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비자 발급에서 교정청과 MOU를 맺기까지
[라이프] 비자 발급에서 교정청과 MOU를 맺기까지
  • 김학철(태국, 기쁜소식방콕교회 선교사)
  • 승인 2020.06.09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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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호 기쁜소식
선교사 수기_제6화

태국에서 선교사로 지내려면 3개월마다 비자를 연장해야 했다. 그때마다 이웃 나라에 다녀오는 것이 쉽지 않아 김학철 선교사는 사업 비자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기쁜소식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때 출간한 책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교도소에 기증했고, 후에 교정청과 MOU를 맺어 함께 일하고 있다. 

선교하는 데 있어서 선교지에 체류할 수 있는 허가증인 비자(Visa)를 받는 것이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우리 가족도 태국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비자를 받아야 할지 막막했다. 처음엔 한국인이라고 무비자로 3개월을 지냈지만, 그 후에는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갔다가 들어와야 했다. 육로로 갈 수 있는 주변 국가로는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가 있었다. 물론 비행기로 가면 쉽지만 우리 가족 네 사람의 비행기표 값이 그때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당시 캄보디아는 독재자 폴 포트가 권력을 쥐고 있던 때로 육로 국경은 닫혀 있었다. 라오스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서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쉽지 않아 가기가 어려웠다. 말레이시아는 조금 멀긴 하지만,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가 비자를 연장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다.
나는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15시간 정도 걸리는 기차 여행을 계획하고 말레이시아 행 기차에 올랐다. 좌석이 한국 기차처럼 푹신하지 않고 나무토막같이 딱딱해서 많이 불편했다. 게다가 모든 역에 섰다가 가는 완행 열차여서 실제 여행 시간은 15시간이 아니라 22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바나나와 대나무밥 등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며 말레이시아 국경에 도착했다. 그리고 국경에서 비자를 연장하고 다시 태국 행 기차를 타고 22시간이 걸려서 방콕으로 돌아왔다. 꼬박 3일이 걸렸다.

기쁜소식 출판사를 시작하다
3개월 후,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 다시 말레이시아에 갈 것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1,2년 정도 산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 살 것인데 그런 식으로 비자를 연장하러 왔다갔다 하다간 병이 생겨서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교사 비자를 받으려고 종교국에 가서 알아보니, 태국 정부에서 줄 수 있는 선교사 비자는 쿼터가 500명인데 이미 다 찼다고 했다.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사업 비자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장 생활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회사를 등록한다는 것은 많이 복잡하고 힘들 것 같아서 주저가 되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돈이 없어도 회사를 등록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 태국은 의료보험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때여서 회사 등록이 생각보다 수월했다. 나는 박옥수 목사님의 신앙 서적들을 태국어로 번역해서 출간하려고 ‘기쁜소식 출판사’를 설립해 등록했다. 신기하게도, 회사 등록을 마친 직후 태국에 의료보험이 시행되어 회사 등록이 어려워졌다.

책을 출판하다
출판사를 등록한 뒤, 첫 번째 책으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했다. 태국에 온 지 3년밖에 되지 않아서 내가 번역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박옥수 목사님의 설교집을 태국 사람들에게 읽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감사하게도 구원받은 태국 사람들 가운데 영어를 잘하는 자매가 있어서 그 자매가 영문판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태국어로 번역하고, 번역된 글을 내가 한국 책과 비교하면서 의미 전달이 잘 되었는지 감수했다.
내용을 검토하다 보니, 8장 ‘삼손에게 임한 권능’ 본문에 이런 예화가 있었다. 하루에 3억 원씩 버는 사람이 가난한 A씨와 B씨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루에 천만 원씩 계좌로 보내주기로 했다. 그런데 A씨는 돈을 받는 통장을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지냈고, B씨는 받은 돈을 출금해서 집을 바꾸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것들을 사주며 지냈다. 시간이 흘러, 돈을 보내주던 사람이 B씨의 집에 가서 보니 집안에 멋진 정원이 있고 테니스장과 수영장도 있고, B씨가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A씨 집에 가서 보니 A씨는 여전히 전세방 한 칸에서 온 식구가 모여 살고 있었다는 예화였다.
매일 통장에 천만 원씩 들어오면 삶이 변하는 것처럼, 내 삶에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뭐든지 역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마치 삼손에게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1천 명을 때려눕히는 권능이 임한 것처럼, 내가 불교 나라에서 미숙한 태국어로 설교집을 출간하는 것이 막연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해 큰 역사가 일어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삼손이 1천 명을 죽인 후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되어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이 우물을 터뜨려 물을 주셨던 것처럼, 나도 책을 출간하는 일이 어렵고 ‘이 책을 누가 읽을까?’라는 생각도 계속 들었지만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책을 출간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소망으로 밤을 새우며 한 달이 걸려 책 번역을 마쳤다.

