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는 교회와 연결된 신앙
[설교] 하나님의 섭리가 흐르는 교회와 연결된 신앙
  • 김재홍(기쁜소식인천교회 목사)
  • 승인 2020.06.15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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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호 기쁜소식
옳음에서 벗어나 영의 세계로 (13편)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눈으로 보지 못했고 귀로 듣지 못했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했던 많은 축복과 은혜를 주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을 예비해 놓으셨는데, 누구를 통하여 나타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수정되고 착상되듯
마리아는 천사가 나타나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고 했을 때,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마리아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말씀을 받아들인 후,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해 봅시다. 마리아가 빨리 엘리사벳에게로 갔고, 엘리사벳과 교제하면서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이 부분을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잉태한다는 말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만 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수정된 배아가 자궁내벽에 착상된다는 것입니다. 착상되었을 때 엄마 몸에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아 자라서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려면 이처럼 두 과정이 필요합니다. 먼저 수정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착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생각과 판단을 버리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것은 마치 수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착상은, 마리아처럼 말씀을 받아들이고 난 이후 빨리 달려가서 엘리사벳과 교제를 나누면서 충만함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날 엘리사벳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말씀을 받아들이고 깨달으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는 수정란처럼 교회와 연결되어 그 안에 흐르는 주님의 마음을 흘러받을 때 생명으로 자라고 생명으로 탄생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이 두 가지 일을 방해합니다. 마음이 말씀과 만나 하나가 되는 과정을 방해하고, 말씀을 받아들인 후에는 교회에 착상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사탄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종이 하는 말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이 마음에 수정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를 신뢰하는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면 마음이 절대로 교회와 연결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안 되는 사람은 틀림없이 이 두 가지가 다 안 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이 마음에 수정되지 않거나 삶이 교회와 연결되지 않아서 착상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마음에 말씀을 받아들이려면 자기 생각과 판단이 버려져야 합니다.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이 무너지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을 받아들이면 말씀이 마음에 수정 및 착상되지 않기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을 믿는 것이 전적으로 악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을 버리고 말씀의 판단을 믿는 사람의 마음에만 말씀이 수정됩니다. 수정되면 세포 분열이 시작됩니다. 하나였던 수정란 세포가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여덟 개가 되고…. 마음에 말씀을 받아들이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임신했다는 것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했다는 것으로, 착상하는 데 약 5~7일 정도 걸립니다. 수정되었어도 착상되지 않으면 생명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유산했다는 것은,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했지만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이처럼 수정란이 착상되지 않거나 유산되면 생명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신앙도 그와 같습니다. 말씀을 혼자 깨닫고 혼자 받아들이고 마음이 교회와 연결되지 않으면 교회로부터 영적인 것을 공급받지 못해 생명으로 자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도 변화가 없고,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기를 신뢰하지 말라고 해서 내 생각과 판단을 믿지 않고 말씀이 말하는 바를 받아들였는데 왜 문제들이 그대로 있지? 왜 나에게는 역사가 안 일어나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마음이 교회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없이 나 홀로는 신앙생활이 안 되고 삶에 변화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받아들였는데도 변화가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면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자기를 믿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거나 마음이 교회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이 말씀과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말씀을 전해주는 종을 신뢰하지 못하게 합니다. 교회를 불신하거나 판단하게 해서 마음이 교회와 연결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해놓으면 ‘내가 말씀을 깨닫고 믿고 받아들이면 되지.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신다고 했잖아?’ 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의 길을 가게 됩니다. 말씀을 수없이 깨달아도 교회와 마음이 연결되지 않으면 수정만 되고 착상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막 주인과 연결되어 보살핌을 받는 삶
교회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반 죽어가다가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 살아났습니다. 구원자를 만나 생명을 건졌지만, 주막에 가서 주막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 수 있었겠습니까?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주막으로 데려가서,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원받은 후 양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만난 것이 수정이라면, 주막에서 돌봄을 받는 것은 착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려면 수정과 착상이라는 두 과정이 필요합니다. 강도 만난 자가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주막으로 가서 주막 주인과 연결되어서 주인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합니다.
