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말하는 의가 아닌 또 하나의 의(義)
율법이 말하는 의가 아닌 또 하나의 의(義)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9.01.1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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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에 이르는 길 |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2019년 1월호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율법 외에 의가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박옥수 목사가 오래 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들은, 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큰 교회의 담임 목사이며 신학 교수였습니다.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를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서 자신의 양복은 낡고 구두는 떨어져, 겉모습은 목사 같지 않은 이였습니다. 그처럼 남을 위하며 살았지만, 그는 마음의 죄로 인해 고통하면서 혼자 예배당에서 죄를 고백하며 기도했고, 더 바르게 살려고 마음을 쏟았습니다. 토요일이 되면 출입을 아예 삼가고 주일 예배 때 전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설교하려고 로마서 3장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바들을 메모해 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21절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라는 구절에서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율법 외에 의가 있다고?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율법대로 살아야 의롭게 되는 줄 알고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 율법 외에 의가 있다니?’ 교수로서 그동안 많은 신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율법 외에 의가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에 처음으로 부딪혀 왔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율법과 상관없이 의롭게 되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자신이 아는 의롭게 되는 길은 죄를 짓지 않고 율법대로 사는 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죄를 지어서 의롭게 되는 일에 실패했기에, 율법 외에 의가 있다는 말씀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마서 3장 21절을 다시 찬찬히 읽었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이 구절의 뒷 부분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율법이 언제 의를 증거했지? 어느 선지자가 어떻게 의를 증거했지?’ 이어서 22절을 읽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여전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3절을 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구절은 이해가 아주 잘 되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24절을 읽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대목에서 그 목사님은 드디어 율법과 상관없이 의로워지는 길을 발견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길을 발견하고 목사님은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추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기뻐하다가 감사하다가 했습니다.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
찬송 중에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전에 뵈올 때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라는 가사의 찬송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을 사시는 동안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그 의를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님의 의가 내 의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행한 일을 가지고 섭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향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23).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자신이 한 일을 나타냈습니다. 내가 이렇게 했고, 내가 이렇게 했고….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행한 일을 들고 하나님 앞에 서려고 합니다. 나는 금식기도를 했다, 나는 헌금을 많이 했다, 나는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행한 일을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의롭게 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는 말씀대로 될 뿐입니다.
로마서 10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마음을 쏟아서 하나님을 섬기면 되는 줄로 알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그냥 열심히 하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모르고 자신이 의로워지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려 하고, 착한 일을 하려고 애를 씁니다. 사람들이 왜 그처럼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신 말씀이 야곱과 에서 이야기입니다. 에서는 자신이 열심히 해서 복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잡은 짐승으로 요리를 만들어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냥을 했습니다. 노루 같은 짐승을 잡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잡았다 해도 그것을 메고 산길을 내려오려면 또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에서가 그처럼 힘을 다해 짐승을 잡아 그것으로 요리를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가지고 갔는데,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복을 내렸습니까? 그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어머니 리브가가 만들어 준 요리를 들고 아버지 앞에 나가 복을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요리했으니 아버지의 입맛에 얼마나 잘 맞았겠습니까?
야곱과 에서 이야기는, 자신이 열심히 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은 저주를 받고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해 예수님이 하신 것을 들고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잘하는 에서가 되지 말고 못하는 야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했던 서기관이나 율법사 같은 사람들은 저주를 받고, 간음하다 잡힌 여자나 십자가의 강도나 세리 삭개오 같은 사람들은 은혜를 입고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악하고 추한 자신을 다듬으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 내 것을 들고 가지 않고 예수님의 것을 들고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선하거나 잘한 것을 들고 가면 안 됩니다. 그것들은 결국 저주를 불러오기 때문에 다 내던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때, 사람들이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서 10장 말씀대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자신의 의를 내던지고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더럽고 추하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고 거룩하셔. 그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셨고, 당신의 의를 나에게 주셨어. 내가 그 의를 받아들였어. 이제 예수님의 의는 내 거야. 나는 예수님의 의를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를 값 없이 주신 하나님
예수님은 우리 죄악을 가져가시고, 당신의 거룩한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의를 공짜로 주셨습니다. 아무 노력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값이라도 치르고 의를 받는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의 의를 은혜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같으면 “자, 앞으로 나와서 한 사람씩 예수님의 의를 받아 가세요.”라고 하겠지만, 의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의 의를 나에게 주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의롭게 하셨구나. 그렇다면 내가 의롭구나!’ 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당신의 의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나의 의가 아니라 당신의 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룩합니다! 당신만큼 의롭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예수의 의가 너에게 있으니 네가 의롭다.”

우리가 행한 것은 주의 것, 주님이 행하신 것은 우리 것
우리가 한 일은 예수님이 다 가져가시고, 예수님이 하신 일은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우리가 거짓말한 것도 도둑질한 것도 잘못한 것도 예수님이 가져가시고, 병든 것도 예수님이 가져가셨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이 행하신 의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쉽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아멘!’ 하고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습니다.
죄를 짓지 않아서 의롭게 되려고 하면 얼마나 어렵습니까? 조심스럽게 살다가 실수하면 ‘어이쿠, 또 죄를 지었네! 이걸 어쩌나?’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가져가시고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시니까 우리가 아주 쉽게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으면 충분합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자신이 행한 것으로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저주를 받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금식기도 한 것, 예배당 지은 것 등등을 마음에서 지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만 잡는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지만, 예수님의 의가 있어!’ 그 의를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이 행하신 것만큼 대접을 받으십시오.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말하면 “당신, 죄 안 지어요?”라고 따져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의는 ‘내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의 의’입니다. 내가 죄를 짓지 않고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의 의를 마음에 받아들여서 의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의롭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주시고,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의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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