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전 유럽에 복음을 전파할 우크라이나를 소망하며
[라이프] 전 유럽에 복음을 전파할 우크라이나를 소망하며
  • 니키타(우크라이나, 기쁜소식키이우교회)
  • 승인 2022.08.02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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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호 기쁜소식
보배와 질그릇

스스로를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사람’ ‘선한 사람’으로 여기며 내 생각을 믿던 나를, 하나님은 교회로 이끄시고 구원을 받게 하셨다. 조국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터지면서 삶의 목표와 의욕을 잃고 살던 내게, 하나님은 ‘므리야 프로젝트’를 통해 놀랍게 일하셨고 전 유럽에 복음을 전할 소망을 허락하셨다.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고, 수도 키이우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 말린에 살고 있다. 비록 기쁜소식키이우교회와 먼 곳에 살았지만 하나님은 아주 놀랍게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나의 이야기는 2019년부터 시작된다. 15살이 될 때까지 나는 미래에 대한 아무 계획도 목표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어느 날 유튜브에서 어느 영상을 보며 나는 내 삶을 완전히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똑똑하고, 강하고,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이 되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자기계발을 위해 운동하고, 책도 읽고,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한번은 인터넷에서 척추에 문제가 있던 사람이 특정 운동을 통해 자가치료했다는 정보를 발견했다. 나도 허리가 아파서 따라해 보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얼마 뒤에는 고기, 유제품,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고 과일과 채소와 견과류만 먹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았다. 내게도 그 식단을 적용해보았다. 1년 남짓 그런 생활을 지속하면서, 모든 것이 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자주 아팠고, 살이 많이 빠져서 주변에서 걱정했다. 나는 내 생각을 믿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의 간증을 들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는데, 그의 간증을 들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어느 목사님을 알게 되어 상담하고 교회 모임에도 나갔다. 나는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신 사실도 믿었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며 내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그 후에 세례도 받으면서 ‘이제 나는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었구나!’
2020년 6월, 17살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나는 인터넷으로 일하며 돈을 벌고 있었는데,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에 일주일 정도 방문해 호스텔에 머물며 도시도 구경하고 온라인으로 일을 했다. 그러다가 교회에 가고 싶어서 구글맵으로 숙소와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구글맵에서 찾은 교회에 가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교회 건물 같지 않아서 ‘벨을 누르지 말아야겠다’ 싶어 그냥 돌아서서 가려고 하는데, 벨을 누르라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벨을 누르는 건 어렵지 않잖아. 두려워하지 마.’ 벨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그곳은 기쁜소식키이우교회였다. 
그곳에서 제냐라는 형제를 만나 진정한 복음을 들었다. 처음에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정말 큰 충격에 빠졌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가 씻어졌고 이제 더 이상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항상 악하다는 말씀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선한 사람이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조금씩 내 마음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제냐 형제와 통화하며 교제를 이어갔다. 그리고 주말에는 키이우에 있는 교회에 방문했다. 교회에서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는 동안 참 기뻤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여러 생각이 나를 공격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한번은 잠들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맞아? 성경이 진짜 진리가 맞는 거야?’ 깜짝 놀라서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증명해 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기도하려고 했는데 마치 혀를 삼켜버린 것 같았고, 기도하려고 할 때 심장이 너무 아팠다. 그날 울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믿음이 없이 하루를 보냈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삶이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토요일에 키이우교회에 형제들과 축구를 했는데 축구 후에 제냐 형제에게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목사님과 교제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교제를 했는데, 목사님께 내 마음을 이야기했을 때, 목사님도 구원받기 전에 많은 생각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고 하시면서 이사야 53장 6절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 말씀을 들으면서 그 많던 생각들이 잠잠해졌고, 말씀이 믿어지면서 구원을 받았다. 이제 내가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영화 상영집회 
구원받은 후 나는 교회의 인도를 받으며 작년에 키이우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전쟁이 나기 전 몇 달 동안은 키이우교회에서 살았고,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 교회 일을 했다. 청년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기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21년 겨울, 성탄절을 앞두고 청년들과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연극도 하고 댄스도 하면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 그라시아스합창단이 만든 예수님의 탄생 영화 ‘포 언투 어스For Unto us’가 나와서 영화 상영집회를 시작했다. 영화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번째 상영은 키이우에서 했는데, 많은 사람이 참석하여 영화를 보았다. 우리 청년들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댄스를 했다. 그리고 영화를 상영한 뒤,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셨다. 우리는 여러 장소에서 영화 상영집회를 했다. 영화관, 문화회관, 도서관, 학교, 고아원 등등 …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나도 키이우 영화 상영집회 팀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벨라야째르크비라는 도시에서도 이재강 전도사님과 함께 영화 상영집회를 했다. 우리 고향 말린에서도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친척들도 와서 보시고 아주 좋아하시며 교회를 향해 더욱 마음을 여셨다.
