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 농부같이 악한 나를 강도 만난 자로 이끄셨다
포도원 농부같이 악한 나를 강도 만난 자로 이끄셨다
  • 김도현(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 선교사)
  • 승인 2019.06.0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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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7화

선교 초기, 멕시코에서 가진 해외 첫 월드캠프를 갑자기 준비하게 된 김도현 선교사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종과 마음이 다른 자신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강도를 만나는 일을 통해 포도원 농부 같았던 그의 마음을 강도 만난 자의 위치로 옮기셨다.

 

2003년에 처음으로 박옥수 목사님을 초청하여 집회를 가진 뒤 2006년 5월에 다시 목사님을 초청하여 집회를 가졌다. 새벽에 가진 사역자 모임에서 나는 그동안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간증했다. 간증을 들은 목사님은 무척 기뻐하고 감사해하셨다. 나도 간증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때 박 목사님이 내게 한마디 해주셨다.
“자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마음이 뜨면 안 돼!” 나는 “예” 하고 대답했다. 목사님은 성경을 펴서 사무엘하 11장에 나오는 다윗에 대해 말씀하셨다. 다윗이 왕궁에 머물면서 생긴 문제와 어려움은 전쟁터에서 겪은 어려움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고 하셨다.

해외 최초 몬테레이 월드캠프
대전도집회 기간에 멕시코의 몬테레이라는 도시에서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는 몇 사람이 찾아왔다. 그들은 주 지사의 초청장을 들고 와서는, 모든 것을 도울 테니 몬테레이에서 월드캠프를 개최해 달라고 했다. 그들은 2007년 1월에 있었던 태국 글로벌캠프에까지 찾아와 자기들의 뜻을 보여 그해 7월 몬테레이에서 월드캠프를 갖기로 갑자기 결정됐다.
멕시코시티에서 자동차로 14시간 거리, 연고자가 없는 도시에서 월드캠프라니?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월드캠프를 당연하게 개최하고 있지만 그때는 다른 나라에서 월드캠프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한 시절이었기에 참으로 막막했다. 나는 연락을 받고 무작정 몬테레이로 갔다. 도착해서 보니 그곳은 나무 한 포기 없는 돌산으로 둘러싸인 사막 도시였다. 주 정부의 요청이었기에 관광부의 도움을 받아 이곳저곳 돌아보았다. 찾아오는 관광객이 없어서 월드캠프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월드캠프를 준비하는 동안 어려움이 참 많았다. 주 정부 차원에서 돕겠다고 했지만 막상 우리가 캠프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는지 우리를 피하기 시작했고, 약속했던 것들을 하나도 이행하지 않았다.

“나는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해 4월에 박 목사님이 남미 전도여행을 마치고 몬테레이 자원봉사자 워크숍에 오셨다. 원래는 정부에서 컨벤션홀을 빌려주겠다고 했는데, 막상 워크숍을 하려고 하자 폐교 직전의 낡고 형편없는 학교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정부에서 800명의 자원봉사자를 모아주겠다고 했는데 워크숍 첫날 아무도 오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자 30여 명이 왔다. 해외에서 갖는 첫 번째 월드캠프라 선교회에서 관심이 많았기에 멕시코시티와 미국과 중남미와 한국에서 온 분들이 80명 가량 되었는데, 정작 그 넓은 장소에 자원봉사자들은 30여 명만 온 것이다. 박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는 사방에서 비둘기들이 날아다니고 학생들도 집중하지 않아 분위기가 산만했다. 나는 목사님에게 너무 죄송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날 밤, 박 목사님 숙소에 선교사들이 다 모였다. 목사님은 준비 과정을 물으셨고, 우리는 어려운 상황을 그대로 말씀드렸다. 정부에서 도울 의사가 전혀 없고, 행사장도 구하기 어렵고, 자원자 모집도 어렵고.... 나뿐 아니라 다른 선교사들도 박 목사님이 행사를 취소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목사님은 상황을 다 듣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복음을 듣지 못하고 멸망으로 갔습니다. 나는 이 도시에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부에서 한 푼도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 도시에서 월드캠프를 하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은 분명했다. 어떤 형편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말씀이 큰 부담으로 들렸다. 캠프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캠프를 하긴 해야 하는데 어렵기만 했다
그 후 3개월 동안 매주 왕복 30시간을 운전하여 몬테레이에 가서 행사를 준비했다. 하루는 주 정부 재정부장이 나를 불렀다. 사무실에 가니 그가 우리를 초청한 것을 후회한다면서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으니 행사를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나님 들으셨지요?’ 참으로 막막했다. 월드캠프 날짜는 다가오는데 장소가 구해지지 않았다. 대학교들은 전부 천주교 학교라서 기독교 단체인 우리를 거부했다. 우리가 하려는 모든 것이 안 됐다. 형편을 보면 망할 것 같았다.
멕시코시티에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아내와 몬테레이를 왕래하면서 기도했다.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났다. 몬테레이에 온 모든 사람의 눈에는 캠프가 안 될 것처럼 보였다. 된다고 하신 분은 박옥수 목사님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도시에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부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이곳에서 월드캠프를 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신 목사님의 말씀을 생각하면 캠프를 하긴 해야 하는데 어렵기만 했다.

