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 잊을 수 없는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중 잊을 수 없는 사람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0.03.10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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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 _242회 | 박옥수 목사 간증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받고 새 삶을 살았다. 간음한 여자, 사마리아 여자 등등.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고, 또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삶을 사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 그 가운데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를 위해 준비되었던 곳, 압곡동
내가 압곡동에 있을 때, 하나님은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인도하셨다. 사실 나는 선교학교에 있을 때 모든 면에서 가장 미미한 존재였기에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전도해도 나를 통해서 구원받는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선교학교 교육을 다 마치고 다른 사람들은 전도지로 나간다고 준비하는데, 나에게는 “어디로 갈 거냐?”, “무얼 할 거냐?”라고 묻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사역자로 오라고 하는 곳은 더더욱 없었다. 누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아도 대답할 말도 별달리 없었다. 
내가 아는 곳은 내가 태어난 고향, 서울, 그때까지 있었던 대구, 그리고 압곡동이 전부였다. 대구에는 선교학교 교육이 끝났기 때문에 더 있을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고향으로 갈 수도 없었다. 남은 곳이 있다면 압곡동이었다. 압곡동은 우리가 알고 지냈던 맥카피 선교사님이 계시던 거창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맥카피 선교사님은 종종 딕 욕 선교사님을 초청해서 집회를 가졌는데, 그때마다 딕 선교사님은 우리를 데리고 가셨다. 그날은 멋진 영국제 자동차 랜드로버 7인승을 타는 신나는 날이었다. 운전은 항상 딕 선교사님이 하셨다. 
우리는 거창까지 가면서 찬송도 부르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종종 내려서 쉴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를 그때는 여섯 시간이나 가야 했다. 지금은 대구-광주 고속도로가 있어서 얼마나 편한지 모르는데, 그곳에는 정이 많이 들었던 길들이 있다. 
하루는 그날도 거창에서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딕 선교사님이 압곡동 앞에서 차를 세우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근방의 시골 동네마다 교회가 있는데 이곳에는 교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가서 전도하고 가자.” 그래서 모두 차에서 내려 전도를 했다. 
내가 갈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압곡동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다만 차에서 내려 한 번 전도했을 뿐인 곳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버스가 나를 압곡동 입구에 내려놓고 떠난 후 나는 너무 허전했다. 그곳에서 생전처음 혼자 된 마음,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그곳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미 준비하신 곳이라는 사실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나는 알았다. 나를 도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믿음이 있든지 없든지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했고, 하나님은 나를 정확히 인도해 주셨다. 나는 압곡동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그리고 막연하기만 했던 믿음의 세계에 대하여 조금씩 눈을 뜰 수 있었다. 

내 일생에서 복음을 전해 처음으로 한 사람이 구원받은 그날
내가 살았던 집에는 주인아저씨 내외, 그리고 세 자녀가 있었다. 첫째는 거창에 있는 학교에 가고, 내외분과 두 아이가 함께 지냈다. 낮에는 대부분 들에서 일을 했다. 나는 오전에는 주로 방에서 성경을 읽고, 주인아주머니는 마루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든지 아니면 무를 자르는 일을 했다. 시골은 아주 조용했다. 들리는 소리도 없고, 이따금 닭 우는 소리가 전부였다. 
그날도 나는 성경을 읽고 있었고 주인아주머니는 마루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떤 부인이 찾아왔다.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다 들렸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부인이 물었다. “너, 옆방 세 놓았나?” 하고 내가 있는 방 이야기를 꺼냈다. “응, 교회 전도사 왔다.” “전도사님?” 그렇게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그분이 나에 대해서 자세히 묻는 것을 들으면서 교회에 다니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성경을 가지고 나갔다. 
처음 만난 그 부인과 성경 이야기를 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에도 복음을 많이 전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전에는 복음을 전해도 내 생각이 많아서 순수하게 전할 수 없었다. 복음을 전하면서 항상 ‘이번에는 꼭 구원받게 해야지’ 하거나 ‘내가 성경을 얼마나 아는지 이야기해야지’ 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날은 하나님의 성령님이 내 마음을 꼭 잡고 계심을 느꼈다. 너무나 감사했다. 
나는 내가 압곡동에 있는 동안 나도 모르게 변한 것을 느끼고 놀랐지만, 그 부인도 내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놀라워했다. 그날 내 일생에서 복음을 전해 처음으로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경험을 했다. 하나님, 그리고 나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했다. 그 부인도 너무나 기뻐했다. 구원받고 죄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날부터 그 자매님과 나는 한 가족같이 되었다. 얼마 안 되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자매님의 남편도 구원을 받으셨다. 

종종 이 땅에서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맛본다 
압곡동에는 정말 소망을 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이 나에게서 세상의 것을 다 빼앗은 뒤 세상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당신의 세계 안으로 나를 이끄신 것이다. 
구원받고 자매님의 삶이 정말 많이 변했다. 하루 종일 고된 장사를 마치고 저녁이면 어김없이 성경공부를 하러 오셨다. 간증하고 말씀을 듣고 늦게 집으로 돌아가시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반찬을 조금 가지고 와서 주셨다. 자매님은 ‘어제 저녁에 집에 가다가 여우를 만나서 애를 먹었다’고 하시고는 바삐 집으로 가서 또 물건을 팔러 가곤 하셨다. 자매님 마음에는 예수님의 마음밖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자매님을 볼 때마다 자매님은 주님만 보고 사시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그때를 생각한다. 지금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좋은 차, 음식…. 내 주위에 많은 것들이 있고, 많은 일도 있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때 나도, 그 자매님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기에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돋보였다.’ 
자매님은 나날이 달라지셨다. 자매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는 사람들, 병 고침을 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나갔다. 그리고 많은 복음 전도자들이 자매님의 전도로 일어났다. 자매님은 늘 예수님과 같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 후 나이가 많이 드셔서 부산에 있는 아드님과 함께 살며 교회 일을 하다가 주님 곁으로 가셨다. 그때 나는 해외에 있어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은혜가 나는 너무나 놀랍다. 물론 하나님은 그 자매님에게만 일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일하시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고도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마음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많은 마음을 세상에 빼앗겨 하나님이 일하실 기회를 세상 일에 빼앗기고 있다. 
나는 한번씩 마음으로 압곡동에도, 장팔리에도, 그리고 김천에도 가본다. 아무것도 없어서, 하나님밖에 다른 길이 없어서 기도했던 그때로 가본다. 그리고 지금은 주님과 함께 계시는 고영복 장로님, 이형모 장로님, 많은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지내던 때로 가본다. 종종 내가 갈 그 나라에 가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땅에서 맛볼 수 없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맛본다. 
우리도 육신을 따라 살지 말고, 자주 지금의 삶을 떠나 조용히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 나를 잊고 예수님과 마음을 나누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서 작은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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