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내가 맡을 수 없었던 두 아들의 교육
[라이프] 내가 맡을 수 없었던 두 아들의 교육
  • 김학철(태국, 기쁜소식방콕교회 선교사)
  • 승인 2020.05.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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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_제5화

태국에서 선교를 시작한 후, 두 아들이 학교에 다니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한국과 다른 교육제도와 비싼 학비,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것까지 김학철 선교사 혼자서 해결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며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해주셨다.

 

선교를 갓 나왔을 때 내 수중에는 200만 원이 있었다. 그 돈으로 집 전세 비용과 식비를 감당하기에도 어려웠기에 두 아들의 교육비는 생각지도 못했다.
당시 큰아들은 8살로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왔고, 둘째 아들은 7살로 이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야 했다. 하지만 사립학교는 학비가 너무 비싸서 들어갈 엄두를 못 냈고, 공립학교에서는 받아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두 아들을 유치원에 보냈다. 유치원에 두 달쯤 다니다가 큰아들이 집 근처에 있는 ‘타이 크리스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2학년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받아주지 않아서 1학년으로 입학해야 했다.
그때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어떤 서류를 준비해오라고 했는데, 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던 나는 아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무조건 “오케이, 오케이”라고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1년이 지나 학교에서 연락이 와서, 입학할 당시에 요구했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 아들이 2학년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안 그래도 아들이 1학년만 2년 다녔는데 3년째 1학년으로 지내게 생겨서 암담했다. ‘이렇게 해서 대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왜 안 도와주시지?’ 원망스러웠다.
그때 우리 교회에 나오던 ‘앤나’ 자매의 소개로 큰아들이 다니던 학교의 유치원 선생님과 성경공부 중이었는데, 그 선생님이 내가 처한 상황을 듣고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도와주었다. 선생님이 하루는 기쁜 소식이라며 큰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태국어와 영어 2개 국어로 수업하는 교육 과정이 신설됐다’고 하면서, 1~6학년을 모집 중이니 2학년으로 입학원서를 제출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두 아들이 영어 교육 특혜까지 받을 수 있는 국제학교와 비슷한 교육과정의 학교에 1, 2학년으로 입학하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비싼 입학금과 수업료 때문에 또 걱정이 되었다. 한 사람당 입학금 70만 원에 한 학기 학비 50만 원으로 모두 120만 원이었다. 두 명이면 240만 원이었다. 그런데 그 유치원 선생님이 또 알아 보아, 그 해부터 선교사 자녀 장학금 제도가 생겼다고 했다. 장학금을 받는 것도 필요한 서류가 많고 복잡해서 나로서는 힘들었지만 그분이 모두 준비해주어 두 아들 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나는 그 유치원 선생님과 성경공부를 한 것밖에 없는데, 그분은 하나님께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예비해두신 고마운 사람이었다.

