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소이다 나는 항상 악한 사람입니다
옳소이다 나는 항상 악한 사람입니다
  • 임민철(부산대연교회 목사)
  • 승인 2018.11.1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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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사람들이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할 때 교회로부터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믿음이 좋으십니다. 잘하셨습니다. 더욱 잘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롬 3:4)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선한 것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시고 사람은 항상 악하며 거짓되다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선하게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다니니까 전보다는 바르게 살아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집사, 장로, 전도사, 목사가 되면 전보다 더 바르게 살아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이끌려서 선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속에도 이런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았으니까 이제부터는 구원받기 전보다 바르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우리를 하나님과 더욱 멀어지게 하고 믿음으로 살 수 없는 길로 들어가게 만듭니다.
항상 악할 뿐인 우리에게는 길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자신 안에 선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지 않는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을 저주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겼기에 은혜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사람은 항상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선이나 의로운 행위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이 없어서 항상 악으로 달려가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쏟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떠나서 육신의 길을 따라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를 내가 악하게 살기 때문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악을 행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악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지 않는 것을 문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는 것입니다. 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종교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 신앙입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3:17)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1~28)
가나안 여자는 버림을 받은 족속의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에게 흉악한 귀신이 들린 딸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딸을 위하여 많은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길이 없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나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며 여자의 청을 한 마디로 거절하셨습니다. 그가 이방인이라고 거절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이 이방 여자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를 다시 거절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즉, 여자에게 개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과연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절박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갔는데 돌아오는 것은 ‘이방 여인이요, 개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은 ‘네, 맞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큰 믿음이란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를 아는 것
‘믿음이 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하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여자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하여 큰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셨습니다. 믿음이 크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여자처럼 우리가 비로소 말씀 앞에서 “옳소이다. 나는 죄인입니다. 옳소이다. 나는 항상 악한 사람입니다. 옳소이다. 나는 항상 거짓됩니다.”라고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우리에게 길이 되고,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힘있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2006년에 저는 미국으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선교를 잘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를 실패하고 사역도 할 수 없어서 2년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비로소 ‘내가 가장 못난 사람이요, 가장 더럽고 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악하고 거짓된 사람이기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길이 없어서 예수님을 날마다 찾았고, 그때마다 예수님이 나를 매일 인도하셨기에 저도 믿음이 크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도 자신이 얼마나 악한 사람인지를 발견하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큰 믿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