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나에게 새 삶을 주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새 삶을 주셨다
  • 김학철(기쁜소식방콕교회 선교사)
  • 승인 2020.02.0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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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_김학철 선교사 편(2화)

열심히 공부해서 간 대학에서 좌절했던 김학철 선교사는  우연히 알게 된 전주평강교회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한 달 동안 복음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로마서를 읽으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구원받았다.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귀신들려 18년 동안 꼬부라져 살았던 여자의 모습이 바로 열심히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고 산 내 마음의 모습이었다. 그날도 도서관에 일찍 가서 좋은 자리를 맡아 책을 읽었지만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밖에 나가 복도에서 줄담배만 피웠다. 그런데 반대편 복도 끝에서 내 친구와 선배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기서 뭐 하는 거지?’ 가까이 가보았다. 선배가 친구에게 물었다. “만약에 오늘 죽는다면 두렵지 않겠어?” 내 귀에 들려온 선배의 질문에, ‘오늘 죽는다면 누구나 두렵지. 저게 무슨 질문이야? 그럼 이 세상에 지금 죽어도 안 두려운 사람이 있다는 거야? 별 이상한 질문이 다 있네.’라고 생각했다. 선배의 질문을 받은 친구는 1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배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죽어도 두렵지 않아.”
그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사람이 죽음 앞에서 두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 선배가 친구에게 전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전도가 끝난 뒤에 그 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선배님, 교회에 다니십니까? 어느 교회 다니십니까?”
“아, 우리 학교 앞에 있는 전주평강교회에 다녀.”
“학교 앞에 그런 교회가 있었어요?”
내가 계속 물으며 교회에 가고 싶다고 표현했지만 선배는 관심이 없었다. 착하게 생긴 그 친구에게만 계속 교회에 오라고 하지, 내가 “제가 간다니까요.” 해도 전혀 못 믿겠다는 눈치였다. 아마도 나처럼 술 좋아하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교회에 다닐 타입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처음 가본 전주평강교회
다음날 일요일 아침, 교회에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숙집을 나왔다. 대학교 앞에 있는, 종탑과 십자가가 있는 교회들을 찾아갔다. ‘덕진중앙교회? 여기는 선배가 말한 교회가 아니네.’ 그 옆에 또 큰 교회가 보이길래 가서 보니 역시 선배가 다니는 교회가 아니었다. 서너 교회를 찾았지만 전주평강교회는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쯤 찾아 헤매다가 ‘에이, 예배 다 마쳤겠다. 나온 김에 시내에 가서 영화나 한 편 보고 가자’ 하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주변 건물들을 둘러보는데, 어느 건물 3층에 작은 간판이 걸려 있고 거기에 페인트 붓으로 쓴 듯한 글씨체로 ‘전주평강교회’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종탑과 십자가가 세워진 곳만 교회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곳에 교회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예배가 끝났겠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건물 3층에 올라가 보니 교회가 아니었다. 마침 어떤 사람이 뒤쪽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올라가면 교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곳으로 가자 작은 홀 안에 사람들이 빨간 방석에 앉아 있었다. ‘이게 무슨 교회야?’ 하고 문을 닫고 내려오는데, 어떤 여자 분이 “교회에 오셨나 보죠? 들어오세요.” 하며 나를 끌고 들어갔다. 아직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앉아 있는데 너무 어색했다. 그렇게 기쁜소식선교회를 처음 만났다.

내가 왜 죄인이야?
전주평강교회는 성도가 20명쯤 되는 작은 교회였다. 그 교회에 한 청년이 제 발로 찾아왔으니 얼마나 관심이 가겠는가. 나를 보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해주려고 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이 되었고, 예수님이 내 죄를 지고 가셨다고 했다. ‘오늘도 내일도 죄를 짓는데, 어떻게 내 죄가 다 예수님께 옮겨갔다는 거야?’ 말은 이해되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자 “대학생이 왜 저렇게 답답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교회에 가기 싫어지고, 나를 보고 죄인이라고 하면 화가 났다. ‘내가 살인을 했어, 간음을 했어, 사기를 쳤어? 내가 왜 죄인이야? 착하게 공부만 하고 살았는데!’
매일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성경 공부를 했기에 한 달에 40번은 한 것 같은데 구원을 받지 못해 답답함이 점점 커졌다. 하루는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이 로마서 1장부터 10장까지 열 번만 읽어보라고 하셨다. 읽으려고 성경을 펴니 단어들이 생소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읽으려고 차근차근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한 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성경을 덮고 담배를 집어들었다.

