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 김도현(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 선교사)
  • 승인 2019.04.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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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소식 2019년 4월호
선교사 수기 제4화

 멕시코에 파송되어 새 언어를 배우고 복음을 전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김도현 선교사.
하지만 언어와 문화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는데, 3년 반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교제를 받던 어느 날
나오미를 붙좆는 룻의 고백이 그의  마음에 심겨졌다.

 

 

2001년 4월, 나는 아홉 살 딸 영은이와 일곱 살 아들 영욱이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미국을 경유해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로 향했다. 멕시코시티는 해발 2,300미터에 위치한 2,500만 명이 사는 거대한 도시로 어딜 가나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큰 도시다. 처음에 나는 중미로 파송 공문이 났는데, 멕시코시티에 구원받은 가족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게 됐다고 했다. 막연한 기대와 설렘을 갖고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나보다 먼저 멕시코의 에스타도에서 선교하던 박준현 선교사의 도움으로 멕시코시티에 집을 얻었다. 나는 멕시코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멕시코를 두고 기도한 적도 없었다. 다만 선교를 나오기 전에 박옥수 목사님이 전해주셨던 말씀이 있었을 뿐이다.
“삼손의 손에 들린 나귀턱뼈처럼, 삼갈의 손에 잡힌 막대기처럼, 우리 조건과 상관없이 우리를 잡고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우리를 통해 능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아시면서도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고,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연악함과 부족함을 다 아시지만 여러분을 보내신 것은 그런 여러분을 통해서도 능히 일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시티에서 가진 첫 예배
우리는 5~6명 정도 되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첫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첫 번째 부딪힌 문제는 언어였다. 마침 영어를 할 줄 아는 멕시코 형제가 있어서 내가 영어로 어설프게 말씀을 전하면 그가 스페니쉬로 통역해 주어서 예배를 드렸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씀을 전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빠른 시일 내에 스페니쉬로 말씀을 전해야만 했다. 먼 곳에서 찾아오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새벽 두세 시까지 스페니쉬를 공부했다. 학교에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서 말씀을 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 일이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한 달 정도 공부하자 나 혼자 스페니쉬로 설교할 수 있었다. 비록 글로 적어서 설교했지만 무척 감사했다.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토요영상교제 시간(매주 토요일 선교사들이 한국의 박옥수 목사와 인터넷으로 교제하는 시간)에 박 목사님과 전화가 연결되었다. 박 목사님은 내게 스페니쉬로  직접 개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물으셨다. 개인 전도는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였다. 전화 통화를 마치고 생각했다. ‘이제 겨우 두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목사님은 내 실력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시나?’
그때 떠오르는 말씀이 있었다.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요구했을 때 아직 때가 아니라며 열매를 내지 않았던 나무에게 화가 임한 것처럼 나도 지금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 같았다.
바로 다음날 나는 두꺼운 한글 성경과 스페니쉬 성경을 들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공원에서 혼자 있는 남자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는 한 시간 반 동안 내 말을 잘 들었는데, 말씀을 다 마치고 나니 그가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를 했고, 전도하면 할수록 언어 실력이 느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기에 복음을 전하면 전할수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을 경험했다.
아이들도 이웃의 마음씨 좋은 노 부부의 도움으로 언어를 배워가며 학교 생활에도 적응을 잘했다. 그렇게 멕시코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하루 하루가 감사했다
어느 날 둘째 아이의 학교 친구 엄마가 찾아왔다. 이곳이 교회가 맞냐고 하면서 이곳에 오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집의 전 주인은 동네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고, 사소한 다툼 끝에 이 집에서 총격전이 일어나서 세 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도 이 집에 이사오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우리는 이 집의 월세가 다른 집에 비해 왜 싸게 나왔는지 알았다. 그는 우리가 교회 간판을 걸어놓은 것을 보고 찾아오고 싶었다면서 가족 모두 예배에 참석했다. 그 뒤로 사람들이 하나 둘 교회에 연결되었고, 하루 하루가 감사했다.
언어를 열심히 배우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전도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에 더해졌고, 2년 정도가 지나자 20명 정도가 모였다. 나는 선교지에서 새로운 언어로 전도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

