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이루시는 하나님
[라이프]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이루시는 하나님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1.08.18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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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호 기쁜소식
땅끝까지 복음을, 끝날까지 주님과 _259 | 박옥수 목사 간증

 

나는 1962년에 구원받고 선교학교에서 훈련받은 뒤 1963년에 압곡동이라는 동네에 갔고, 1964년 4월에 장팔리로 옮겨 군대에 입대하기 전 1965년 10월까지 그곳에 있었다. 군대에 가기 1년 전에 입대 영장을 받았는데, 장팔리교회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 군대에 가기 싫었다. 그래도 주님이 군대에서도 나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셨을 거라 생각하며, 1년 동안 틈이 날 때마다 자주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군대에 가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싶습니다. 먼저 상관들에게 은혜를 입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동료들에게 은혜를 입게 해주시고, 후배들에게도 은혜를 입게 해주십시오.”

기도하고 성경 읽고, 교육생들을 모아 예배를 인도하고
하나님은 내 기도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어주셨다. 나는 입대해 훈련소에서 기본 교육을 받은 뒤, 원주 통신훈련소에서 모르스 부호로 교신하는 ROC 교육을 16주 동안 받았다. ROC 교육은 310기까지 대전 통신학교에서 받다가 원주 통신훈련소로 옮겨졌고, 311기인 내가 그 첫 번째 기수였다. 그것이 굉장히 좋았다. ROC 교육생들은 전부 후배였기 때문이다. 
처음 일주일은 얼마나 힘든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한 주가 지난 뒤에는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교육생은 한 반에 40명으로 두 개의 내무반을 사용해 한 내무반에서 20명씩 생활했고, 내무반마다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불침번을 서야 했다. 한 사람이 두 시간씩 서니까 하루에 네 사람의 불침번이 필요했다. 나는 우리 내무반 동기들에게 매일 불침번을 서겠다고 했다. 대신 4시부터 6시까지 마지막 근무를 서게 해달라고 했다. 동기들이 모두 좋다고 했다. 
불침번은 내무반에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을 감시만 하면 되기에 특별히 할 일이 없다. 그때가 추운 겨울이어서 내무반에는 난로가 피워져 있고, 난로 위에는 통에 뜨거운 물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 물로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는 등 뜨거운 물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다 쓰고 통에 찬물을 받아 다시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되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기도하고 성경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원주 통신훈련소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논산훈련소, 대구훈련소, 창원훈련소 등지에서 후배 교육생들이 들어왔다. 그들을 관리하는 일을 내가 맡았다. 새로운 교육생들이 들어오면 내무반마다 들어가서 말했다. 
“여러분, 어제 기차 안에서 잘 잤습니까? 낯선 곳에 왔다고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긴장하면 불안해집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고 여유를 가지면 금방 여러분 후배 기수가 들어오고, 또 교육 기간도 다 지나갑니다.”
부드럽게 이야기한 뒤 ‘예수 믿는 사람 손을 들라’고 하면 80~90퍼센트는 손을 들었다. 그들의 이름을 다 적은 뒤 ‘내일 아침 아홉 시에 방송이 나가면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알렸다. 
주일이 되면 아홉 시에 교육생들을 모아 산골짝 양지바른 곳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내가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면서 너무 감사했다. 처음에는 40~50명의 교육생이 모여 예배를 드렸고, 나중에는 180명이 모였다. 당시 대령이 예배를 인도한 1군사령부 교회에는 30~40명이 모이고, 교육생인 내가 인도하는 통신훈련소에서는 거의 200명 가까이 모였다. 나는 교육을 받은 16주 동안 많은 교육생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정말 감사했다. 


