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신앙은 법이 아닌 마음의 흐름
[설교] 신앙은 법이 아닌 마음의 흐름
  • 글 | 박옥수(기쁜소식강남교회 목사)
  • 승인 2022.09.16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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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호 기쁜소식
믿음에 이르는 길_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2편

 

 

컴퓨터 게임 등은 사람의 마음이 흐르는 것을 막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이나 생활환경 등이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을 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게 가장 피곤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컴퓨터 게임은 부담은 없고 재미만 있어서, 거기에 빠져 지내면 점점 사람과의 부담스러운 만남을 싫어하고 나중에는 거부하게 됩니다. 학생들이 컴퓨터 게임은 잔소리를 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이래라 저래라 하기 때문에, 그런 아버지가 부담스러워 피하고 대화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버지와 세대 차이가 난다고 여기며 아버지를 귀찮아합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도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부담스럽습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다른 생각
성경에는 깊은 하나님의 마음의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서 재미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날 때 마음이 부딪히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도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 12:1~2)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갈 때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따졌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르는 것을 보셨으니,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제자들에게 하지 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자른 것에 대해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전혀 달랐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다윗이 배가 고파서 따르던 자들과 함께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배가 고파도 안식일은 지켜야지’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서로 흐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을 공급해 주시려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마음을 만드셨습니다. 인간과 서로 통하기 위해서입니다. 눈에 안 보이고 귀에 안 들리고 손으로 못 만지지만, 마음이 하나님과 흐르도록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흘러서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이 대부분 하나님과 흐르지 않습니다. 악한 영인 사탄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사람의 마음을 끌고 가기 위해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믿게 합니다. ‘나는 잘났어. 나는 똑똑해. 나는 진실해.’ 하고 자신을 믿게 만듭니다. 그 다음에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사기를 당하거나, 보증을 섰다가 큰 손해를 입거나, 어떤 사람을 믿고 개인사를 말했는데 그 일을 주변 사람들이 다 알고 있거나….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불신을 갖게 하여 아무도 믿지 않고 자신만 믿게 해서 하나님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자신을 믿는 데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열려서 하나님과 마음이 연결되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우리 속에 흘러들어옵니다. 우리에게 없던 힘이 흘러들어오고, 지혜와 평안이 흘러들어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말하지 말아야지! 도둑질하지 말아야지! 간음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거짓말을 안 하려고 해도 거짓말이 나오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해도 미움이 올라옵니다. 결혼한 남자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끌리지 말아야지!’ 해도 마음이 끌릴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굳게 결심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끌리는 마음이 결심보다 힘이 더 세면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도, 어떻게 해서라도 갖고 싶은 마음이 더 크면 거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두운 생각에 시달립니다. 밖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나 잔인한 생각이나 더럽고 음란한 생각에 이끌립니다. 그런 생각들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들과 이야기해 보면, 많은 재소자들이 바르게 살려고 해도 유혹을 이길 힘이 없어서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힘을 공급해 주어 행복하게 살게 하려고 인간에게 마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저, 일등병 아니고 아빠 딸이에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아브라함보다 4백여 년 뒤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지만, 모세보다 먼저 있었던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법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2장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 12: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때에는 아무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 시대에는 율법을 주시며 ‘이 모든 명령을 지키면 복을 받고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먼 인간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아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갖게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과 같은 마음을 가져서 마음이 흐르게 되길 바라지, 법을 가지고 대하길 결코 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육군 대령으로 제대했습니다. 그분 자녀들이 아버지가 부대에 출근할 때에는 좋았는데 제대하고 집에 있으면서는 늘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아빠, 저 일등병 아니고 아빠 딸이에요.”
“그래, 알았다. 그런데 그것 좀 가져와.”
“아빠, 갖다 드릴게요. 그런데 저를 일등병처럼 대하지 마세요.”
“알았어. 그런데 그것 빨리 해.”
오랫동안 몸에 밴 명령하는 삶을 자녀들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아빠, 여기는 군대가 아니에요. 가족이 사는 가정이에요. 우리는 군인처럼 못 해요. 아빠 말씀을 따를 때도 있지만 따르지 못할 때도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법으로 “이거 해! 저거 해!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그렇게 대하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이 비뚤어진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의 마음을 계속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이 보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우리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구나!’ 탕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렇구나’ 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법의 세계가 아닌 마음의 세계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불행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 속에 당신의 마음을 넣어주길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면, 그 속에서 ‘나도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이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다!’라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악을 이기고 죄를 이길 수 있으며, 가정이 화목해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가르쳐 주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우리 관계가 아름다워지길 바라시지, 우리에게 명령하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십일조 내!”
“예, 알겠습니다.”
“안식일 지켜!”
“예, 지키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이끌길 원하시지 않습니다. 군대에서야 마음과 상관없이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가정에서는 서로 마음이 흘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법으로 다스리길 원하시지 않고, 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흘러들어와서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같아지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마음의 세계지, 법의 세계가 아닙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할 법으로 생각하면 부담스럽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쉬게 하려고 안식일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쉬게 하시는 분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 불필요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잘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면 신앙생활이 정말 쉽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거짓된 마음이 일어나고, 음란한 마음이 일어나고, 남이 잘되면 시기하는 마음도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별로 좋지 않은 마음을 갖고 삽니다. 불신하고 미워하고 자신이 남보다 더 잘되길 바라며 삽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각에 갇혀 있을 때에는 그 세계가 제일 좋은 줄 압니다. 그러나 더 좋고 더 넓고 더 아름다운 세계가 있습니다. 마음을 넓혀서 ‘나’라는 테두리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우리 테두리 안에 있는 세계 말고 다른 세계를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누구나 저절로 달라집니다.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헌금도 하고 선한 일도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우리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금식기도 했는데…, 헌금 많이 했는데…’ 하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흐르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면 그 마음으로 악을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밝고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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