교회에서 배운 모든 지식으로 그들을
가르쳐 보려고 했지만

멕시코에서는 집을 1년마다 계약한다. 계약을 연장하려면 무조건 세를 올려서 받기 때문에 자주 집을 옮겨다녀야 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사는 도시인지라 집을 얻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어느 때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 있는 12월 연말에 이사갈 곳이 없어서 짐을 다 싸놓고 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집을 구하러 다닌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보내주시는 선교비로 집세를 겨우 내고 살았기에 물가가 올라갈수록 집은 점점 작아졌다. 처음에는 마당이 있는 집을 얻었는데, 갈수록 마당도 없고 거실도 작아져 결국 작은 아파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에 이사하고 2년이 지날 무렵 20여 명의 형제 자매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스페니쉬를 잘하지 못할 때에는 형제 자매들이 언어를 가르쳐 주면서 예배에 나왔는데, 내가 어느 정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서 죄에 대해 이야기하며 구제적으로 말씀을 전하자 그들의 반응이 의외로 차가웠다.
‘저 선교사는 한국 사람이라서 멕시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멕시코에서는 열세 살이 되면 연애를 시작하고, 열다섯 살에 아기를 갖고 학업을 중단하는 일들을 자주 보았다.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내가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회개를 이야기하면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부딪혀 한 사람 두 사람 교회를 멀리했다. 그 동안 20여 명이 나오다가 나중에는 다섯 명 정도만 겨우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선교가 망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교회에 나오고 있는 부인 자매들의 마음에도 힘이 없고 나에게도 소망이 없어서 마음은 점점 절망으로 가득 찼다. 언어 장벽, 문화 장벽에 부딪히니 앞이 캄캄했다. 나는 교회에서 배운 모든 지식으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즈음 멕시코 에스타도교회가 예배당을 공사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도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안 좋은 이야기가 들려 많이 섭섭했다. 나는 멕시코 사람들과 형제 자매들에게 왜 배척을 받아야 했는지 몰랐다.

