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
  • 담당 | 박민희 기자
  • 승인 2019.10.1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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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호 기쁜소식
스페셜 강단 · 전도자 훈련 과정
가을 대전도집회를 앞두고 가진 ‘전도자 훈련’

말씀을 듣고, 그 말씀과 다른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여 거기서 나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이 시대에 들어야 할 깊고 순전한 말씀을 ‘전도자 훈련과정’ 기간에 보내 주셨다. 이 말씀이 우리 마음에 심겨 가을 대전도집회 기간에 수많은 이들을 예수님 안으로 인도할 것이다.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3. 고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면

4.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영에 있나니

5. 예수님의 손을 잡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다운지

6. ‘하늘에 창을 낸들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오’라고 하다니?

 


전도자 훈련 과정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장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로 시작합니다. 신앙은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냐, 밖에 있냐?’로 결정됩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정확히 이야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아야 정죄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 죄를 온전히 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죄인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경을 많이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이 얼마나 완벽한 것인지 잘 모르고 대충 압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몇몇 가지 죄만 사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죄를 완벽하게 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악하게 살 때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써서 삶이 깨끗해져야 신앙이 바로 되는 줄 압니다. 자신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이 어렵습니다. 죄를 범했을 때 ‘내가 다시는 그러지 말고 선하게 살아야지!’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온전케 하셔서 내가 온전하고 거룩해.’라고 받아들일 때 그 거룩함과 온전함이 우리 안에서 무르익습니다.
‘성화’라는 이야기는 성경적으로 아주 잘못되었습니다. 성화라는 것은 거룩하게 되려고 애쓰는 것으로, 거룩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에 대해 고통하고 슬퍼해야 거룩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라고 했습니다. 이미 거룩하고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어도 예수님의 피가 그것을 다 씻었기 때문에 죄를 찾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의 성품에 참예한 자가 되었는데, 아직까지 인간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의 행동을 보고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내 행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나를 거룩하게 하기에 부족하다는 이야기밖에 안 됩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을 믿지 않으면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애쓰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성화되려고 하면 그 순간부터 고달파집니다. 사람들이 로마서 8장 1절을 다 외우지만 자신을 얼마나 정죄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거룩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우리 느낌, 우리 개념을 깨뜨려야 신앙이 됩니다. 믿음은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거룩하게 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가 나를 거룩하고 온전하게 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진실로 믿을 때 우리가 모든 죄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때 성령이 우리 마음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했는데, 많은 성도들이 자신은 새롭게 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탄이 여러 모양으로 그런 생각을 집어넣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것이 사탄의 음성이구나! 이것을 믿지 말아야겠다. 어찌되었건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라고 믿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썩어 냄새가 나지만 살았던 것처럼, 우리 보기에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말하고, 믿음으로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일하십니다.
 


전도자 훈련 과정 2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4~6)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종종 용납할 때가 있지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일 때가 있지요? 그것이 사망인 줄을 압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근래에 우리 교회 안에서 많은 형제 자매들이, 심지어 전도자들도 아무 생각 없이 육신의 생각을 따라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성경은 사망이라고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구원받았지만 우리가 인간인데 육신을 따라 살지 않을 수 있어? 이렇게 조금 살면 어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이 순수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흐리게 만들고 죽입니다. 마음에서 감사가 죽고 기쁨이 죽으며, 세상에 점점 빠지고 죄에 빠져서 결국에는 교회를 떠나 교회를 대적하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그런데도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지 않을 수 있나? 이렇게 산다고 별다른 일이 있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구원받은 후 육신의 생각을 용납하고 싶을 때마다 주님이 자주 ‘이것 따라가면 사망이야. 내가 망해. 따라가면 안 돼!’라는 마음을 강하게 주셨습니다. 육신을 따라갈 수 없도록 주님이 저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서 죄악 속에서 고통하던 사람이 구원받아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도 가슴이 벅차고 너무 행복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복음을 버리고 교회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사탄은 너무 지혜로워서 주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라도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처럼 멸망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제가 복음 전도를 처음 시작할 때 평생을 복음만 위해 살려고 한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 중에 제가 제일 못난 사람이었는데, 지금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귀한 형제 자매들이었는데 사탄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넣어서 그들이 육신을 따라 사망의 길로 갔습니다.
진실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인데도, 형제 자매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실수할 수도 있고, 인간이 다 이렇게 사는 거지’라고 위안하면서 조금씩 육신에 빠지고 세상에 빠집니다. 그러다 보면 사탄의 계획에 휘말려서 허우적거리다 교회를 떠나 교회를 대적하고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이 됩니다. 타락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형제들이 육신에 빠지고 죄에 빠져서 주님을 등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고 타락해 교회를 대적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에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과 육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을 이미 잃었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길을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냥 살지 않고 ‘이 생각이 육신에서 난 생각인가, 영에서 난 생각인가?’를 냉정하게 구분합니다. 생각들을 하나하나 저울에 올려놓듯 분별할 줄 압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육신의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영에 이끌립니다.
로마서 8장 4절에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라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육신을 좇느냐, 영을 좇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는 육신을 좇지 말고 영을 좇아 행합시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생각이든지 ‘육에서 난 생각인지, 영에서 난 생각인지’ 구분합시다.
 