농담하지 말고 술이나 먹으러 가자
하루는 내가 다니던 토목과에서 현장 실습을 갔는데, 버스를 타고 산길을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니 낭떠러지였다. 자칫하면 버스가 추락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난 아직 죄 사함을 못 받았는데 죽으면 지옥에 가겠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휴강이어서 아침부터 로마서를 다시 읽었다. 1장부터 10장까지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그렇게 오전 내내 읽다가 로마서 1장 28절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처음으로 성경을 통해서 발견했다.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이어서 비방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등은 사형에 해당된다는 말씀을 읽었다. ‘자랑하는 자’에 내 눈이 멈추었다. 내 안에 ‘나도 한때는 공부를 잘했어. 그래도 난 대학생이야’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둑질이나 간음이나 살인뿐 아니라 자랑하는 것도 죄였다. 자랑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내가 죄인인 것이 분명했다.
내가 죄인임을 안 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말씀에 눈이 머물렀다. ‘아, 아담이 죄인이어서 내가 죄인이 되었고, 예수님이 순종하셔서 내가 의인이 되는 거구나’ 하고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려는 찰나, “김학철 학생, 전화 왔어!” 하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불렀다. 전화를 받아 보니 고등학생 때 제일 친했던 친구였다. 5년 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친구가 반갑다며 술 한 잔 하자는 것을, 술자리를 피하려고 극장으로 끌고 갔다. 영화를 보면서도 ‘어떻게 이 자리를 피하지?’ 생각만 했다. 영화가 끝나자 친구가 “야, 이제 술 먹으러 가자.” 했다. 그날 꼭 복음을 들어야 했기에 갈 수가 없었다.
“미안한데, 내가 교회 목사님하고 약속이 있어.”
“뭐? 미친놈, 네가 교회를 나가? 야, 교회 망하겠다. 농담하지 말고 술이나 먹으러 가자.”
“아니, 진짜 약속이 있어. 미안하다. 내가 다음 주에 네 집으로 찾아갈게.”
그렇게 말하고 뛰어나오는데 등 뒤로 ‘이 새끼 저 새끼’ 하고 친구가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였구나!
교회에 도착하니, 목사님이 한 아가씨와 신앙상담을 하고 있다가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오늘 학생이랑 꼭 성경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숙집에 전화했더니 학생이 없다고 해서 아쉬웠는데, 잘 왔어. 여기 앉아봐. 이 아가씨랑 학생이랑 상태가 똑같아. 그러니까 같이 들어.”
목사님은 성경 공부를 이어나가셨고, 나는 옆에 앉아서 같이 들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목사님이 이 구절을 읽고 설명해주셨다. “성경에는 원죄나 자범죄란 말 자체가 없어요. 모든 죄라고 기록돼 있어요.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의 등 뒤에 던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이거였구나! 내 죄와 짐이 예수님에게 다 옮겨졌구나. 그런데 이걸 못 믿고 내가 짊어지고 있었구나.’ 마음이 너무나도 평안했다. 날아갈 듯 기쁘고 정말 행복했다.
그때부터 누구를 만나도 고개를 들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너, 애인 생겼냐? 왜 싱글벙글 웃고 다녀?” 하며 갑자기 변한 내 모습에 놀라워했다. 나는 돈이 없어도 행복했다. “초가삼간도 나는 만족하네~”라는 찬송을 부르며 다녔다. 돈에서, 공부에서, 죄에서 예수님이 나를 풀어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왔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 것이다.
로마서를 읽다가 복음이 내 마음에 들어오려던 찰나에 친한 친구한테서 5년 만에 연락이 온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때 하나님이 나를 이끌지 않으셨다면 그냥 술집으로 갔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오랜만에 나를 보려고 멀리서 찾아온 친구를 뿌리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깊은 흑암에서 건져주시려고 했던 것이다.