월드캠프가 박 목사님은 기쁨이었는데 나는 왜 어려움이었을까?
월드캠프를 시작하기 한 달 전에 극적으로 장소를 구했다. ‘바이아 에스콘디다(Bahia escondida 숨겨진 해안)’라는 곳이었는데, 이름처럼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그곳에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행사장, 수영장, 호텔 등등. 더 이상 좋을 수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했다. 식당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고, 몬테레이 시에서 필요한 것을 후원받을 수 있었다. 행사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몬테레이 시장님이 참석하셨고, 박 목사님이 복음을 전해 구원받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셨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멕시코 젊은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의 노래와 박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학생이 구원받으며 한국 월드캠프까지 참석하고 단기선교사로 파견되면서 몬테레이에 교회가 세워졌다. 형편만 보았던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시고, 어떤 형편에서든 복음을 전하고자 하신 박 목사님의 하나님만 승리한 캠프였다.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었던 몬테레이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월드캠프를 했습니다.” 몬테레이에서 했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목사님은 아프리카에서도 월드캠프를 하자고 하셨다. 지금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는 감히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몬테레이 월드캠프를 준비하면서 하나님은 내 신앙을 돌아보게 하셨다. ‘박 목사님은 월드캠프가 기쁨이고 소망이었는데 나는 왜 부담이고 어려움이었을까?’ 목사님의 마음과 다른 내 마음이 보였다.
마태복음 13장에 네 가지 땅에 뿌려진 씨의 비유에서 내 신앙의 모습은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았다. 좋은 밭에 뿌려진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지만 돌밭에 뿌려진 씨앗은 햇빛이 나면 마르고 타버렸다.

 

내년에는 멕시코시티에서 캠프를 하자
그렇게 6개월 간의 여정을 마치고 멕시코시티 교회로 돌아왔다. 그동안 교회를 거의 돌보지 못해서 형제 자매들의 마음이 많이 흩어져 있었다. 엔라세 방송을 통해 연결되어 나오던 형제 자매들도 예배에 소홀해지고 교회가 다시 어려움에 빠졌다.
그리고 선교회에서 다음해에는 멕시코시티에서 월드캠프를 하자고 결정했다. 많이 부담스러웠다. ‘박 목사님에게는 월드캠프가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인데 나에게는 왜 월드캠프가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것이 되었을까? 내 마음은 돌밭이구나.’ 저주를 받고 불사름을 당해야 하는, 박 목사님과 같은 길을 도저히 갈 수 없는 신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그렇지만 꾸역꾸역 캠프를 준비했다. 교회가 개척된 지 얼마 안 된 멕시코시티 교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시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컨벤션홀 같은 장소를 얻고 주변의 호텔을 얻기로 계획을 세우고 자원자를 모집하려고 워크숍을 가졌다.

