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하나님의 귀한 종, 故허인수 목사 주님 곁에 평안히 잠들다.
[울산] 하나님의 귀한 종, 故허인수 목사 주님 곁에 평안히 잠들다.
  • 김교환
  • 승인 2019.03.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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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8일 월요일 새벽 6시, 하나님의 귀한 종인 허인수 목사가 향년 52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건강과 믿음'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수많은 암환자들을 병에서 낫게 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르쳐준 허인수 목사. 이제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쉽기만 하다. 故허인수 목사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허 목사의 지나온 발자취를 함께 밟아보고자 한다.

믿음의 삶을 살아 25년간 복음을 증거한 故허인수 목사
믿음의 삶을 살아 25년간 복음을 증거한 故허인수 목사

1995년 건장한 시골 청년이었던 허인수 목사는 급성백혈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찾아온 백혈병은 그의 청춘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그의 마음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하지만, 그 백혈병으로 인해 허인수 목사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죄 사함이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입관예배를 치르고 있는 故허인수 목사의 유족들과 울산교회 성도들

다음은 故허인수 목사의 절친한 친구인 김대인 선교사의 조사(弔詞)다.

"1995년 2월 어느날 인수 모친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야야! 우리 인수가 집에 와 있다. 자네가 와서 말 동무좀 해 주게!' 인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다 죽어가고 있었다. 우리집은 아버지께서 한약방을 하시고 어머니께서는 신약방을 했기 때문에 가져갈 약은 많았지만 백혈병을 낫게 하는 약은 이 세상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박카스 한 박스를 가지고 친구에게 찾아갔다. '예수님이 인수를 고통에서 분명 구원해 주실거야~' 인수 집은 거창군 가조면 동례리 안금 시골 산 밑 마을이라 아주 조용하고 적막한데 병져 누워 있으니 등만 달면 초상집과도 같은 분위기였다. 똑똑! '인수야! 나 대인이다.' '어 대인이가!' 인수는 항암제 투여를 많이 해서 머리카락이 한 번 다 빠지고 새 머리카락이 양털처럼 보드랍게 자라고 있었다. 식은 땀이 나고 어지러워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했다. 담배를 한 대 꺼내 물고는 '대인아! 내 인생은 끝났다.'고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지은 죄는 많고 이젠 돈이 다 떨어져 헌금도 못하고 힘이 없어서 봉사도 못하니 난 죽으면 분명 지옥 갈끼다. 내게 남은 건 귀 밖에 없다.' 그때 난 박~수를 쳤다 '바로 그거야! 귀만 있으면 된다. 아니 하늘나라 가는데는 귀만 있어야 한다. 하늘나라는 행위로 가는게 아니야 믿음으로 은혜로 가는거야...' 며칠 후 인수는 거창교회 오세재목사님께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후 부모님이 구원 받았다. 집안 분위기는 반전되어 잔칫집이 되었다. 너무나도 기뻐하던 인수는 헌금함 위에 앉아 있다가 책망을 받기도 했다. 인수는 하나님께 뭔가 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없어 쓰잘떼기 없는 몸이지만 이 몸이라도 받아 주신다면 남은 인생 복음을 섬기면서 살고 싶다고 얘기했다. 어느날 아프지만 나았다는 박옥수 목사님의 간증을 읽고 '그럼 나도 목사님 처럼 다 나았네!!' 하면서 벌떡 일어나 지게 작대기를 짚고, 논에 일하러 가니 벼를 베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깜짝 놀라 '야야 괜찮다 집에 가서 쉬고 있거라.' '아버지 저 다 나았어요.' (죽을때가 되면 맘이 변한다 카더니 이놈이 정신이 나갔구나!) '어이구 인수야~' 그때부터 건강이 좋아지면서 1년 뒤 경북대 병원에서 피 검사를 해보니 백혈병이 깨끗이 나았고 박계화 자매와 결혼을 하고, 기쁜소식 선교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故허인수 목사