이제 내가 너를 보내어…
대학교 3학년 때 구원받은 후 교회에서 행복하게 지냈고,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다. ‘전공한 토목 관련 직장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복음 전도자가 되기 위해 선교학교에 갈 것인가?’ 당시에는 기쁜소식선교회의 전체 성도가 300~400명 정도여서 대학을 졸업하고 선교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 외에는 이해할 수 없는 길이었다. 특히 우리 가족은 나를 미친놈으로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복음을 위해 살고 싶지만 너무 부담스럽고 싫어서, 어느 길을 가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겨울수양회가 시작되었지만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가기 싫었다. 수양회에 가면 분명히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그러면 선교학교에 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교학교에 가면 굶는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에, 한창 젊은 나이에 굶는 것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대구에서 있었던 1차 수양회가 시작되던 날,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형제들이 나를 기다리다가 안 오니까 찾아와서 “형제님이 안 타면 버스 출발 안 한대요.”라고 했다. 아무리 가기 싫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아서 일어났다.
수양회 동안 마음에 말씀이 들어올까봐 말씀 전하는 시간에는 계속 잤다. 그렇게 수양회를 마치고 돌아오니, 형제 자매들은 충만해져서 간증을 쏟아냈다. ‘나만 뭐한 거지?’ 싶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2차 서울 수양회에 다시 참석했다.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막상 도착해서는 마음이 또 바뀌었다. 선교학교에 갈까봐 말씀을 듣기 싫었다. 그런데 마지막 설교 시간에 ‘지난번에도 이렇게 돌아가서 후회했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시간 말씀은 듣자’라고 생각했다. 누가복음 5장 말씀을 귀 기울여 들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했다. 예수님 없이 살았던 내 인생이 그렇다는 마음이 들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고기를 많이 잡은 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나도 마음에서 무릎이 꿇어졌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셨는데,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선교학교에 가는 것에 대해 가족들이 반대할 것도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더 두려웠던 것은 내가 훈련받다가 힘들어서 도망갈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두려워  말라고 하면서 이후로는 사람을 취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 후 교회에서 금식기도회가 있었다. 금식하기 원하는 사람 30여 명이 교회에 모여 난로를 중심으로 둘러앉았다. 첫날 목사님이 출애굽기 3장을 읽자고 하셨다. 돌아가면서 한 절씩 읽는데, 열한 번째에 앉은 나는 11절을 읽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이튿날에도 빙 둘러앉아 성경을 읽는데, 목사님이 또 출애굽기 3장을 돌아가면서 읽자고 하셨다. 그날도 나는 열한 번째에 앉아 있어서 11절을 또 읽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금식을 시작한 지 2~3일이 지나면서 한 사람씩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나는 마음에서 담판을 지어야 했기에 9일째까지 금식했다. 며칠 동안 출애굽기 3장 11절에 붙잡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지 못했는데, 하루는 그 앞에 있는 10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낸다고 하셨다. 내가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게 하시는 것이었다. ‘아, 하나님이 나를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신다는 거구나!’ 마음에서 새 힘이 생겨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는 형제 자매님들 앞에서 “하나님이 저에게 힘을 주셔서 선교학교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라고 간증할 수 있었다.

구원받기 전, 나는 성경 말씀을 알아듣지 못해 성경 공부를 수십 번씩 해도 구원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인도해서 말씀에 마음을 열 수 있었고, 하나님의 지혜가 임해 말씀이 이야기하는 바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구원받던 날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지켜 교회로 가서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구원받은 후로도 내 연약함 때문에 복음을 위해 힘껏 달려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나를 붙잡고 이끄셔서 복음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셨고, 복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새 힘도 불어넣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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