한낮에 대로변에서 강도를 만났다
2008년 7월, 월드캠프를 한 달 앞둔 어느 날 큰 어려움을 당했다. 그날도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려고 나가려는데 자동차에 엔진오일이 부족해 엔진오일을 사서 차에 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내 어깨를 잡았다. 아는 사람인가 하여 뒤를 돌아보니 총을 든 강도였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서, 그것도 한낮에 강도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주변이 우범지역이라서 사람들이 강도를 흔하게 만나고 총에 맞아 죽는 사람들도 보았지만 내가 직접 당한 적이 없었기에 안심하고 다녔는데 나에게도 그런 일이 닥친 것이다. ‘나는 이제 죽었구나!’ 멕시코에서는 강도를 만났을 때 물건이나 돈을 뺏기면 다행이지만 죽거나 납치를 당해 더 큰 봉변을 당하는 소식을 종종 들었기에 순간 오만 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강도의 눈에서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 같은 차가움이 느껴졌다. 순간 몸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납치만은 당하지 말아야 할 텐데....’
그는 내게 총을 들이대며 차에 올라타라고 했다. 나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몸이 굳어서 총을 쏜다고 해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도 그것을 인지했는지 자동차 키만 빼앗아 차를 몰고 가버렸다. 그렇게 강도를 만나 차를 잃어버렸다. 그뿐 아니라 차 안에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전단지가 있었기에 범죄자들에게 내 신상도 알려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사는 유일한 외국인이었기에 범죄자들에게 표적이 된 것이다.

선교사도 목사도 아닌 악한 살인자였다
강도를 당하고 집에 돌아왔다. 너무 당황스럽고 어려웠다. 아이들도 너무 놀라서 두려워하고 아내는 벽을 보고 울었다. 선교를 나오기 전부터 죽을 뻔했던 일을 여러 번 겪었고 선교를 나와서도 위험한 일이 참 많았는데, 강도까지 당하고 나니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월드캠프를 한 달 앞두고 나는 화병에 눕고 말았다. 말로만 듣던 화병이 무엇인지 알았다.
밤 두세 시에 범죄자들에게서 협박 전화가 왔다. 그들이 나를 감시하고 범죄의 표적으로 삼았다는 현실이 보였다. 할 일 없이 길거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젊은 사람들, 흔하게 일어나는 권총 살인 사건들,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벌건 피를 흘리고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모습들, 일련의 사건들이 피부에 와 닿으면서 분노가 일어나고 심장이 쿵쾅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들이 누군지는 몰라도 나도 총이 있으면 다 쏴 죽이고 싶은 미친 마음이 들었다. 하니님은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그런 마음이 드러나니 내가 이 민족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모습이 가짜인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을 향해 총을 갈기는, 선교사도 목사도 아닌 악한 살인자였다. 선교할 수 있는 조건이 내게는 전혀 없어 보였다.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선교하고 있는 내가 뿌듯할 때도 있었다. 나는 내가 교회를 위하고, 가족을 위하고, 아내를 위하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현실은 아내와 아이들과 형제 자매들이 나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다.
‘나는 도움이 되는 자가 아니고 오히려 피해를 주는 자였구나. 그렇다면 나는 선교회와 목사님을 위하며 산 것이 아니라 피해를 주며 살았으면서 왜 그들을 위하는 자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잘못 살았구나!’
그렇지만 어찌 할 수 없었다. 나는 구원받기 전에도 받은 후에도 또 사역자로 복음을 섬긴다고 해도 여전히 복음과 교회를 해치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 그런데 나는 하나님이 말씀에서 지정해 주신 위치를 떠나 말씀과 상관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 영혼의 모습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임이 인정되었다.

자네는 아주 악한 사람이야
2주 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해 월드캠프는 규모가 축소되면서 그라시아스합창단 대신 가스펠 그룹 리오몬따냐가 오고, 강사로 다른 목사님이 오셨다. 내가 준비해야만 될 것 같아서 꾸역꾸역 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아예 침대에 눕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 뒤 하나님이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보여주셨다. 내가 준비하지 않은 월드캠프에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다. 그때까지 본 어느 행사보다 더 질서정연하게 말씀을 들었다.
강사로 오신 목사님과 교제를 했다. 그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하자 지금은 괜찮은지 물으셨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서 지금은 괜찮다고 했다. 강사 목사님은 잠시 숙소에 갔다 오더니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까지 당한 일보다 앞으로 당할 일이 더 많을 것 같네. 자네는 아주 악한 사람이야.” 사실이었다. 강도 만난 자가 강도를 만난 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다시 일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또 강도를 만나지 않겠는가? 나는 가까스로 다시 일어나려고 했는데, 말씀에 비추어 보니 내 모습은 사마리아인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 다시 강도를 만날 수밖에 없는 마음의 구조를 갖고 있었다. 나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움들이 많고, 사건 사고도 많았는지.... 하나님은 내 마음 중심에 서 있는 의지를 꺾으시고 나를 말씀 앞에 세우고자 하셨다.
나에게는 어릴 때부터 강하게 형성된 의지가 있었고, 구원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의지가 마치 믿음인 것처럼 포장되어 나를 속였다. 어려움이 찾아와서 넘어져도 또 일어나고, 마음을 낮추고 일어나고, 믿음을 갖고 일어나고, 깨닫고 일어나고, 그렇게 내 의지가 살아서 어려움을 만나도 오뚝이처럼 또 일어나는 반복적인 삶을 살았다. 그것이 나의 전부였다.
그런데 말씀 앞에 비친 내 모습은 또 다시 강도를 만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무너지고 의지가 부서졌다. 평생 나를 지탱해 오던 의지가 꺾이고 무너지면서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하나님은 나를 강도를 만나 거반 죽은 위치에 두어서 예수님의 은혜를 만나게 하려고 하셨는데 꺾이지 않는 내 의지 때문에 또 어려움을 만날 수밖에 없는 위치로 나를 이끌어 오셨던 것이다. 강도를 만나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 마음에 심겨져 있던 인간의 의와 의지를 꺾으시고 비우시고,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마음을 세워 주셨다.