하나님이 나를 거절하셨다
어느 날, 한국에서 집회 강사로 오신 목사님과 교제하면서 내 모습을 보았다.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행 7:25)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행 7:27)
“저희 말이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의탁하여 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보내셨으니”(행 7:35)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 살인자가 되고 자기 민족에게도 배척당한 모세의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나의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멕시코 사람들을 이끌려고 하다가 결국 교회와 영혼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멕시코 사람들과 교회 형제 자매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거절하셨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네, 마음을 바꾸었는가?”
2004년 여름, 한국 월드캠프가 끝날 무렵 한국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어서 짐을 다 정리해 놓고 한국에 들어갔다. 멕시코에 온 지
3년 반 만이었다. 선교를 나올 때에는 다른 선교사들처럼 멋진 간증들을 갖고 들어가고 싶었는데 내 마음은 실패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월드캠프에 참석했던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돌아가고 있을 때 나는 기쁜소식강남교회에 도착했다. 모두가 돌아간 빈 방에 우리 부부만 덩그러니 남았다.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 박 목사님과 같이 식사하고 기도회를 가졌다. 목사님은 매일 아침 내게 물으셨다. “자네 마음을 바꾸었는가? 그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그냥 갈 건가?” 나는 옳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현지인들과의 갈등, 다른 사역자와의 갈등. 나는 마음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목사님은 그런 나의 마음을 매일 살피면서 인도해 주려고 하셨다. 한달 동안 목사님과 같이 지냈지만 내 마음은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지내다가 여름 수양회가 시작될 때쯤 한 지역장 목사님이 나를 불러 교제해 주셨다. 선교지에서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셔서 그동안 열심히 살았던 이야기, 거절을 당한 이야기, 마음에 가득한 내 옳음들을 내았다. 그러자 목사님이 창세기 6장 5절을 펴서 읽어 보라고 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말씀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하나님은 나를 항상 악한 자로 보시는데, 나는 나를 교회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산 선한 자로 여기고 있었다. 이 말씀은 복음을 전할 때 기본적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내 마음이 옳음에 잡혀서 말씀과 하나님을 떠나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박 목사님이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처음 교제해 주셨던 에베소서 말씀이 생각났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엡 4:18)
내 옳음에 잡혀 말씀에서 떠나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내 모습이었다. 3년 반 동안 내가 옳다는 생각에 잡히면서 고립되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위로하며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사람이 고립되면 고립시킨 자의 마음이 흐르는데, 사탄이 내 마음을 주위 사역자들과 고립되게 하면서 내 옳음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룻의 고백이 내 마음에 심겼다
수양회 첫날 박 목사님과 먼저 도착해서 몇몇 사역자들과 기도회를 가졌는데, 기도회를 마치고 목사님은 최근에 선교지에서 도망갔다가 돌아온 몇몇 사역자들이 좋아졌다면서 기뻐하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를 향해 ‘자네도 떠나라’고 농담을 하셨다. 그런데 내 마음에 불쑥 올라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너는 안 된다고 하시잖아. 그냥 다 포기해.’ 그때 혼자 생각하고 고립되어 살아왔던 것이 악한 영에 사로잡힌 것임이 보였고, 곧바로 내 생각과 다른 말씀이 떠오르면서 말씀이 마음을 잡아주었다.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5~16)
룻기 1장 말씀이 생각과 말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에게 마음의 선을 긋게 해주었고, 룻의 고백이 내 마음에 심겼다. 나오미가 룻에게 돌아가라고 한 것은 돌아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을 정하고 따르라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 해 여름에 4주 동안 수양회에 참석하면서 오전에는 매일 사역자 모임을 하며 박 목사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사님은 나뭇가지로 땅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하나님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설명해 주셨다. 교제를 받으면 받을수록 마음에 선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이 목사님을 통해 일하시는 이유가 있다면, 목사님은 자기를 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 신앙이 가짜였구나!
수양회 첫날 박 목사님과 우리 부부는 목사님의 고향인 선산에 갔다. 어느 새벽 모임 때 목사님께서 간증하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고향의 아버지 집에는 형수님 가족이 살고 있는데, 집이 낡고 오래되어 곳곳에서 비가 새서 수리해야 했다. 목사님은 형수님에게 기쁜소식강남교회 예배당을 건축한 후 자재가 많이 남았으니 집 수리를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새벽에 기도하실 때 하나님이 목사님에게 물으셨다. ‘아버지 집을 수리하는 데에 교회 타일을 갖다가 쓰려고 하느냐?’ 목사님은 깜짝 놀라서 형수님에게 바로 전화드려, 미안하지만 아버지 집을 수리하는 데 교회 타일을 한 장도 쓸 수 없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 집에 목사님과 같이 간 것이다. 목사님은 옛날 집이 수리된 것을 보고 잘되었다면서 기도하고 돌아오셨다.
돌아오는 길에 많은 것을 생각했다.
‘목사님 같은 위치면 고향집을 수리한다고 알려지기만 해도 전국에서 많은 일꾼들과 좋은 자재들을 보내주어 금세 새로 집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목사님은 어떻게 저런 삶을 사실 수 있을까?’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는 물질을 아낌없이 쓰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타일 한 장도 허락하시지 않는 목사님의 하나님을 많이 생각했다.
‘목사님의 하나님은 자신을 위한 마음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분, 자기의 옳음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 자기를 높이거나 인정하는 마음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나는 어떻지?’
나의 하나님은 항상 내 편이었고, 나를 옳다고 인정해 주고 나를 위한 마음을 쉽게 허락하는 그런 하나님이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룻의 간증은 자신의 하나님을 버리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한 것이다. 나도 구원받고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내 하나님은 목사님의 하나님과 너무 달랐다. ‘내 신앙이 가짜였구나! 목사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목사님의 삶 앞에서 내 옳음과 내 것들이 그대로 내려놓아졌다.

마음이 바뀌면서 소망이 생겼다
한국에 들어올 때는 내 마음이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았는데 마음에 소망이 생겼다. 그리고 멕시코로 향하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이후로는 멕시코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많이 경험했다.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면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듯이,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었을 때 교회와 하나님의 종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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