박 이병, 내가 도와줄 게 없을까요?
교육생들은 3명이 한 조가 되어 활동해야 했다. 나는 교육생 번호가 28번이고, 같은 조인 29번은 송순종, 30번은 김창원이었다. 우리 셋은 단짝이 되었다. 나는 교육 담당, 김창원은 장비 담당, 송순종은 교육장 담당이었다. 하루는 교육을 받으러 갔는데 나를 찾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ROC 311기 박옥수 교수 본부로 와라.” 
‘나를 왜 부르지?’ 하며 교수 본부로 갔다. 
“ROC 311기 박옥수, 부름 받아왔습니다.” 
중위인 교육장교님이 나를 보고 말했다. 
“박 이병, 여기 앉으시오.” 
장교는 사병에게 반말을 하는데 나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박 이병은 군에 오기 전에 무슨 일을 했나요?”
“예, 교회 전도사였습니다.”
“과연 그러셨군요.”
그분이 전날 일직사령을 하면서 내가 교육생들을 모아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교육생인 이등병이 예배를 전부 주관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했다. 내가 교육생들을 모아 산골짝 양지바른 곳에 가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그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이유인즉, 교육장교인 방 중위님은 군에 오기 전에는 아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분이었는데 군대에 와서 신앙을 다 팔아먹고 이제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자신은 장교인데도 그렇게 사는데 이등병인 내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박 이병, 내가 뭘 도와줄 게 없을까요?”
“교육장교님, 저희를 도와주실 게 많습니다. 먼저 예배드릴 교실을 하나 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교실에서 예배를 드리면 추운 산골짝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훨씬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게 하세요. 무슨 교실을 원하세요?”
“16교장은 안에 장비도 없고 넓어서 그곳을 쓰면 좋겠습니다.”
방 중위님이 그곳에 있는 병장을 부르더니, 나에게 16교장 열쇠를 하나 줘서 일과 후에는 언제든지 쓰게 해주라고 하셨다. 너무나 고마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모든 일은 오래 전에 준비하신 것이 틀림없었다. 


하나님, 한 사람은 이곳에 남아 복음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나는 송순종, 김창원과 매일 모여 기도하고 간증하며 지냈다. 우리가 졸업을 한 달쯤 앞두었을 때,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 
“우리 셋 중에 한 사람은 여기 남아야 돼. 그래서 이 부대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 해야 돼.”
우리는 시간이 날 때마다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은 이곳에 남아서 많은 후배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남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당시 통신훈련소에서는 반에서 5등 안에 들면 자신이 원하는 부대를 골라서 갈 수 있었다. 우리 반에는 입대하기 전에 사회에서 모르스 부호를 다룬 사람이 여덟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5등 안에 든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중에 내가 고시과에 근무하면서 내 성적을 확인해 보니, 40명 중 13등이었다. 그 성적으로는 절대로 통신훈련소에 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 
일등병이 되어 졸업하던 날, 방 중위님이 너무 고마워 교수 본부에 일찍 가서 출근하시기까지 기다렸다가 만나 인사를 드렸다. 
“방 중위님 안녕하십니까? 저, 오늘 졸업합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해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박 일병, 잠깐만요. 내가 박 일병을 ‘서울 수도경비사령부로 보낼까, 부산 군수기지사령부로 보낼까, 대구 502장통단에 보낼까’ 생각했어요.”
그 부대들은 근무 조건이 가장 좋은 곳으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부대였다. 
“그런데 박 일병이 이 부대에 있으면 내 신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여기에서 나와 같이 근무하도록 했으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너무 고마웠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는데, 그렇게 통신훈련소에서 군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새로운 교육생들이 들어오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주일이 되면 오전에는 예배를 인도하고, 오후에는 계속 신앙 상담을 했다. 제대할 때까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당시 원주 통신훈련소를 거쳐간 사람들 가운데 내 설교를 듣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28개월 동안 복음의 일을 할 수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감사했다. 