그 후 목사님이 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선교사로도 활동 했으며 국내외 두루두루 25년 동안 줄기차게 복음을 섬기는 동안 암을 6번이나 이기고 건강과 믿음이라는 주제로 마인드 강사로도 활동을 하면서 전 세계 암 환자에게 소망을 주고 주님의 온전케 하심을 선물해 주었다.언젠가 친구는 나에게 얘기했다. '대인아 우리 교회는 암걸리면 암떡 잔치한데이~.' 난 돌떡잔치는 아는데... 암떡 잔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다. 이 세상을 완전 거스리는 전혀 차원이 다른얘기인지라 너무나도 신기하게 들렸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고?' '잘 들어봐라 성경에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라 했재? 목사님께서 말씀만 믿는게 믿음이라고 했잖아! 그러니 믿으면 기쁘고 감사해야 하잖나? 그런께로 당연 암떡 잔치를 해야재...' 그야말로 허목사는 말씀을 그대로 믿는 하나님의 종이였다. 자신도 비장에 10cm짜리와 8cm짜리 암을 두개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몸을 전혀 돌보지 않고 연속적으로 구역집회를 열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고, 암환자들에게도 믿음에 대해 계속 상담해주고 소망을 주었다. 허 목사가 남아공 더반 선교사때는 아들 용주와 용민이는 영어를 배워 토익 점수가 만점에 가까울 정도로 영어 실력이 대단하고 장차 선교사가 꿈이라고 한다.

故허인수 목사와 가족들(왼쪽에서부터 故허인수 목사, 차남 용민, 장남 용주, 박계화 사모)

2019년 3월4일 암으로 투병중인 인수의 사진을 지인으로부터 한 장 받게 되었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어서 난 깜짝 충격을 받았고 울컥했다. 이렇게 까지 위독한 줄은 몰랐다. 전화를 거니 박계화 사모님이 받아서 인수는 현재 온 몸에 암이 퍼져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데 내가 주고 간 두리안만은 한 동안 조금 먹었다고 했다. '인수좀 바꿔주세요~ 인수야~ 힘내라! 내 목소리 들리나?' '으응....그래 대인이가? 아파 죽~~~겠다. 개~새끼야!' 그동안 나에게 아파도 한번도 아프다고 한적이 없던 친군데 이젠 찐~~짜 정~말 너~무 아픈것이다. '대인아 내가 힘내께... 보고..싶데이~ 대인아 나에게 욕 좀 해다오~' '그래 이 문디 새끼야! 이 꼬라지가 머꼬?? 빨딱 일어나거라~ 씨팔놈아...' 구원 받고 나서 우린 목사가 되었지만 이 순간 만큼은 우린 둘 다 어릴적 개새끼로 돌아갔다. 목사뚜껑과 함께 모든 가식이 날아가고 정신이 또록 맑아졌다. '여보! 아무리 바빠도 내가 한국에 가 봐야겠어!. 내가 가면 친구는 발딱 일어날거야! 25년 전에도 그랬어~' 앞선 목사님들께서도 빨리 들어가 보면 좋겠다고 하셨다.

