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잔칫상
최고의 잔칫상
  • 김성훈
  • 승인 2022.09.15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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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키즈마인드
생각하는 동화

옛날, 조선 시대에 지혜로운 정승이 살았어요. 정승은 벼슬이 높았지만 검소하게 생활했고,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슬기롭게 문제를 풀어내 다른 대신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어요. 
어느 날, 정승과 대신들이 조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최 *참판이 편지 한 통씩을 건넸어요. 

*정승: 오늘날의 총리에 해당하는 벼슬.
*참판: 오늘날의 차관에 해당하는 벼슬.

‘열흘 후가 제 생일이라 잔치를 열어 고마운 분들께 감사드리려 합니다. 꼭 와 주십시오.’
“허허! 편지까지 돌리며 초청하는 걸 보면, 잔치를 크게 열려나 보군.”
대신들은 최 참판의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열흘 뒤, 대신들은 일을 마치자마자 최 참판 집으로 향했어요. 자리에 앉으니 하인들이 부지런히 부엌을 드나들며 부침개, 떡, 과일, 잡채 등 음식을 잔뜩 내왔어요.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준비하다니, 그토록 오라고 한 이유가 있었구먼!”
대신들은 한바탕 먹고 마시며 즐거워했어요. 
“참 잘 먹었소이다. 더도 말고 한 달에 한 번만 이리 먹으면 소원이 없겠군.”
“그러게 말이오. 참, 다음달이 정 *판서 생신이지요? 기대해도 될까요?”
“무, 물론이오. 오늘 잔치에 뒤지지 않게 차릴 테니, 한 분도 빠지지 마시구려!”
생각지도 않게 이름이 불린 정 판서는 큰소리를 쳤지만 내심 걱정이 되었어요. 
‘이만큼 음식을 차리려면 돈이 꽤나 들 텐데. 하지만 참판보다 벼슬 높은 내가 이보다 못한 음식을 낼 순 없지!’

*판서: 오늘날의 장관에 해당하는 벼슬. 

한 달 뒤, 대신들은 정 판서 집으로 모였어요. 모두의 관심은 생일 축하보다 ‘무슨 음식이 나올까?’에 쏠렸어요. 대신들이 자리에 앉자 하인들이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비찜을 내왔어요. 
“세상에, 이 귀한 갈비를 이렇게나 많이!” 
“자, 식기 전에 어서 듭시다!”
이렇게 생일 때마다 잔치를 벌이면서 대신들은 맛난 음식을 먹고 노는 데 재미를 붙여 갔어요. 대신들의 입도 높아져서 이젠 웬만큼 진귀한 음식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끼리끼리 모여 값비싼 음식을 즐기는 대신들이 생겨날 정도였어요.

 

입이 높아진 건 *정승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기름진 음식을 자주 먹다 보니 평소에 집에서 먹는 잡곡밥이 먹기 거북해졌어요. 
“안 되겠다. 달걀이라도 부쳐달라고 해야지.”
정승이 부엌으로 가 문을 빼꼼 열어보니 마침 한 하인이 저녁을 먹고 있었어요. 반찬은 묵은 김치뿐인데도 쫙쫙 찢어 누룽지를 물에 말아 척척 걸쳐 먹는 모습에 정승은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어요. 정승을 본 하인이 그릇을 내려놓고 물었어요. 
“대감마님! 뭐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아, 아니다. 그보다 반찬도 없는데 참 맛있게 먹는구나.”
“예. 오늘은 점심도 건너뛰고 일하느라 때를 놓치는 바람에….”
“아, 그랬구나. 그래, 어서 마저 먹거라.”
정승은 달걀 부침을 부탁하러 온 것도 잊은 채 방에 들어가 한참을 생각에 잠겼어요. 그러고는 무릎을 탁 쳤어요.
“옳거니, 그러면 되겠구나!”

다음 날, 정승이 대신들을 불러놓고 말했어요. 
“다음주가 내 생일이네. 그동안 자네들에게 대접만 받았는데, 이번에는 내가 한턱내야지. 지금껏 맛본 적이 없는 최고의 잔칫상을 마련하겠네.”
“아이고, 축하드립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잔치를 열 테니, 식사를 하지 말고 오게.”
“그러겠습니다, 대감!”
‘우리 중 가장 높은 정승께서 준비한 잔치라니, 얼마나 화려할까?’ 
대신들은 생각만 해도 신이 났어요. 

 

기다리던 정승의 생일날이 되어 대신들은 서둘러 정승의 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손님을 맞기 위해 한창 분주해야 할 집이 쥐 죽은 듯 조용한 게 아니겠어요? 대신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자리에 앉자 정승이 바둑판과 책을 잔뜩 가지고 나왔어요. 
“오늘 이렇게 와 주어 고맙네. 최고의 잔칫상을 준비하느라 시간이 좀 걸릴 테니 잠깐 놀며 기다리게나.” 
‘아침도 굶고 왔는데, 음식이 아직 안 되었다니….’ 
대신들은 당황했지만 바둑을 두고 책을 읽으며 음식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한낮이 되도록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대신들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만 쉴 새 없이 울렸어요. 

“대감, 식사는 언제쯤 할 수 있을까요?”
한 대신이 견디다 못해 조용히 묻자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최고의 잔칫상을 마련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구먼. 좀 더 기다려주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어요. 대신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종일 굶어서 걸음을 떼기조차 힘들었어요. 조금 더 있으니 그제야 정승 집 하인들이 가마솥에 밥을 짓고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구수한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져나가자 대신들의 입에 침이 괴었어요. 
“자, 다들 시장할 텐데 어서 드시게나!”
정승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신들은 상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어요. 차려진 건 잡곡밥과 된장국, 간단한 나물 몇 가지가 전부였어요. 그동안 먹었던 잔칫상과는 비교가 안 되었지만, 꼬박 하루를 굶은 대신들은 뚝딱 음식들을 비웠어요. 

 

식사가 끝나자 정승이 대신들에게 물었어요.
“차린 게 별로 없어 미안하네. 다들 배불리 먹었는가?”
“예, 대감. 참으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실은 나도 요즘 맛난 음식을 자주 먹으니 집에서 먹는 밥이 맛이 없어지더군. 한번 높아진 입맛을 낮추기가 쉽지 않아 오늘은 이렇게 다 같이 굶으면서 입을 길들인 걸세.”
“아하, 그러셨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들에게 정승이 이어 말했어요.
“백성들은 추수를 앞두고 양식이 떨어져서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다네. 그런 백성들의 심정도 헤아려볼 겸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걸세. 최고의 잔치란 말에 기대가 컸을 텐데, 대접이 소홀해 미안하구먼.”

“아닙니다. 오늘 이 잔치는 정녕 최고의 잔치였습니다. 첫째, 늘 먹던 평범한 음식들이지만 그 맛은 어떤 산해진미보다 훌륭했습니다. 둘째, 그동안 기름진 음식에 빠져 있던 저희 입을 길들여 주었습니다. 
셋째, 백성들의 어려움을 잊고 살던 저희의 잘못된 마음을 일깨워 주었으니, 최고의 잔치가 맞다마다요!”
“그런가?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잔치를 자주 열어야겠군.”
“하하하!”
정승의 말에 대신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 뒤로도 정승은 대신들과 함께 임금님을 도와 백성들을 훌륭히 보살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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