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대구 가는 버스비
[라이프] 대구 가는 버스비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0.04.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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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 _243 | 박옥수 목사 간증

 

 

나에게 여비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구원받은 뒤 선교학교를 마치고 압곡동과 장팔리에 있었을 때 삶은 말할 수 없이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주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시는 귀한 시간이어서 나는 어떤 때보다도 그때가 좋았다. 하나님은 나에게 세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고, 주님이 늘 나와 함께 계심을 경험하곤 했다. 그리고 1965년에 군대에 갔을 때, 하나님은 군대 안에서 당신이 나에게 역사하시는 놀라운 경험들을 하게 하셨다. 군대에 가기 전까지 나는 거창 장팔리교회에 있었는데, 항상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 되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삶을 배웠다. 
어느 날, 대구에 있는 선교회 본부로부터 월요일에 대구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이 토요일이었는데 나에게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람에게 구하거나 암시도 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배웠다. 그렇게 사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염려가 될 때가 많았는데, 그때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복음 전도자들이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동안 많은 물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면 항상 염려 가운데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사는 삶을 배우지 못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면 늘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대구에 가야 하는 일을 두고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비를 주시지 않았다. 주일 예배 때 말씀을 전한 뒤 광고 시간에 ‘나는 내일 대구에 간다’고 알렸다. 그러고는 누가 나를 위해 여비를 주길 기대했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저녁 예배 때에도 말씀을 마치고 내일 대구에 간다고 알렸다. 예배를 마치고 한 사람 한 사람 집으로 돌아간 뒤,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나에게 여비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돈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려워도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 돈이 없지만 대구로 가기 위해서 버스정류소를 향하여 걸어갔다. 내가 살던 동네 이름이 ‘장팔리’였는데, 읍내 장터에서 10리는 못 되고 8리쯤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장팔리에서 버스정류소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차비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면서 걸어가다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버스정류소로 가는 길에 우리 교회 형제님이 사는 집이 있었다. 그 형제님은 고등학교 교사이고, 아내인 자매님은 문방구를 했다. 그리고 형제님은 우리 교회 재정을 맡으신 분이었다. ‘그 집에는 많은 돈은 없어도 내가 대구 갈 여비 정도는 항상 있는 집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내 마음이 자꾸 그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으로 그 집에 가보았다. 한번은 아침에 내가 자전거를 타고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 형제님이 가게에서 세수를 하고 나서 물을 도로에 뿌리다가 나를 보고는 “어디 가십니까? 들어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세요.” 하셨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이 났다. 내가 버스정류소로 가던 그때가 바로 그 시각이었다. 혼자 상상을 했다. 형제님이 세숫물을 도로에 뿌리려고 하다가 나를 보고는 “전도사님, 아침 일찍 어디 가십니까? 참, 오늘 대구 가신다고 했지요? 여비는 있습니까?”라고 묻고, 내가 없다고 하면 “말씀하시지 그랬습니까?” 하고…. 혼자 그런 상상을 했다. 
그러다가 나에게서 나와 밖에서 나를 보았다. 내가 앞으로 한평생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데, 늘 돈이 없어서 사람의 도움을 바라며 사는 그런 모습이 싫었다.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그 형제님이 돈을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해야지?’ 그냥 나오는 내가 너무 어색할 것 같았다. 그래서 어려워도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했다. 
그 집을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그것도 마음에 안 들어, 그 집 앞으로 가지 않고 뒷길로 돌아서 그 집을 지나 도로로 다시 나왔다. 때마침 버스 한 대가 정류소에서 천천히 나오기 시작했다. 앞에 큰 글씨로 ‘대구’라고 쓰여 있었다. ‘대구를 가려면 저 차를 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차가 내 앞에 섰다. 나 말고 누가 있는지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러더니 버스 문이 열렸다. ‘이것은 타라는 것이다’ 하고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 대구 교회에 다니는 한 부인 자매님이 손짓하며 나를 부르셨다. 나는 가서 자매님 옆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서 힘있게 달렸다. 버스표와 볼펜을 든 안내양 아가씨가 내 자리로 찾아왔다. 나는 옆에 있는 자매님에게 말했다. “자매님, 저 버스비가 없어요.” 자매님은 “내가 알아요.” 하면서 버스비를 대신 내주셨다. 너무나 감사했다. 자매님은 나에게 버스비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제 다시는 다른 방법을 쓰지 않고 하나님만 믿고 살고 싶었다
