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 김도현(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 선교사)
  • 승인 2019.07.1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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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 (제7화)

멕시코에서 7년 8개월 간 복음을 전한 김도현 선교사는 교회의 인도로 2008년에 아르헨티나로 파송되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하던 날부터 난관에 부딪히는데,
사탄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어려움을 넘게 하시고 더 큰 기쁨을 주셨다.

 

2008년 12월 31일, 멕시코에서 지낸 7년 8개월의 삶을 뒤로 하고 우리 가족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선교회의 인도로 사역지가 이동됐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서는 선교사가 문제를 일으켜 교회가 나눠지면서 ‘당신을 사역자로 받아줄 수 없다. 아무도 당신을 맞아 줄 수 없으니 오지 마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일을 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다는 마음으로 비행기는 탔지만 무슨 일을 만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시간 동안 멕시코에서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고 가르치신 것들을 하나씩 더듬어 보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망한 자이기에 내 마음에 하나님만 남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선교할 수 없는 나를 아르헨티나로 보내시는 하나님과 교회와 하나님의 종이 감사했다. 두려움과 염려도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감사를 이기지는 못했다. 아무도 나를 맞아주지 않으면 공항에서 지내려고 침낭을 준비했다.

교회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사람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즐거워하고 연말 분위기가 가득한 12월 31일 밤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교회에서 마중 나온 사람은 없고, 먼저 아르헨티나에 온 우루과이 선교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사태를 의논했는데 상황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잘못된 인도자의 영향으로 교회의 문이 굳게 닫혀 있고, 형제 자매들은 불신과 혼돈 속에 깊이 빠져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하루는 이곳, 하루는 저곳에서 지냈다. 나는 한국에 계신 박옥수 목사님에게 수시로 상황을 말씀드렸다. 우리보다 더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멕시코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은 교회나 하나님의 종과 마음이 단절되는 것임을 알았었다. 그래서 교회와 하나님의 종과 함께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지내자 어렵지만은 않았다.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2주 정도 지난 뒤 우리를 돕기 위해 왔던 선교사들이 돌아가고 우리 가족만 남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는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한 부류는 교회를 차지하려는 사욕이 가득한 인도자와 그와 함께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한인들로, 그들은 새로 건축한 예배당에 있었다. 다른 한 부류는 무시 받고 차별 받는 이민자들인 볼리비아 사람들로, 그들은 초라한 예배당에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받아주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새 예배당에 가서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무산되었다. 해외 선교를 담당하는 한국에 계신 목사님에게 상황을 말씀드리자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다. 눈에 보이는 아르헨티나 교회는 이미 우리 선교회와 분리된 상태였다. 서류상으로도 그러했다. 되찾을 방법이 없어보였다.
그날 오후에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데 사무엘상 30장에 나오는 시글락이 불타버린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다. 시글락이 불타고 아내들과 아이들은 전부 포로로 잡혀간 상황이 마치 교회와 형제 자매들을 모두 잃은 내 모습과 비슷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