우리, 예배당을 짓자
한번은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훈련소 소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소장님이 주일에는 부대에 오시지 않는데 그날은 와서 부대를 둘러보다가 우리가 예배드리는 곳에 들어오신 것이다. 내가 설교하다가 소장님을 보고 주춤하자, “어, 종교를 계속해라.” 하고는 뒷자리에 앉으셨다. 내가 설교를 마치자 소장님이 일어나 “내가 너희들에게 몇 마디 해도 되냐?” 하셨다. “예, 됩니다!” 소장님이 단에 올라오시고, 내가 그곳에 모인 교육생들에게 “차렷!” “경례!” 한 뒤 소장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했다. 
“너희들이 언제부터 이런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 알았다. 6·25사변 때 내가 보병 중대장이었는데, 한번은 우리 중대가 백마고지를 탈환해야 했다. 백마고지 전투에서 적군이나 아군이나 병사들이 너무나 많이 죽었기 때문에 전투를 앞두고 마음이 무거웠다.”
백마고지는 앞뒤로 평야가 있고 그 가운데 고지가 있어서 국군에게도 적군에게도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백마고지를 점령한 쪽이 굉장히 유리했기 때문에 고지의 주인이 한 달에 스무 번씩이나 바뀔 정도로 유명한 격전지였다. 
“전투 전날 밤에 병사들이 있는 방공호를 돌다가 한 병사가 엎드려서 웅얼거리는 것을 보고 물었다. ‘너, 뭐하냐?’ ‘기도합니다.’ ‘너, 중대장을 위해서 기도했냐?’ ‘기도하겠습니다.’ ‘그래, 기도해라.’ 그날 밤 방공호를 돌면서 병사들에게 ‘뭘 믿어도 좋다. 하나님도 좋고, 부처님도 좋고, 용왕님도 좋으니 기도하라’고 했다. 다음날 백마고지 탈환 전투를 시작했다. 내가 ‘돌격!’ 하고 명령을 내렸을 때 나는 그렇게 용감하게 싸우는 군인들을 처음 보았다. 보통 백마고지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대원이 죽는데, 우리 중대는 가장 적은 희생자를 내고 고지를 점령했다. 그때 내가 종교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았다. 그런데 이 부대에 왔을 때 다 좋은데 교회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우리, 예배당을 짓자.”
그날 이후 나는 소장님과 함께 의논하면서 예배당을 지었다. 부대에 있는 트럭을 몰고 ‘문막’이라는 곳에 가서 모래를 한 차 실어 벽돌 공장에 가져다주면 벽돌 스무 장을 주었다. 그렇게 벽돌을 모으고, 1107야공단에서 나무와 유리를 얻고 해서 예배당을 지었다. 소장님과 함께 예배당을 짓는 동안 소장님이 나를 아주 기뻐해 주셨다. 


기도할 마음을 주시고, 기도할 때 끊임없이 도우신 하나님
세월이 많이 흘러 몇 년 전에 송순종을 다시 만났을 때, 송 형제가 말했다.
“어이, 박 목사. 빵값 내.”
“무슨 빵값?”
“통신훈련소에서 내가 매일 빵 샀잖아.”
돌이켜 생각해 보니 통신훈련소에 있을 때 저녁마다 빵을 먹었다. 내가 군대에 갈 때 돈을 가져가지 않았으니 빵 사먹을 돈이 없었는데 매일 ‘기차빵’을 먹었던 일이 생각났다. 알고 보니, 송순종 형제가 빵을 샀던 것이다. 송순종, 김창원 형제는 전라도 사람이고 나는 경상도 사람이다. 경상도 사람은 조금 거친 데 비해 두 친구는 조용하고 정다운 사람들이었다. 늙어서도 광주에 가면 송 형제를 만나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 

내가 군대에 가기 전에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군대에서 그 기도대로 나를 도우셨다. 군대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을 보았다. 그 후 김천에 갈 때도 하나님이 도우셨고, 대구에도 아무것 없이 갔지만 하나님이 도우셨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기도할 때 끊임없이 도우셨다. 그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너무 감사했다. 
옛날에는 먹을 게 없어서 어렵기도 하고 집이 좀 허술하고 부족한 것들이 많았다. 지금은 내가 큰 교회의 목사로 있으면서 부족함이 전혀 없다. 밥 많이 먹고 잠 잘 자며 복음을 전한다. 이렇게 복된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 특히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하나도 빼지 않고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한없이 감사하다. 
내가 나이가 많아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남은 삶도 주님이 이끌어 주실 줄 믿는다. 그 뒤에 더 영광스러운 하늘나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로 말미암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복음이 더 빠르고 넓게 전파되었다. 작년에는 미국 CTN방송국에서 내 설교를 방송으로 내보냈는데, 올해는 미국 40여 개의 방송국에서 내 설교를 방송하게 되어 정말 감사하다. 이를 통해 미국 사람들이 다 죄 사함을 받고, 미국이 새로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 우리나라와 온 세계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귀중한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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