자매님은 대구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살고 계셨다. 대구에서 거창을 지나 조금 더 가면 함양이 나오는데, 그곳에 나이 많으신 친정어머님이 혼자 계시고, 자매님은 일 년에 한두 차례 어머니를 만나러 가신다고 했다. 이번에도 어머니를 뵙고 오는 길인데, 대구에 사는 자신은 그래도 돈을 만지기 수월하지만 시골에는 돈이 너무 귀해서 올 때마다 대구로 가는 차비만 남기고 지갑을 다 털어서 어머니에게 드리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을 꺼내서 어머니를 드리려고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자꾸 돈을 지갑 안으로 밀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내가 왜 돈을 어머니에게 드리지 못했지?’ 생각하고 있는데, 거창 정류소 부근에서 내가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 하나님이 박 형제 차비 주라고 그러셨구나!’ 하고 운전수에게 소리쳐서 차를 세웠다고 한다. 
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문방구 하는 형제님 집에 갔다면 나를 위해 준비된 자매님이 탄 버스는 그냥 지나갔을 것이고, 나는 ‘기도해도 하나님이 내 기도는 안 들어 주신다’고 믿고 말았을 것이다. 그날 나는 나를 위해서 여비를 준비해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했다. 이제 다시는 다른 방법을 쓰지 않고 하나님만 믿고 살고 싶었다. 
대구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훨씬 지났다. 자매님이 나에게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집에 도착해서는 점심을 아주 정성스레 차려 주셨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가 얼마 후 어디서 빌린 것 같아 보이는 돈을 잔뜩 가지고 와서 내 주머니에 넣어 주셨다. 그리고 얼마나 수고가 많냐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날부터 나는 내가 주님을 의지했을 때 주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주님은 성실하게 모든 면에서 나를 도와주셨다. 그래서 내가 주님만 믿고 사는 삶을 허락해 주셨다. 그 일 후로 나는 그 자매님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많은 복음의 문을 열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다
나는 1965년에 군대에 갔고, 1968년에 제대한 뒤 김천에서 복음을 전하며 지냈다. 여름마다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를 인도할 팀을 만들어서 25개의 교회에 초청을 받아 가서 어린이를 위해 집회를 했다. 주일학생과 교사 등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겨울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여러 교회에서 나를 부흥회 강사로 초청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참 많은 복음의 문을 열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자매님이 나에게 주신 돈은 큰돈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고, 그 뒤로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한 번도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했다.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김천에서 건물을 얻어 복음 전도 일을 할 수 있었고, 대구에서나 서울에서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일했고, 이제는 전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특히 대덕 수양관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 여러 부분으로 우리를 도우셨다. 수양관을 짓기 전에 우리 선교학교에 들어온 어떤 형제가 있었다. 20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한 그 형제가 퇴직한 뒤 받은 퇴직금 전부를 가져와서 그 돈으로 수양관 부지를 살 수 있었다. 그 땅에 수양관을 지어서, 해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양회에 참석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참으로 많은 일을 하고 계신다. 
2017년부터는 미국 뉴욕에서 처음으로 CLF를 시작해서, 전 세계의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함께 전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목회자들이 교파를 초월해서 복음의 일을 같이 하고 있다. 수십 년을 믿어도 죄 사함을 얻지 못하여 죄 때문에 고통하던 많은 분들이 죄에서 벗어나 밝고 힘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서 많은 사람의 영혼에 새 생명을 더해주고 있는 것을 보면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형제 자매들에게도 감사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지금까지 은혜로 살아왔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 동안 우리 일을 방해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함께 기도하고 함께 굶고 함께 먹으며 복음을 위해 일해온 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름도 없이 뒤에서 기도하고 함께 일하며, 같이 울고 같이 살아왔다. 그 많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 세상의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귀한 복음의 일을 해왔다.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계획이 항상 함께해서 이 일들을 가능케 하였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함께하신 형제 자매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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