책을 교도소에 기증하세요
드디어 태국어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초판이 출간되었다. 3천 권을 인쇄해서 200개의 서점에 5권씩 넣었다. 소망을 가지고 기쁨으로 책을 넣었지만, 시간이 있을 때마다 서점에 가서 책이 팔렸는지 보면 5권 그대로였다. 3개월 동안 한 권도 팔리지 않자 한 서점에서 책을 회수해 가라고 했다. 그런 서점들이 점점 늘어나 10곳, 50곳, 100곳이 되었다. 서점에 가서 책을 가져올 때마다 마음에서 힘이 쫙 빠졌다. ‘신앙 서적도 이렇게 팔기 어려운데 복음은 어떻게 전하나? 진짜 하나님이 돕고 계시나?’ 두려움과 염려가 올라와 마음을 가득 채웠다.
200개의 서점 가운데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은 곳이 180군데 정도 되었다. 하루는 그날도 한 서점에 가서 팔리지 않은 책을 가지고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주인이 실망하는 내 표정을 보고 외국인이 안되어 보였는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책을 읽어보았는데, 내용이 참 좋지만 태국에서는 이런 책들이 거의 팔리지 않아요. 그러니 교도소나 학교, 도서관 같은 데에 기증하면 좋을 것 같네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을 조언해주어 정말 기뻤다. 그런데 교도소에 찾아가서 책을 기증한다는 것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져 그분에게 도움을 구했다.
“사실 저는 교도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책을 어떻게 기증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면 가르쳐 주십시오.”
“교도소를 한 곳씩 찾아가서 일일이 기증하려고 하면 당연히 힘들지요. 그러지 말고 교정청에 기증하면 담당 부서에서 관리해 줍니다.”
“교정청의 어떤 사람을 찾아가야 할까요?”
“마침 교정청에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전화번호를 가르쳐줄 테니 연락하고 찾아가 보세요.”
서점 주인의 도움으로 며칠 후 교정청에 찾아가 책을 기증하겠다고 신청할 수 있었다. 책을 기증하던 날에는 교정청장을 만나 악수도 하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는데, 5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태국에 온 뒤 처음으로 높은 직위의 사람을 만난 일이어서 흥분이 되었다.

