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 선악을 아는 것
믿음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 선악을 아는 것
  • 김양미
  • 승인 2018.11.01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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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이르는 길 |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10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정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자신감을 가지면…
아프리카 정글에 가면 아주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건강하다, 내가 무얼 잘한다, 내가 머리가 좋다’ 등등의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정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자신감을 가지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아프리카에 전도여행을 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루는 사파리를 방문했습니다. 동물들이 야생 상태로 지내는 사파리에서는 차를 타고 다니면서 동물들을 구경하는데, 차에서 내려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 얼룩말들이 여유롭게 서 있는 광경을 보고 목사님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얼룩말들이 저렇게 있는 것을 보니, 주변에 사자가 없는가 보다. 차에서 내려 가까이 다가가서 얼른 사진을 찍고 돌아와야겠다. 만약 사자가 오면, 저 얼룩말들이 도망가겠지. 얼룩말들이 도망가는 것을 보면 나도 얼른 차로 돌아오면 되겠다.’
목사님이 차에서 내려 얼룩말들 가까이 가서 얼른 사진을 찍고 차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얼룩말은 사자가 어느 정도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사자가 얼룩말보다 빨리 달리기는 하지만 숨이 차서 오래 뛰지는 못하기에, 얼룩말은 사자가 다가와도 어느 정도 간격만 유지되면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카메라를 들고 얼룩말 가까이 갔으니….
아프리카에서 사파리를 여행하거나 정글에 들어가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되어야 가장 안전합니다. 똑똑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힘 좋은 사람도 자신의 판단을 따르지 말고 안내하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들어야 합니다. 자신을 믿고 함부로 행동했다가는 틀림없이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 기준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을 때, 인간은 선과 악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아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난 뒤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선과 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가 벌거벗었네. 부끄럽다!’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소는 그 큰 덩치가 벌거벗고 지내는데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가 선악과를 먹었다면, ‘아이, 부끄러워. 이 큰 몸을 무엇으로 가리지?’ 했을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선과 악을 구분해서 ‘이게 옳다, 이건 그르다’ 하는 기준이 사람에게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삼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사람들은 ‘선과 악을 알아서 좋은데 우리가 왜 죽냐?’고 반문합니다. 문제는, 그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과 다르게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가지고 살고, 그 기준을 가지고 선을 행하고, 그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데, 하나님의 기준에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 기준에 맞추어 살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른 신앙생활이 되지 않아 생명을 얻지 못하고 사망에 이릅니다. 그 기준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 기준 때문에 자기 고집을 좇아 살아서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만날 때 일어나는 제일 큰 문제
사람들은 무엇을 아는 것을 실력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특별히 신앙의 세계에서 ‘내가 안다’는 생각을 가지면 신앙이 굉장히 어려워집니다. 내가 아는 것과 하나님이 아시는 것이 서로 다를 때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만날 때 일어나는 제일 큰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고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해라. 내가 너를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
“예, 하나님. 아브라함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라’라고 해라.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라.”
아브라함이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기 기준과 너무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젊을 때에도 아이를 못 낳았는데, 백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인데…. 게다가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으니 어떻게 아이를 낳지? 말이 안 돼.’
아브라함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이스마엘이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경험하고 배워서 아는 것을 가지고 인생의 길을 뚫고 나가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길과 다를 때 그것 때문에 믿음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야,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거야. 그 이름을 이삭이라고 해.”
하나님은 인간을 만나실 때마다 답답하십니다. 하나님이 “네 아내가 아들을 낳는다.” 하시면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라고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조금 아는 지식을 가지고 ‘백세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아? 사라는 구십 세인데…. 진짜 웃기는 말씀을 하시네!’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만날 때 늘 그런 문제로 부딪힙니다. 그래서 신앙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맞으면 ‘아멘’ 하고 받아들이지만, 맞지 않으면 안 들은 척하면서 슬쩍 넘어가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고 하여 그 집에 가셨습니다. 사람들이 울고 있는데 예수님이 “울지 말라.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자신들이 볼 때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맥박이 뛰지 않고 싸늘하게 식어 가는데 잔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저런 소리를 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고 위대한 분으로 여기기에 예수님이 친밀하게 느껴지지, 실제로 예수님과 마음을 맞추려고 하면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이 틀렸으면 하나님을 따라가지만, 옳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우리가 아는 선악, 그것 때문에 신앙이 되지 않고 우리 영혼이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버리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싸움은 다 ‘옳은 것’이 붙입니다. “내가 틀렸소!” 하며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옳기 때문에 싸웁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폭력 앞에서 하는 수 없이 굴복할 수는 있어도 마음에서 그 옳음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그 옳음을 무엇이 만들었습니까? 바로 선과 악을 아는 지혜가 옳다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과 우리 마음이 맞지 않는 부분이 정말 많습니다. 그때 자신이 틀렸으면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을 따라가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대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것은 한 면일 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지는 못합니다. 눈으로 앞을 보면 뒤를 못 봅니다. 멀리 있는 것도 못 보고, 높이 있는 것도 못 봅니다. 과거나 미래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현재 우리 눈앞에 있는 지극히 적은 부분일 뿐입니다. 만물박사가 된다 해도 지극히 적은 것밖에 알지 못합니다.
그런 눈을 가지고, 과거와 미래를 보시며 우주 만물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손톱만큼 아는 것으로 자신이 안다고 ‘뭐가 어떻게 저떻고’ 하며 따진다면, 그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사니까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똑똑합니다. 잘났다고 생각하면 잘났고, 옳다고 생각하면 옳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을 모른 채, 자신이 보는 것이 정확하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알고 삽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고, 믿음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참된 회개를 바탕으로 시작됩니다. 먼저 내 생각을 다 버리고,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볼 때 죽었지만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시면, 죽었다는 내 생각을 버리고 산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으니까, 나는 죽었다고 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살았다고 하시면 살았다.’라고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내가 볼 때 병신이라도 하나님이 걸어간다고 하시면 걸어가는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신앙은 아주 단순합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생각은 마귀가 속여서 비뚤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어떠하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자기 판단을 믿습니다. 자기 선악의 기준을 믿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우리에게는 이미 선악을 아는 지혜가 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악과를 먹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돌아갑니까? 선악과를 따먹은 후 생긴 판단, 옳다는 생각 등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율법을 지키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에 이끌림을 받아서 사는 참된 신앙생활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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