어떻게 아이를 혼자 학교에 보내요?
큰아들이 처음 학교에 다닐 때에는 혼자서 1km 거리를 걸어가야 했는데, 중간에 4차선 큰 도로가 있었다. 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도로의 큰 횡단보도를 아이 혼자 다닐 걸 생각하니 걱정이 됐다. 그래서 아침 6시 반에 아들 손을 잡고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2주 정도 하다가 생각이 되었다. 그 시간이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는 시간인데,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면 1시간이 훌쩍 지나가서 성경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때 마태복음 6장 23절 말씀이 생각났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나는 그동안 염려에 끌려다니다 보니 영혼의 눈이 어두워져서 아이들 몸 다칠 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내 영혼에 가장 중요한 성경 읽는 시간이 없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볼 눈이 없어서 내 마음이 어두워지는지 몰랐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아들 손을 잡고 가준다고 해도 술 취한 사람이 운전하는 차가 돌진해오면 아들을 지켜줄 수 없었다. 아들을 지키고 구해줄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셨다. 내가 아들을 지키려고 한 것이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대로 간다면 내 영혼이 메말라서 선교도 못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부터 아들을 혼자 학교에 보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어떻게 아이를 혼자 학교에 보내요?”라고 몇 번 물었지만, 그때마다 “저는 시간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태국에서는 부모가 당연히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하교 때도 데려오기에 나의 행동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는 “저 집 아이들 말이야, 친자식이 아니래.”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겠구나
두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7월에 한 달간 한국 월드캠프에 참가해야 했다. 그때가 학기 중이었기에 고민이 됐다. ‘아이들이 수업을 한 달 빠지고 시험을 제대로 칠 수 있을까? 만약 유급되면 졸업은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선생님께 월드캠프에 참가할 거라고 미리 말씀드리고 오라고 하자, 특히 둘째 아들은 안 그래도 공부하기 싫어하던 아이라 “아싸! 학교 안 가도 된다.” 하며 마냥 좋아했다. 한 번도 아니고 6년 동안 매년 한 달간 수업을 빠져야 된다 싶으니까 걱정이 몰려와 7월이 다가오면 항상 마음에서 갈등했다.
아이들이 월드캠프를 다녀오면, 아니나 다를까 둘째는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거의 꼴등이었다. 거기에다 컴퓨터 게임에까지 빠졌다. 하루는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 통보가 와서 학교로 찾아갔다. 선생님이 “다윗이랑 신민이가 진짜 형제가 맞아요?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둘째 아들이 학교 운동회 날 친구들을 데리고 담을 넘어 PC방에 가서 하루 종일 게임을 하다가 걸렸다고 하셨다. “신민이는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졸업도 못 하고 대학교도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이런 상황을 만날 때마다 나는 걱정이 앞섰다.
하루는 ‘내가 왜 이렇게 염려하는지’ 생각하다가 마태복음 10장 28절 말씀이 생각났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내 안에 사람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들이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아버지 노릇도 제대로 못 했다고 무시당하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사실 아이들이 한국에 가서 한 달 동안 놀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왔으니 아이들 영혼에는 좋았지만, 나는 ‘아이가 공부를 못해서 잘못되면 어쩌나’만 걱정하고 몸과 영혼을 능히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까 내 눈이 밝아지면서 ‘하나님이 아들을 지켜주시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육체를 생각하고 사람을 생각할 때에는 두려웠지만, 영혼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감사로 가득 채워졌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말씀을 들으며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을 혼자 학교에 보낸 것이나, 중학생이던 아들들이 매년 한 달 간 수업을 빠지고 한국에 가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영혼을 염려할 수 있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내가 데려다 주고 싶었지만
2001년에는 ‘수꿈빗’에서 ‘라프라오’로 이사 가면서 집에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까지의 거리가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차가 밀리면 2시간도 걸리는 거리가 됐다. 집 근처에 있는 학교로 전학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다니던 학교는 영어 수업이 큰 장점이라 장거리 통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도 집 근처에 있지 않고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새벽 6시쯤엔 도로가 한산해서 자가용으로 20분이면 아이들을 학교까지 태워줄 수 있기에 내가 아침마다 차로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그때는 교회에 형제 자매들이 제법 많아져서 새벽마다 모임을 갖고 말씀을 전해야 했다. ‘아침에 아들들을 태워다줘야 하나, 말씀을 전해야 하나’ 생각했다. 아이들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형제 자매들이 말씀을 듣지 못하면 그들 영혼이 죽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말씀이 내 마음에 있었기에 형제 자매들의 영혼을 위해서 시간을 쓰고 싶었다. 그때부터 아들들은 버스를 타고 등교했고, 비가 많이 오는 날에만 내가 차로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주었다.
한번은 내가 한국에 가야 할 일이 있었다. 그때 큰아들이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길래, 우리 골목에 오토바이 택시가 없으면 옆 골목에 가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라고 말해주고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 다녀와 아들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한국에 간 후 하루는 비가 많이 내려서 아이들이 옆 골목으로 가서 오토바이 택시를 기다렸지만 한 대도 오지 않아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 골목 안쪽에서 승용차가 나오더니 아이들 앞에 멈춰 서고 문이 열리더니 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차에 탄 아이가 우리 아들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배로, 우리 아들들이 입은 교복을 보고 후배라고 태워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 선배 누나는 우리 집 바로 옆 골목에 살고 있었고, 엄마가 매일 출근길에 태워다 주고 퇴근길에 데리고 왔다. 그때부터 5년 동안, 그 엄마가 딸과 함께 우리 아이들도 매일 태워다 주고 태우고 왔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을 때 하나님이 그런 분을 예비해 주신 것을 보았다.
한번은 너무 미안해서 기름 값을 챙겨드렸는데 받지 않으셨다. 그 후 크리스마스 때 어느 병원에서 행사를 하고 큰 과일바구니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분을 위한 선물이다 싶어 전해드리자 무척 기뻐하셨다. 하나님이 그분을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주신 것을 보며 정말 감사했다.

