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항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영광
[설교] 항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와 영광
  • 김재홍(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20.05.2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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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호 기쁜소식
옳음에서 벗어나 영의 세계로 (12편)

 

 

기브온 거민을 도우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9장에서 기브온 거민들이 항복한 이후 10장에서 너무나 복된 삶을 삽니다. 기브온 거민이 이스라엘에 항복하자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연합군을 만들어서 기브온 거민들을 치러 왔습니다. 그때 기브온 거민들이 그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밤새도록 달려와서 기브온 거민을 도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수 10:12~13)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적들을 칠 수 없으니까 기브온 거민을 대적한 자들을 다 쳐서 멸하기까지 해가 머물러 있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일어난 기적이 아니라, 항복한 기브온 거민을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역사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항복해야 하는지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내가 왜 복종해야 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그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면,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브온 거민은 항복하자 그들에게 닥친 문제가 더 이상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여호수아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성문을 걸어 잠그고 최선을 다해 적과 싸워야 했지만 이제는 여호수아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즉시로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해 대신 싸워서 그들을 구해줍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될까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잘되는 방법을 찾지 말고 기브온 거민처럼 항복해서 복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우리를 돕고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십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의향에 좋은 대로 살아왔을지라도 그 삶을 끝내고 주님께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행하소서.” 하면 우리에게 있는 만 가지 문제가 예수님의 문제가 되고, 예수님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당신의 능력을 아끼지 않고 역사하십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들이 우리 삶에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문제에서 건지시고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전에 본 적이 없었던 놀라운 역사들을 보게 됩니다.

항복한 삶은 굴욕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삶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영국 연방국 가운데 스코틀랜드는 ‘독립하는 것이 좋은지, 영국령으로 남아 있는 것이 좋은지’를 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투표 결과 독립에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아서 지금도 영국령으로 남아 있습니다. 호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령으로 있을 때 좋은 점은, 전쟁이 일어나면 영국 군대가 와서 싸웁니다. 영국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복종하면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기브온 족속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호수아가 아모리 다섯 왕을 치기 위해 밤새도록 달려왔고, 하나님 앞에 간구해서 태양과 달이 머물러 있게 했습니다. 거의 종일토록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 있었다고 했습니다. 태초부터 자전하던 지구가 멈춰선 어마어마한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신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땅히 멸망당할 이방 족속 기브온 거민을 위해 일어났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구원받은 성도 가운데 ‘내가 왜 교회의 인도나 종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종의 의미는 무조건적으로 따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복종함으로써 삶에서 만나는 문제가 더 이상 우리 문제가 아니라 주님의 문제가 되는, 정말 복되고 좋은 것입니다. 주님의 문제가 되면 우리가 만나는 어떤 문제든지 주님이 “내가 해결하마. 내가 책임질게.”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귀한 것을 오해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항복한 사람의 삶은 굴욕이나 수치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여호수아 10장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은혜와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복종하는 자들을 위해 당신의 영광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하나님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발아래 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복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런 영광을 주십니다. 복종된 삶 뒤에는 굴욕이나 수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광이 있습니다.
‘복종하지 않고 자기 성을 쌓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다가 멸망당하는 것이 복되냐? 아니면, 자기 성을 무너뜨리고 자기 주권을 내놓아 모든 문제가 주님의 문제가 되어서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경험하는 삶이 복되냐?’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부분을 깨우쳐주고 싶어하십니다.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복종하지 못하면 자신이 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되면 따르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따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 만나는 모든 문제를 내가 해결해야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채 힘들고 어렵고 근심하고 고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남보다 잘나거나 뛰어난 것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복종하며 살면, 하나님은 지구가 도는 것을 멈추게 해서라도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우리를 통해서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어서 항복하고 복종하는 삶의 가치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복종하는 삶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브온 거민이 항복하고 복종했을 때 여호수아 10장에 나오는 큰 은혜와 축복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축복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히브리서 13장에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는데, 하나님과 그 종 선지자를 신뢰하면 하나님의 종에게 순종과 복종이 됩니다.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종에게 복종이 안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종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의 삶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없습니다. 롯처럼 오히려 재앙을 만납니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
기브온 거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복을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자신들이 먼 곳에서 온 것처럼 꾸며서 항복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 나가면 진멸을 당하기에 자신들의 모습을 초라하게 꾸미고 비천하게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준비하고, 떨어진 가죽부대와 신발과 옷을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항복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복을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고, 자신들이 항복해도 그것을 받아주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이 들고 온 떡을 보고 바로 그들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브온 거민의 측면에서 보면, 그들이 가져간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이 그들을 구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밀알을 빻아 고운 가루를 만들어 반죽한 뒤 발효를 시켜 구우면 맛있는 떡이 됩니다. 그런데 기브온 거민이 가져간 떡은 심히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이었습니다. 그 떡은 따끈따끈할 때에는 외면을 당했습니다. 식고 말라서 곰팡이가 나기까지는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기브온 거민이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어디에서 구했겠습니까? 식탁 위에는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올려두지 않습니다. 식탁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부엌 한쪽 구석이나 쓰레기통에서 구했을 것입니다. 곰팡이 난 떡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버려져 비참한 위치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브온 거민을 구원하는 위대한 떡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만약 기브온 거민이 가장 맛있는 떡, 가장 아름다운 떡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아갔다면 거절당하고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심히 마르고 곰팡이 난 떡처럼 만듭니다. 우리의 잘난 것도 제하고 옳은 것도 제하는 일을 하십니다.

