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월 귀신을 정성껏 섬겼는데, 이제 예수님에게 가고 싶다
지난 세월 귀신을 정성껏 섬겼는데, 이제 예수님에게 가고 싶다
  • 정광지(기쁜소식진주교회)
  • 승인 2019.04.03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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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성도 간증

나는 올해 일흔 일곱 살이다. 일요일이면 예배당에 앉아서 생전 불러본 적 없는 찬송가를 따라 부르고 기도를 드리다 보면 꿈만 같고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살던 세 살 위의 훤칠한 총각과 혼인해서, 면사무소 소재지 강 건너에 있는 작은 동네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열 서너 살 때부터 대구에서 이발을 배운 남편은 결혼한 뒤 읍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작은 이발관을 차렸다. 그때만 해도 시골 사람들은 추석이나 설을 앞두고야 이발을 했고, 보통 때에는 학생들이 손님의 대부분이어서 이발소 수입으로는 4남매를 키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남편은 이발소 일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가정의 일들은 내 차지가 되었다. 다른 집에서는 남자들이 하는 땔감을 구하는 일도 내가 해야 했고, 장작을 패는 일이나 미장하는 일도 내가 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날마다 다른 집에 가서 품을 팔아야 했다. 그렇게 일을 해도 가난을 면할 수 없었다.
우리 어머니는 자주 아프셨는데, 결국 무당이 되셨다. 그 뒤로 나는 시댁 식구들과 남편에게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았다. 남편은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친정 식구들을 대놓고 흉을 보았다.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에게서 들은 날카로운 말들이 내 마음에 상처들로 남았다.
남편은 이발소를 운영해서는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늦게나마 나와 함께 양봉을 시작했고, 수입이 좋아서 살림이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큰아들이 교통사고를 냈다.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변호사의 말에 유일한 재산이었던 작은 집을 팔아서 합의금으로 주었다.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어 양 씨 집안의 제각(祭閣)으로 들어가서, 제각을 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일을 했다. 그곳에서 제각 관리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산에 밤나무를 심으며 상한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오른쪽에 마비가 찾아오고 말을 할 수 없게 된 남편을 어떻게든 고쳐야겠다는 마음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억척스럽게 농사일에 매달렸다.
불행이 또 닥쳐왔다. 작은아들이 무당이 된 것이다. 작은아들은 무당이었던 내 남동생을 따라다니며 일을 거들었는데, 아들이 신부전증을 앓을 때 역시 무당인 내 여동생이 나에게 ‘아들의 명이 짧으니 오래 살게 하려면 신내림 굿을 해서 칠성신을 섬겨야 한다’고 집요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무당이 싫어서 한사코 거절했지만, 혹시 아들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작은아들은 심성이 곱고 성실한 아이였는데, 무당이 된 후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올바르게 살지 못했다. 귀신이 들려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제주도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성격이 포악해져서 툭하면 나를 윽박질렀다. 나는 아들이 무섭기도 하고 가엾기도 해서 협박할 때마다 돈을 주었다. 사고를 치면 뒷수습은 내가 다 했다. 측은하고 불쌍해서 아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동생이 그 아들을 위해 굿을 해야 한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굿을 했다. 뼈빠지게 농사지어서 번 돈을 굿하는 데에 쏟아부었다. 그렇게 산 세월이 30년이었다.
작은아들 때문에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고, 큰아들 내외와는 원수처럼 지냈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큰아들 내외는 나와 크게 다툰 후로 나를 괄시하기 시작했다. 마음 둘 곳이 없어서 호미나 괭이로 밭을 일구면서 상한 마음을 달래며 지냈다. ‘내 인생은 왜 이리 기구할까….’
두 딸은 교회에 다녔는데, 내가 신세 한탄을 하면 ‘엄마가 오랫동안 귀신을 섬겨서 불행하게 살았으니 이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자주 성경 말씀을 이야기하고 나를 성경세미나와 수양회에 데리고 가려 했지만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큰아들이 싫어할까봐, 작은아들이 행패를 부릴까봐, 그리고 남편에게 큰 변고가 생길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15년을 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살았다.
2018년 봄, 하루는 이상한 마음이 생겨서 큰딸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세월 내가 귀신을 정성껏 섬겼는데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이제 귀신 섬기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싫고 무섭다.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딱 죽고 싶은데, 중풍병에 걸린 네 아버지와 무당인 네 동생이 눈에 밟혀 죽을 수도 없다. 이제 귀신 안 섬기고 너희가 믿는 예수님을 믿고 싶다. 예수님에게 가고 싶다. 나를 도와다오.”
울산에 사는 큰딸 부부가 우리 집으로 와서 나를 차에 태우더니 서울에 계신 박옥수 목사님에게 데리고 갔다. 목사님은 나에게 성경 말씀을 들려주셨다. 성경을 펴서 예수님이 내 죄를 다 가져가셨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목사님이 전해주시는 말씀이 이해가 되었다.
“아! 알겠습니다. 내 무슨 말인지, 더 말 안 해도 알겠습니다. 내 죄를 예수님이 다 가져가셔서 죄가 없단 말이지요? 이제 됐습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었던 죄가 다 사라졌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지고 가신 것이다. 예수님 덕분에 나는 죄가 없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날 이후 기쁜소식진주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에 가면 오세재 목사님이 주일마다 복음을 전해주셔서 기쁨이 더 커졌다. 또 교회 형제님들이 자주 우리 집에 찾아와서 교제도 해주고 우리 가정을 보살펴 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모른다.
내 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을 찬송하는 말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작은딸이 성경과 박옥수 목사님 설교가 담긴 테이프를 사다 주어서, 요즈음 나는 날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면서 산다. 칠십 평생 나를 얽어매고 종살이를 시켰던 귀신에게서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이 감사하다. 이렇게 하나님이 살아 일하시는 교회를 만나서 정말 행복하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밤마다 귀신, 능구렁이, 파헤쳐 놓은 무덤 형상이 나타나 잠을 이룰 수 없었는데, 구원받은 후로는 잠을 달게 자니까 몸도 건강해졌다. 죄를 다 씻어서 이제는 죽어도 천국에 가고,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어서 인생에 소망이 생겼다. 그리고 나에게 기도할 일이 생겼다. 작은아들이 구원받아 함께 손을 잡고 교회에 가는 것이다. 아들에게서 귀신이 떠나가 아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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