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 이헌목(기쁜소식양천교회 목사)
  • 승인 2019.04.15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쁜소식 2019년 4월호
이기는 삶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이 강하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 
창세기 11장에 보면, 함의 아들 구스가 낳은 니므롯의 후손들이 시날 땅의 바벨에서 높은 성과 대를 쌓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시날’ 평지는 인간이 살기에 아주 좋고 부족함이 없는 땅, 익숙하게 잘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진흙을 구워 견고한 벽돌을 만드는 기술과 역청을 개발해 내어 견고하고 튼튼한 벽돌로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성과 대를 쌓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 어디에서든지 성과 대를 잘 보이도록 했고, 그것이 중심이 되어 모이도록 해서 흩어지지 않고 뭉쳐서 잘 살고자 했습니다.
인간은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될 때 행복하고 그 삶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피조물의 위치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비기려 하고, 하나님을 빼내고 자기들끼리 뭉쳐서 바벨탑을 쌓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패역과 행악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시날 평지에서 육신의 욕구를 세우고, 번영을 꿈꾸면서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들이 쌓는 성과 대를 보고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인간의 힘이 커지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바벨탑을 쌓는 인간의 죄악의 기원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5)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인도 없이 인간끼리 잘 살아보려는 타락한 마음이 선악과를 먹게 한 것입니다. 호세아 성경에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 6:7)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그들의 아들 가인에게서도 이 패역이 나타납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이고, 하나님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며 유리하고 방황하면서 삽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성을 쌓고 그 안에서 보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가인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채 유리하며 불쌍하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대신 성을 쌓아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에녹 성城이라고 불렀습니다(창 4:17).
이 패역이 가인들의 후손으로 이어져 ‘네피림’이 등장합니다(창 6:4). 그들은 키가 크고 힘이 센 용사勇士들로, 당시 그들의 명성이 온 세상에서 뛰어나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의 보호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을 지었음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겠다’고 하시며(창6:7) 그들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특이한(용맹한) 사냥꾼 니므롯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창 10:8)
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아들 중 함의 자손들에게 이 패역이 또 나타납니다. 함의 손자요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에 대해 성경은 ‘세상에서 그와 같은 영걸은 이제까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이한 사냥꾼으로 자신의 용맹으로 ‘여호와를 뛰어넘으려’ 했으며, ‘여호와를 대항하여’ 사는 자로 온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그 용맹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영웅 칭호를 받았고 특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속담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가 시날 땅의 바벨을 근거로 큰 나라를 세우고, 가인처럼 ‘레센(큰 성)’을 쌓는 패역을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만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만족을 얻습니다. 그러나 인생들은 끊임없이 패역을 행하여 스스로 힘을 모으고 세력을 키위서 인간 중심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함으로 힘을 결집시켜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자, 그 힘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행에 썼습니다.
바벨은 유프라테스 강의 삼각주 지역으로 진흙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진흙을 불에 구워 단단한 벽돌을 만들어냈고, 벽돌을 역청으로 연결하여 상상할 수 없는 웅장한 성과 높은 탑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창 11:3)라는 말씀의 ‘대신’이라는 단어처럼, 인간이 그들의 힘과 지혜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쌓은 것이 바벨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패역이요, 또한 저주요, 악행입니다.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다’고 하며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처럼 익숙하고 편안하고 경험이 풍부한 곳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힘을 세우고 의지하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찾기 어렵습니다. “…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 11:8)라는 말씀대로 아브라함은 그곳을 떠났습니다. 가야 할 땅이 비록 낯설고 불안하고 갖춘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정확하게 그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성경에서 인간들이 육체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평지, 즉 시날 평지, 요단 평지, 두라 평지(금 신상을 세움)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반해 아브라함은 평지가 아닌, 생활하기 불편한 산지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가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볼 때 불안하고 어렵고 낯선 곳이지만 그곳을 택하는 것이 바른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두 갈래 길, 쉽고 편안한 길과 가보지 않은 부담스러운 길 가운데 어느 길을 가려고 합니까? 편안하고 쉬운 곳, 본토 친척 아비 집과 같고 요단들과 같은 익숙한 곳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면 하나님은 더욱 복되고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고후 12:9)
바벨탑을 세울 때 이 세상의 언어를 혼잡케 해서 인간으로 뭉치지 못하게 흩으신 하나님의 뜻은, 인간을 나약하고 부족하게 함으로써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참된 신앙의 길은 우리 길이 없어서 갈 바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의지해 걸음을 내딛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입니다. “…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