형편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교회를 반드시 되찾게 한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사야 말씀이 내게 큰 힘을 주었다.
“네 자녀들은 속히 돌아오고 너를 헐며 너를 황폐케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용사의 빼앗은 것을 어떻게 도로 빼앗으며 승리자에게 사로잡힌 자를 어떻게 건져낼 수 있으랴마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용사의 포로도 빼앗을 것이요,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건져낼 것이니, 이는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고 네 자녀를 구원할 것임이라.’”(사 49:17~26)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다. 형편은 예배당과 형제 자매들을 이미 빼앗긴 것 같지만 말씀에서는 하나님이 용사의 포로도 강포자의 빼앗은 것도 다시 빼앗고 건져낸다고 하셨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소망을 주었다.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사 49:20)
‘결국은 다 얻게 하고 이들과 예배당을 건축하게 하시겠구나.’
지금 예배당이 좁아서 아주 넓은 땅을 얻어서 건축하고 있는데, 뒤돌아보면 하나님이 미리 말씀으로 약속을 보여주고 그대로 일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신을 받아주겠습니다”
어떻게 쫓아가야 할지 모르고 있었는데,어느 날 연락이 왔다. 대적하는 부류의 장년 형제들이 비밀리에 나를 만나자고 했다. 시내에 있는 아파트로 혼자 오라고 했다. 주변에서는 가지 말라고 말렸다. ‘함정이다. 너를 죽일 것이다’ 등의 말들이 있었지만 나는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 다 찾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빼앗게 하시고 건져 주신다고 하십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의 교회를 빼앗기고 사역자가 무슨 기쁨으로 살 수 있겠는가?’ 기꺼이 만나겠다고 하고 밤에 그곳을 찾아갔다. 길을 안내해 준 형제는 아파트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얼른 사라져버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10여 명이 좁은 아파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들어서 알기로 당신은 회개하지 않는 마귀의 종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회개가 무엇인지 말해보세요.”
나는 40여 분 동안 하나님이 나에게 가르쳐 주신 회개와 나 자신을 믿은 것이 나를 망하게 한 이야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회와 하나님의 종을 향해 마음이 열린 이야기 등을 했다.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그들이 마음을 여는 것을 얼굴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당신을 우리 교회에 받아주겠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우리가 박옥수 목사님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그때 마침 바지 주머니에 070 인터넷 전화기가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SNS나 무선 인터넷 전화가 없을 때였기에 070 인터넷 전화기가 해외에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화기였다. 하지만 공유기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고, 혹시 와이파이 신호가 잡힌다 해도 수신이 개방되어 있어야 사용이 가능했다. 그런데 070 전화기를 켜자 무선 와이파이 신호가 하나 뜨고 수신도 개방되어 있었다. 박 목사님의 핸드폰으로 전화했다. 목사님이 바로 받으셨다. 밤 한 시로, 목사님은 말레이시아 글로벌 캠프에 가려고 공항으로 가시는 길이었다. 박 목사님에게 상황을 전해드리자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대로 통역하게.”
“예.”
“전에 아르헨티나에 있었던 선교사가 마음이 잘못되어 내가 여러 번 권고하고 이끌어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갔습니다. 그 길은 망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나님의 종을 보내주셨는데 마음을 같이해서 복음을 섬기면 하나님이 교회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형제 자매들이 환호하며 기뻐했다. 비록 잘못된 인도자를 만나 교회를 불신하게 만드는 말을 받아들여 마음을 닫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종이 하는 말씀을 듣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푸셨던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 말했다.
“목사님, 내일 오후 다섯 시에 예배당으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상황을 정리하고 목사님을 예배당으로 모시겠습니다.”

