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하게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회개하게 한다
  • 조규윤(기쁜소식한밭교회 목사
  • 승인 2019.02.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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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 2019년 2월호
야곱의 사다리

언제 어떻게 하나님을 떠난 것일까?
요한계시록 보면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3~4) 주님은 에베소 교회가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알지만, 책망할 것이 있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뒤 마음에서 주님을 잃고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무익하다. 그런데 오늘날 주님을 잃고 살면서도 감각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다.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주님은 그런 우리에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라고 하신다.
성경은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신을 믿는 사람’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 17:5~7) 자신을 믿는 사람, 곧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이 사람은 언제 하나님을 떠난 것일까? 우리가 돌이키려면 언제 어떻게 하나님을 떠났는지 알아야 한다.

왕궁에 들어가 지내면서 믿음을 잃고 규례에 갇혀 산 에스더
에스더 성경에 보면, 하만이 쓴 조서로 인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에 유대인들이 크게 애통하고 금식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 위에 누운 사람이 무수했다. 에스더의 사촌오빠로 에스더를 부모처럼 양육했던 모르드개 역시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은 뒤 머리에 재를 뒤집어쓴 채 대성통곡하며 대궐 문 앞까지 갔다.
그런데 에스더는 아무것도 모른 채 왕궁에서 왕후로서의 삶에 젖어 지냈다. 자신도 유대인이기에 ‘모든 유대인을 죽이라’는 조서대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도 몰랐고, 모르드개가 왜 재를 뒤집어쓰고 대궐 문 앞에 있는지 알려는 마음도 없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무엇 때문에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쓴 채 통곡하며,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대궐 앞에서 저렇게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에스더는 아무 생각 없이 모르드개가 입은 베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려고만 했다. 모르드개가 거절하자 그제야 내시 하닥을 시켜서 무슨 연고인지 알아 보라고 했다.
모르드개는 하닥에게 유대인을 진멸하라는 조서의 초본을 건네며 그것을 에스더에게 주고, ‘왕에게 나아가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전하게 했다. 그런데 에스더는 유대인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조서를 보고도 자신이 여전히 왕후였지, 죽임 당할 민족의 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왕에게 나아가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에 4:11)
에스더는 왕궁에 들어가 지내면서 믿음을 잃고 형편과 규례에 갇혀 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나에게는 목회에 실패하고 힘들게 지냈던 시절이 있다. 그 뒤 다시 목회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꿈만 같았다. 하나님은 나를 망하고 실패한 자, 부끄러운 자의 위치에 두어 감사하면서 살게 하셨다. 그렇게 지낸 지 1년쯤 되었을 때 아들이 문제를 일으켰다. 나는 아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주위 목사님들이 ‘왜 자식 문제를 교회 앞에 내놓지 않고 아버지가 쥐고 있느냐?’고 했다. 그 말을 좇아서 어느 목사님에게 아들 문제를 이야기하며 내 마음을 그대로 내놓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전에 갖지 못했던 마음이 자리 잡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문제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구나! 자식 문제 앞에서는 부모가 죄인이 되는 법인데, 하나님이 나를 죄인으로 만들려고 하셨구나.’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깜짝 놀랐다. 내 마음의 위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실패한 자의 위치에 두셨는데, 어느새 그 자리를 떠나버렸던 것이다. 마음이 높아져서 변질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잃었을 뿐 아니라 감각도 잃어서 그렇게 사는 나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비로소 마음을 돌이킬 수 있었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롬 2:4)
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나를 회개케 하시려고 당신의 인자를 나타내셨다. ‘내가 목회를 잘하고 있다’는 높아진 마음을 버리게 하시려고 문제를 주어 일하셨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다시 아무것도 아닌 자로 낮추어 주셨다.

모르드개를 좇았던 에스더처럼 인도를 받아 살면
에스더는 왕궁에서 지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 것이 아니라 왕후로 사는 삶에 젖어 있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잃은 채 규례에 매여 살면서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런 에스더에게 모르드개의 책망이 들려왔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유대인을 죽이라는, 어인이 찍힌 조서 초본을 보고도 마음에 아무 감각 없이 육신에 젖어 살던 에스더. 하나님과 멀어지고 끊어져서 하나님을 바라보거나 소망하지 못하고 형편의 종이 되어 끌려가고 있던 에스더. 왕궁이 마치 안전지대인 것처럼 그곳에 머물러 있는 에스더를 위해 모르드개가 싸워 주었다.
자신을 믿으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삶에서 에스더는 스스로 벗어날 수 없었지만, 모르드개가 싸워 줌으로써 자신과 형편에 묶여 있던 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모르드개의 마음을 받아 그처럼 발을 내디뎠을 때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열어 에스더에게 금홀을 내밀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는 하나님의 큰 역사를 맛보았다.
성도들이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하나님을 잃고 육신에 젖어서 육신의 욕구를 즐기면서 살고, 영적인 감각도 잃어서 그렇게 지내는 자신을 느끼지 못한 채 어둡게 사는 모습을 자주 본다. 누구든지 자신의 감각을 믿고 자기 생각을 따라서 산다면 망하는 길을 갈 것이다. 반대로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인도를 좇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의 인도를 받아 그 감각을 가지고 산다면 삶 속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맛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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