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가의 말만 좇아서
리브가의 말만 좇아서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19.11.18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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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 |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2편)

아버지의 복을 받을 수 없었던 야곱이 복을 받도록
리브가가 완벽하게 준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복을 받도록 예수님이 완벽하게 준비하셨습니다.

 

내가 별미를 만들어줄 테니 가지고 가서 복을 받아라
창세기 27장은 읽을수록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성경은 어쩌면 마음의 세계를 이렇게 잘 표현했는지 모릅니다. 창세기 27장에는 야곱과 에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사랑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이삭이 에서를 사랑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잘했고, 그가 사냥한 고기로 만든 요리를 이삭이 좋아했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사랑하는 데에는 조건이 없었습니다. 성경에 그냥 야곱을 사랑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복을 받길 원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이 복을 받길 원했습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졌을 때, 어느 날 에서를 불렀습니다.
“에서야.”
“예, 아버지.”
“내가 눈이 어두워지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네 전통과 활을 가지고 나가 사냥해서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오거라. 내가 그것을 먹고 네게 마음껏 축복하리라.”
에서가 이삭의 말을 듣고 곧 사냥하러 갔습니다. 그때 이삭이 한 이야기를 들은 리브가가 야곱을 불렀습니다.
“야곱아.”
“예, 어머니.”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이야기하기를, 사냥하여 고기를 요리해서 가져오면 그것을 먹고 복을 주겠다고 하시더라. 네가 염소 떼에 가서 좋은 염소 새끼를 가져오면 내가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줄 테니,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가서 네가 복을 받아라.”
야곱은 당황했습니다.
“어머니, 말도 안 돼요. 형 에서는 털이 많고 나는 매끈매끈한데, 아버지께서 앞을 못 보시지만 만져 보면 제가 야곱인 줄 금방 아세요. 복을 받으러 갔다가 아버지를 속였다고 저주를 받으면 어쩌려고요? 안 돼요!”
안 된다고 하는 야곱에게 리브가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나에게로 돌릴 것이니 내 말만 좇아 염소 새끼를 가져오거라.”
창세기 27장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복을 받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에서로, 자기 노력과 수고로 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야곱으로, 자신의 행위로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기에 누군가가 이루어준 일을 들고 나가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에서가 사냥하러 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짐승을 찾아다니고, 마침내 짐승을 발견해 활로 쏘아 맞춥니다. 화살에 맞은 짐승이 도망가다 쓰러지고, 에서가 뒤쫓아가서 잡습니다. 짐승이 사슴이라면 상당히 무겁습니다. 요즘처럼 자동차가 있었습니까? 그 짐승을 지고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고생의 연속입니다. 그처럼 수고했는데, 에서는 결국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노력으로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에서와 같은 신앙생활을 합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고 선하게 살려고 애쓰지, 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 있든지 자신이 착한 일을 하면 하늘나라에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복을 받기 위해서 한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이 복을 받도록 계획을 세웠고, 필요한 모든 일을 했습니다. 야곱이 한 일은 리브가가 지시한 일에 동의한 것밖에 없습니다.

신앙은 ‘내 생각을 따라가느냐, 성경을 따라가느냐’의 싸움
리브가가 야곱에게 ‘내가 너를 위해 일하면 네가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야곱이 들어 보니 자기 마음에 맞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형 에서는 털 사람이고 저는 매끈매끈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못 보시지만 손으로 만져 보면 제가 야곱인 것을 금방 아실 텐데, 아버지를 속였다고 저주를 받으면 어쩌고요?”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릴 것이니 내 말만 좇거라.”
리브가가 야곱에게 ‘내가 책임지고 복을 받게 해줄 테니 네 생각을 좇지 말고 내 말만 좇아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내 생각을 따를 것인가, 어머니의 말을 따를 것인가?’ 결정해야 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성경 곳곳에서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은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이 우리 생각과 같으면 따르기 좋은데 다르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안 되고 망할 것 같고 내 생각대로 해야 잘될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사탄이 우리 속에 넣어줍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결국 ‘내 생각을 따라가느냐, 성경을 따라가느냐’의 싸움입니다.
지금 야곱의 주장과 리브가의 주장이 맞섭니다. 신앙생활은 마지막에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맞섭니다. 그때 내 생각을 따라가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든지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은 생각할 것 없이 자기 생각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자신을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생각을 버리고 내 말을 좇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버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신앙, 자기 마음에 맞는 신앙을 갖길 원합니다. 그런 신앙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던 33년 동안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일이 우리 생각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회개해라, 네 생각은 잘못되었고 악하다, 네 생각에는 사탄의 계획이 들어 있다’라고 사람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성경은 나를 의롭다고 하고, 내 눈에는 죄인으로 보이고…
리브가가 이끄는 길은 복을 받는 길인데 야곱은 부담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속이는 자로 보여 저주를 받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성경이 우리 마음에 맞지 않고 내 생각이 옳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에서 마지막 고비가 있는데, ‘사탄으로 말미암은 내 생각이 옳으냐, 예수님의 생각이 옳으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길,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병자가 가지고 있던 생각은 ‘난 못 일어나, 못 걸어가’입니다. 이제 어느 것을 따르느냐는 것입니다. 일어나 걸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느냐, 일어날 수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따르느냐, 38년 된 병자는 선택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사하셨다는 이야기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수없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자신이 죄인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나를 의롭다고 하고 내 눈에는 내가 죄인으로 보이고, 어느 것을 따라야 합니까?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 4:4~5)
이 말씀에 보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경건치도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고…, 이처럼 악하고 더럽고 추하게 산 사람이 경건치 않은 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의롭다고 하십니다. 누가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은 은혜로 됩니다. 결코 에서처럼 내가 열심히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해서 복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고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선을 행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고 ‘의롭다, 깨끗하다’ 하십니다. 의를 행한 사람에게 의롭다고 하면 이해가 가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 의롭다고 하기에 이해가 안 됩니다. 그때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십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지만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생각을 더 믿습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중심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의 목적은 우리 죄를 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죽으신 십자가에서 우리 죄가 씻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잘 모르셔서 그러는데, 전 죄인입니다. 왜 저보고 의롭다고 하십니까? 저는 죄가 많습니다.” 하며 하나님을 설득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죄 지은 것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 다 아시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시면 우리가 의롭습니다.

내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창세기 27장에서 에서는 자기가 노력한 대가로 복을 받으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았습니다. 야곱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머니 리브가가 준비해준 것만 들고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야곱이 넘어야 할 산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신이 복을 받기는커녕 저주를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복을 받는 길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있었기 때문에 야곱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리브가의 말을 좇았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에서의 옷을 입히고, 매끈매끈한 곳을 염소 털로 덮어서 털이 많게 하고, 이삭이 즐기는 별미를 만들고, 포도주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아버지 앞에 에서로 서서 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게 했습니다. 그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서 복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게 만드셨습니다.
야곱은 리브가가 꾸며준 모습으로 리브가가 만들어준 별미를 들고, 아버지 이삭 앞에 자기 이름이 아니라 에서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우리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자기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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