영주권을 받다
출판사를 설립한 후 사업 비자를 받아 태국에서 지내는 데 문제가 없었고, 사업 비자로 5년 이상 거주한 사람은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도 주어졌다. 5년이 지나 이민국에 영주권을 신청하러 가자, 월 소득 200만 원 이상으로 그에 대한 세금을 낸 영수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낸 세금은 기준 금액에 미달되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없었다.
실망하면서 이민국을 나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난해서 세금을 그만큼 못 낸 사람은 다 영주권을 못 받는 건가? 아니야. 특별한 경우도 있을 거야.’ 그래서 다시 들어가 물어 보니, 특별한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묻자, 사회봉사를 했다는 장관 서명의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에 교정청에 책을 기증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기억나서 그런 일도 해당되느냐고 묻자, 교정청장의 서명도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일주일 안에 추천서를 받아야 했기에 불가능해 보였다. 책을 기증하는 일만 해도 서류를 제출하고 한 달 후에야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기증한 뒤 교정청장의 추천서를 요청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그 답변을 기다리는 데에도 일주일 이상 걸릴 것 같았다. 문이 열리는 것 같다가 다시 닫혀 실망이 되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하고 있던 한 부인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자, 무얼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느냐며 자기가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그 부인은 바로 교정청장 비서실에 전화해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나에게 내일 교정청에 찾아가보라고 했다. 다음날 교정청에 찾아가서 나는 교정청장의 서명이 되어 있는 추천서를 받을 수 있었다. 청장님이 내 상황을 전해 듣고는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태국에서 영주권을 받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해서 가도 계속 다른 서류를 추가로 가져오라고 하거나 뒷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에 내가 어렵게 비자를 받아서 지내던 때에도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해서 이민국에 찾아가면, 다른 서류를 언급하면서 그 서류는 왜 준비해 오지 않았느냐고 하며 서류를 던져버리곤 했다. 그런 일을 당하면 남자인 나는 화를 내는 것으로 그치지만, 내 아내는 몇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비자를 연장하는 것도 그렇게 힘들기에 영주권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요원한 일처럼 보였는데, 하나님이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게 하셔서 그의 도움으로 교정청장의 추천서를 받아 영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내가 지금도 감사한 것은, ‘그때 나에겐 두려움과 염려가 참 많았는데, 어떻게 다 이기고 아직도 이곳에서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강한 의지나 지혜가 있어서 어려운 일들을 이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선교 현장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이길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어려운 문제 앞에 있었을 때 박옥수 목사님의 간증이 떠올랐다. 목사님이 시골 마을 장팔리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지내실 때, 학생들이 구원받아 성도들이 조금씩 늘어갈 때쯤 깡패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너, 이 동네에서 계속 전도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 거야.”라고 하며 목사님을 협박했다. 하루는 깡패들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와, 모임을 가지고 있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목사님을 때리고 발로 짓밟았다. 그때 목사님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나를 해하려고 하는 깡패들보다 하나님의 힘이 더 크다’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셨다. 그리고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여인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살렸던 산파들을 기억하셨다. 바로가 분명히 힘이 있고 두려운 존재였지만 하나님을 경외했던 산파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 아이들을 죽일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 산파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그 집안을 왕성케 하셨다. 박 목사님도 그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셨고, 하나님은 목사님이 복음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셨다.
그런 목사님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내 안에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10년, 20년 복음을 전해 아무도 구원받지 않는다고 해도 난 이곳에서 계속 복음을 전해야 해. 출간한 책이 팔리지 않는다 해도 이 일을 계속 해야 해.’ 나는 스스로 어려움을 이길 만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당신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셨다. 사탄은 나에게 실망할 조건을 많이 주었지만 하나님이 내 마음을 잡고 계셨다. 만약 그때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들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태국에서 살기 어렵다는 생각에 이끌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졌을 때 하나님이 언제나 길을 여시고 나를 도우셨다.
모세의 어머니가 자기 의지로 아들을 더 지키려고 애쓰다가 조금 늦게 아이를 나일강에 놓았다면 아이는 애굽의 공주를 만나지 못하고 갈대 상자 안에서 죽었을 것이다. 제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놓았을 때 모세의 울음소리를 들은 공주가 그를 불쌍히 여겨 거두어 키웠다. 그처럼 나는 출간한 책이 서점에서 팔리지 않아 회수해 오면서 낙망하고 슬퍼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 교정청에 책을 기증하는 길을 열어 주셨고, 영주권을 얻게 해주셨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헤맬 때마다 하나님은 내 길을 인도하셨다.

교도소에서 마인드 강연을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을 기증해 교정청과 인연을 맺은 지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여러 교도소에서 3만 명 이상의 재소자들에게 마인드 강연을 했으며, 2019년 9월 21일에는 IYF와 교정청 사이에 MOU 협약식을 가졌다. 여러 신문사에서 기자들이 와서 취재하고, 교정청 직원 50여 명이 협약식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우리를 얼마나 신뢰하며 크게 생각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20년 전에는 교정청장과 기념사진 하나 찍은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는데, 이제는 교정청과 MOU를 맺고 재소자들의 마인드교육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본다. 다시 말해, 내 능력이 아닌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심으로 태국 선교를 이끌어가고 계신다.
애굽 왕이 ‘히브리 여자들이 아들을 낳으면 다 죽이라’고 했기에 남자 아이들은 전부 산파에 의해 죽거나 강물에 던져져 죽어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셔서, 죽어야 했던 아이들 가운데 60만 명이 장정이 되어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해 갔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는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 내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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