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을 세우리라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0.03.06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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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 |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6편)

이 글은 박옥수 목사의 설교집 <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내용을
토대로
편집부에서 엮은 글입니다. 매달 주제별로 한 편씩 연재됩니다. 
유튜브에서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어린양’으로 검색하세요.

 


누구든지 율법 앞에 서면 지은 죄로 인해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이 세워져 율법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러니 “나는 
율법으로 재판 받지 않고, 새 언약으로 재판 받겠습니다.” 하십시오. 

 

사탄이 넣어준 음란한 마음이 여자의 각오보다 강했기에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율법은 예수님이 오시기 약 1,500년 전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두 개의 돌판에 기록하여 모세에게 주신 법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힌 여자가 불쌍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여자를 간음했다고 정죄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여자는 사탄이 넣어준 음란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음란한 마음이 일어날 때 여자가 각오했습니다. ‘간음하지 말아야지! 남편이 있는 내가 그러다가 들키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무엇보다 간음하다 잡히면 돌에 맞아 죽어. 그러니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사탄이 넣어준 음란한 마음이 여자의 각오보다 강하니까 여자의 마음을 멋대로 끌고 갔습니다. 
사람이 강한 것 같지만 어떤 생각이 마음에 들어와서 끌고 가면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컴퓨터 게임에, 어떤 사람은 도박에, 어떤 사람은 술에 빠져서 삽니다. ‘이제 그만해야지!’ 하고 각오하지만 유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처럼 유혹에 져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기에, ‘율법에는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했는데 어떻게 살리지? 율법을 어기지 않고 살릴 수 있을까?’ 하며,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만들려고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를 살려야 하는데, 살릴 법이 있어야 살리지요.

이런 사람을 살릴 법이 없다는 게 원통하다
오래 전, 박옥수 목사가 선교학교 학생으로 있을 때 대구교도소 19호 감방에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그 감방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전도지 한 장이 들어갔습니다. 찢어버리려다 독방에서 너무 심심하니까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종이가 해어질 정도로 심심할 때마다 읽었습니다. 하루는 전도지에 적힌 내용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교도관에게 성경을 부탁해서 그때부터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며칠 후, 누가복음에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 이야기를 읽다가 예수님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대목에서 마음에 느낀 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지를 만든 곳에 편지를 보냈고, 편지를 받은 선교학생들이 찾아가 복음을 전해 그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박옥수 목사가 면회를 갔을 때 그는 “내가 교도소에 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구원받았겠습니까?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박옥수 목사는 군복무 중에 그가 사형을 당했다는 엽서를 받았습니다. “우리 형제 OOO, 주님 품으로 가다.” 세월이 많이 흘러, 박 목사 부부가 성도 집을 심방하려고 북악스카이웨이 쪽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다가 갑자기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서 운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침 길옆에 예배당이 있어서 그 마당에 차를 세우자, 그 교회 목사가 밖으로 나와 박 목사 내외를 반기며 마침 점심을 먹으려고 김치밥을 했으니 같이 먹자고 했습니다. 김치밥을 양념장에 비벼 맛있게 먹고, 눈이 그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교회 목사가 오랫동안 대구교도소 교목으로 지냈다고 하여, 박 목사가 혹시 사형수 OOO을 아는지 물었습니다.
“알지요. 그분 사형을 집행할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요.”
“저는 그분이 죽기 전에 같이 신앙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입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나 너무 섭섭한데, 그분 이야기 좀 들려주십시오.”
“절차대로 진행되어 그의 얼굴에 검은 보자기를 덮었지요. 검사가 사형 집행문을 읽고, 그의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확인한 후 ‘사형을 집행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며 얼굴을 덮은 보자기를 벗겨 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검사가 그렇게 해주라고 했어요.”
그는 사형 집행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내가 제 명에 못 죽고 사형을 당하니까 불쌍하게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법은 내 죄를 용서하지 못했지만 하나님 법으로는 내 죄를 다 사함받았습니다. 잠시 후면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겁니다. 당신들은 대한민국 법으로는 죄인이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신들도 나처럼 예수님을 믿고 죄를 사함받아 하늘나라에 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찬송을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사형을 집행하던 검사가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법이 없는 게 원통하다.”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새 언약을 세우리라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하다 잡힌 여자는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으니까 이 여자를 살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냥 여자를 살려 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여자를 어떻게 살리십니까? 여자를 살릴 수 있는 새 법이 필요합니다. 그 새로운 법에 대한 이야기가 예레미야 31장에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1~34)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법을 사이에 두고 인간과 만나길 원치 않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되길 원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무슨 법이 필요합니까? 아주 가까운 사이에는 사랑과 은혜만 있지, 법은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먼 사이에는 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스스로 선한 줄로 여겼기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참된 선의 기준을 가르쳐 주시려면 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이 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내 법을 지키면 복을 주지만 못 지키면 저주를 내리겠다’고 하시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지키겠다고 하여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십계명이 내려오던 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죄로 3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후로도 율법을 어기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율법에는 긍휼이나 자비가 없기에 율법으로는 인간이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새 법을 주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옛 언약은 율법입니다. 하나님은 그 법을 밀어내고 새 법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 31:3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때 세운 율법은 모든 인간이 어기고 아무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첫 언약은 돌판에 새겼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돌판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새겨져 있지만 자꾸 잔소리하는 부모가 밉습니다. 돌판에 간음하지 말라고 새겨져 있지만 계속해서 음란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탐내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남의 물건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율법과 인간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는 줄 알면서도 사람들이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탐내고 거짓말합니다. 그런데 법을 마음에 기록해 놓으면 간음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살인하기 싫고, 도둑질하기 싫고, 거짓말하기 싫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길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4)
새 언약은, 법을 돌판에 기록하지 않고 마음에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서 죄가 싫고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는 법입니다. 또한, 우리 죄악을 사하고 그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날이 이르면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율법으로는 간음한 여자를 살릴 수 없기에 법을 바꾸십니다.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첫 번째 법은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돌판에 기록하셨고, 새 법은 예수님이 손가락으로 땅에 기록하셨습니다. 땅은 인간을 가리킵니다. 당신의 법을 우리 마음에 기록하신 것입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새 법입니다. 예수님이 쓰신 새 언약으로 재판하니까 간음한 여자의 죄가 사해졌습니다. 예수님이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여자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마음에 성령이 들어와서 이제 여자는 죄와 멀어지고 성령에게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나는 율법으로 재판 받지 않고, 새 언약으로 재판 받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각기 두 법 중에 한 법 아래 있습니다. 새 언약 아래 있는 사람도 있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으로, 누구든지 율법 앞에 서면 지은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 언약이 세워져 율법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러니 “나는 율법으로 재판 받지 않겠습니다. 새 언약으로 재판 받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율법으로 재판하면 모든 사람이 사형에 해당하지만, 새 언약으로 재판하면 어떤 죄를 얼마나 지었든지 무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려고 새 법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고,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를 살리실 때 새 법을 세우셨습니다.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시고, 새 법으로 여자를 재판하셨습니다. “내가 네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새 법으로 재판하니 간음한 여자에게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간음한 여자와 같이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새 법 아래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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