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 월간 기쁜소식
  • 승인 2018.12.1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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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이르는 길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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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말하는 바

12편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어떤 일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보는 것과 그 이면을 보는 것이 다를 때가 많습니다.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성경 말씀을 표면적으로 보는 것과 그 이면에 들어가서 보는 것이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인간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십계명과 그 외에 여러 가지 법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섬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법으로 섬길 것인가, 마음으로 섬길 것인가?
남자가 나이가 들어 결혼할 때가 되면, 하나님이 결혼하라는 법을 주셔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여서 결혼합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런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법을 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모의 마음에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기 때문에, 부모는 사람들이 보든 안 보든 자식을 위해 희생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을 섬기는 것도 마음으로 섬기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율법을 따라 섬기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율법은 마음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섬기는 것이 법이 되어서 인간이 억지로 섬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 속에 당신을 섬기는 마음을 만들어 주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법에 매여서 ‘내가 십계명을 지켜야지! 탐내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복을 받는 두 가지 길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율법은 왜 주셨을까요? 먼저 율법에 대하여 알아 보면, 율법에는 긍휼이나 자비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머물 때,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여러 법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포했습니다. 그 율법에 보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상한 것은 상한 것으로…”라고 하며 당한 대로 갚아 주라고 했지, 긍휼이나 자비나 은혜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잘 지키다가 하나라도 어기면 그에 대하여 혹독한 심판이 뒤따라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고 율법을 잘 지키면 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율법은 하나라도 어기면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율법으로는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그래서 노아를 만나셨을 때나 아브라함을 만나셨을 때 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약속하셨습니까? “내가 너에게 복을 주고, 네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그처럼 복을 주는 데 있어서 아무 조건도 달지 않으셨습니다. 조건 없이 그냥 복을 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주는 법을 네가 잘 지키고 나에게 순종하면 복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하실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법을 어기거나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면 복을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네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복을 주겠다.”라고 하실 수 없는 이유가 아브라함이 거짓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기 신변을 지키려고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사라의 여종 하갈을 취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는 복을 받는 길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신 28:2~19)
하나님이 명하신 율법을 다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들이 교인들의 집을 심방해서 신명기 28장 말씀을 가지고 축복하는 기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이 집 사람들이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해주시기를 축원하나이다!” 복을 기원한 것 같지만,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복은 ‘율법을 다 지켰을 때’ 주어지는 것으로,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복을 받지 못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9~12)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으며,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율법을 지켜서 복을 받겠습니까? 사람들 가운데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결국 저주를 받게 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는 것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인간에게 결국 저주를 받는 율법을 주셨습니까? 이에 대하여 로마서 3장이 대답해 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우리가 볼 때에는 사람들 가운데 선한 사람이 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죄인이요, 다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 사실을 깨우쳐 주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났다는 사람도 똑똑하다는 사람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다른 사람과 똑같습니다. 사람이 개미를 볼 때 예쁜 개미가 있고 못생긴 개미가 있습니까? 다 같습니다. 그래도 개미 세계에 가면 아마 ‘나는 다리가 길어. 나는 허리가 가늘어. 나는 예뻐. 나는 똑똑해. 나는 부지런해. 나는 정직해.’ 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 법 없이 살 사람도 있고, 악질도 있습니다. 우리 차원에서 보면 그렇게 구분이 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똑같습니다. 다 추하고 더럽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인간은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차원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 보기에 대단히 의롭고 깨끗하게 생각되는 것도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그런데 아직까지도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도 죄를 회개하고 율법을 지키며 선하게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나는 금식 기도를 했다, 나는 헌금을 많이 했다, 나는 새벽 기도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 나는 삶을 드려서 주님을 섬겼다…. 이처럼 자기가 행한 일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일 장수가 과일을 바구니에 담아서 팔 때 작은 것은 밑에 놓고 크고 좋은 것은 위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잘한 일을 위에 두어 나타내지만, 속에는 더럽고 거짓되고 음란한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뒤집어서 보면 갖가지 더러운 것들이 나오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작은 선이 있으면 그 안에 큰 악이 있고, 깨끗한 것이 조금 있으면 더러운 것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 자체가 모든 사람을 심판 아래 있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 아래 있다’는 것은 ‘이미 법을 어긴 자’라는 것
율법은 누구에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롬 3:19) 이 말씀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입니다. 그렇다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 19절 말씀대로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해진 것’이기 때문에,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도로교통법을 어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도로교통법이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도둑질하지 않는다면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죄를 범하기 때문에 법을 만든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도둑질하지 말라는 법을 만들었고, 간음하는 자가 있기 때문에 간음하지 말라는 법을 세웠습니다. 아무도 거짓말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는다면 그런 법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있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법이 왔다는 것은 이미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법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은 ‘이미 법을 어긴 자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법을 어긴 사람이 앞으로 법을 잘 지키면 이미 어긴 것이 없어지겠습니까? 살인하거나 도둑질한 사람이 그 뒤로 그런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면 그 죄가 없어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깨끗하다, 정직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