나는 구원받고 부모님과 친척분들도 죄 사함을 받기 바라고 있었는데, 영화를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너무 감사했다. 우리는 그렇게 영화 상영집회를 통해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 후 나는 모든 소망을 잃어버렸다
올해 초부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그건 그냥 소문일 뿐이야.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에서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민에게 우크라이나에서 떠날 것을 권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뒤 교회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친구들과 사역자님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셨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씩 믿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전쟁이 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2월 24일 전쟁이 일어났다. 그날도 영화 상영집회 때문에 우리 팀은 우리 고향에 있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뉴스를 보며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나와 가족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무섭고, 작은 소리만 들려도 놀라고 밤에도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회에서는 화상으로 말씀을 전해주시고 교제를 해주셨다. 말씀을 듣고 사역자님과 교제하면서 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점점 마음 상태가 좋아지고 걱정도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다. 내가 사는 도시에도 로켓이 날아들었다. 우리 가족은 우크라이나 서부에 사는 좀 더 안전한 친척집으로 피난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마음의 공허감이 더 커져갔다. 나에게 밝은 미래가 없고, 꿈도 또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소망도 사라졌다. 그냥 온종일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했다. 
한 달 정도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소망을 잃어버렸다.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았고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살아갔다. 나 혼자만 이런 삶 때문에 어려워하는 줄 알았는데 주변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형편을 보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 나 때문에 부모님도 역시 무척 힘들어서 나를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하는 것을 보며 너무 큰 절망에 빠져들었다. 


형제 자매님들, 사역자님들과 교제하며 마음이 살아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류의규 목사님에게 글을 적어 보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목사님께 도움을 구하고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오늘 백 퍼센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목사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 마음에 있는 것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저는 나 자신과 가족들을 염려하기 시작했고 나 자신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나중에 말씀을 듣고 마음에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모든 것에 무관심해졌습니다. 전쟁이나 또 제 자신에 대해서도요. 저는 지금 아무런 목적없이 살고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습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형식적으로 대학 공부를 하고,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예배 참석하고 또 굿뉴스신학교 수업도 받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힘들고 생각에서 벗어나고자 그냥 하루하루를 핸드폰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저희 부모님도 괴로워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위해 모든 일을 하고 도와주려고 합니다. 저도 변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됩니다. 목사님과 교회와 부모님 앞에서는 그런 제 모습을 가렸지만 저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제 자신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도움을 구하고자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목사님께서는 키이우교회에 가서 모든 부분에 아숏 전도사님의 인도를 받아 살라고 하셨다. 나는 목사님 말씀대로 키이우교회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형제 자매님들과 사역자님들과 교제하면서 마음이 많이 좋아졌다. 나를 인도해 줄 교회와 인도자가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무너진 우크라이나의 꿈을 다시 일으킬 ‘므리야’ 프로젝트
그러다가 ‘므리야’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므리야는 우크라이나어로 꿈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화물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2월 27일 키이우 공항이 폭격을 당하면서 므리야도 파괴되었다. 언론에서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 일을 보고 ‘므리야 화물기는 파괴할 수 있어도 우크라이나 사람들 마음의 꿈은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독일의 오영신 선교사님이 무너진 므리야, 꿈을 다시 일으켜 세울 ‘므리야’ 프로젝트를 생각하셨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므리야 팀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키이우교회에서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전도사님이 내게 와서 므리야 댄스팀이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문화댄스페스티벌’ 대회에 출전하는데 가고 싶은지 물으셨다. 나는 당연히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내 나이가 올해 19살이기 때문에 징집대상 연령이라 출국이 어려웠지만, 전도사님은 우리 팀이 문화부로부터 허락을 받으면 가능하다고 하셨다.