한 달 만에 예배당에 들어갔다
다음 날 오후 다섯 시에 예배당으로 갔다. 형제 자매들이 교회를 깨끗하게 청소해 놓고 나를 맞아 주었다. 얼마 뒤 이전 사역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교회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복잡한 문제들도 많았지만,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셨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신기했다. 어떻게 하루 만에 모든 형편이 바뀔 수 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 목사님은 그 일로 삼 일 동안 잠도 주무시지 못했다고 하고, 이전 사역자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며 ‘하루를 줄 테니 회개하라’고 권고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씀을 무시한 결과 하루 만에 모든 상황이 바뀌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을 무시했던 이전 사역자는 결국 교회에서 형제 자매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 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도 있었지만 후에 하나님께서 형제 자매들을 대부분 교회로 다시 돌아오게 하셨다.

여러분도 복음과 교회 편에 서십시오
열흘 후, 박옥수 목사님이 파라과이 월드캠프에 강사로 말씀을 전하러 가시는 길에 아르헨티나 교회를 방문하셨다. 당시 교회의 분위기가 아직은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은 어수선한 상태였다. 목사님은 형제 자매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를 위로하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싸움꾼입니다. 나 자신과도, 사역자들과도, 기성 교회 목회자들과도 싸웁니다. 그런데 지난 50여 년 동안 이 싸움에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 복음과 교회를 대적하면 다 망합니다. 여러분도 복음과 교회 편에 서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이기게 해주실 것입니다.”
형제 자매들이 불신과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해에 아르헨티나 형제 자매들도 버스를 타고 파라과이 월드캠프에 참석했다. 캠프기간에는 페르난도 루고 파라과이 대통령이 박 목사님을 만나 복음을 듣고 구원받으며 26개 부처 장관들과 함께 월드캠프에 참석하는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 광경을 본 형제 자매들이 우리 선교회와 목사님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고, 마음이 밝게 회복되어갔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월드캠프를 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교회가 살 수 있는 길은 아르헨티나에서도 월드캠프를 하는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월드캠프를 준비했다. 교회 뒷마당에 식당과 숙소를 마련하고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월드캠프 후원자를 모집하는 등 한 부분 한 부분을 준비했다.
2010년 7월, 한국 월드캠프에 갔을 때 아르헨티나에서도 월드캠프를 하고 싶다고 신청했다. 그런데 아직 이르다며 나중에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 돌아와서도 계속 박 목사님과 그라시아스합창단을 맞을 준비를 했다. 그해 9월 한국 추석 명절 기간에 박 목사님이 갑자기 파라과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면서 아르헨티나 교회를 방문하셨다. 공항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로 가면서 아르헨티나 월드캠프에 대해 말씀드렸다. 마침 우리가 알아보고 있던 장소가 공항 가까이에 있어서 그곳을 지나갈 때 말씀드렸다.
“목사님, 저기 보이는 넓은 장소가 국경수비대 사관학교인데, 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와 식당 등 월드캠프를 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빌려준다고 하는가?”
“아직이오. 그게 문제입니다.”
박 목사님은 파라과이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아르헨티나에 다시 들르셨다. 그때도 나는 월드캠프에 대해 말씀드렸다. 목사님은 형제 자매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아르헨티나에서도 2011년에 월드캠프를 할 것이라고 공포하셨다. 이야기를 들은 형제 자매들 모두 환호했다.

 

하나님 안에는 이미 다 있구나
그 해에는 남미 3개국에서 월드캠프가 예정되어 있었다. 캠프를 3개월 앞두고 아르헨티나 월드캠프가 결정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극장인 ‘테아트로 아르헨티나’를 계약했다. 2,300석 규모의 아주 멋지고 큰 장소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시간 반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장소는 결정되었지만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았다. 남미 세 개 국가에서 월드캠프를 하고, 특히 옆 나라인 파라과이에서도 월드캠프를 하기에 우리를 도울 주변 나라 사역자와 형제 자매들이 부족했다. 칠레에서만 50여 명이 온다고 했고 그 외에는 없었다. 아르헨티나 교회 형제 자매들은 중학생까지 다 모여도 고작 100여 명이었다.
장소를 계약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미지수였다. 캠프 참가자도, 자원자도, 숙소도, 식당도, 크리스마스 칸타타 세트를 만들 장소도 없었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형제 자매들과 같이 늘 기도하고 마음을 모았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토요일, 장년들과 성경을 읽고 발표하는데 골로새서 1장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6)
‘그렇구나. 세상 만물이 하나님께 속했구나. 눈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다 하나님에게 속해 있구나! 그렇다면 인간의 눈에는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안에는 이미 다 있고 우리에게 다 주셨구나! 다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구나.’
무척 기뻤다. 하나님 안에 참가자들도, 자원자들도, 숙소도, 식당도, 칸타타 세트를 조립할 장소도, 그리고 권세자도 다 있었다. 다만 우리 눈에 아직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형제 자매들과 이 말씀으로 교제하다 보니 힘이 났다.
숙소를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행사장 주변에 숙소로 쓸 만한 곳이 없었다. 행사장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찰학교가 있어서 사용 신청서는 냈는데, 며칠 뒤에 주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대여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장소 외에는 다른 곳이 없어 보였다.
나는 신청서를 들고 다시 법무부를 찾아갔다. 입구에서 경찰학교 기숙사 사용을 신청하러 왔다고 하자 안내하는 분이 어느 사무실로 안내해 주며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 후 사무실 안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불렀다. 내가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자 자신이 며칠 전에 경찰학교 기숙사 사용이 불가능하다고 편지를 보낸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길이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오후 5시에 전화해 달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 시간에 전화하자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월드캠프 기간이 경찰학교 학생들이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하는 때라서 요청을 거절했는데, 그해 여름 더위가 길어지면서 해변의 피서객을 보호하느라 학생들이 우리 행사가 끝난 뒤에 복귀하기로 일정이 바뀌었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형제 자매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서 하나님은 교도관 학교의 식당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었고 시청 박물관을 칸타타 세트를 조립할 장소로 사용하게 해주셨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 또한 행사를 앞두고 부통령과 면담을 가지며 우리 행사를 알리고 캠프에 초청하게 하셨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많은 물품들을 큰 트럭으로 가득 후원받아 쌓아둘 곳이 부족할 정도였다. 우리를 도와줄 사역자들이 없었기 때문에 형제 자매들이 모든 부서를 각각 담당하였고, 자원봉사자들도 모아졌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도우셨다.

