 씻고 양치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다시 찾아간 화장실에서 전 날 우리가 사용한 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물은 빗 물을 받아놓은 것인데, 뭔가 둥둥 떠다니는 걸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기유충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모두 고인물에 주로 서식하는 뎅기모기의 유충들이었다. 우리가 머문 지역은 수도나 펌프가 없어서 씻거나 필요한 물을 얻어오려면 1km 가까이 걸어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데, 가서 목욕을 하고 물을 길어 오면 언제 목욕했냐는 듯이 몸은 땀으로 젖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마을의 젊은 청년들을 모아서 말씀을 전하다 보니 불편했던 것들을 느끼지 못하고 감사한 마음만이 가득했다. 장시간 햇빛에 많이 노출되어 몸도 얼굴도 많이 그을렸는데 형제자매들이 까맣게 된 남편을 보고 “목사님, 까유망기(카키색_필리핀사람들의 얼굴색) 같아요.”라고 하며 목사님이 필리핀사람처럼 까매졌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이미 뎅기열이 걸려서 피부색이 검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일주일간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배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그때부터 남편이 열이 나기 시작했다. 고열이 났지만 병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왜냐하면 이 뎅기열에 걸리면 열이 갑자기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증상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열이 떨어지니까 호전되는 줄 알고 안심했다. 그때는 에어컨도 없어서 더운 날씨에 열을 내리려고 얼음물도 써보고 오이 마사지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걸음을 반듯이 못 걷고 한쪽으로 치우쳐 휘청거리며 증상이 심상치 않았다. 하루는 교회 자매가 남편의 상황을 보고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남편을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들은 남편의 팔에 검은색의 반점이 생겨난 것을 보고 “아이고 이거 큰일 났다. 이 환자 다른 병원으로 옮길 시간이 없다.” 라고 말하고는 남편을 곧바로 중환자실로 보냈다.
그곳은 4인실인데 정말 중환자들만 모여 있었다. 중환자실이지만 병원에 왔다는 것 자체가 한편에서는 안심이 되었고, 링거도 맞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시간마다 와서 자주 살펴주니까 마음이 놓였다. 입원 후 며칠 뒤에 집을 정리하고 오는 동안, 남편에게 위급상황이 벌여졌다. 내가 도착했을 땐, 이미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병실이 조용했지만 남편이 수혈을 받는 동안 발작이 일어나 두 시간을 침대 옆 벽에 몸을 쾅쾅 부딪치다가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
남편은 바로 앞에 선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어눌하게 말했다. 배는 물이 차서 불룩하게 나와 있었고 눈도 흐려지고 혀도 굳어서 말도 제대로 못했다. “여보, 내가 안 보여요?” 하니까 “새까만 기둥이 하나 서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입원한 날부터 간호사가 와서 “입에서 피는 안 나와요?”라고 같은 말을 계속 물었다. ‘왜 저런 말을 계속 물어보지?’ 했는데 이유인즉 뎅기열은 혈소판을 파괴시켜 피를 응고시키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피가 나는지를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침대에서 떨어진 후 입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바로 간호사에게 알렸다.
중환자실에 들어 올 때 만해도 4명의 환자가 있었는데, 하루 이 틀 만에 두 명이 죽었다.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남편조차 상황이 악화되니 앞이 깜깜해지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없었다. 앞이 잘 안 보인다고 했을 때 ‘아… 이렇게 눈이 실명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 필리핀에 도와줄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을 어찌 해야 하나…’ 절망스러운 마음만 차올랐다. 그 순간에 병실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흘러나왔다.
“남경현 환자 전화 받으세요!”
‘우리가 병원에 있다는 걸 누가 알고 전화를 했지?’ 하는 생각을 하며 달려갔다. 박옥수 목사님께서 어떻게 아셨는지 필리핀 베테랑스 병원으로 전화를 주셨는데, 기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박 목사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사님!…” 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목사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요?…”
하고 말하면서도 계속 울었다.
그 때 목사님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정 자매! 울지마! 진짜 울 일 생기면 좋겠어!”
“…”
“남 형제를 필리핀에 누가 보냈어! 내가 보냈어? 하나님이 보냈어?”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하나님이… 보냈어요….”