부담스런 그 음성은 결국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월드캠프를 마치기 하루 전에 주위 목사님들이 물었다. “이 많은 학생들이 교회에 오면 어떻게 할 거야? 천막 밑에서 모임을 가질 거야? 빨리 장소를 새로 얻어야겠어.” 그래서 급하게 장소를 찾았는데, 국립대학 바로 앞에 위치한 아주 예쁜 건물에 있는 멋진 장소를 구했다. 우리는 매주 아카데미를 열었다. 토요일 마다 50명, 70명, 90명의 학생들이 찾아와서 아카데미에 참석하고 말씀을 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월드캠프를 통해 구원받은 청년 몇 명이 찾아와 신앙 훈련을 받으며 말씀을 배우고 싶다고 하여 생각지 못했던 마하나임신학교를 시작했다. 검은색으로 화장하고 이상한 사상에 빠져 있던 청년들이 신학교에서 말씀을 배우며 같이 지냈는데, 그들이 변하는 모습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사했다.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 지금 전도자가 되어 멕시코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나에게는 선교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없었지만 교회로 말미암아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선교회의 음성이 내 마음에 부담으로 들릴 때도 많았다. ‘월드캠프를 하자. 마하나임신학교를 하자.’ 그때마다 나는 내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감당하기에는 능력이 너무 부족해서 부담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음성들이 나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불사름을 당하고 버려져야 했지만
2006년 새벽 사역자 모임에서 박 목사님이 “자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다고 마음이 뜨면 안 돼!”라고 말씀하신 후로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당시는 목사님이 회개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교제해 주실 때였다. 마태복음 21장
에 나오는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모습이 내 모습으로 처음 비쳐졌다. 주인의 은혜를 자기 것으로 취해서 포도원을 자기 소유로 삼으려다 불사름을 당한 악한 농부들이 바로 나였다. 은혜를 입었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간증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에도 뿌듯한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내 소유로 삼았을 때 악한 농부가 되고, 아버지 소유를 내 것으로 받았을 때 아버지를 떠난 탕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불사름을 당하고 버려져야 될 사람인데, 교회와 종은 그런 악한 나를 아시면서도 여전히 참고 기회를 주고 계셨다. 나에게 무시를 당하시면서도 말이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3~15)
마음에 뚜렷해지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나에게는 신앙이나 사역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고, 다만 나를 붙잡고 있는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라는 조건이 있을 뿐이었다.

 돌아보면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그 이후로 나로 말미암아 사는 삶이 아닌 교회와 하나님의 종으로 말미암는 삶을 살았다. 어떤 일을 만나고 어려움이 찾아온다고 해도 내 의지로 부딪치지 않고 마음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와 하나님의 종과 연결되면서 쉴 수 있었고 자유를 가졌다. 강도를 만난 자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사마리아인의 은혜와 주막과 주막 주인의 은혜밖에 없었던 것처럼, 내 마음에도 주님의 은혜와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라는 조건 외에 내가 살 길은 없었다.
오랫동안 몸은 교회에 있었지만 내 마음에 교회가 세워지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려고 내 마음을 깨뜨리셨다. 내 마음에 나를 위하고 나를 믿는 마음이 세워져 있는 동안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세워질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멕시코에서 많은 일들을 만나게 하셨다. 당시에는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지만 돌아보면 내게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귀한 보석처럼 하나님이 나를 단련하는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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