떠났던 이들이 대부분 교회로 돌아왔다
2011년 2월 10일, 그라시아스합창단과 박옥수 목사님이 도착하여 아르헨티나 첫 월드캠프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이곳저곳에서 몇 백 명의 사람들을 월드캠프에 보내주셨다.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하는 날에는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점심 식사에 초대받아 식당에 갔는데, 식사를 마치고 합창단이 몇 곡의 기악 연주를 했다. 식사하던 시민들이 음악 소리를 듣고 기웃기웃하자 박 목사님이 곧바로 많은 사람들이 식사하는 장소로 가서 큰소리로 이야기하셨다.
“그라시아스합창단은 아르헨티나 청소년들을 위해 노래하려고 한국에서 왔습니다. 합창단의 노래를 듣고 싶으십니까?”
식당에 있던 시민들이 “예”라고 소리쳤다. 시민들은 노래를 듣고 환호하였다. “또 듣고 싶으면 박수를 치십시오.” 하자 식당에 가득한 시민들이 박수를 쳤다. 그때 소프리노 최혜미 단원이 ‘Don’t cry for me Argentina(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를 노래했고, 환호하던 시민들의 눈에 금새 눈물이 고였다. “오늘밤 합창단이 극장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을 합니다. 오실 분들에게 입장권을 드립니다.”라고 하자 모두 달라고 했다.
그날 밤, 그라시아스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칸타타 공연에 수백 명의 시민들이 왔다. 식당에서 입장권을 받았던 시민들은 대부분 공연을 보러 왔다. 크고 넓게만 느껴졌던 공연장이 그날 밤에는 월드캠프 참가자와 시민들로 가득 찼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시민들이 앙코르를 요청했을 때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불렀다. 이번에는 내 옆에 계신 박 목사님이 훌쩍 훌쩍 우셨다. 어려움 속에 있었던 아르헨티나 교회를 위해 잠을 못 이루며 하나님께 간구하셨던 목사님을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감동케 하셨던 것이다. 곧바로 목사님은 행사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셨다.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C5N 방송국에서 박 목사님과 그라시아스합창단을 인터뷰하여 녹화방송으로 20분 정도 전국으로 방송되었다. 교회를 떠났던 많은 형제 자매들이 그 방송을 보고 월드캠프 이후 교회로 돌아왔다.

예수님이 계셨기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월드캠프. 광야에 떡도 없고 떡집도 없었지만 예수님이 계셨기에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과 그라시아스합창단이 아르헨티나에 온 것만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시기에 충분했다.
첫 번째 월드캠프를 준비한 형제 자매들의 마음도 뜨거웠고 감동과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하나님이 교회에 풍성한 열매를 허락하셨다. 그해에 구원받고 교회에 더해진 형제 자매들만 50여 명에 달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종을 모시고 월드캠프를 하고 싶었다. 월드캠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교회에 얼마나 큰 은혜를 입히셨는지 확실히 보았다.
박옥수 목사님과 그라시아스합창단을 초청하여 가진 아르헨티나의 첫 월드캠프는 교회의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고, 복음 전도의 진보를 위한 놀라운 힘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큰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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