둘째 아들, 공부 못해도 괜찮아
둘째 신민이는 고등학생 때 학교 수업을 빠지고 게임방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하루는 술을 먹고 만취가 되어 집에 와서 구토까지 했다. 그런 아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염려가 마음에 또 가득 찼다. 그때 신기하게 한 말씀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4)
그랬다. 신민이는 넘어졌다. 공부하기 싫어하고 게임 하고 또 술도 먹으면서 곁길로 가고 있었다. 내가 볼 때는 분명히 넘어진 것이었지만 성경은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않는다, 여호와의 손이 그를 붙들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었다. 그리고 25절의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말씀이 내 마음을 꽉 잡아주었다. 그 후로는
‘대학교에 못 들어가도 신민이는 거지가 안 될 거야. 공부를 못해도 술을 먹어도 괜찮아. 거지는 안 될 거야.’ 하며 걱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당시 큰아들은 입학금 30만 원을 내고 들어갔는데, 나중에 학교에서 15만 원을 더 내라고 했다. 외국인은 돈을 더 내야 하는데, 큰아들이 외국인 학생이 지원하는 국제 전형이 아닌 태국 학생들과 같은 일반 전형으로 합격해서 학교에서 우리 아들을 태국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초·중·고 12년 과정을 태국어와 영어 2가지 언어로 공부했기에 태국어는 현지인처럼 가능하고 영어도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어서 두 아들 다 국립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국립대는 등록금이 적어서 오히려 중고등학교 때보다 적은 금액으로 대학을 다니고 졸업했다.
현재 큰아들 다윗은 태국 방콕교회에서 나와 같이 사역하고 있고, 둘째 신민이는 한국 북부산교회에서 부사역자로 지내며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고 있다.

태국에 처음 왔을 때는 돈이 없어서 아이들을 학교에 어떻게 보낼지 걱정했고, 대학까지 졸업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리고 큰아들이 2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됐을 때에는 1학년만 3년을 다녀야 하나 걱정했다. 두 아들의 1년 학비가 240만 원이 나왔을 때에도 낙심했다. 어린 아들이 혼자 큰 도로를 건너야 할 때, 두 아들이 버스로 2시간 걸려 학교를 다녀야 할 때, 둘째 아들이 게임 하고 술 마시고 곁길로 갈 때에도, 하나님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말씀을 주셔서 아이들을 위하기보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전하도록 이끌어주셨다. 하나님이 나에게 “네가 돈 없는 것 내가 다 해결해줄게. 아들 사고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키워줄게. 술 취해 집에 와도 내가 다 해결해줄게.”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누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동행하고 계신 예수님을 못 알아본 채 예수님이 죽었다고 슬퍼한 것처럼 살았다. 내가 구원받았을 때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걱정할 때가 많았다. 그런 내가 선교사로 태국에 와서 살면서 하나님이 어두웠던 내 눈을 조금씩 밝혀주셨다. 이런 하나님이 함께하시는데, 나는 왜 태국에 처음 왔을 때 그처럼 두려워하고 염려했는지, 돌이켜보면 진짜 부끄럽다. 하나님이 순간순간 아름답게 길을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셨는데, 그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태국에서 선교하면서 예수님을 무시하고 짓밟고 살아온 나를 보았고, 내가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내 인생 속에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정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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