모세가 곰팡이 난 떡 같은 위치에 있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셨을 때 그는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과 같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잘나고 뛰어난 것, 옳은 것이 모두 제해졌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
이렇게 말하는 모세를 하나님은 부르시고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모세가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치는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이튿날 히브리인끼리 싸울 때 모세가 중재하려고 했지만 그 중 한 사람이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을 언급해, 모세는 모든 것을 버리고 광야로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때 모세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옳음이 자리 잡고 있었겠습니까? ‘난 목숨을 걸고 히브리 사람을 구하려고 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분한 마음과 옳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입니다.
좋은 가구나 악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나무는, 오랜 세월 그늘에서 말리거나 바닷물 속에 넣어두어 나무의 진을 빼내고 원래 성질을 다 제한 나무입니다. 그렇게 해야 시간이 많이 흘러도 가구나 악기가 변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와 같이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충만하고, 히브리인을 구원할 마음이 충만했을 때 쓰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를 피해 광야로 도망가서 40년을 지내면서 애굽에서 배운 학문도, 히브리인을 위할 마음도 다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의 마음에서 ‘내가 히브리인을 위했는데…, 내가 옳았는데…’라는 옳음이 다 빠져나간 뒤에 하나님이 그를 불러 하나님의 일에 쓰셨습니다.
사람들은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과 같은 위치에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조건은 바로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뛰어나거나 잘난 것이 아니라 못나고 부족한 것을 보고 들어서 하나님의 일에 쓰십니다. 마리아가 귀하게 쓰임 받은 것은 비천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7~48) 마리아는 자신의 비천함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조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비천함을 가리거나 제하려고 하지만, 그 비천함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조건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조건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비천하게 만드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옳음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그렇게 하면 자신이 비천한 위치로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옳음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은 신앙을 잘못 알고 사탄에게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브온 거민과 같은 위치에 있어야 은혜를 입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을 꾸미거나 가리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잘난 것도 옳은 것도 다 내려놓고 기브온 거민과 같이 나아갈 때 하나님이 받으시고 들어 쓰십니다.

복종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복종하면
기브온 거민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복해서 화친의 언약을 얻어내려고 했습니다. 자기 주권을 가지고 서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망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 길은 이스라엘 앞에 항복하고 복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주권을 포기하고 복종하는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의 의향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브온 거민처럼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려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온 삶이 결국 망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복종하는 삶이 없으면 마음에 쉼이 없고, 기쁨이 없고, 충만이 없고, 소망이 없습니다. 기브온 거민을 통해서 어떤 삶이 지혜로운 삶이고 복된 삶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내 주관과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기브온 거민처럼 항복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 것인가?’ 복종할 때 하나님이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실 뿐 아니라, 기쁨과 감사 속에서 지낼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문제나 어려움 속에서 근심하고 염려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네가 주인이 되어 너 보기에 옳은 대로, 네가 원하는 대로 살기 때문에 찾아오는 고통이야. 그렇게 살면 계속 문제가 일어나고 고통이 찾아오는 거야’라는 사실을 깨우쳐주길 원하십니다.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문제가 하나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찾아오고, 근심이 하나 사라지면 다른 근심이 찾아옵니다. 문제와 고통의 연속입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하며 피곤하고 힘든 신앙의 길을 가게 됩니다. 반대로 복종하는 삶을 살면 ‘주님이 이 문제도 해결해 주시겠다’는 믿음과 소망이 생깁니다. ‘이것까지도 주님이 도우시네. 여기까지도 주님이 함께해 주시네’ 하고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브온 거민처럼 항복하고 “당신의 의향에 옳은 대로 행하소서.” 하는 것이 옳음이 버려지고 복종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나 종의 인도에 복종될 때 그에 대한 엄청난 보상을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복종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종의 인도에 복종된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영광과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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