故허인수 목사와 김대인 선교사

3월8일 부산공항에 아침 일찍 도착해서 두리안을 가지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 갔다. '어... 대인이가...' '그래 인수야! 두리안이다. 좀 무우라~' 진통주사 없이는 병 뚜껑에 물 한모금 마시기도 힘들지만 입을 겨우 벌렸다. 난 손가락에 조금 묻혀서 혀에 한 번 문질러 주었다. '한 번 주면 정없다 카는거 알재?' 한 번 더 문질러 주었다. '고..맙...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다아 죽었다 카더라... 하지만 하나님의 종 박목사님만 나를 살았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난 살았다...' '그래 나도 그 분의 기도로 유두고 처럼 살아났어! 너도 곧 일어날거야...' 하루종일 친구 곁에 있으면서 예수님 얘기도 하고 미얀마에 새로 증축한 5층 예배당도 보여 주면서 같이 수양회 하기로 웃으면서 약속했다. 기저귀를 갈아주는데 엉덩이도 완전 뼈만 남아 있었다. 공을 축구선수처럼 잘 차던 장딴지 근육도 녹아 없어지고 뼈만 남았다. 그래도 허목사는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하면서 믿음을 잃지 않고 암을 이기고 있었다. '허목사 지금 자네 영혼이 제일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순간인줄 아네 친구가 왔는데 믿음없이 살아가는 날 책망 좀 해주게!' 물끄러미 날 쳐다보기만 했다. 한 밤중이 되어 내가 떠나가기전 온 동네를 한 번 뒤집어 놓고 가야겠다 하면서 허목사는 아들을 불러놓고. '너네들 김대인 목사 믿지말고 예수님만 믿거라. 너네들 다 필요없어! 이 방에서 나가!' 오전에만 해도 아들이 학교에서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고, 어려운 일 있으면 김대인 목사에게 물어보라고 했었는데... '인수야 진정해라.' '필요없어 너도 나가! 야! 대인아~ 개시끼! 너는 개~털이고 난 개~똥이다 임마! 미얀마서 조금 구원받았다고 온 동네가 시끄럽구나! 더러버서 못 봐주겠다. 그거 니가했나! 예수님이 다아 하셨지... 너 그 자리 앉지마라! 야 이 속~물아~ 그 자린 박목사님만 앉을 수 있다. 나도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살아왔고 거짓말쟁이다. 참된 하나님의 종은 박목사님 밖에 없어! 당장 나가!' '인수야 내가 니마음 다 알고 있으니 고마 진정해라!' '안 나가나?' 소리를 지르니 코피가 쏟아졌지만 막무가내 였다. 코피를 너무 많이 흘러 간호사를 부르니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 쉽게 코피가 터진다는 것이다. 안 나가면 링겔 줄을 다 뽑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쫓겨나고 말았다. 병원 복도와 보호자실에서 새우처럼 한 밤을 지새고 새벽에 들어오니 시트가 코피로 흥건하고 말라있었다. 아직까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야단을 쳐주었다. '가거라 나가거라.' 울산교회에서 주일 오전 예배를 마쳤는데 허목사는 내가 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병원으로 가보니 시트도 갈고 옷도 갈아 입혀 있었다. '대인아~ 고..맙..다..' 내 손을 끌어 당겨 손등에 키스를 해주었다. 나도 말없이 친구 손등에 키스를 해주었다. 난 속으로 얘기했다. '친구야 ~ 고맙구나! 난 개~털이고 넌 개~똥이다. 100프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살께! 멀리 미얀마서 이 한 마디 듣고 싶어서 왔다아이가...' 난 엄지 척 해 주었다.

故허인수 목사의 장례예배를 인도하는 기쁜소식 북부산교회 정용만 목사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남들은 한번의 암으로도 꼬꾸라지는데 친구는 온 몸이 마를때까지 6번이나 암을 이기고 힘있게 예수님을 증거했는데 주님이 아니고선 이렇게 할 수가 없는것이다.... 주님품으로 갈때까지 믿음을 한 순간도 결코 잃지 않았다. 살았다. 주님안에서 더 이상 죽음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온 교회의 사랑속에 잠시 우리 곁을 떠나 주님과 함께 거닐고 계십니다만... 하나님께서 허인수 목사를 통해 복음의 일들을 영광스럽게 하신것처럼 우리를 통해서도 배나 힘있게 사용하실줄 믿습니다. 난 지금 인수가 남기고 간 겨울양복을 입고 있다. 내게 꼬~옥 맞네!! 따뜻하다~ 인수야! 고맙데이 니 옷입고 복음 전할끼다. 인수야 잘 가래이~ 허목사님 먼저 가 계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기쁜소식대덕수양관 신관 6층 A홀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
기쁜소식대덕수양관 신관 6층 A홀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

故허인수 목사의 마지막 장례예배는 20일 오후 2시 대덕 수양관에서 그와 사역을 함께했던 동역자들과 성도들 총 300여 명의 배웅 속에 치러졌다. 故허인수 목사의 유골은 대덕산 뒷자락에 고이 묻혔다. 하늘도 허 목사의 소천을 아쉬워했는지 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빗방울이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몇 분 뒤에는 비가 우르르 쏟아졌다.

허인수 목사의 육체는 더 이상 이 땅에 없지만 그 안에 살아계셨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에 살아서 쉼 없이 일하고 계신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이 지금 이 시대에도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故 허인수 목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살았던 삶은 오래도록 우리 마음 가운데 남아서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킬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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