전도자 훈련 과정 3

고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받는다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2~27)
복음을 전하면 사탄이 방해하기 때문에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로마에 갈 때에는 풍랑으로 인해 14일 동안 죽을 지경에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독사에 물리는 일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로마에 복음이 힘있게 증거되고, 바울이 간 로마가 새로운 나라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삶만큼 기쁜 삶은 없습니다. 복음을 처음 전하려고 할 때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 단계를 넘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고, 열 번 스무 번 전하다 보면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납니다. 나를 통해서 구원받는 사람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세상에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집니다.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탄이 복음 전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만들어서 주저하는 성도들이 많은데, 한 번만 전해보십시오.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같은 책은 복음을 전하기 좋은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여러 방향으로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 내용들을 한 장章씩 외우다시피 한 다음 전도하는 연습을 해보는 겁니다. 그것을 휴대폰에 녹음해서 들어보고, 다시 전해봅니다. 그렇게 몇 번 연습한 다음에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보고, 이제 전도하고 싶은 사람에게 찾아가 말을 꺼내는 겁니다.
“내 마음에 가득 찬 이야기가 있어. 너무 귀한 이야기라 그냥 할 수 없어서 혼자 연습을 많이 했는데, 한번 들어볼래? 나는 이 이야기를 깨닫고 난 뒤에 정말 기뻐졌어. 너도 깨달으면 마음에서 근심과 두려움과 슬픔과 원망이 물러가. 마음이 밝아지고 정말 행복해져.”
이렇게 시작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다 전하고 나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물어서 풀어 주고, 하루에 다 풀어 주지 못하면 다음에 만나서 이야기해 줍니다. 그렇게 하면 구원받는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나를 통해서 사람들이 구원받으면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어집니다. 커피나 점심을 사줘 가면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 명이 구원받고, 스무 명이 구원받고, 백 명이 구원받아 보십시오. 배 좀 고프면 어떻고 욕 좀 얻어먹으면 어떻고 어려움을 당하면 어떻습니까?
누구라도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구원받는 복을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마귀가 깜짝 놀라서 오만 가지 생각을 넣어줍니다. ‘듣다가 화를 내면 어떻게 하지?’ ‘가짜로 구원받았다고 하면 어떡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그래도 복음을 전하면 말씀대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세상에는 정말 지독한 어려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거기에서 건져내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죄로 괴로워하던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하던 사람이 복음을 듣고 죄에서 벗어나고 병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면 복음만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각기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맛들이기 조금 어려워서 그렇지, 복음 전하는 데 재미를 들여 보십시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른 일을 조금 못 돌아보아도 괜찮습니다. 복음을 위해 삽시다.
 


전도자 훈련 과정 4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영에 있나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누구든지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그 사람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까?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였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내 죄를 사했다는 말씀이 우리 마음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영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주의 영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한 여자가 간음하다 잡혀서 자유를 잃었습니다. 끌리고 채이고 침 뱉음을 당하며 돌에 맞아 죽기 위해 끌려갔습니다. 그 여자가 그런 대우를 받았던 것은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씀하신 그 순간부터 여자는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여자의 마음에 들어온 순간 여자는 죄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율법이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지배합니다.
제가 구원받고 복음을 위해 살면서 배가 고플 때도 있었고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저를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 일을 복으로 바꾸셔서 우리 마음에 귀한 간증을 남겨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집에 차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세탁기도 있어서 필요할 때마다 사용합니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자주 사용해서 각기 일을 잘하는데, 가장 좋은 예수님은 골방에 모셔놓고 여러분이 삶에서 만나는 일들을 혼자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계시는데도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보면 감격스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 주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그들을 볼 때 가난하고 초라하고 불쌍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죄인이라고 믿을 것인가, 예수님의 피가 죄를 씻었으니 의인이라고 믿을 것인가?’ 우리가 내 죄가 씻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주의 영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주가 되시고 우리 일생을 인도하시는 분이 됩니다.
이제 여러분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주님이 내 안에 계셔.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손에 만져지지 않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셔. 나를 인도하셔.’라고 믿을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여러분이 삶에서 만나는 문제나 어려움을 이기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님을 부르십시오. 주님이 분명히 여러분 안에서 살아 일하실 것입니다. 어떤 슬픔이나 두려움이나 어려움이 있든지, 주님은 한 번도 여러분을 떠나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여러분을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 예수님.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며 은혜를 베푸시고 역사하십니다.
 