나와 몇몇 형제들은 출발하기 전에 필요한 서류들과 물건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으로 우리는 ‘리봅’이라는 도시로 가야만 했고, 그다음에는 폴란드 국경을 넘어야만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통과시켜 줄 허가공문이 도착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소망으로 차를 타고 출발했다. 
우리가 리봅에 도착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우리가 준비한 서류에 도장도 찍혀 있지 않아 운전기사가 우리를 국경까지 데려다주기를 싫어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므리야 프로젝트에 참석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믿음으로, 국경까지 데려다 달라고 계속해서 부탁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운전기사는 우리를 국경에 데려다주었다. 
그러나 국경에서도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다. 국경수비대에서 말하기를 허가공문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담당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국경수비대 대원들에게 우리의 ‘므리야’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우리가 독일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므리야’ 프로젝트의 첫 번째 도전은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문화댄스페스티벌에 출전하여 우리의 프로젝트를 세상에 알리고, 그 다음 유럽 도시를 순회하며 절망 속에 있는 난민들을 위로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분들이 말하길 한국에 가면 대상을 타는 조건으로 우리를 통과시켜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고, 대략 30분이 지나 허가공문이 나와서 우리는 통과할 수 있었다. 비록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교제를 통해 형편에서 믿음으로 마음을 옮길 수 있었다
독일에 와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음악도 안 정해졌고, 안무도 없었고, 의상도 없었다. 아무것도 갖춘 것이 없었지만 일단 시작해야 했고, 한 달 안에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다. 전쟁 중인 나라를 위해 ‘우리가 작은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부상과 더위와 싸웠고, 매일 목사님과 모임을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댄스를 배웠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40명의 단원들이 한국에 가기 위한 비자와 비행기 티켓도 없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통해서 항공권을 사는 데 필요한 비용을 후원받도록 해주셨다. 비자를 받는 일도 불가능해 보였는데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전원에게 무료로 비자를 내주었다. 또한 18세 미만의 학생들은 부모로부터의 위임장을 받아야 출국이 가능한데 우크라이나에 계신 부모님을 독일로 초청해 위임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독일 관청에 찾아가 우리 프로젝트를 설명했을 때 전례 없는 예로 독일에서의 출국을 허가해주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부분에 은혜를 베풀어서 우리는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드디어 40명의 단원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꿈만 같았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댄스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유럽과 시차가 있고 기후도 달라서 처음에는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다. 댄스페스티벌 행사 전날 우리는 새벽 4시까지 연습했다. 연습이 잘되었다. 그런데 결선 날, 우리가 무대에서 세 번 리허설을 했는데 세 번 모두 잘하지 못했다. 내 마음에서 1등은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사님들이 우리와 교제해 주시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셨고, 나는 그 마음을 받은 후 형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겠다는 믿음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세계댄스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고, 대상을 받았다. 너무 기뻤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교회의 배려와 관심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대회를 마치고 우리 팀은 월드캠프에 참석했다. 개막식 때도 우크라이나 댄스팀이 공연하고, 캠프 중간중간에도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든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매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말씀을 듣는 것도 정말 좋았다. 특히 우크라이나 댄스팀이 공연할 때 한국 분들이 보여준 따뜻한 박수와 위로의 말과 행동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한국에 머무는 한 달 동안 우리 팀은 전주, 파주, 대천, 남대전 교회에서 숙박하며 지냈는데, 모든 사역자님들과 형제 자매님들이 우리를 섬겨주시는 것 또한 너무 감동적이었다. 늘 반갑게 환영해주시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시고 잠자리를 준비해 주셨다. 우리의 옷까지 빨아서 예쁘게 정리해 주시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한국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고 돌보시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전 유럽에 복음을 전파할 우크라이나를 소망하며
우리는 므리야 프로젝트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게 일하시는지를 보았다.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가능케 하시는지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가장 좋은 삶을 준비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우리를 지키시고 나는 물론 우리의 가족과 친척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본다. 부모님은 내가 기쁜소식키이우교회를 만난 후 변하는 것을 보시며 교회에 마음이 열려 목사님과 교제하시고 구원받으셨다.
므리야 팀은 유럽 투어를 준비 중이다. 비록 우리나라에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소망을 주셨다. 훗날 우크라이나가 가장 행복하고 좋은 나라가 될 것이고, 우크라이나를 통해 전 유럽에 복음이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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