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8.11.16 10: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는 삶

 

모든 것을 갖추어 놓고도 평안이 없는 사울 왕
신앙의 두 모습을 사울과 다윗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울 왕에 대해서 “…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삼상 14:52)라고 기록되어 있고, 다윗 왕에 대해서는 “…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삼하 8:4)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사들을 불러 모으는 사울’과 ‘말의 힘줄을 끊어버리는 다윗’의 삶의 방식에서, 두 사람이 어떤 사고를 가졌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 주실 것에 마음을 전혀 두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힘 있는 자나 용맹 있는 자들을 불러 모아 곁에 두었습니다. 하지만 블레셋 장수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그들은 사울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고, 그들로 인하여 사울이 마음에 평안을 얻지도 못했습니다. 용사들이 항상 곁에서 지켰어도 사울은 늘 손에 단창을 가지고 앉았고(삼상 19:9), 누가 뒤에서 공격할까 불안하여 평소 벽 곁에 앉았으며(삼상 20:25), 악신이 내려 그가 집에서 *야료했으며(삼상 18:10), 악신이 사울에게 접해(삼상 19:9) 고통스런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사울의 죽은 것은 …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대상 10:13~14)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다윗은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승리는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애쓰지 않고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나아갈 때,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라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군복을 입히고 놋투구를 씌우고 갑옷을 입혔지만, 다윗은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삼상 17:39)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소바 왕으로부터 마병 일천 칠백을 사로잡았을 때, 그 가운데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말들은 힘줄을 다 끊었다고 했습니다(삼하 8:4). 고대 사회에서 국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말에 대해, 하나님은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신 17:16)라고 하셨습니다. 말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려고 전쟁의 날에 강력한 무기가 되는 말들의 힘줄을 끊었고, 그러한 다윗에 대해 성경은 “…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 8: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 왕이 인간적으로 도움이 되는 좋은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과 마음을 합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 13:22)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다윗 왕은 사무엘하 8장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습니다. “이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삼하 8:1) 메덱암마는 굴레나 멍에를 뜻하는 ‘메덱’과 어머니를 뜻하는 ‘암마’가 합쳐진 복합어로, 직역하면 ‘어머니의 굴레(모성의 굴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메덱암마는 블레셋의 주요 도시였던 가드,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글론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에게 ‘메덱암마’는 무엇일까요? 모태에서 물려받은 유전적인 죄성, 즉 영적인 세계를 늘 거스르고 대적하는 육신의 생각을 메덱암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형편을 보게 하고 주님이 돕지 않으실 것 같은 생각을 넣어서 성도들을 얼마나 불안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어떤 새로운 일들 앞에서든지 매사에 형편을 보게 하여 달려나가지 못하고 주저하게 만드는 본성이 바로 메덱암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탐지하고 오라고 족장들을 보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족장은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탐지한 땅을 악평함으로써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민 14:32)라는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멸망에 빠지게 했습니다. 열 명의 정탐은 그들의 마음에서 ‘메덱암마(육신의 굴레)’를 빼앗기지 않고 살아왔기에, 매사에 육신의 생각대로 산 것입니다. 사울처럼 말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약속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보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민 14:24)이라는 말씀대로 메덱암마를 빼앗긴 이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땅에 엎드리게 하고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다윗 왕이 모압을 칠 때,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용사들을 의미하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어린아이와 노인, 여자들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성실하고 인정받고 세움을 받고 잘나서 흐뭇한 것들, 즉 두 줄 길이가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영혼을 얼마나 망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두 줄 길이의 마음으로는 주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서 그것들을 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한 줄 길이, 즉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익한 마음은 남겨 두셔서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메덱암마 즉 주님이 돕지 않으실 것 같은 불신의 마음과, 내가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생각하고 자만하는 육신의 마음을 주님이 빼앗아 가십니다. 땅에 엎드리게 하시고 줄로 재어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십니다. 말의 힘줄과 같은 인간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시키시는 그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누구나 머리 숙여 주님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시 122:5)
다윗의 집에서 나오는 판단이 있습니다. 바로 메덱암마를 빼앗고, 두 줄 길이의 사람을 죽이고, 말의 힘줄을 끊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도 이 판단의 보좌가 굳건히 세워져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인간의 수고와 애씀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만 나타나는 은혜의 보좌 앞에 서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때,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해주실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