전도자 훈련 과정 5

예수님의 손을 잡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다운지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 30:8)
하나님이 어떨 때에는 제 마음을 낮추셨고, 어떨 때에는 꺾으셨고, 어떨 때에는 마음이 힘들거나 어렵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너무 감사한 것이, 제가 곤고하거나 어두울 때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주 밝게 비추셨습니다. 사역자들과 교제하면, 30분을 하든 한 시간을 하든 마지막에 하는 말로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마지막에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믿는 사람과 똑같이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할 때 기도하고 전도할 때 전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안 믿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결정적인 일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쪽으로 마음이 탁 돌아섭니다.
사무엘상 30장에서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성이 불타고 여자와 아이들이 다 사로잡혀갔습니다. 누가 잡아갔는지, 어디로 잡아갔는지 알 길도 없었습니다. 다윗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울 기력이 없을 만큼 울었습니다. 어려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윗을 돌려 쳐서 죽이자고 했습니다. 다윗도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슬퍼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에봇을 가져오라고 해서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이 살아 계셨습니다. “하나님,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라고 물으니까 하나님이 “쫓아가라.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과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다윗의 마음에서는 다 찾은 것입니다.
이제 시글락을 침노한 자들을 뒤따라갑니다. 어떻게 따라갔을까요? 다윗의 아내가 잡혀가면서 딸의 옷고름을 조금씩 잘라 갈래길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떨어뜨려서 길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다윗과 사람들이 길에 쓰러져 있는 애굽 소년을 만나고 그가 그들을 시글락을 침노한 아말렉 사람들에게로 인도하는 내비게이션이 되었습니다.
밤이 깊으면 별빛이 더 빛나듯이, 우리 인생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지키고 도우셨는지, 너무 감사하고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저에게 육을 따라가는 삶이 얼마나 무익한지 가르쳐 주시고, 눈에 보이는 세계 말고 신비한 세계를 보는 눈을 뜨게 해주시고, 모든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꾸시고…. 나이가 들수록 예수님이 더 크게 보이고, 내 삶에 아름다운 분이 되시고,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서 좋은 차나 집이나 옷이나 음식보다 예수님이 크면 행복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살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삽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인생을 산다는 것이 너무 은혜롭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걷고, 예수님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예수님과 함께 깨고, 예수님과 함께 차를 타고…. 오늘도 주님을 뜻을 좇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는 순간순간들이 꽃 같고 보석같이 아름답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사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 삶을 행복으로, 영광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전도자 훈련 과정 6

‘하늘에 창을 낸들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오’라고 하다니?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7:1)
엘리사 선지자가 한 이 말을 듣고 한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들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IYF가 그렇게 최고의 청소년 단체가 되었고, 그라시아스합창단이 그렇게 최고의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최요한 형제가 전갈에 쏘여 죽어갈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났습니다. 굿뉴스코 단원으로 우리 교회의 대학생들이 아닌 외부 대학생들을 모집하자고 했을 때 “학생들이 신청할까요?”라고 했지만 그 해에 1,300명이 신청했습니다. 십수 년 전에 가나와 케냐에서 월드캠프를 하자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할까요?”라고 했지만, 지금은 100개에 가까운 나라에서 월드캠프를 합니다. 옛날에는 우리 생각이 좁았을 뿐이지, 지금 일하시는 하나님이나 그때 일하신 하나님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칸타타 순회공연이 있는데, 우리가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10만 권 미국에 보냈습니다. 많이 만드니까 아주 싸게 만들어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고 감동을 깊이 받은 사람들이 책을 다 받고는 더없이 기뻐하고 행복해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도 주고 싶다며 더 달라고 부탁한다고 합니다.
공연 중간 메시지를 전하는 시간에 30분 가량 복음을 듣고 이 책을 읽으면 공연을 본 사람들이 다 구원받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혼자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은 부인이 남편에게 “여보, 이 책 너무 좋다. 읽어봐.” 하면, 책을 읽는 사람이 10만 명에서 20만 명이 됩니다. 남편이 읽고 나서 “처남, 이 책 한번 읽어봐.” 하면 30만 명이 됩니다. 책이 1년 동안 쉬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마음에 속죄를 심고 의를 심고 기쁨을 심고 행복을 심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렇게 일하는 우리를 하나님이 왜 축복하시지 않겠습니까!
요즘은 남태평양의 섬 투발루에 복음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피지에서도, 키리바시에서도, 투발루에서도 “내가 의인입니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복음의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말씀에서 우리가 의롭다면 의로운 것이고, 새 힘을 얻는다면 얻는 것이고, 병이 낫는다고 하면 낫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다른 자기 생각을 가지고 사마리아 성의 장관처럼 이러쿵저러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이 일이 될까, 안 될까?’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악입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아주 몹쓸 소리입니다. “네가 보리라. 그러나 먹지는 못하리라.”라는 말을 들을 뿐입니다. 그 장관이 마음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내일 이맘때면 우리 모두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겠네요. 할렐루야!” 했으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속에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오늘도 축복 앞에서 저주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안 되지만 하나님은 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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