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중풍병자와 서기관들
[설교] 중풍병자와 서기관들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0.09.12 2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0년 9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세상 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12편)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두 부류의 사람. 한 부류는 지붕을 뜯어서라도 죄를 사함받고 병이 낫기를 원했고, 한  부류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도 죄인인 자신을 몰라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서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어느 집에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문 앞에라도 있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째 들고 예수님께로 왔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자,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낸 뒤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이 그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는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는가?’라고 판단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시길,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자 그 사람이 일어나서 자신이 누워 있던 상을 들고 갔습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을 구원받을 위치보다 높은 곳에 있게 만든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저 사람이 중풍병에 걸려서 고생하며 괴로워하고 슬퍼하겠구나. 자신이 죄를 짓고 악한 일을 많이 저질러서 벌을 받아 중풍병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겠구나.’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병에서 낫게 하고, 그의 마음을 죄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에 있던 서기관들이 그 말씀을 듣고 ‘저게 무슨 소리야? 죄 사함을 받았다고? 나도 죄가 있는데, 그럼 나도 죄를 사함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을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보다 옳다고 여겨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하며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사람은 다 죄를 짓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각기 다릅니다. ‘죄 안 짓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도 나는 큰 죄는 안 지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는 죄를 지었지만 착한 일을 많이 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 ‘죄를 짓긴 하지만 나는 잘났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죄 사함을 받기 힘듭니다. 죄를 사함 받을 만한 낮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제가 바쁜데 죄 사함 받는 법을
5분 안에 요점만 이야기해 보세요.”라고 합니다. 죄인인 자신이 장차 어떻게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사함 받지 못했으면서 죄 사함 받는 말씀을 듣고는 ‘이단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사탄이 막습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구원받을 위치보다 높은 곳에 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설마 내가 지옥에 가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를 사함 받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때문에 ‘한번 이야기해 봐, 들어보고 결정할게’라는 태도를 갖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었던 두 부류의 사람들
마가복음 2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겸비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으면 지붕을 뜯고 침대에 누인 중풍병자를 지붕 아래로 달아 내렸겠습니까? 다음으로, 서기관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오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중풍병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죄가 많아. 그래서 저주를 받아 병에 걸린 거야. 다른 사람들은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과 행복하게 사는데, 나는 죄가 많아서 이렇게 누워 있는 거야.’ 그 중풍병자가 지붕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는 얼마나 간절하게 병이 낫고 싶었겠습니까? 얼마나 간절하게 죄를 사함 받고 싶었겠습니까? 중풍병자가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이 말했습니다.
“예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당신을 찾아 오랫동안 헤맸습니다. 오늘도 지붕을 뜯고서야 당신 앞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은혜를 입기 원하오니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저는 죄가 많으니 내 죄를 사해 주십시오. 내 병을 낫게 해주십시오.”
불같이 타는 간절한 마음이 예수님에게 전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병도 병이지만 죄에 얽매여서 고통하는 그의 마음을 보셨고, 당신을 믿는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병자에게 하신 첫 말씀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였습니다. 중풍병자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잘났고 옳다고 생각했기에, 실제로는 잘못되었으면서도 오히려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똑같은 자리에 있어도 중풍병자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죄를 사함 받고 병이 낫지만, 말씀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거만한 사람들은 멸망을 당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 듣기에 좋으면 잘못되고 정확하지 않은 사실도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근거로 예수님도 잘못되었다고 하면서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합니다. 남을 판단하기에 바쁜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죄를 사함 받지 못해서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두 부류의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부류는 지붕을 뜯어서라도 죄를 사함 받고 병이 낫기를 원했고, 다른 한 부류는 예수님 가까이에 앉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도 더러운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알지 못해서 잘난 척했습니다. 예수님을 판단하고 예수님을 참람하다고 여겼습니다. 사탄에게 속으면 예수님 앞에 있어도 예수님을 판단하고 비방합니다. 반대로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죄를 사함 받고 병이 낫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중풍병자에게 하신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예수님이 ‘소자’라는 대명사를 쓰신 이유는 이 말씀을 우리 모두에게 하시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OOO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 또한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에게만 하시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둑질한 사람에게도 해당되고, 거짓말한 사람에게도 해당되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지옥에 가서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말씀을 그 자리에서 듣고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까지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고,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고 병을 낫게 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그들이 죽어서 지옥에 갔을 때 뭐라고 하겠습니까?
‘내가 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판단했구나! 중풍병자가 죄를 사함 받았을 그때 예수님이 내 죄도 사해주고 싶으셨는데,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을 판단했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멸망을 당하는구나. 천년만년 한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판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사탄이 주는 마음으로,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죄악들로 인해 영원히 멸망을 당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축복하려고 하십니다. 그 앞에서 우리 생각을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을 안다는 마음은 좋아 보이지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비해야 합니다.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더러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 그 귀한 은혜와 사랑 앞에서 우리 모두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교만해지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솔로몬이 처음에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행했지만 성전을 지은 후 마음이 높아져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죄를 사함 받지 않은 사람이든 사함 받은 사람이든, 우리가 죄인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인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죄를 사함 받았지만,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영원히 멸망을 당해야 할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인데, 예수님이 값 없이 은혜를 베푸셔서 죄를 사함 받았습니다. 결코 내가 잘해서 죄를 사함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높일 이유가 없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높일 때마다 그 생각을 쫓아내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더러운 인간입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로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도 사탄은 우리에게 ‘잘한다, 똑똑하다, 충성했다’는 소리를 합니다. 우리 마음을 높이고 교만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하나님의 종을, 교회를 판단하고 신앙에서 떠나게 하려는 계략입니다. 이제 잘했다는 마음이 들면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기 바랍니다.
잘했다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에 대답할 말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탄아, 이것 하나 잘한 것 같지만 잘못한 게 더 많아. 그리고 잘한 일도 주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 나로 말미암은 게 아냐!’ 하고 그 생각을 쫓아내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높일 때마다 쳐내야 합니다. ‘그런가? 내가 잘하는가? 믿음이 좋은가?’ 하면 이미 하나님을 벗어나 사탄에게 속해서 마음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중풍병자, 간음한 여자, 사마리아 여자, 38년 된 병자 같은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죄를 사함 받고, 복을 누리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어려움을 예수님이 대신 해결해 주시고,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살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