꼭 내 마음에 구세주를 만난 듯 했다. 마치 내가 구원받았던 그때처럼 말이다.
박 목사님은 현재 상황을 자세히 물으셨다. 
“목사님, 잘은 모르겠는데 피에 무슨 수치가 있다고 해요. 그 정상적인 수치가 300~400이라고 하는데 지금 남편의 수치가 70 이하로 자꾸 떨어지고 있어요.”
목사님은 내가 하는 말만 듣고도 상황을 다 아셨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정 자매! 남 형제 안 죽어! 하나님이 남 목사를 취해가시지 않으면 남 목사는 절대 안 죽어! 남 목사는 필리핀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아!”
박 목사님 말씀을 듣는데 ‘이젠 됐다!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시지…’ 하는 마음이 살아났다. 박 목사님이 이 상황을 어떻게 아시고 전화를 하셨는지 무척 놀랍고 꿈만 같았다.
그렇게 박 목사님과 통화를 마친 후에는 조금 전에 밀려왔던 슬픔과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목사님의 음성을 빨리 남편에게 전해주고 싶어 서둘러서 병실로 뛰었다. 돌아와서 박 목사님과의 통화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남편에게 전해주었다. 그 내용을 전해 들은 남편은 덮고 있던 이불을 얼굴로 끌어올리고는 한동안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편의 마음에 내가 느낀 박 목사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 전만해도 슬픔과 흐느낌 속에 빠져있었는데 목사님의 음성으로 소망스런 마음이 되살아났다.      
입원하여 나흘 동안 죽어가고 있다가 목사님의 전화가 온 이후 병원에서는 4시간마다 피검사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검사하면서 수치가 70에서 110, 160으로 조금씩 올라갔다. 기적 같은 일이 그 날 밤새도록 일어났다. 다음날 의사가 아침 회진에 들어와서 우리에게 퇴원하라고 했다.
막상 집에 오니까 힘도 없고 이런 때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박 목사님의 주일 말씀을 계속 틀어놓고 들었다. 계속 듣다보니까 마음에 소망과 힘이 다시 생겼다. 한 주 후에 김학철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했는데, 남편은 말씀을 통역하면서 기력을 회복했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한번 크게 앓아서 그런지 자주 지쳤는데 그때마다 박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힘을 얻었다. 
선교를 막 시작했을 때는 선교사의 삶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여린 마음을 가졌다. 하나님은 그러한 일들을 경험하고 부딪치게 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셨다. 그 후에 뎅기열로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가 여러 명 있었는데, 그때마다 말씀으로 그들을 격려하며 이끌어주었을 때 형제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을 보았다.
목사님이 전화로 하신 말씀 중에 “아직 필리핀에 할 일이 많아!”라고 하신 말씀은 마음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목사님이 인도해주신 말씀이 필리핀에 역사해 2010년에는 청소년 월드캠프를 하게 했고, 그 월드캠프로 인해 2013년에는 교사들을 교육하게 했으며, 2018년에는 필리핀의 마약 자수자교육까지 연결되어 필리핀 전역이 우리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큰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글 | 남경현 선교사 (필리핀 케숀시티교회)

필리핀 의사가 “이 한국 사람은 죽을 것이다!”라고 한 말이 마음에서 왱왱거렸다. 병실에 누워서 내가 처한 형편을 보면서 ‘내가 인생을 여기서 이렇게 마치려고 왔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럴 것 같지 않을 거라는 마음도 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필리핀에 보낼 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 3:2)라는 말씀을 주기 때문이다. 병원에 누워 있을 당시에는 ‘내가 과연 이렇게 죽을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아내가 목사님이 전화로 해주신 말씀을 들려주었다. ‘남 목사를 누가 필리핀에 보냈어? 남 목사는 죽지 않아! 하나님이 보냈으면 죽을 수가 없어!’라고 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을 듣는데 ‘그렇지! 하나님이 나를 필리핀에 보냈지! 그러면 죽을 수 없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목사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양 눈가에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마치 꺼져있던 내 마음의 엔진에 시동이 다시 걸리는 것 같았다. 목사님이 전화를 주신 그때부터 몸이 급격히 좋아졌고 의사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병원에서 네 시간 주기로 네 번의 피검사만 한 뒤, 하루 만에 퇴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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