오늘날 자기를 꺾거나 부인하지 않고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만 좋아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말씀 듣고 믿고 신앙생활하면 되지, 무엇 때문에 간증하고 간섭 받으며 교회가 하는 일에 참여해? 그런 것은 귀찮고 부담스러워.’ 이처럼 말씀을 듣기만 하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삶에 왜 주님의 능력과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까요? 왜 주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고, 삶에 변화가 없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예비해놓은 것이 있다’고 했는데, 왜 그런 것을 누리지 못할까요? 이런 사람은 틀림없이 교회를 무시하고 종을 불신하고 교회가 하는 일에 불평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나 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종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교회와 연결되어 주님의 마음을 흘러 받고 성도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도록 신앙의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교회와 마음이 연결되지 않고는 절대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나 능력을 지속적으로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처럼 정확한 법칙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교회와 연결되어 자신을 부인하는 삶 없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 지식을 쌓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필수 요소인 자기를 부인하는 것의 중요성도 모르고, 교회의 중요성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어떤 일이 있는지, 교회가 어느 쪽으로 달려가는지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교회가 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고 부담스럽고 귀찮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만 들으면 되니까 점점 ‘주일 낮 교인’이 되어 갑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뭘 하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잖아. 마음이 일어날 때 섬기는 것이지, 억지로 되나!’ 하며, 육체의 기회로 삼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하는 신앙을 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런 신앙 법칙을 따라갈 때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맛보게 됩니다. 말씀을 깨닫고 지식이 늘면 새로운 것으로 잠깐 충만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자기만족에 불과하고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고린도전서 8장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하는 것 없이 깨달음이나 지식만 많아지면 반드시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했기에(잠 16:18) 그것은 넘어질 수밖에 없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의 길을 가는 사람은 자기 충만, 자기만족은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에서 할 간증은 없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은 있지만 하나님의 역사나 도우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옳음을 버리고 마음이 연결된 나오미
성경 속 인물인 나오미를 살펴봅시다. 룻기 1장에서 나오미는 자기 생각과 판단을 따라 모압으로 갔습니다. 사사 시대의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것처럼 나오미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습니다. 기근이 있는 베들레헴보다 모압에 가서 사는 게 훨씬 좋아 보여서 모압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다 망한 후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베들레헴에 양식 주신 것을 보면서 자기 생각과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기 생각과 판단이 버려지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나오미가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자가 남자의 씨를 받아들여서 수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모압에 앉아 있으면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수정란이 착상되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인 후에는 오늘날 교회와 같은 베들레헴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옮겨 갑니다. 그곳에 머물 뿐 아니라 베들레헴 사람들과 마음이 연결됩니다. 룻기 1장에 그 과정이 나옵니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룻 1:20~21)
나오미가 이렇게 한 것이 그의 마음이 교회인 베들레헴에 착상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삶이 나타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기 생각과 판단을 따라가서 시험에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돌이켜 말씀을 받아들이지만 마음이 교회와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힘없는 길을 갑니다.
사람들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악한 모습이나 잘못된 모습을 발견하고 돌이켰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교회와 연결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교회에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악한 것을 간증하는 것이 부담스러우니까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깨달은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드러내 이야기했던 것처럼, 교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어리석고 미련했는지 간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판단과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을 받아들여 베들레헴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때 베들레헴에서 조용히 숨어 지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베들레헴 사람들과 연합되어야 합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던 것이 옳았다’고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베들레헴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연결되면 반드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내가 실패하고 무너진 자리에 서면 사람들이 무시할 거야’라고 염려하며 마음 드러내기를 꺼립니다. 그것이 부담스러우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10번, 100번 수정되어도 착상되지 않으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것처럼, 깨닫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말씀을 무시한 어리석고 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 자기 판단을 따라 산 결과로 망했다는 사실을 교회에 드러내고, 교회와 연결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교회와 연결된 삶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문제가 있어도 교회와 연결되면 주님이 다 해결해 주십니다. 교회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쉽게 교회를 무시하고 판단합니다. 욥기 39장에 들나귀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들나귀는 성읍의 소리를 업신여기고 어거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읍의 소리는 교회의 음성을 의미하고, 어거하는 자의 소리는 인도자의 말을 뜻합니다. 들나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교회의 소리를 업신여기고 인도자의 소리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삶에는 형통이 없습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깨닫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마음을 드러내고 교회와 연결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의 비밀을 몰라서 쉽게 교회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교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말씀을 깨닫고 받아들여도 교회가 없으면 생명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교회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교회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삽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흐르는 곳입니다. 나오미는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뒤, 다음 단계로 교회의 그림자인 베들레헴과 연결되었습니다. 사탄은 이 두 가지 일을 막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받아들여도 교회와 연결되는 것을 막습니다. 사탄은 교회와 연결되는 것을 막아 육신대로 살도록 만들고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역사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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